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지 않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조금 이른 아침을 맞이 했다. 새벽 4시 30분,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어젯밤 미리 챙겨놓았던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장비들을 쓱 훑어 보았다. 2016년에 완주한 Continental Divide Trail(CDT, 5000Km) 덕분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를 몸으로 체득했기에 Pacific Crest Trail(PCT, 4300Km)을 가기 위한 장비는 무척이나 간소화 되어버렸다.

PCT, 4300Km - , 자연과 사람을 잇다.

<내가 걸어야 할 PCT를 걷기전에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집을 나서는

늘 그렇지 않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조금 이른 아침을 맞이 했다.

아직은 세상이 곤히 잠들어 있는 시간 아니, 평소였다면 잠에 취해 세상과 단절이 되어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을 나만의 유일한 시간일 새벽 4시 30분.

누구나 그렇듯 아침에 따뜻한 이불 밖을 나오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특히나 아침 잠이 많은 나에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기에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이른 아침을 원망하며 자연스레 샤워실로 걸어 들어갔다.

비몽사몽 하는 나를 깨워줄 유일한 해결책인 샤워기를 잡고 따뜻한 물줄기를 맞으며 없던 정신을 조금이나마 되찾기 위해 온몸을 적셨다.

샤워가 끝날 무렵 거울 속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정신을 되찾았다. 그렇게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어젯밤 미리 챙겨놓았던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장비들을 쓱 훑어 보았다. 스스로도 완벽하다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딱히 더 챙길 건 없어 보이기도 하고, 2016년에 완주한 Continental Divide Trail(CDT, 5000Km) 덕분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를 몸으로 체득했기에 Pacific Crest Trail(PCT, 4300Km)을 가기 위한 장비는 무척이나 간소화 되어버렸다.

침낭부터 텐트, 가방, 스토브, 냄비, 헤드렌턴, 몇 가지 옷, 그리고 향수병을 없애줄 소중한 아이템 한국 라면까지 CDT를 위해 준비했었던 장비구성에 비하면 정말이지 올해는 트레일을 걸으며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비구성이었다.

<4300km를 걷는 데 있어서 짐의 경량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당시 CDT를 준비할 때만 떠올려봐도 국내에서는 트레일(Trail)이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할 뿐더러 미국 3대 트레일(PCT, CDT, AT)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트레일(Trail)이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면 흔적, 지나간 자국, 배가 지나간 항적이나 산길 또는 오솔길을 의미 하지만 백패킹 분야에서는 ‘걷는 길’이라는 의미로 해석 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 되고 있는 실정이다.

쉽게 말해 장거리 하이킹이라고 보는게 맞을 듯 싶다.

트레일(Trail)이라는 용어는 주로 북미에서 사용되며, 걷는 행위 자체보다는 코스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한번 예를 들어보자면 등산의 경우 수직으로 나있는 등산로를 올라가는 행위라고 치면, 트레일(Trail)은 수평으로 이동하며 능선이나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코스의 개념이 강하다.

<트레일, 그 끝이 없는 길을 걷는다는 도전>


본론으로 돌아와 2016년 CDT를 준비하면서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 없는 장비들을 들고 간 기억이 선명히 떠오른다. 그 중에 대표적으로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를 들고 다니면서 고생했던 기억이 더 많지만 나름 유용하게 썼던 기억이 난다. 결국 트레일을 걸은 지 2주 만에 지인 집으로 보내버렸지만 말이다.

누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었던가.

최대한 무게를 줄이고 또 줄여도 Continental Divide Trail(5000Km)를 완주하기에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둘 모두 힘든 여정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참 무모하고 용감했었던 듯 하다. 그래도 내 생에 잊지 못할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기에 PCT라는 또 다른 모험을 선택 했지 않나 싶다.



엄마, 미안해

모든 짐을 다 챙기고 대문을 나서는 순간 엄마의 미묘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다녀와’라는 그 한마디가 그 날 따라 왜 이리 아프게 다가오는 건지 수만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나도 엄마에게 ‘잘 다녀올게요’ 라는 짧은 한마디만을 남긴 채 문을 닫고 가려니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벅차 오르는 감정을 숨긴 채 어렵사리 대문을 닫고선 한동안 대문 밖에 서있었다.

그 동안 너무 이기적인 아들은 아니었는지, 가족을 너무 소홀히 대했던 건 아니었는지 마음이 아리고 또 아렸다. 항상 티격태격하는 엄마와 아들이지만 순간의 단 한마디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렇다.

엄마와 나는 일반적인 가정보다 조금 더 애틋한 관계일 수 밖에 없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신 뒤로는 어머니와 단둘이 지내왔기에 형제도 없는 외동아들인 나는 엄마에게 너무나 특별한 존재임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내 성격 탓에 번번히 엄마에게 상처 주는 말을 종종 하고는 했다.

항상 멀리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그 동안의 일들이 스쳐 지나가며 내 자신에 대한 실망과 후회를 했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새로이 다짐을 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들은 행복한 엄마와 아들로 웃음 가득한 날들을 보낼 수 있게 노력하기로 말이다.

Rest In Peace

복잡미묘한 감정이 뒤섞인 채 발걸음을 옮겨 집을 나섰다.

어제 밤 미리 동네친구에게 연락을 해놓았던 터라 이른 새벽녘부터 차를 이끌고 우리 집 앞에 우두커니 서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차를 타고 부산역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평소대로 묵묵히 사소한 대화만을 이어갈 뿐 내가 미국에 걸으러 또 간다는 사실이 서로 놀랍지도 않아서 일까? 너무 서로에 대해 잘 알아서 일까?
그렇게 부산역에서 ‘나중에 보자’ 라는 말만 남기고 나는 KTX에 몸을 싣고 친구는 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돌아갔다.


<홀로걷는 시간이 많은 장거리 하이킹은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홀로걷는 시간이 많은 장거리 하이킹은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KTX에 올라 인천공항으로 가기 전 PCT커뮤니티를 둘러 보던 중 Mt. 휘트니에서 하이커 한명이 실종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문득, 혼자 다니다가 조난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들면서 동시에 실종 되었다는 그 친구가 한시라도 빨리 구조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렬했다. 남일 같지 않아 실종 되었다던 기사를 개인 SNS에 올려 하이커 친구들에게 공유를 했고, 많은 친구들이 한결 같은 마음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도했다.

한동안 그녀를 위한 기도를 하고선 30분이나 흘렀을까?

PCT커뮤니티에 실종되었다던 친구의 새 소식이 업데이트가 되면서 추락사로 발견되었다는 추가 기사가 올라왔다.

마음이 무거웠다. 꽃다운 나이 27, 하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 많은 친구가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되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올해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눈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Mt. 휘트니 구간은 내가 걸어야 될 PCT 코스 중 하나였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PCT 하이커들이 Mt. 휘트니 구간을 지나면서 기회가 된다면 정상에 한번쯤 오르고 싶어 하는 PCT의 꽃의 구간이라 불리우는 곳이다.

그곳에서 고인이 된 그녀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작년에 다녀온 CDT때 느꼈던 긴장감이 사라지고 기대감만이 가득했던 이 순간, 그녀의 부고는 느슨해진 마음이 가득했던 나에게 다시 한번 경각심을 상기 시켜 주었다.

언제 어떻게 위험이 닥쳐올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이자 나의 꿈의 길 중의 하나였던 PCT의 첫 인상이 나에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그 미지의 세상이 어떤 풍경과 경험을 선사할 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글/사진_정승재

Facebook - https://www. Facebook.com/travelvirus/

Insta - https://www.instagram.com/travelvirus/

Songdyli16@gmail.com

저작권자 © 로드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