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을 걸으며 이 땅의 역사 속에 중요하게 위치한 돈대와 보, 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강화도의 갯벌이 주는 무한한 생명력 속에서 걷는 이 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으로 의미있는 길이다.



강화나들길의 2코스는 '호국돈대길'이라고 합니다.
먼저 왜 코스에 '돈대'가 붙었을까, 그리고 '돈대'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죠.
강화도를 상징하는 돈대는 해안포대진지를 말합니다. 조선시대에 서해에서 수도인 서울로 들어오기에 최단거리의 코스인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강화도 섬 전체에 포대를 만든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인 고려시대에도 정부가 강화도로 천도하여 왕실을 지키려 했던 일이 있을 정도로 강화도는 수도와도 가깝고 중요한 방어기지의 역할을 한 셈이죠.

이 호국돈대길은 갑곶돈대에서 시작해 용진진과 화도돈대, 광성보, 덕진진을 거쳐 초지진에 닿는 총 거리 17km, 소요시간 약 6시간의 코스입니다.

특히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등 강화도를 넘어 조선시대에 큰 태풍을 몰고 온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갯벌을 따라 걸으며 그 사이에서 만나는 하나하나의 돈대와 진, 보를 감상하고 그 의미를 떠올리면 이 호국돈대길이 더 가끼이, 그리고 깊이 들어옵니다.

길을 떠나기에 앞서 그 길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알고 간다는 것은 그 길을 제대로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죠.


1. 갑곶돈대 ~ 화도돈대 구간 (갑곶돈대 ? 더러미포구 ? 용진진 ? 용당돈대 - 화도돈대)

*편의시설 : 식당 ? 더러미포구 및 화도돈대 (장어구이, 활어회, 중국음식점 등)

화장실 ? 갑곶돈대, 더러미포구, 용진진, 화도돈대 (편의점 내)



출발을 앞두고 다시 만난 갑곶돈대 관광안내소.

1코스의 종착지가 2코스의 출발점입니다. 다시 한번 일정과 준비물을 검토하며 마음을 다잡는 곳입니다.



출발에 앞서 먼저 갑곶돈대 내에 위치한 강화전쟁박물관에서 <어재연 장군 수자기>를 만나볼 것을 추천합니다.

이 <수자기>는 장수를 뜻하는 帥자가 새겨진 깃발로, 1871년 신미양요 때 초지진과 덕지진을 함락한 미군이 광성보로 쳐들어오자 어재연 장군과 휘하의 병사들이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의 열세 속에서 끝까지 버티다 전멸한 광성보 전투에 걸렸던 깃발입니다.

당시 미군은 승전 후 이 깃발을 보관해 오다 2007년, 136년만에 장기대여 형식으로 깃발을 반환하였으며 이렇게 강화전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후 걸으며 만나게 될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과 돈대에 쌓인 역사가 오롯이 이 깃발에 담겨져 있는 셈이지요.



스탬프에 출발 도장을 찍고 09:10분, 2코스 '호국돈대길'의 답사를 시작합니다.

이 2코스는 강화도 서쪽의 해안선을 따라 걸어오는 길로, 길 자체의 난이도는 이전의 1코스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다만 폭염이 예보되었으므로 충분한 휴식과 수분 섭취로 평균 소요시간인 6시간보다는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나들길의 중요 기점에는 모기나 진드기 등의 해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해충 퇴치제가 구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전을 위해서, 쾌적한 완주를 위해서 곳곳에 뿌려두는 것이 좋습니다.

사소하다고 볼 수 있어도 이런 배려 하나하나가 나들길을 즐겁게 합니다.

갑곶돈대를 나오자 푸른 들판이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1주일 전의 1코스의 완주 때완 달리, 그새 더 자라있는 느낌입니다.
한여름이라 시간은 이제 9시를 넘어섰건만 해는 중천입니다.

등 뒤의 갑곶돈대 쪽이 바다인지라 사진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해무도 상당한 편이었습니다.





금계국의 수줍은 안내를 따라 해안도로를 걷습니다.
2코스는 기본적으로 해안도로(자전거 전용도로 포함)를 따라 걷다가 돈대를 따라 중간 중간 산길과 갯벌길로 들어가는 형식입니다.
중간중간 만나는 우거진 녹음 속의 하천은 바다로 흘러들어가지요.
그렇게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곳은 황금어장으로 유명한 법이랍니다.

갑곶돈대에서 용진진까지의 코스는 이렇게 잡초등을 정리해 여행자가 걷기 편합니다.
그리고 도로와도 구분되어 더 안전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바다와의 거리도 더 가까워지지요.
길을 걷다가 더리미순국터를 만납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강화도 최초의 감리교회였던 잠두교회(현 강화중앙교회)의 김동수 권사 등 4명의 교인이 설교시간에 일본 제국을 비판하고 서양역사서를 읽으며 주민들을 계몽하였다가 일제에 의해 체포, 서울로 압송되던 중 이 자리에서 서슬퍼런 칼날에 순국하였다고 합니다.

강화도에서 흘린 애국의 피는 얼마나 되는 걸까요... 고려 시대부터 최근까지, 그 부침을 이루 말할 수 없겠습니다만, 이런 애국과 충절의 의식은 지금도 강화도민들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리미 장어마을을 만납니다.

더리미 장어마을은 강화도의 자랑 중 하나인 갯벌장어를 맛볼 수 있는 장어 전문점이 모여있는 장어 특화거리입니다.
갯벌장어는 민물장어를 갯벌에 풀어 3개월 이상 키운 것이죠.
그렇게 갯벌의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갯벌을 열심히 파고들어 맛과 영양, 식감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일정이 한참이므로 맛 좋은 장어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봅니다.

장어마을 맞은편에는 더러미포구로 올라온 활어를 맛볼 수 있는 작은 횟집이 모여있습니다.
활어회뿐만 아니라 회덮밥, 바지락칼국수 등도 즐길 수 있으니 부담 없는 식도락이 가능한 곳이죠.

더러미 포구의 풍경은 갯벌과 작은 포구의 만남이 빚어내는 정겨운 흥취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물이 차오르고 있으니 곧 어선들도 하나하나 출항을 준비하겠지요.

가만히 앉아 만선의 꿈을 안은 출항을 담고 싶습니다만 갈 길이 멀기에 다음으로 기약합니다.



갯골이 빚어낸 태고의 조형미는 언제나 경이롭습니다.

물의 흐름, 그 작은 흐름이 빚어낸 깊고도 진한 자욱은 서해의 갯벌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갯골이 담고 있는 왕성한 생명력을 감상하며 걷는 길이 즐겁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안도로가 안으로 굽어들 때마다 나타나는 강화나들길 2코스 표지판은 여행자를 좀 더 바다로 가까이 인도하는 길입니다.

그 길은 갯벌의 진한 길이자 녹색 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쉼터도 제공하는 길입니다.

용진진에 닿습니다.

돈대가 포대, 즉 소대의 개념이라면 진은 돈대를 여럿 거느린 상위 부대의 개념입니다.
이 용진진은 조선 효종 7년(1656년)에 축조되어 병마만호 1명과 군관 24명, 병졸 77명 등 102명이 주둔하였으며 예하로 가리산돈대, 좌강돈대, 용당돈대를 두었다고 합니다.
복원이 잘 되어있어 진 위를 걷는 기분이 들뜹니다.

진의 포대에 들어서니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염하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이후 만날 여느 돈대와 진, 보가 그렇겠지만 정말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일까, 진에 휘날리던 군기가 눈을 채웁니다.
군기(軍旗)의 펄럭임이 당시 군기(軍紀)의 지엄함을 보는듯 합니다.

용진진을 지나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숲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 숲길을 따라 가면 용당돈대에 이르게 됩니다. 시원한 그늘막과 여유를 제공해 주는 숲길입니다.
숲길의 거리는 길지 않습니다. 정비도 잘 되어있어 길을 헤멜 염려는 없습니다.



돈대 한 가운데 서있는 밤나무가 인상적인 곳, 용당돈대입니다. 앞서 만난 용진진에 소속된 돈대이기도 합니다.

날이 더운 가운데, 저 울창한 한 그루의 나무가 제공하는 그늘과 잘 깔린 잔디는 휴식에 그만입니다.

이렇게 앉아서 쉬기 좋은 곳을 만난다면 충분히 쉬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돈대를 지나 숲길을 계속 걸으면 어느새 갯벌로 나오게 됩니다.
얼마 전 내린 비와 더위로 꽤나 풀들이 우거져 있습니다. 이렇게 숲길을 만나는 구간이 있기 때문에 긴 바지를 입는 것이 좋습니다.
우거진 수풀과 나뭇가지로 인해 자칫 리본이 한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표식을 잘 찾아 움직여야 합니다.
이 순간의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아마도 강화나들길 2코스를 기억할 때마다 이 풍경이 생각날 것입니다.

이정표 위에 놓여있던 캔맥주와 살구 한알.

앞서서 이 길을 지난 누군가가 뒤따라 지날 여행자를 위해 남겨둔 성의입니다.
물론 산장이나 대피소 등에서 묵을 때, 여행자가 당장 쓰지 않거나 남은 비상식량 등을 남겨두거나 쌓아서 이용하게 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만, 이렇게 강화나들길에서 만난 이 고마운 마음은 정말로 상상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다만, 여행길, 특히 여름의 걷기 여행길에서 음주는 자칫하면 안전사고를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개인의 감상과 로드프레스의 취재 담당자로서의 시선이 늘 일치하진 않습니다.) 이 고마운 마음은 마음으로 받기로 합니다.
다음의 답사 때에는 나도 이렇게 누군가를 위한 응원의 마음을 준비해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화도돈대에 도착합니다.

서슬퍼런 눈과 군기가 바짝 선, 용맹한 풍채의 닭 한마리가 돈대 앞에서 여행자를 감시합니다.
그 당당함에 화도돈대를 쉽게 오르지 못합니다.





화도돈대는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된 돈대로, 1679년에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어영군(御營軍) 2,000여 명과 경기·충청·전라 3도 승군(僧軍) 8,000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 돈대는 앞선 용진진이 아닌 강화의 7보(堡) 5진(鎭) 중 하나인 광성보(廣城堡) 소속입니다.
이 화도돈대의 주변에는 편의점과 중국음식점이 있어 여기에서 휴식과 식사 등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기점이기도 합니다.


2. 화도돈대 ~ 광성보 구간 (화도돈대 ? 오두돈대 - 강화전성 ? 광성보 )

*편의시설 : 식당 ? 화도돈대 및 강화전성, 광성보 (장어구이, 활어회, 중국음식점 등)

화장실 ? 화도돈대(편의점 내), 광성보. 그외 코스 내에 불규칙한 간격으로 간이 화장실이 있음.

간단한 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화도돈대를 지나 다시 갯벌을 옆에 두고 걷기 시작합니다.

강화나들길 홈페이지에서 2-B코스로 나뉘어지는 이 구간은 화도돈대에서 광성보까지의 구간으로 갯벌따라 걷는 길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또한 그만큼 그늘이 없는 구간도 많으므로 이 구간에 앞서서 충분한 휴식과 수분보충을 해야 합니다.



조롱박길 속의 조롱박이 길에 주저앉아 여행객의 발걸음을 응원하네요.
이 지극히 한국적인 풍경, 그 작은 조롱박의 자태가 얼마나 귀여운지 한참을 구경하다가 잠시 쓰다듬어도 봅니다.

꽃길따라 걷다보니 바닥엔 어르신이 갯질을 준비중이셨나 모를 도구가 놓여져 있습니다.
아니면 이 꽃길을 가꾸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느 쪽이라도, 어르신은 여기에서 구슬땀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 고단한 숨이 묻어있는 호미를 행여 밟을까, 조심히 지나칩니다.

강화도의 갯벌에서 만날 수 있는 흔한 풍경입니다만, 이 곳을 찾은 어린이들에게는 무궁무진한 체험을 주는 풍경일 수 있습니다.

게들이 저마다 나와서 뙤약볕 아래에서 왕성히 움직입니다.

가만히 보니 뻘에서 저 작은 고랑으로 점프하듯 뛰는 문절망둑 새끼도 볼 수 있습니다.
가만히 내려갈라치면 그 발자욱에 순식간에 구멍을 찾아 사라지는 모습은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자연 생태와 체험이겠지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조기교육이 영어나 중국어가 아닌, 이런 자연풍경에서 얻는 감성과 상상력을 통해 발휘되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들물을 기다리는 조사님의 뒷모습입니다.
아마도 숭어나 망둥어, 우럭등이 흔한 곳이니 그에 맞는 채비를 가져오셨겠지요.
곧 만조이니 부지런히 채비 준비를 하실 때입니다.

오두돈대를 가는 길에 만난 고구마밭.

비옥한 토지로 유명한 강화도답게, 조만간 수확을 앞둘 정도로 대가 훌쩍 자랐습니다. 속노란고구마의 수확이 시작되는 철이면 고랑마다 이랑마다 고구마가 쌓이겠지요. 흔히 말하기를 "꿀이 떨어지는 맛"이라고 하는 강화 속노란고구마, 벌써 기대됩니다.



오두돈대를 오르는 길입니다. 오르막길이 제법 가파르지만 길이가 길지 않아 숨 한번에 금방 오릅니다.

자라머리를 닮은 언덕 위에 세워졌다 하여 붙은 이름의 오두돈대는 광성보 소속의 돈대 중 하나입니다.

다른 돈대와는 다르게 돈대의 벽 높이가 상당하고 벽을 따라 둘레를 걸어볼 수 있어 꽤 웅장한 느낌이 난답니다.

오두돈대에서 잠시 짧은 휴식을 취한 후 돈대 남쪽에 난 숲길을 따라 내려옵니다.

숲길을 따라 내려오면 곧 강화전성을 만나게 됩니다.

고려시대 때에 이 강화도 동쪽의 해안따라 강화외성이 세워졌고, 그 중 일부인 이 강화전성은 조선시대에는 개축을 하여 높이 4미터에 전체길이가 4km에 이르는 장대한 성이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일부구간만이 남아 이렇게 복구되어 있습니다.

이 강화전성을 따라 걷는 짧은 구간은 옛 영화와 맞물려 상당히 고독하기도 합니다.

중간에 만나는 강화나들길 6코스의 종점도장.

6코스, 이제 2코스를 걷고 있으니 조만간 다시 만나겠네요. 그때는 또 다른 느낌이겠지요.

해안길로 접어드니 인근 농가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뛰어나와 한참을 쫓아옵니다.

얼마 전 쉬었건만 강아지의 재롱에 잠시 더 쉬기로 하고 물도 나누어 마십니다. 더운 날, 오가는 이 없던 그 길에 잠시나마 같이 걸어 준 고마운 녀석이네요.

해안가를 걷는 길의 시작, 예까지 온 여행자를 위로하고 또 남은 여정을 응원하는 듯 다양한 볼거리가 세워져 있습니다.

바다와 함께 시간을 맞아 온 조형물인지라 그 녹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친근합니다.
우리가 세월을 거슬러 갈 수 없듯이, 이 조형물도 당연히 그렇게 시간에 따라 가겠지요.



긴 해안선을 마치는 길, 화도돈대에서의 시작점처럼 조롱박 터널이 지친 발걸음을 맞이합니다.
여기에서 광성보까지는 금방입니다.

발걸음에 힘을 더해봅니다.

드디어 광성보에 도착합니다.

광성보는 사적227호로 지정된 중요한 유적이자 어재연 장군이 최후를 마친, 신미양요의 최대 전투였던 광성보 전투가 벌어진 현장입니다. 광성보 내의 광성돈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광성포대 등을 둘러볼 수 있어 역사교육의 장이기도 하죠.

강화나들길 2코스는 이 광성보 안을 통과합니다. 매표소에서 매표를 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매표소 앞에 자리한 귀여운 대포의 모습에 눈길이 갑니다.

성문 바로 옆에 위치한 광성돈대에는 홍이포, 불랑기포, 소포 등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언제든 포를 밀어 포대에 거치할 준비가 되어있는 듯 합니다.

소포는 앞서 본 매표소의 모형이 생각나네요.

걷기 좋은 길을 따라 신미양요 당시 순국한 어재연 장군 이하 전몰자들의 위령비와 쌍충비각, 신미 순의총을 만납니다.

신미 순의총은 당시 광성보 전투에서 전사한 51인의 무명 용사의 유해를 모셔 안치한 묘입니다.

그 위를 걷는 길, 잠시 머리를 숙여 그 넋을 위로합니다.

압도적인 화력의 차이로 참패를 하였지만 전원이 끝까지 남아 항전하다 전사하여 당시 미해군의 기록에도 '남북전쟁 이후 이렇게 처절하게 싸운 일은 없었다.', '전투 전 조선의 군가가 들려왔는데 무섭도록 구슬프고 장엄했다.'는 표현이 남아있습니다.

당시 전멸당하고 포로로 잡힌 20명의 병졸들도 내어주는 밥을 먹지 않고 집어던지며 항전의 의지를 표했다고 하니 더욱 더 가슴이 아플 따름입니다.

용두돈대는 광성보에서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바로 앞 손돌목을 내려다보는 용두돈대는 완만한 곡선이 더해져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역사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한 채 늠름하게 서 있습니다.
그 앞을 지나는 세찬 물살인 손돌목에 얽힌 전설도 바라보는 이를 가슴아프게 합니다.

고려 때, 강화도로 왕이 파난가던 당시, 뱃사공인 손돌의 배에 의지하여 염하를 건넜다고 합니다. 거센 물결에 배가 다른 곳으로 가는 듯 하자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오해하여 왕은 손돌의 목을 베라 명합니다.
이에 손돌이 '내가 죽더라도 바가지를 물에 띄워 그 흐르는 방향으로 몰면 배가 강화도에 무사히 닿을 것입니다.' 는 말을 남기고 죽었으니, 이 후 실제로 그 방법을 통해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고 합니다.

왕은 후회하며 그 시체를 건져 후히 장사지내니, 지금도 저 맞은 편 언덕에 손돌의 묘가 세워져 있어 아래로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손돌목돈대를 바라본 후 광성포대로 걷습니다. 이 포대의 끝에서 마지막 코스로 이어집니다.

3. 광성보 ~ 초지진 구간 (광성보 ? 덕진진 - 초지진선착장 ? 초지진 )

*편의시설 : 식당 ? 광성보 및 초지진선착장 (활어회, 한식 등)

화장실 ? 광성보(편의점 내), 덕진진. 초지진선착장 및 초지진

포대 끝에서 올라가는 우거진 숲길은 길게 이어지진 않습니다. 곧 길이 넓어지고 잘 정비되어 아래로 내려가게 됩니다.

내려간 후엔 약간의 도로를 걷다가 다시 해안가로 나가게 됩니다.
이 해안을 따라 걸으면 덕진진에 도착하게 됩니다.



덕진진은 사적 제226호로 병인양요 때 양헌수 장군의 부대가 이 진을 통해 정족산성으로 이동,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역사가 있는 중요한 전적지이자 유적지입니다.

안에는 덕진돈대 및 남장포대 등이 정비되어 있습니다.

이전의 광성보와 마찬가지로 강화나들길 2코스는 이 덕진진 내에서 연결이 됩니다. 매표를 하고 들어갑니다.

화남 선생도 이 덕진진을 둘러보며 한 수 남기셨습니다.

당시의 덕진진 앞에서 만난 어부가 권한 술잔의 술맛은 어땟을까요. 봄 기운이 황홀했을 4월 (시의 3월은 음력입니다.), 수양버들 아래서 여독을 풀어줄 맛이었을 겁니다.

아까 누군가가 놔둔 칭따오 맥주도 그런 맛이었을지 모릅니다.

덕진진 내를 걸으며 남장포대와 돈대를 눈에 담고 바다로 나아갑니다.



약간의 숲길을 걸어서 만나는 이 길은 코스 중 마지막 갯벌길로, 갯벌을 제일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 법이라고, 진과 돈대 밑에 사는지라 이렇게 건축 솜씨가 뛰어난가 봅니다.

안전하게 숨어 몸을 지킬 수 있는 이 견고한 돈대는 누구의 작품일지 심히 궁금합니다. 한참을 숨죽여 기다려도 나오지 않네요.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한 갯맥이 (지방마다 부르는 법은 다릅니다.)는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유용한 어로 방식입니다.
물이 다 빠지면 그물따라 물고기들이 그득하겠지요.

강화도 숭어가 유명하기도 하니, 혹여 팔뚝만한 놈이 걸려있을 지 모를 일입니다.



이렇게 숨은 리본도 찾아봅니다.



초지진 선착장에 다다릅니다. 여정의 마지막이라 무거운 발걸음이건만 활기찬 선착장의 기운을 받으니 다시금 힘이 솟습니다.
인근에서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들은 하나하나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맞은편의 대명항도 눈에 담으며 힘을 내봅니다.

초지진선착장을 돌아가는 순간, '태경호'의 창문이 열리더니 아주머니가 소리칩니다.

"물좀 먹고가요!"

더운 날, 빨갛게 익어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걷는 제가 안쓰러워 보였나봅니다. 사실 그 말이 너무 고마울 정도로 물은 바닥이 나 있었습니다. 충분히 준비했다 생각했건만 날씨가 워낙 강했던지라 중간중간 관광안내소나 매표소에서 신세를 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연거푸 두 잔을 들이키자 아주머니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얼굴이랑 발이 새빨갛게 익었시개."라며 조심해서 걸으라고 합니다.
정겨운 강화도 사투리죠.



영원한 초지진 앞바다의 랜드마크입니다.

누구라도 카메라에 담아 이 곳의 방문을 추억하는, 없어서는 안 될 무인등대입니다.







사적 제225호로 지정된 초지진은 신미양요와 운요호 사건 당시 격렬한 포격을 온몸으로 받은 진지입니다.
초지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는 400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나무로, 당시의 격전을 온 몸으로 받아낸 채 굿꿋이 버티고 있어 또 다른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혹한 포격으로 나무도 포탄을 맞았는데 그 자욱을 지금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만, 예전엔 흰 페이트로 동그렇게 표기가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표식이 지워져 있네요. 아쉽기 그지 없었습니다.

호국돈대길의 마지막을 장식할 만한 상징을 지닌 곳으로, 저 나무를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어질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관광안내소에 비치된 스탬프를 힘차게 눌러 완주를 기념합니다.

예상소요시간 6시간을 훌쩍 넘겨 7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충분히 자주 쉰 결과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편안한 마음으로 완주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강화도의 상징인 갯벌과 돈대와 진, 보.
그것을 하나하나 걸어볼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이 길이 만들어 진 첫 번째 목표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그 안의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한을 만나고 또 우리 민족이 가진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내 스스로 자신감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진정 이 길이 주는 가르침이 아닐까 합니다.

무언가 스스로에 대한 큰 뿌듯함으로 마친 2코스, 호국돈대길이었습니다.


*초지진에서 갑곶돈대로 버스를 통해 되돌아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갑곶돈대 방면으로 향하는 05번 순환버스를 이용하는 것입니다만, 평일에는 배차간격이 1시간 30분에 이릅니다.
두번째는 그보다 자주 있는 터미널 행 버스(6번, 700-1번 등)를 이용, 강화터미널까지 이동한 후 (30분 소요), 터미널에서 택시(7~8분 소요), 버스 (15분 소요)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버스시간표와 번호는 초지진 관광안내소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도착시간에 맞추어 빠른 노선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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