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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Archives: 문원기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⑯ – 문원기

이번 까미노에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은 바로 ‘기록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까미노에서는 특히 더 일지쓰기에 만전을 기했다. 서른, 마흔… 일지는 훗날 어느 때에 들춰보더라도 다시금 나의 소중한 친구가 돼줄 테지만, 이 속의 나는 언제까지고 혈기왕성했던 24살의 대학생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흘러가는 현재와, 멈춰 있는 과거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넓어져만 갈 것이다.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⑮ – 문원기

등대를 바라보았다. 그 불빛은 느리게, 그러나 일정한 간격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 눈물이 나왔다. ‘초심자의 행운’이 이곳에까지 와 닿은 건지, 어쩌면 끝나는 날까지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는 건지. 당장 며칠 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내가, 지금 이 곳을 회상하며 느껴야 할 그리움은 어떡하라는 건지.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⑭ – 문원기

까미노에서의 하루하루, 내겐 수많은 우연과 행운이 주어졌다. 아름다운 경치, 별 탈 없이 버텨주는 나의 몸, 소중한 사람들, 새로운 경험들… 밤하늘의 별, 한낮의 태양 볕, 그리고 한 모금의 물까지. 이 모든 것들이 어쩌면 ‘초심자의 행운’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길이 처음인 네가,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돌아가길 바란다’라며 누군가가 길을 인도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⑬ – 문원기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다. 채 4시간도 자지 못한 채, 전날의 숙취와 예상 밖의 스트레스로 시작된 하루. 더운 날씨, 지독한 악취와 피로누적, 엉터리 식사로 인한 소화불량과 여자친구에 대한 짜증으로 범벅된 상태에서 42km의 산길을 쉬지도 않고 걸었다. 몸이 배겨낼 리가 없었다. 몸도, 마음도 아팠다.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⑫ – 문원기

까미노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은 거리와 다음 마을까지의 시간을 계산하게 된다. 며칠 동안 몇 km를 걸어야 하는지, 오늘은 어떤 마을에서 묵어야 할지를 신경 안 쓰기가 어렵다. 복잡하고 계획된 삶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떠나온 곳에서, 어느새 다시 계획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⑪ – 문원기

한 달간 물집 때문에 피가 철철 나고, 작은 신발 탓에 뒤꿈치가 다 터져 나가고, 길이 힘들어 울기까지 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하지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위험한 코스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6살짜리 꼬마도, 여든이 넘은 할머니도 모두 나의 동행이었다.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다소간의 고통을 모두 덮고도 남을 매력이 넘치는 길이기에, 충분히 도전할 만 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⑩ – 문원기

레온을 벗어나던 도중, 의문의 노란 표식을 따라가다가 길을 헤맸다. 분명 노란색이었는데? 알고 보니 ‘Camino de Santiago’ 말고도, 다른 곳으로 향하는 ‘Camino’가 존재했던 것이다. 레온 같은 대도시에서는 여러 순례길이 교차하는 모양이니 유의하시기 바란다. 결국 한 시간이 다 지나서야 언덕배기에 올라 레온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⑨ – 문원기

산티아고 순례길이 안전하다고 하지만, 어둠 속에서 느낄 무서움은 결국 개인이 받아들여야 할 몫이다. 꼭두새벽에 나서면 당연히 길을 잃을 가능성도 배가된다. 여름의 순례자들은 한 낮의 더위를 피해야 하기에 이를 감수하는 것이다. 나보다 앞서 출발한 순례자 두어 명이 눈에 보였다. 첫 주자가 아니라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같이 걷는 이가 있어 무서움을 덜 수 있었다.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⑧ – 문원기

나는 은하수가 띠 모양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이 날 처음 알았다. 내가 여태껏 말해온 ‘은하수’라는 단어는 추상명사였다. 실제로 본 적도 없는 걸 표현하려고 했으니… 북동쪽 지평선에서 솟아오른 은빛 무지개가, 하늘을 가로질러 서남쪽 지평선에 떨어지고 있었다. 내 머리 위에 그런 거대한 형상이 떠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⑦ – 문원기

애매한 추위 탓에, 밤새 침낭을 덮을 지 말지 뒤척이며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슬슬 체력이 달리는지 한 번에 눈을 뜨기가 힘들다. 만약 동행이 없었다면, 어차피 나 혼자라는 생각에 시간관리를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마침 일지도 조금씩 밀리기 시작할 때였다. 체력보다도 새끼발가락이 훨씬 더 큰 걱정거리다.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⑥ – 문원기

사실 까미노에 오기 전에는 마냥 걸을 생각뿐이었지, 마을 구경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와 보니, 마을마다의 고유한 분위기와 오랜 역사가 묻어져 나오는 건축물들이 정말 놀라웠다. 발걸음이 자꾸만 멈추고, 떠나기를 재촉하는 빠듯한 스케줄이 원망스러웠다.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⑤ – 문원기

칠흑같이 어두운 밤. 이토록 일찍 나온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한국인 동행들과 따로 걷기로 한 것이다. 나헤라에서부터 품기 시작한 생각이다. 왜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 ‘이 길은 혼자 걸어야 하는 곳이다’라는 강박과 불안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④ – 문원기

“와아…….설마 여기…!!”
드넓은 초원 한가운데 나 있는 좁은 길, 그 사이를 걸어가는 순례자들. 이 길을 준비하며 숱하게 찾아보고 동경해오던 풍경. 인터넷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여기 있었구나…!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③ – 문원기

작은 시골 동네, 오바노스의 아침! 오전에는 컨디션이 정말 좋았다. 7시에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해, 빠르게 어제의 본 목적지였던 푸엔떼 라 레이나를 지나쳤다. 채 여물지 않은 옥수수밭을 지나는 길. 회전하는 스프링쿨러가 천천히 물을 뿌리며, 농부의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② – 문원기

축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순례자 복장의 우리를 알아보고는 익숙하게 ‘부엔 까미노!’를 외친다. 프랑스길의 공식 시작점인 ‘생장(Saint-Jeans pied de port)’.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의 피레네 산맥 중턱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벌써부터 붐비고 있다. 오전 9시 경이니 사실 많은 이들이 벌써 걷기 시작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