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을 따라 흐르는 강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도로, 대기리를 지나면 노추산 모정탑길 표지판이 보인다. 어미의 등 처럼 굽은 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면 할머니가 세운 삼천여 개의 돌탑이 나타난다. 놀라움은 탄식으로 변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들뜬 가슴은 먹먹함으로 미어진다.



먼저 간 자식들을 가슴에 묻어도 집안에 우환은 끊이지 않았다.

가슴을 쥐어 뜯던 어머니의 눈물이 눈 밑에 깊은 고랑을 만들던 때, 어머니의 꿈 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노추산 계곡에 3천 개의 석탑을 쌓으면 우환이 사라진다'고 알려준다.

그 이후 오가는 사람도 찾을 수 없는 그 계곡에서 어머니는 남은 자식들의 발복(發福)과 먼저 간 자식들의 왕생(往生)을 위해 작은 몸을 굽혀 돌을 들어 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차순옥 할머니가 26년 간 산 속의 움막에서 먹고 자며 세운 3천여 개의 석탑은 깊은 계곡을 일부터 찾아오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2011년 66세로 작고하신 차순옥 할머니의 모정이 담긴 노추산 모정탑길은 방문자들이 하나하나 세운 돌탑들이 더해지면서 이 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그 깊은 어미의 사랑과 헌신을 전달하고 있다.

노추산의 자락을 따라 편하게 걸으며 즐길 수 있는 이 가벼운 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그 먹먹함과 정성에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길이다.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 봄과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가을에 찾으면 그 호젓함은 더욱 그 길을 아름답게 만든다. (답사일시 2017.04.18)





노추산모정탑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오갈 수 없다. 내비게이션에 '노추산힐링캠프'를 검색, 송천 건너 주차장에 주차한 후 다리를 건너 걸어야 한다. 총 길이는 왕복 4~5km 내외이지만 겨울에는 움막 일대에 눈과 얼음이 뒤덮여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서천이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그렇게 도로를 따라 대기리를 지나면 노추산 모정탑길 표지판이 보인다. 다리 옆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길을 걷기로 한다.

다리를 지나 걷는 그 길, 시원한 솔바람과 그늘이 이 곳까지 찾아온 여행자의 노고를 치하한다.





차순옥 할머니를 기리며 이 길에 바치는 시비를 지나면 이 곳을 방문한 자들이 할머니를 추모하며, 또한 자신들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며 쌓아올린 돌탑이 이어져 있다.
산 기슭의 비탈진 곳에도, 잘린 나무 밑둥의 너른 면에도, 어떻게 세웠을까 놀라움이 드는 계곡의 맑은 물 한가운데의 바위에도 크고 작은 돌탑들이 천가지 사연과 만가지소원을 담고 오롯이 서 있다.


곧은 가지 끝에 맺혀 핀 진달래가 당당한 젊은 어미의 모습이라면 허리가 굽은 채 작은 돌탑에 기댄 진달래는 삶의 고던한 부침 속에 자식만을 바라 본 늙은 어미의 뒷모습이다.





제각각의 꽃들 속에는 그렇게 어미의 일생이 담겨 있는 듯 하다.






해를 넘긴 억새의 마른 몸짓에서도 어미를 느끼기는 어렵지 않다. 그 야윈 마디 하나하나와 진이 다 빠진 듯한 흰 머리를 닮은 억새는 강한 산바람에도 쉬이 꺾이지 않는다.




이미 마른 줄기에서 생기는 찾을 수 없더라도 결국은 그렇게 서 있는 모습,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 이 노추산에서는 새롭게 다가온다.






어미의 등 처럼 굽은 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작은 개울과 다리를 만나게 된다. 차순옥 할머니가 세운 3,000여개의 돌탑길을 만날 차례이다.




놀라움은 탄식으로 변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들뜬 가슴은 먹먹함으로 미어진다.

하나하나의 탑마다 스민 정성과 손길은 혹여 몸에 스쳐 돌 하나라도 떨어질까 걸음걸이를 조심스러워지게 만든다.아무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자식이다.


그렇게 돌탑을 따라 걸으며 내가 받은 사랑과 정성을 새삼 떠올리게 되는 길이다.




왜 그렇게까지 손이 갈라지고 허리가 굽어지면서 26년을 이 곳에서 보내셨는가. 도대체 자식이란 어머니에게 어떤 존재인 것인가.


길의 끝에서 만나는 할머니의 숙소는 풍화속에 흔적만 남았으나 새로이 잘 복원되어 있다.



그렇더라도 그 움막은 장엄할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는 돌탑들 사이에서 너무나 작게 세워져 있다. 그 선명한 대비에 너와지붕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어 본다.


돌아오는 길은 분명 방금 왔던 길이건만 먹먹한 마음 때문일까 모든게 새롭게 보인다.



나이가 들어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꼭 필수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일반적인 흐름이다. 그렇게 내 자식을 키우면서 이전에 부모에게 받은만큼의 정성을 토해낼 수 없다. 언제나 받은 것 이상을 망각하는 자식이건만 결국 나이가 들어 머릿가 희고 나서도 늙은 자식은 또한 어미를 찾게된다.







가볍게 걸어왔지만 돌아가는 길은 마음 속 울음을 참느라 꺽꺽대며 걷는 길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길을 걷고나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릴 것이다. 부모를 먼저 떠나보낸 이라면 잠시 송천 강가에 앉아 산과 하늘을 바라보며 그 그리움과 죄송함, 감사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하릴없는 한숨을 내쉴 것이다.




걷는 이를 어린 자식으로 만들어주는 길이다. 그리고 자신의 불효를 깨닫게 하는 길이다.




스스로 불효를 깨달으면 이미 불효자는 아닌 셈이다. 그러니 길 위에서 마음껏 울어도 좋다.
















저작권자 © 로드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