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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Archives: 칼럼

[칼럼] 한국의 ‘산티아고’를 만든다는 말이 주는 혼란스러움, 그리고 가벼움

얼마 전 행정안전부에서 ‘DMZ 통일을 여는 길(가칭)’을 조성한다는 발표를 접했다. 그 보도자료를 보니 인천 강화군에서 강원도 고성군까지의 도보여행 길을 잇는다는 내용이다. 농로와 임도를 살리고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총 286억 원(국비 200억 원, 지방비 86억 원)이 투입되어 456km로 조성된다.

[칼럼] ‘자신의 길’을 생각없이 걷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긴 거리와 긴 시간을 투자하며 걷는 것이 어떠한 ‘삶의 진리’나 ‘인생의 방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 시간을 독서에 투자하고 인생의 멘토를 만나 대화하고 배우는 데에 쏟을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어떤 길을 다녀온 것이 훈장이나 증명서가 되어 자신의 앞날을 비춰주거나 어떠한 삶을 담보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칼럼] 걷기축제에 대한 유감 – 이제 그런 축제는 서로 하지도 가지도 맙시다

가을여행주간을 앞세워 전국의 지자체마다 서로 ‘걷기대회(걷기축제)’를 한다고 아우성이다. 많을 때에는 하루에도 수십개의 길 관련 보도자료중 태반이 걷기대회가 개최된다는 홍보성 자료들이다. 그러나 수많은 걷기행사의 개요를 하나하나 짚어보자면 허탈함을 감출 수 없는 내용들이 부지기수다.

[칼럼] 관광포비아, 그리고 그 위의 길 여행

갑자기 많은 이들이 몰리면서 그 지역의 흐름 자체가 바뀌고 정착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오히려 지역을 등지게 된다, 그리고 그 빈 곳을 외지인들이 메꾸면서 더욱이 상업적인 지역으로 바뀌게 되어 옛 모습을 찾기 힘들어진데다 계속 밀려드는 방문객들로 인해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현상… 과연 괜찮을까?

[칼럼] 풍경을 위한 성급한 조성 속에 잊혀져가는 길 속의 이야기들

‘길’은 어떤 목적지를 가기위한 가장 현명한 형태로 나타난다. 때로는 위험을 피해가거나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그렇게 길이 가진 가치는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거쳐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우리의 말 그대로 ‘모든 것’이 길을 따라 전파되고 이루어진 것이다.

[칼럼] 그 많은 마을회관들, 그리고 평화누리길 게스트하우스

마을회관을 숙소로 사용하는 게 힘든가 생각하던 차에 뉴스를 접했다. 연천군에서 지역, 중앙부처 담당자들이 ‘평화누리길 게스트하우스 3호’인 옥계3리 문화복지회관에서 식사를 했다는 것이다. 마을회관이 그 지역의 걷기여행길의 숙소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칼럼] 잠시동안 넘어간 그 발걸음에 내 마음이 설렌 이유는

높이가 약 10여 cm가량, 시멘트 재질의 분계선 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를 나누며 덕담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역사적인 첫 북측 위원장의 대한민국 영토 방문이 이루어지려는 찰나,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팔을 잡아 북한 쪽 경계선을 넘어 기념 촬영을 한다. 후담에 의하면 “나는 언제쯤 북한에 가 볼 수 있느냐?”는 문재인 대통령의 가벼운 (가볍지만 굉장히 뼈가 있는) 질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그럼 지금 한 번 가보시라.”며 유쾌하게 대답하고 이끈 장면이다. 

<칼럼> 게스트하우스의 파티, 본말전도의 문화가 아닐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만나며 어울리는 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게스트하우스의 가장 큰 ‘멋’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국내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려는 데에 있어 ‘파티’가 여러 게스트하우스의 가장 큰 홍보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위기를 기회로, 한국관광의 다변화를 이끌어가야 할 때이다

한 TV프로에서 소개된 독일 젊은이들의 여행방식은 진정 이 땅의 관광문화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할 좋은 사례이다. 북한산을 오르고 경주를 찾아가고 다크투어리즘이라 할 수 있는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면서 한국의 역사와 스토리를 알게되어 진정 한국에 빠져 지내는 여행을 한 그들이야말로 차후 다시 한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큰 관광객들이다.

젊었다고 안걷는게 아니라 젊었으니 걸어야 한다

당장 삶이 변화되지 않더라도 어떤 길을 완주하고 산을 오른 후의 ‘나’ 이미 출발선에 선 ‘나’와는 분명 다른 사람이다. 비록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더라도 그렇게 걷고 오르면서 신체도 변화했을뿐더러 수많은 생각과 사고를 통해 한뼘 더 성장할 수 밖에 없게끔 사람은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청년들이여, 모든 길이 열려 있으니 지금이라도 신발끈을 동여매는 것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