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차들은 많았지만 고속도로 위는 다행히도 제법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달릴 수 있었다. 어느정도 가다보니 보이는 푯말은 [통도사]. 어린시절 수학여행쯤에 와보고 발걸음하지 않았던 장소를, 시간이 흘러 다시 가볼 생각을 하니 색다른 기대감이 들었다.

[어]휴 - 휴[休]

작업실 일과 개인 일정들이 실속없이 생겨나던, 완료하지못한 일들에 대한 불안으로 바뀌던,
겨우 주말에 몰아치듯 취하는 잠깐의 잠도 깨우던, 피곤함에도 나를 헤어릴 수 없는 바쁜일정 속으로 다시 떠 밀던,내 날숨과 함께 신음하는 이상한 일상에 있었다.

‘어휴-.’

그러다 따뜻한 햇빛이 비추던, 유난히 아침부터 설레이게 했던 진짜 쉬는 날.

잠이 덜깬 채로 분주한 외출준비를 하고 향한곳은 광안리에 위치한 브런치 카페였다. 맛있는 음식을 주문하고 카페에 비치된 책들을 훑어보면서 오늘은 어디갈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정해지지않은 목적지에 대한 불안함은 생각하지도 않고, 오로지 눈앞에 놓여진 브런치를 먹으며 마주않은 사람과 시집이나, 요리책을 깔짝이며 그저 그곳에서의 분위기를 즐기는데에 집중했다.

“정말이지, 오늘 휴일 맞구나"

이 풀어헤쳐진 기분이 하루종일 내 곁에 머물러 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느린걸음으로 잠시 쉬어가는 여행, 통도사

카페에서 나와 곧바로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주말이라 차들은 많았지만 고속도로 위는 다행히도 제법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달릴 수 있었다. 어느정도 가다보니 보이는 푯말은 [통도사].

어린시절 수학여행쯤에 와보고 발걸음하지 않았던 장소를, 시간이 흘러 다시 가볼 생각을 하니 색다른 기대감이 들었다.

통도사 입구를 통과하니 높은 소나무들이 우거진 길이 보였는데, 천장이 없는 차를 타고서 그 나무사이를 내달리자 코를 지나 머리 속까지 깨울정도로 맑고 시원한 산냄새가 풍겨져 왔다.

자동차의 속도에 비해 길이가 다소 짧은 길이지만, 사시사철 높고 푸른 소나무들의 이미지는 생각보다 강인했다.

‘피톤치드! 피톤치드!’

곧바로 통도사 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담요를 주섬거리며 ‘또각또각’.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 현재를 즐기다.>


이런 사찰에 올 것이란 걸 전혀 예상치 못한 오늘이라 울퉁불퉁한 길을 보니 높은 구두가 살짝 신경쓰였다.

하지만 이런 일이 한 두번도 아니고 오늘은 평소보다 느리고 더딘걸음으로 보이는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자 하며 집앞을 나섰던 터였고 한편으론 어떤 재밌는 사건들이 눈앞에 생겨날지 즐거워지는 어여쁜 구두소리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경사진곳이 없이 잘 다듬어진 길 뿐이라 구두신고 가볼만 합니다.)

그렇게 보폭이 작은 걸음으로 나무 한그루씩 위아래로 훝어보며 본격적인 입구를 알리는 아치형으로 이뤄진 삼성반월교를 건넜다.

그 아래 ,아직 채 녹지 못한 얼음들 사이 비춰지는 내 얼굴을 보니 이젠 제법 날씨가 많이 풀렸다는 것을 알아 볼수 있었다. 그리고 다다른 입구 앞, 펜스가 쳐져있던 오랜세월에 쓰러져 버린 보호수 하나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치료중…

짚으로 싸매어져 수액을 맞고 있는 잘 보이지도 않는 느티나무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는 동행자와 몇마디를 주고 받아본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주변에 있던 비슷한 시기의 크나 큰 나무 하나를 빙그르르 돌아보며 그 긴 세월의 묵직함을 예상했다.

온 계절을 향해 푸르렀다가 붉었다가 낙엽을 내던지며 앙상해지기를 무려 천년동안 반복했을 느티나무에게 말 할수 없는 숭고함이 사려왔다. 지금은 잠시 쉬었다가 몇백년 뒤에라도 좋으니 그 보호수가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 잎사귀가 따사운 햇살에 반짝이며 다시 그 기품을 뽐내주길 말없이 소망했다.

한국의 금빛사찰

본격적인 통도사 입구앞에 서보니 어릴적 견학여행에서 여러 사람들과 일자로 줄지어 다니며 돌아보던 느낌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수많은 시간이 지나서 보니, 아는것도 보이는 것도 많아져서 그런지 마치 성인들의 상식 놀이터 같았다.

바닥에 깔려진 한국문양의 타일이며 한옥의 전통방식의 종류들 등 내가 아름아름 주워들은 지식들이 눈으로 읽혀지면서 초점없이 살던 내 안구가 갑자기 이리저리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낙동강과 동해를 끼고 해발 1,087m 영축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통도사는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 통도사가 유명한 이유는 대한민국 삼보사찰로 불보사찰이란 점인데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금강계단에 봉안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대웅전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빛 바랜 단청에 취하다.>


나는 차근차근 둘러보며그 사찰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한국 건축물이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영역이 이뤄져 있는데 그 전마다 크고 작은 마당주가 있고 건물주변으론 낮은 꽃나무들이 있었다. 특히나 사찰을 둘러보며 기억에 남는것중에 단청의 색을 덧칠하지 않고 빛바랜 색 그대로 두었다는점에 개인적으로 굉장한 감명을 받았다.

화려하고 억지스러운 보존이아니라 옛것이 멈추지않고 바래지면 바래지는대로 자연과 어울려 지금의 세대와 함께 흘러가는 느낌. 때문에 옆에 동행자가 있다는 것도 잊은채 여러건물에 걸쳐 멈춰서서 혼이 빠진듯이 바라보았다.

내가 본 오래된 한국 건축물중에 손꼽을 만큼 고상함이 묻어나는 진짜 아름다움이었다.
오래된것이 변한다는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란걸 인정하는것과 동시에 우리는 잠시 한 세대에 머물러가는 존재라는 것에서 그곳에 계신 승려들의 배려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체를 다시보면 유난히 사찰 주변 산의 푸르른 소나무들이 더 푸르게 보이고, 사찰이 온통 한국만의 색을 담은 금빛사찰로 보이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게 한국다운, 한국만의, 한국적인 아름다움이지!”

나는 어느새 그곳에 보이는 모든것을 담고 또 담으며 통도사의 시간속에 뒤엉켜 있음을 즐겼다.

이른 봄에 핀 홍매화

통도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제법 무거워 보이는 카메라를 하니씩 들고서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는 곳이 있었다.

<통도사 홍매화 나무>


가까이 가보니 350년 된 어여쁜 홍매화였다. 겨우내 얼어있던 가지에 작디 작은 꽃봉우리들이 올라와있고 몇몇은 이른 봄의 시작을 알리듯 예쁘게 꽃망울을 터트린 상태였다.

흔히들 봄은 젊음과 새로운 시작으로 비유한다.

그 순간 통도사에 오기 전 브런치카페에서 우연히 읽은 윤동주 시인의 ‘사랑스런추억’의 마지막 문장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와 엄마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스무살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봄을 시작한 지금, 이게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날의 나는 엄마의 스무살에 입었던 옷을 상처하나 없이 고스란히 물려받아 입고 있던 날이었다.

다시 말해, 윤동주 시인의 젊은시절에 쓴 시는 젊은 시절의 내게 읽혀졌고 엄마의 젊음은 이 옷하나에 담겨 나의 젊음 시절에 입혀졌다. 굉장히 놀랍고 벅찬순간이었다.

어느하나 버림없이, 나의시간 나의시절에 들어와 다시 또 함께 흘러가고 있다는게 신기하면서도 무척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통도사의 자장매인 홍매화 꽃잎이 내게 알려준 봄은 사랑스러움과 설레임 그 자체였다.

주변 마을 둘러보기

봄이 피었음을 기뻐하며 싱글벙글 통도사로 빠져나와 둘러본 곳은 통도사 입구에서 보이는 [통도문화예술거리]였다. 개인적인 기억으론 거리를 들어선지 1분도 채 되지않았는데 굉장한 실망을 받은 거리로 기억된다.

예술가들의 위한 예술가들에 의한 거리인것처럼 마치 서울인사동의 거리가 떠오르는 멋있는 분위기였지만 아트센터주변으로 있는 몇몇의 갤러리를 빼고는 보통 전통찻집이나 오래된 골통품가게들이였다.

그래도 처음엔 내가 생각했던 통도사의 분위기와는 달리 현대적으로 정리된 건물들을 봐서 약간의 반감을 가지는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보아도 이곳에 예술가는 보이지 않는 느낌이고 하필 국보 통도사앞에서 한국적인 느낌을 주면훨씬 더 좋았을텐데, 그 정서에 어울리지 않게 나오자마자 유럽풍의 건물들이라니 굉장한 아이러니함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결국 나는 그 괴리감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외곽으로 걸었다.

<서부마을의 담장>


조금 걷다보니 양산천이 보이고 주변에 위치한 (하북면)서부마을로 들어갔다. 마을푯말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부마을은 낮은 건물들로 단조로움과 동시에 조용함이 드는 마을이였다.

돌과 깨어진 도자기로 쌓은 낮은담과 70-80년대에 있을법한 주택건물이 줄지어 있는 마을이였다.
낮은 담벼락 너머 보이는 마당에는 작은 텃밭들과 향나무들을 곧곧에서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도자기로 빚은 명패가 그 마을의 느낌을 말해주고 있었다.

강변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양산천 주변을 공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알록달록한 터널과 조명기기들 그리고 바람개비까지 완전한 모습을 보기까진 몇달은 더 걸리겠지만 꽤나 예쁜모습을 기대하며 지곡교를 건넜다.

지곡마을은 서부마을과 거의 비슷한 풍경을 지니고 있지만 간간히 조금 더 오래되고 정겨운 풍경들로 채워져 있었다. 사실 이 주변 마을들이 크지않아 그 장소만의 특징은 적었지만 지곡마을 끄트머리에서 개짖는 소리가 들리고, 어르신이 나오시더니 천에서 흐르는 물을 퍼다 주는 모습에서 내 나름의 신선함을 보았다.

골목골목을 다니다보니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 시퍼런 밤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전보다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국화향이 가득한 방안

바로 부산으로 가려다가 잠시 몸좀 녹일 생각으로 들린 ‘다요’라는 전통찻집.

골동품가게에서 볼수 있을법한 물건들이 입구부터 시선을 끌어낸다. 도심에서 쉬이 볼수 없는 물건들이 그 찾집에는 어느하나 튀는 것없이 자연스럽게 있었다. 하나하나 예뻐서 밖에서부터 한참을 사진을 찍어가며 실내로 들어갔다.

<그 옛날 이 풍금이 빚어내는 소리는 어떠했을까?>


실내로 들어가니, 밖과는 또 비슷한듯 다르게 너무나 예쁜, 흙으로 빚은 찻잔들이 무수히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동행자는 들어가자마자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내게 차부터 시키고 하라며 사장님이 안내해준 온돌방으로 불렀다.

이곳은 사실 보이차를 년도별로 판매하는 전문 찻집이긴 했지만, 우리 두사람은 바보같이 향이 그윽한 국화차를 시켜버렸다. 하하..

주문을 하고서 다시 일어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작은 찻집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사장님께서는 찻잔 하나하나를 들었다 놨다 하며 관심을 보이는 내게 이 주변 도예선생님들의 작품들이라고 하시며 이곳에 한번씩 예술가들이 방문하신다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곧바로 사장님께 이 마을의 예술가들에 대해 여쭤보았다. 사장님이 말씀하시길 “예술거리에는 예술가들이 없다. 예술거리와 아트센터가 분명 좋은 의미들로 만들어졌지만, 지곡마을과 같이 외곽쪽에서 작업하시며 제자들을 양성하신다”고 하셨다.

<한국적인 앤틱함이 가득한 ‘다요’의 내부>


나는 도시와 예술가들 사이에서 해결하지 못한 간극이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흔히 있는 일이라 예상은 했지만 마음 한쪽에 드는 이 씁쓸함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조용히 방으로 돌아 들어갔다.

그 사이 방바닥은 꽤 뜨끈뜨끈 해져있었고, 앉자마자 바닥에 연신 차가운 손과 엉덩이를 문지르며
하루일상 속 차 한잔을 앞에 마주앉은 사람과 공유했다.

국화향이 방안을 채우고 따뜻한 차 한잔에 온몸이 녹아내리고, 입안에는 국화향이 맴도는 그 순간엔
내 머리위에 조명은 더더욱 노랗게 보였다. 그리고 나의 동행자도 밖에 있을때보다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너무 편안한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과 동행을 해봤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했다. 묵묵히 다른이의 시선과 생각을 뒤에서 바라 보았다가 흩어져서 각자의 사색을 즐기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또 그것에 대해 지금처럼 차분히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농담과 진담이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국화차는 어느덧 늦은 밤을 맞이했다.

휴우-

부산으로 돌아내려오는 차 안, 약속한 것 처럼 내내 서로에게 말을 걸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다.

우리 두 사람 다 자신의 생각에 빠져서인지 종일 지쳐서였는지 명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예민한 사색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순간이였고 오래된 것을 더욱 사랑하게된 순간이기도 했으며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예술에 대해 다시 들여다본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일로 향해 돌아가는 그 밤이 굉장히 평화로웠다.

<다요를 나서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휴일이 사람에게 주는 감정은 참으로 다양했다. 새로움을 주기도 하면서 그간의 나를 돌아 볼 기회도 준다. 얽매여있던 생활에서 반동되어 나타는 모든 감정들과 행동들은 그간의 시간동안 무엇으로 지쳤는지, 무엇을 하고싶었는지 자연스레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매일 모가지를 바닥으로 향해있던 사람은 푸른 하늘을 연신 올려다볼 것이고, 갑갑하고 늘 정해진 공간에서 있었던 사람은 넓은 풍경앞으로 다가가 온몸의 근육들을 열어 젖힐 것이다.

또한 자신의 시간을 타인의 시간들 속에 살았다면 반대로 온전한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휴식이 주는 즐거움이란 고독에서 더욱 빛을발하는 법. 분명 고독이라는 단어 속에는 슬픔이 있는건 사실이나 그 속에도 즐거움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그러기에 우리는 단순한 외로움에서 그 단어를 명명하지 않는다.

나는 여행하는 사람들이 타인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사색을 바라볼 줄 알며 그 고독에 자연스레 침묵을 즐겼음 한다.

휴우-휴!


*본 기사는 월간 로드프레스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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