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험난한 운명이다. 박복하다는 표현이 걸맞다. 그래도 세상 모든 걱정과 우환을 딛고 밝게 살려는 그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순대국, '특'으로 하나요!"
오래간만이다. [맛집으路]에도 소개한 적 있는 신망리 유일순대국, 영하로 한참은 내려간 날씨 속에서 언 뺨을 어루만지며 들어섰다.
가격 빼고는 전혀 변하지 않은 그 곳, 코다리를 손질하시던 이모님이 주방으로 들어가신다. 아직 식사시간 전이다. 홀로 우두커니 앉아 이 곳에서 순대국을 먹었던 각각의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한참 상념에 빠져있을무렵, 그윽한 향기와 더불어 순대국이 앞에 놓인다.
그래, 여기에선 이 것만한게 없지.
유일순대국은 뜨겁지 않다. 수저로 바로 불지 않고 국물을 떠 먹을 수 있을 정도다. 팔팔 끓어오르는채로 나오지 않는다. 간도 이미 되어있다. 아마도 나처럼 빨리 맛 보고싶어 안달난 이들을 위한 배려...일리가 있겠는가.
여하간 바로 국물부터 맛 본다.
'그대로야... 언제나 그대로야.'
기분좋게 머릿고기와 순대부터 맛본다. 밥을 말아 한껏 배를 채울 무렵 주인 어르신이 들어온다.
"또 오고있어..."
한 마디에 이모님이 주방으로 들어가신다. 이윽고 주인 어르신과 이모님의 대화가 주방에서 이어진다.
"밥도 또 못 먹어서 배만 고프면 오는데 어쩌겠어."
"그래도 홀아비한테 어떻게 가서 같이 사는데 참 안타까워요."
"그 양반이 일도 안하고 맨날 술만 퍼 마시는데 집에 먹을 것이라도 있겠냐고."
"얼마전엔 도로에서 차가 탁 치고 그냥 가더라니까요. 지금도 다리를 절더라고요."
요즘 세상이라는 말은 말자. 인생에 어떤 풍파가 있을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함부로 되뇌일 것은 아니다. 참견할 것도 아니다. 그래도 귀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날도 추운데 얼마전에는 그 양반이 술에 엄청 취해서 소리를 지르고 던지고 그랬는지 그 한 밤에 문 바깥에 나와있더라니까."
"아니, 그래도 자신을 보고 집에 들어왔는데 그러면 안되지..."
"국물에 고기랑 밥 좀 말아줘, 저리 쳐다보는데 어찌 모른척해... 너무 야위었어."
"그래요, 손님들 오기 전에 얼른 먹고 가라고 해야지요."
허겁지겁 먹던 수저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이렇게 추운 날에, 차 사고까지 났는데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을 그 누군가, 맘 편히 밥 먹고 몸 누이기 힘든 그 누군가가 아직도 있다. 오가는 이 드문 도로를 낀, 작은 역 하나를 낀 이 농촌에도 그런 '박복한 삶'이 있다.
참견치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머릿고기 넣어 적당히 만 밥 반그릇 가냥을 들고 나가는 이모님을 보며 사라졌다. 이 추운데 아무리 그래도 바깥에서 식사하게 하는 것이 불편했다. 한 그릇 조용히 계산하면 될 일이다.
일어서는 순간 열린 문틈으로 그 박복한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아이쿠... 내가 너무 머릿 속에서 소설을 쓰고 앉아있었구나...'
비쩍 마른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이모님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절대 폐를 안 끼치겠다는 듯,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이모님이 스텐 그릇에 담아준 고기와 밥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그래도 전보다 좀 크긴 했어요. 맨날 오는데 아휴, 추운데 배까지 곯으면 어찌 이 겨울 날려고. 주다보니 이젠 그냥 때만 되면 찾아오네."
주인 어르신이 등 뒤에서 개를 보며 들으라는 듯이 말을 꺼낸다.
"내가 치우고 싶어도 또 우리 집에 엄청 큰 개를 키우고 있어서 같이 키울수도 없고... 그냥 이렇게 밥이라도 주고 있어요. 참, 좋은 집에 누가 데려가면 좋겠지만."
계산을 마치고 나온다.
허겁지겁 밥그릇을 비운 그 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리에 몸을 비빈다. 붙임성 좋은 아이다.
손을 내미니 좋다고 핥고 깨문다. 동네에서 사랑 좀 받으면 지금보다 포동포동 할 것인데 이 겨울, 문 연 곳 드문 이 시골에서 참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것이 한 눈에 보인다.
슬쩍 몸을 쓰다듬어보니 이것, 너무 말랐다. 한숨이 푸욱 나온다. 그래도 유일순대국이 이 개에겐 말 그대로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여정을 이어가야기에 가방을 메고 걷기를 시작한다. 한참을 따라오는 개에게 억지로 눈을 돌리려 해도 못내 밟힌다. 다가가서 안아본다.
"너, 어찌 이 겨울 날래. 어? 잘 먹고 건강해야 하는데 어찌 날래..."
내려놓고 훠이훠이 가라고 손을 휘두른다. 못내 다시 순대국집 방향으로 향하는 그 저는 걸음이 눈에 밟힌다.
날도 궂은 날, 그 걸음이 한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떠나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