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은 강화풍물시장을 거쳐 고식이들판을 따라 산을 넘어 선원사지로 가는 길이다. 선원사에서 삼동암천을 지나 만나는 화남 고재형 선생의 생가에서 그 처연함에 고개를 숙인다. 선생의 여정에 술을 따라 준 "구씨"의 후손일지 모를 어르신과의 정겨운 대화는 잊지못할 추억이다.

강화나들길 6코스는 화남생가 가는 길 입니다.
1906년, 나귀타고 강화도의 백여 곳의 마을을 모두 둘러보고 산과 바다를 돌던 그 화남선생의 생가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이 강화나들길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하신 분으로, 이번 6코스에서 선생의 생가를 만난다는 것은 감개무량하기도 합니다.
또한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한 이 길은 유명한 사찰인 선원사가 세워졌던 터인 선원사지를 지나 풍요로운 강화군 선원면, 불은면의 내륙을 따라 걷는 코스입니다.
전체길이는 홈페이지와 앱이 서로 상이합니다. 홈페이지는 강화버스터미널에서 광성보까지 18.8km, 6시간 소요라고 표기되어 있고 앱에서는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오두리입구(터진개)까지 14.6km, 4시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앱에서도 코스경로는 또 광성보까지 따릅니다.)
그러나 2015년 12월에 카페를 통해 공지된 수정노선을 보니 시작점은 강화풍물시장, 도착점은 오두리입구(터진개)로 확정되어 있네요. 아무래도 여권, 홈페이지, 앱 모두 정리가 필요합니다. 꼭 이 6코스뿐만 아닌, 이 전에도 이런 부분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지적한 바 있습니다.
*강화풍물시장을 지나서는 코스의 종점 직전인 오두리의 슈퍼까지 긴 시간동안 음료수나 간식 등을 살 수 있는 편의시설이 없습니다. 미리 필요한 것을 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1. 강화풍물시장 ~ 선원사지 (강화풍물시장 ? 창1리 ? 선원사지)
*편의시설 : 식당 ? 강화버스터미널, 풍물시장 인근 (한식, 분식, 중식 등)
화장실 ? 강화버스터미널, 강화풍물시장, 선원사지



강화버스터미널에 도착, 6코스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버스터미널을 나와 우측으로 걸으면 곧 풍물시장을 만나게 됩니다. 도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강화군 노인복지관이 나옵니다.
이 노인 복지관을 지나 논길로 접어들게 되는데, 논길의 입구에서 6코스의 시작 스탬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기분좋게 스탬프를 찍었으니 여정을 시작해볼까요?
한참을 논길을 따라 걷게 되니 처음부터 기분이 아주 상쾌해집니다.
초록색은 눈의 피로도를 풀어준다고 하는데 꼭 그런것만이 아닌, 걷는이에게 힘을 더해주는 효과도 있는 듯 합니다.
이 너른 평야는 조산평이라고 하지요.



길을 따라 가다보면 도로종점 표지판이 나옵니다.
그대로 직진해서 나가다 보면 옆의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나타납니다. 조심스레 건너 반대편으로 나온 후 쭉 뻗은 농로따라 걸으면 됩니다. 내려오던 방향으로 이어 내려가는 것이 아닌, 옆으로 나아가는 길 입니다.



농로를 따라 직진하다보면 도로가 나오고 그 도로를 따라 올라가게 됩니다.
'어째 힘들게 내려온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갈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창1리 마을로 들어서기 위해 가는 길이랍니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만나는 카페를 지나 왼쪽으로 창1리로 들어섭니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묻어난 마을인 창1리는 고식이마을로 불리기도 합니다.
강화버스터미널에서 고식이마을까지 걸어오며 만난 조산평은 고식이들판이라고도 불렸지요. 고려시대 이후 개간하여 농지가 된 것으로 강화도에서도 손꼽히는 옥토로 많은 이들이 투자하느라 난리라고 화남 선생의 시에도 나와있답니다.
고식이마을은 이 마을에 살던 고씨 성을 가진 힘쎈이가 마을 냇가에 큰 돌을 던져 다리를 놓았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고식이마을로 불린다고도 합니다.



마을길을 지나 6코스 초반부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강화인삼스파랜드를 만납니다.
지금은 비어있는 건물로 이렇게 우두커니 서서 길의 이정표 역할을 할 뿐입니다만, 그래서일까 사진으로 수 없이 본 이 곳의 풍경이 더없이 반갑기만 하네요.
이 강화인삼스파랜드에서 길이 끊겨 당황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앞마당에서 산 쪽으로 보면 산길이 나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리본과 표지판도 보입니다.
약간 제초작업이 필요하겠네요.



소박하게 난 오솔길은 경사가 완만하여 상쾌하게 걷기 좋습니다.
시원한 그늘과 바람은 물론이고 나무를 잽싸게 올라 도망가는 청솔모 등 구경거리가 많은 길입니다. 좀 더 쉬었다 가라고 길 위에 드러누운 나무 한 그루는 위험하다기 보다는 운치를 더해주네요.
그런데 이 산길을 걷다보면 어느순간 별천지를 만납니다.





누리장나무 꽃에서 나는 향기가 고사리와 어우러져 이 구간을 정말 신비롭게 만듭니다.
잎에서 누린내가 난다, 눌은 장 냄새가 난다하여 누리장나무, 개똥나무, 구릿대나무 등등 온갖 심각한 이름이 붙었습니다만, 그 꽃의 향기까지 그렇지는 않네요. 꽃은 꽃입니다.
오히려 음지에서 자라는 양치식물과 함께 피어 상쾌함과 달큰함으로 그 길을 가득 채웠습니다.
가만히 맡으며 걷다보니, 그 향기가 상당히 관능적입니다.

산길을 가로막은 나무때문에 당황한 순간, 주위를 둘러보아도 리본이 없습니다.
가만히 보니 뒤쪽 저 너머에 리본이 아스라이 보이더군요. 나무를 돌아서 올라갑니다.

무서운 물 웅덩이도 만나게 되고요.




산길을 오르내리다 드디어 선원사지 뒷편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내리막이 미끄러운 구간에는 잡고 내려올 수 있도록 줄이 설치되어 있어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산길이 끝나기 직전에 쓰러진 아름드리 나무는 마치 한마리 용과도 같았습니다. 나무껍질이 용의 비늘 같더군요.
선원사지 뒷산에 용 한마리가 누워 있더라... 꽤 그럴듯한 그림이지 않습니까?



선원사지로 내려왔습니다.
선원사지는 사적 제259호로 지정된 유적입니다. 1232년, 고려 정권을 휘어잡았던 최씨무신정권의 한 축인 최우가 호국사찰로 세운 절입니다. 앞서 3코스에서 만났던 이규보묘가 생각나시나요? 그 이규보 선생도 최우가 추천하여 관직에 올랐었지요.
몽골의 침략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부처님을 힘을 빌리고자 만든 팔만대장경도 이 선원사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합천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고요, 실제로 제작한 곳은 선원사입니다. 많이들 헷갈려하는 부분이죠.
그만큼이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찰로 그 터의 크기를 보았을때 그 규모를 쉽게 짐작할 수 있지요.

예전에, 10년은 덜 되었고 아마 6~7년 전에 이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 때엔 이 부처님이 선원사지 터 한 가운데 계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제 기억이 잘못 된 것일 수 있습니다만, 지금은 이렇게 터 옆에 잘 모셔져 있습니다.
이 선원사지에서 잠시 쉬어가도록 합니다.
2. 선원사지 ~ 연리마을 (선원사지 ? 월하쉼터 ? 연동고개 - 연리마을)
*편의시설 : 식당 ? 없음 (선원사지에서 오전 6시, 오전 12시~오후 1시 식사공양)
화장실 ? 선원사지, 월하쉼터




선원사지에서 한참을 쉬고 있노라니 식당에서 봉사를 하시는 아주머니가 날도 더운데 시원한 연잎차 한잔 마시라며 들어오라 합니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들어가 시원한 곳에 앉아 차가운 연잎차를 마십니다. 아, 그 연잎 향이 산을 넘어 온 피로와 갈증을 풀어주네요. 극락을 먼 곳에서 찾지 마세요.
이것도 자시라며 사과 큰 것도 한 알을 내어줍니다.
분명히 부처님에게 올라갈 것이지요. 그래도 중생 구제에 쓰이는 것이라 부처님도 웃으며 모른 체 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선원사지에서 봉사하시는 최보살님덕에 중생이 앞으로 가야할 길이 훨씬 더 수월해질 것 같습니다.
지면을 빌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선원사에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또 있으니 바로 "우보살"입니다.
예전 2000년대 초중반, 목탁소리를 흉내낸다고 하여 유명해진 선원사에서 키우는 소들이지요. 안타깝게 이후 구제역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으나 이제 2대 우보살이 이렇게 오는 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선원사의 모습을 잠시 담고 길을 재촉합니다.





선원사 앞의 도로를 건너 마을길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남산동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 남산동 초입에는 주민인 심안수 선생님의 댁 앞을 지나 그 뜰의 정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시원한 등나무 그늘 밑의 의자에 앉노라니 화남 선생처럼 그 누군가와 술잔을 기울이며 남은 여정을 잊고프네요.
이 남산동 일대에도 화남 선생의 일가친척이 있었나 봅니다. 성씨가 다른 것을 보면 외가쪽의 친인척이었지요.
지금은 그 남산동 초가집은 찾을 수 없습니다만, 윤택한 마을 풍경은 그때의 평화로운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월하쉼터는 월하공원 내에 위치한 작은 쉼터입니다.
월하공원을 조성한 정월하 선생님은 설운도의 마음이 울적해서, 박영규의 카멜레온, 이자연의 여자는 눈물인가봐, 강병철과 삼태기의 항구의 일번지, 장미화의 애상 등 수많은 히트곡을 쓰신 대한민국의 원로 작사가입니다.
강화도를 워낙 사랑해 한옥을 지어 살고 계시면서 '강화도 아리랑'등의 노래를 작사하시고 손수 공원을 가꾸어 쉼터를 무료로 개방하셨다니 그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네요.
쉼터 안에는 차를 끓여 먹으며 앉아 쉴 수 있는 시설과 구급약 등도 있습니다.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오가는 이들이 약간씩 손을 더 해 관리를 돕는다면 나들길 6코스가 한결 더 빛나겠지요.



짧은 산길이 이어지고 발걸음은 곧 연동고개 정류소에 닿습니다.
이 정류소 앞의 도로를 건너서 마을길을 따라 산에 접어듭니다.


흰집의 마당에 리본이 매어져 있어 들어왔으나 더이상 길이 없어 다시 왔던 길을 나아가 여기저기 찾아봅니다.
이상하네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흰집 옆의 황토방 앞으로 산으로 들어서는 길이 보입니다.
저 멀리 리본이 보일락말락 매어져 있네요.
제초가 전혀 안되어 있습니다. 허리를 넘어 가슴까지 오는 풀들도 많아요.
바닥이 안 보이니 이런 여름에는 여러가지로 걱정이 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6코스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이런 제초가 안된 초입들이었습니다.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워 다시 되돌아 갈 뻔한 일이 많거든요.



조금만 들어가면 다행히 산길은 충분히 걷기에 좋습니다.
갈림길에서는 올라가는 쪽, 좌측으로 들어서야 한답니다.



멋진 산길을 따라 연리마을에 들어섭니다.
길 끝의 무덤에서 분명히 내려가는 길이 있을텐데 (확인차 다시 온 길을 되돌아봤습니다.) 어디에도 리본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려가는 곳으로 짐작되는 곳에는 도저히 경사와 잡초의 우거짐이 풀을 헤치고 밟을 수준이 아닌지라, 무덤가의 오른쪽 끝으로 나아가 내려가기로 합니다.


집 뒤로 내려와 다시 도로를 따라 원래 내려와야 했던 곳으로 갑니다. 연리마을 농원 앞으로 나오니 길 표지판이 안내해주네요. 뻗어있는 농작로의 길이가 어마어마 합니다.
딱히 쉼터가 없어서 휴식을 취하기 힘들지 모릅니다만, 길을 따라 5분만 걸으면 원두막이 나타납니다.
원두막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합니다.
다음구간에서 걷게 될 길의 거리가 상당하고 그늘이 없으므로 충분히 쉬고 수분보충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3. 연리마을 ~ 두두미마을 (연리마을 ? 고능1리마을회관 ? 화남생가 - 두두미마을)
*편의시설 : 식당 ? 없음
화장실 ? 고능1리마을회관, 두두미마을


원두막을 나와 길게 뻗은 농작로를 따라 걷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듯한 길을 따라 만나는 벼를 보니, 어느새 상당히 영글었습니다. 이 전의 5코스를 걸으며 추수를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만, 바로 어제 입추가 지나서일까 그 사이에 꽤 자란 모습이네요.
풍요가 가득한 길을 따라 삼동암천에 자리한 다리인 조경교에 닿습니다.


삼동암천, 물고기 정말 많더군요.
조경교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노라니 많은 물고기가 수면으로 나타났다가 배를 보이며 사라지네요. 약간 떨어진 곳에서 첨벙 소리가 나서 보면 물결만 넘실대고요.
나중에 꼭 한번 와보겠노라 다짐합니다.
길은 삼동암천을 지나 그대로 곧게 이어집니다. 다리를 건너 갈림길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직진하세요.



원두막에서 삼동암천까지 걸어온만큼의 절반 가량을 걷습니다.
농작로를 걷다보면 곧 바로 위, 논 위의 제방따라 걷게 되는데요, 보시다시피 걸을 수 없습니다.
잡초가 우거져서 발로 밟고 걸을 수준이 아닙니다.
게다가 바로 옆은 논이고 한쪽은 도랑입니다. 좁은 길에 풀숲에 미끄러지거나 발을 헛딛게 된다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지요.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우회하기로 합니다.
1코스에서 6코스인 지금까지 왠만한 길은 모두 피하지 않고 그 위험성만을 이야기하고 직접 걸었는데요, 이 길은 도저히 어쩔 수 없습니다.
나중에 파악해보니 사진의 좌측에 보이는 저 흰 집까지 200m 거리인데, 돌아서 가느라 1.5km 가까이 더 걷게 되더군요.
우회로는 이렇습니다.

아래의 농로를 따라 5~600m가량 걸으면 (중간에 빠지는 길이 있더라도 주변 집으로 난 길이고 도로가 아닙니다.)

이렇게 슬레이트 지붕과 벽돌로 이루어진 창고가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갑니다.



사실 중간중간에 만나는 고능1리의 풍경은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오히려 정식구간으로 도랑 옆을 지나는 것 보다 이렇게 마을을 따라 걷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는 생각이네요. 길이 막혀 우회하는 것에서 오는 짜증이 사라질 정도로 소박한 풍경에 마음을 뺏겼답니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올라가 고능1리 마을회관에 닿습니다.
아침가리마을이라고도 하는군요. 앞서 만난 조경교의 '조경'이 옛지명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조경오이라는 특산물이 있네요.




마을회관 앞의 쉼터에서 잠시 쉰 후, 마을표지판을 따라 난 길로 (마을 회관 앞에 4갈래의 길이 있답니다.) 걷다보면 아까 막혀서 건너지 못한 구간이 보입니다. 도랑의 오른쪽이지요,
엄청나게 우거진 잡초 이후로는 바로 고구마밭이네요. 역시 우회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입니다. 1~2분에 닿을 거리를 20분 가까이 걸렸으니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만, 안전하게 잘 왔네요.




표식을 따라 걷다가 고운악기사를 만납니다. 기타 명인이 악기를 제작하고 또 강습도 하는 공간인데 다양한 문화행사도 열린다고 합니다. 운치있는 고택에서의 클래식 기타 선율은 얼마나 황홀할까요.
불행히도 닫혀있는지라 담 너머로 그 운치의 끝 자락을 상상하며 담아봅니다.



고운악기 옆으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분명히 표지판은 그렇게 가리키고 있습니다.
약간만 불편함을 감수하면 곧 걷기 좋은 길이 나타납니다.
산길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산너머로 선생이 태어난 두두미마을로 나오게 된답니다.
약 10~ 15분 정도의 산길을 걸으면 어느새 두두미 마을 뒤편으로 닿게 됩니다.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영모재입니다.
두두미마을에 예전부터 살았던 성씨인 고씨문중,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그 조상들의 공을 널리 알리고 제를 지내 추모하기 위한 사당입니다. 화남 선생도 고씨 성이니 이 영모재의 선조들을 따라 이 터에 자리잡은 것이겠지요.
닫혀있어 안을 보지는 못합니다만 그 넓이와 기념비의 크기 만으로도 충분히 영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매년 4월이면 문중이 모여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나들길은 영모재를 지나 이어집니다만 잠시 발걸음을 아래로 돌리면 평해황씨 효부 정려문도 볼 수 있습니다.
고씨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와 많은 이의 귀감이 된 효부를 기념하여 세운 건물이지요. 정려문 바로 뒤에 있는 이층 양옥집이 그 효부가 살았다는 집터랍니다.


영모재 앞을 따라 약간 걷기 힘든 길을 헤치면 공장 뒤를 지나 화남선생 생가에 도착하게 됩니다.


화남선생 생가입니다.
물론 선생이 사시던 때에는 한옥이었겠지만 근대와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이후를 거치면서 그 집은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세월의 흐름을 탓할 수 없겠지요. 그래도 새 옷으로 갈아입었더라도 "집"이 그대로 남아있으니까요.
사실은 몇년전에도 화남 선생의 생가를 찾은 일이 있습니다. 그때에도 마을분과 더불어서 이 생가가 크게 관리가 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 했었는데요, 지금도 그 때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6코스의 길이 화남생가 가는 길이라면 적어도 생가 앞에 표지판이라도 있거나 선생과 심도기행을 소개하는 안내판이라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앞에서 쉴 수 있도록 마당을 정리하여 작은 쉼터로 만들어도 좋겠지요.
물론 사유지라는 문제가 있더라도 화남 선생의 뜻을 알리고 이어간다는 의미에서 충분히 후손과 협의,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나들길, 앞으로 걸어야 할 나들길 곳곳에 선생의 숨결이 남아있는데, 정작 그 나고 자란 곳을 찾아가서 이렇게 씁쓸한 느낌을 받아야 할까요.
모두 같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선생의 '옛집에 돌아오니 모두가 한결같았다'는 그 말은, 몇년 전에 이곳을 보고 지금 다시 찾은 저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래서일까 그 어느때보다 선생의 시가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마을 중간에 있는 쉼터에서 마지막 구간을 앞두고 휴식을 취하기로 합니다.
두두미마을은 공중화장실이나 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생가 인근에 공방겸 카페도 있으므로 차 한잔을 할 수도 있습니다.
4. 두두미마을 ~ 터진개정류장 (두두미마을 ? 장안촌마을 ? 오두리마을 - 터진개정류장)
*편의시설 : 식당 ? 없음 (오두리마을회관 앞 오두리 매점에서 간단한 간식 구매가능)
화장실 ? 두두미마을, 장안촌마을회관, 오두리마을회관



쉼터를 지나 두두미마을의 입구로 나옵니다. 입구의 장승과 선생의 시가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네요.
저 '두두미동' 시는 선생이 마을을 출발하기 앞서 마을 친구인 '구씨" 집에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응원의 말을 듣는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꽤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하지요.
선생은 저 시를 시작으로 앞으로 100여 마을을 돌아보시지만, 전 6코스의 마지막 구간에서 그 시를 만나며 코스의 마지막을 정리하려 합니다.
도로를 건너 두운2리 마을회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습니다.


흐드러진 오디에 정신이 팔려서 몇 개 가져다가 입에 넣어보네요.
누군가 제 어깨를 탁 쳤다면 황급히 검게 물든 입을 닦고 뒤돌아보았겠지요.



잘 꾸며진 집 앞을 따라 장안마을에 들어섭니다. 마을 회관을 지나 인삼밭을 들어서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마을 어르신이 저를 붙잡습니다.
"서울 사람이지? 지금 카메라 메고 있는데 꼭 찍어줬으면 하는 게 있어. 강화도 어디에도 이런 게 없어."
어르신이 황급히 제 팔을 잡고 어디론가 데려갑니다.




구자형 어르신(74)은 이 270년된 향나무를 어렸을때부터 지금껏 가꾸어 오신 분입니다. 그 이전 어르신의 할아버지대와 아버지 대에 이르러서도 집안 대대로 가꾸던 향나무를 어르신이 3대에 걸쳐서 관리해 오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 앞을 지나가는 나들길 여행자들을 볼때마다 붙잡고 이 진귀한 구경거리를 보고 그 밑에서 쉬고가라고 하신답니다.
예전 몇십년 전에 청와대에서 거액을 줄테니 팔라고 했을때에도 팔지 않았다면 그 이력과 살아온 나날들을 이야기해주십니다.
그 나무 그늘 밑에서 어르신의 이야기를 한참을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나들길을 통해 이 곳에 들러 향나무를 관람하고 쉬어가길 바라신다며 꼭 알려달라 하십니다.
어르신을 보니 화남 선생의 시에서 선생의 앞길을 응원하주며 술을 따라준 친구인 "구씨"가 떠오릅니다. 대대로 이 곳에 살았다는 어르신의 성씨도 구씨입니다.
혹여나 어르신의 선조가 화남 선생에게 술을 따라주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110년이 흘러서 제가 그 후손에게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멋진 인연이지요. 정말로 어르신의 선조가 화남 선생에게 술을 따라준 그 "구씨'였을까요. 상상에 맡겨봅니다.


장안마을에서 인삼밭을 따라 돌 때, 그 인삼밭 위로 난 길로 들어서면 바로 어르신의 집이 있습니다. 나들길 6코스를 걷는 분들은 꼭 그 멋진 풍경을 눈으로, 사진으로 담아가시기 바랍니다.


마을길을 따라 논을 지나 다시 도로로 접어듭니다.
산 하나를 넘으면 오두리마을이네요. 어르신과 이야기를 하며 향나무 그늘에서 충분히 쉬었던지라 힘차게 마지막 걸음을 시작합니다.


오르막길따라 공장 옆을 오르는 구간에는 가시나무와 덩쿨이 있어 매우 따갑습니다. 걸을 때 조심하세요.
그 외에는 제초가 꼭 필요한 구간도 나옵니다. 겉으로 보았을때 길이라고 알아채기 어려운 곳이 있습니다.
발 밑을 조심하세요.


힘들게 산길을 지나면 이렇게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이 나옵니다.
집 앞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됩니다만...

보수가 시급한 부분이네요. 리본 표식을 따라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6코스에서 가슴아픈 일이 이렇게 자주 있네요.

산길이 이어지는 동안 길 구간에 리본이 없습니다. 길은 온전히 하나라 초입의 집이 있던 곳에 혹시 샛길이 있나 다시 되돌아가보니 없더군요.
한참을 걸으니 리본이 이어집니다.



마을을 내려다보며 거친 풀을 헤치고 오두리에 도착합니다.
마지막 구간에서 만난 산길, 쉽지 않네요.
이렇게 도로를 다시 보니 참 기쁩니다. 평화로운 오두리 마을을따라 걷다보면 오두리마을회관과 매점이 나타납니다.

평상에 앉아 시원한 음료수로 갈증을 풀고 잠시 쉽니다.

해안을 향하는 도로를 따라 걸으니 하루 종일 구름이 가득했던 하늘이 맑아집니다.
거친 숨이 잦아드니 드넓은 풍경과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언제나 길의 마지막에 만나는 평온, 그것은 안도와 만족감이 뒤섞여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줍니다. 이 때만큼은 세상이 내것이죠.



오두리 입구, 터진개 정류장에 비치된 도착지점 스탬프를 나들길 여권에 힘차게 누릅니다.
2코스의 중간에서 만났던 그 스탬프입니다. 당시에 이 앞을 지나면서 언제 6코스를 걷게 될까 꽤 궁금했었는데 모든것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이루어지게 되네요.
바로 앞에 떠나간 버스때문에 1시간 40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만, 아무도 오지 않는 정류소에서 석양을 받으며 기다리는 그 1시간 40분도 이 코스의 마무리로는 손색이 없었습니다.
강화나들길 6코스는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많은 길이었습니다.
여러번 지적한 제초의 부분이 그렇습니다. 불편함을 감내해야 할 곳을 넘어 도저히 걷지 못할 곳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조치를 취해야 할 부분입니다.
다른 코스와 비교했을 때 표식의 부분은 비교적 잘 되어있었습니다. 크게 헤메거나 되돌아간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약간 헤멘 부분도 제초작업이 이루어지면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화남 선생의 생가를 어떻게 더 가치있게 알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단법인이나 강화군청에서 상당히 깊이 검토를 해 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수도권의 트레킹 코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자 그 코스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태어난 생가가 이렇게 놓여져 있다면 큰 문제겠지요.
생가 자체를 건드릴 수 없다면 그 앞의 안내판이나 알림판 등으로 화남선생과 심도기행, 강화나들길을 알리는 방법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이런 아쉬움 속에도 선원사지나 두운2리 장안마을에서 만난 고마운 인연들로 인해 이 길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특히 강화인삼스파랜드에서 선원사지까지의 산길은 운치가 있으면서도 난이도도 높지 않아 정말 추천하고 싶은 트레킹 코스이기도 합니다.
특히 고사리와 누리장나무 꽃이 만발한 길은 6코스 전체를 통해서도 제일 아름다운 풍경이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이상으로 강화나들길 6코스 화남생가 가는길의 답사기를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