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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4일간 105km의 여정, KHT in 진안고원길 코스를 가다 ④

4.4일차 (삼거 – 중리마을 – 외처사동 – 갈크미재 – 마조) 17km

<마지막 날이 밝았다. 날씨가 좋다.>

드디어 3박4일 일정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그래서일까 아침부터 매우 컨디션이 좋다. 

온 몸에 넘치는 활력, ‘역시 지난 3일간의 고행은 더 멀리 뛰기위한 개구리의 움츠림’같은, 일반인이라면 차마 낯 간지러워 하지못할 말을 주워담으며 여정을 시작한다. 

어제까지 아팠던 발바닥도 잘때마다 파스를 붙이고 자서인지 말끔하다. 게다가 3일째부터 줄어드는 여정, 오늘은 17km만 끝내면 105km를 모두 완주할 수 있다. 어찌 신이 안날 수 있겠는가.

<잠시 임도로 접어든다.>

노적봉쉼터 뒷편의 메인캠프를 지나 임도로 접어든다. 

시원한 숲 사이로 평탄하게 이어지는 임도는 금방 끝이 나 아쉬울 정도. 오늘도 불볕더위가 예상된지라 이런 임도를 자주 만나야 할텐데…하는 생각이다. 표지를 따라 계속 나아가면 임도의 끝에서 두 갈래로 길이 나뉜다.

<공사가 멈춘 개울을 건넌다. 물이 얕다.>

화살표는 개울을 가리킨다. 

공사가 멈춘 작은 다리 밑의 개울을 따라 올라가서 길은 이어진다. 그래도 뭐라도 발을 디딜 곳이 없을까 찾아보지만 여의치 않다. 물이야 신발 밑창이나 적실 정도라지만 그것도 이렇게 물이 없을 때의 이야기, 비라도 시원하게 내린 후라면 문제가 틀려진다. 

가만히 보니 밟고가라고 쓰였음직한 나무 사다리가 한 쪽에 치워져 있다. 행사를 앞두고 큰 돌이라도 몇 개 얹어 놓아 신발이 젖지 않게끔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장등마을로 가는 길>

다리를 따라 올라오면 다시 주자천변을 끼고 장등마을과 중리마을 방면으로 나아간다. 

푸르른 하늘아래 제방을 걷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다만 주자천 곳곳마다 공사중이라 눈길이 자꾸 간다. 

이토록 멋진 하늘과 산, 마을의 풍경 속에 물도 맑고 자연스럽게 흐르면 좋으련만, 곳곳이 파헤쳐진 공사현장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언제까지 공사기간인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이 길을 걸을때마다 그렇게 마음 한 켠이 쓰릴 것을 생각한다. 부디 산과 들, 강, 사람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 되기를 고대한다.

<중리마을로 들어선다.>

장등마을을 지나 중리마을로 들어선다.주자천변의 수량이 좀 더 풍부하다. 

진안군의 마을어귀마다 서 있는 당산나무는 그 하나하나를 모두 찍어 사진첩을 만들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크고 멋있다. 어느 마을을 가도 그렇다. 이 중리마을의 당산나무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모처럼의 여유로운 일정이라 고마운 마음으로 그늘 밑에 주저앉아 잠시 쉰다.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날씨, 푸른 하늘위로 피어나는 구름의 모양이 평화롭다. 

<주자천변에서. 강을 건널 뻔 하다.>

중리마을의 제방을 따라 걷다가 이정표대로 강변으로 내려와서 고민에 빠진다. 쉽게 다음 표식이 보이지 않아서다. 

‘설마 강을 건너라는 것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아무래도 물이끼가 잔뜩 끼어서 미끄러워 보일 뿐더러 도저히 발을 디딜 곳이 없어 신발을 모두 적셔야 할 판이다. 

혹시나 해서 (사)진안고원길의 정인호 팀장에게 전화를 하니 ‘강을 건너지 말고 평상 쪽으로 잘 보면 표식이 있을거라’고 한다. 말대로 평상을 걸어가보니 리본이 보인다. 푸르른 잎에 가려져 눈에 안 들어왔던 것이다. 내심 확인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무작정 객기를 부리며 강을 건넜다가는 크게 후회했으리라.

<인삼밭의 수호신과도 같은 소나무>

다시 이어지는 제방을 따라 걸으니 인삼밭 위로 제방 한 가운데 멋들어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누가 감히 이 소나무에 상처를 낼 수 있으랴. 그 당당한 모습과 자태에 눈이 절로 간다. 

하나 하나가 그림과도 같은 길, 그 길을 따라 걷는이는 얼마나 행복한가. 

여정에 여유가 생기고서야 이런 감상이 나온다니 나는 아직 멀었다. 앞으로 넘어야 할 810m의 갈크미재에서도 이런 여유가 나올 지 두고 볼 일이다.

<물에 잘 익은 버찌를 터트려 담다.>

길을 따라 가다보니 길 사이로 난 벚나무마다 버찌가 가득이다. 검붉게 과숙된 버찌를 하나 입 안에 넣으니 은은하게 달고 신 것이 나름 먹을 만 하다. 

물통을 하나 꺼내어 검붉은 것들로 골라 손가락으로 눌러 터트려 병에 넣는다. 가득넣어 흔드니 금새 물에 우러난다. 아무래도 그냥 물보다는 비타민이나 기타 영양소와 당분이 더 들어 있어 피로회복에 조금은 더 도움이 되겠거니 생각한다. 이제 이 한철도 지나면 버찌도 구경 못 할 것이니 막판에 실컷 따 먹고 길을 걷는다.

<이 나무도 백점을 줄 만 하다.>

아름드리 당산나무를 지난다. 

어김없이 나무 밑에는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점점 해가 중천으로 뜨며 열기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지므로 잠시 쉰다. 고개를 넘기 전까지 쉬엄쉬엄 걷기로 한다.

<개울을 건너 만나는 짧은 숲길>

개울을 건너 짧은 숲길을 만난다. 출발지점에 이어 두 번째 구간이다. 비록 짧지만 충분히 시원하고 또 싱그러운 기운을 온 몸에 받을 수 있다. 

뱀도 한 마리 보았다.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있기에 나도 가만히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결국 지친 내가 조심히 숲 속으로 걸어 돌아 갔다. 나중에 정인호 팀장에게 물어보니 뱀이 상대를 향해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은 ‘나는 싸울 준비, 물 준비가 되어있다.’는 신호라고 한다. 그럴경우 빙 돌아가는게 상책이란다. 

막상 뱀이 공격하려 해도 독사는 의외로 무는 속도가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전광석화 같이 빠르지는 않은 편이라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 한다. 그래도 역시 빙 돌아가는 것이 상책이리라.

<중사마을로 들어선다.>

중사마을로 들어선다. 좀더 본격적인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평화로운 마을을 따라 걷다보면 외처사마을 안내석이 있는 도로로 나오게 된다. 이 도로를 건너 걸어온 반대 방향으로 조금만 걸으면 이 4일차 여정이자 진안고원길 8코스 ‘운장산 넘는 길’의 하이라이트인 810m의 갈크미재로 향하는 길이 나타난다. 

1~3일차 까지는 이런 어려운 구간이 두개 혹은 세 개씩 있고 또 처음 난이도에서 진을 빼 놓은 후 다음 고개에서 카운터펀치를 날렸지만 이 마지막 여정인 4일차에는 단 하나, 이 고개만 넘으면 그것으로 여정이 끝나는 셈이다.

<갈크미재의 입구에서>

갈크미재의 입구로 들어선다. 갈크미재는 1,125m의 운장산과 1,002m의 구봉산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운장산 기슭으로 더 치우쳐져 있으며 810m의 높이를 자랑한다. 고개의 입구에서 내리막까지만도 길이로 8km에 이르는 긴 거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안고원길을 역순으로 걷는 KHT 코스에서의 오르막이 맞은편 순방향의 오르막보다 편하다는 것이다. 완만하게 오르막이 이어진다고 하니 그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

오르막길이 완만하니 덩달아 마음도 완만해진다. 겨우 17km를 걷는 것으로 끝나는 일정이기에 다른 부담도 없으니 더욱이 더 즐겁다. 그렇게 오르고 또 오른다. 역시 8km의 길이는 만만치 않기는 하다.

중간에 한 번 쉬고 자신과의 내기를 해 본다. 그렇게 급한 경사도 아니고 잘 닦인 길이니 만치 한 번도 안 쉬고 정상까지 단번에 올라보기로. 그렇게 스스로와 내기를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걷기를 시작한다. 폴과 걸음도 박자에 맞추어 척척척척 움직인다. 그렇게 기계처럼 걷다보면 어느새 숨이 차오르고 그 숨을 내뱉는 것까지 손 발의 움직임과 궤를 같이 하면 어느새 몸에 부스터가 켜진 것 같으 ㄴ느낌이 든다.

중간에 몇 번이고 쉬려는 것을 참고 (잠시 속도는 느려지더라도) 계속 오르고 또 오른다. 

그렇게 정상까지 오를 마음을 먹으니 오히려 정상이 더 쉬이 잡히지 않는 듯 하다. 3/4능선의 벤치를 지나 계속 오르고 또 오르는 순간, 정상까지 거리가 2~300m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될 때 전화벨이 울리면서 내 도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중요한 전화이기에 잠시 멈추어 서서 앉아 통화를 했다. 그때서야 숨과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자신과의 내기에서 어떤 이유로든 졌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했다. 이왕 도전이 멈춘 셈이니 느긋이 마저 정상까지 오른다.

<갈크미재의 정상에서>

갈크미재의 정상은 별다른 표식이나 안내판은 없이 벤치만 두어 개가 진안의 산세를 살펴보는 방향으로 놓여진게 전부다. 게다가 그 산세도 나무들 때문에 시원스레 보이지 않는다. 

기대했던 화려한 풍경이 아니라 조금은 서운할 법도 하건만 오히려 이렇게 내 여정도 막바지구나…하는 마음에서 오는 아쉬움과 시원섭섭함이 더 크다. 

그 고개의 정상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며 버찌를 담은 물을 마신다. 달고 시고, 그리고 조금은 떫은 그 물맛이 갈크미재 정상에서 3박4일의 여정을 갈무리해보는 내 마음과 같다.

<밭에 농작물만 잘 심는다면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이리라.>

<녹음속을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내려간다.>

남은 체력이야 충분하므로 내친김에 동봉을 따라 운장산까지 간다고 호기를 부려볼 만도 하건만 정해진 코스를 완주하고 gpx를 수집하는데 가장 큰 목적이 있으므로 아쉬운 마음만을 가지고 내리막길을 걷는다.

오히려 올라갈 때에는 스스로와의 싸움으로 부스터를 키고 올라가 거리의 체감을 크게 못 했는데 기나긴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정말 만만찮은 길이와 높이의 고개였음을 깨닫는다. 확실히 이쪽 방향에서 올랐다면 조금은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길을 따라 모든 여정의 종착지인 마조마을로 향한다.

<뙤약볕 속에서 마조마을에 도착한다.>

마조마을의 당산나무에 던지듯이 등산용 폴과 가방을 내려놓는다. 발에 아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확실히 말 그대로 다시금 장거리 여정을 하며 발바닥이 소위 ‘길이 든’ 셈일 것이다.

물병을 마저 비우고 잠시 계단같은 나무 쉼터에 드러눕는다. 아직 매미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새의 지저귐 소리 속에서 3박4일간의 여정이 하나하나 머리를 스친다. 

할 수 있을까 염려되었던 첫 날,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나서 차를 운전했던 것 부터 큰재와 먹재의 만남, 다음날 용담호의 풍경속에서 걸었던 임도와 갈골재, 물문화관까지의 도로길, 그리고 어제 올랐던 용강산과 탁조봉, 닥밭골의 싱그러운 길, 운일정의 아찔함, 그리고 오늘 넘은 갈크미재의 풍경…

식사를 같이 하자던 상전면의 한 어르신과 창고에서 얼기 직전의 생수병을 꺼내주셨던 여러 마을 어르신들, 아낌없이 마당의 수도꼭지를 허락해주신 여러분들… 그렇게 3박4일 동안 많은 만남과 느낌을 담고 여정을 마친다니 섭섭함이 가득하다.

그렇게 먹먹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그래 결국 할 수 있다니까, 3박4일 105km…’하며 자찬을 해 보지만 더 걷고 오르고 또 좌절하며 주저앉아 쉬었던 쪽으로 계속 마음이 가는 건 무슨 일일까?

이대로 더 걷지 않고 몸의 힘을 온전히 가둔 채 가만히 앉아 차를 기다리는 것도 참으로 아쉽다는 생각이다. 아직 더, 15km는 더 걸을 수 있는데…

그렇게 아쉬움을 곱씹는 동안 정인호 팀장이 트럭을 타고 올라온다. 시원한 얼음물로 목을 축이며 그렇게 성공적인 답사를 자축하며 마조마을을 떠난다. 몇번이고 갈크미재를 돌아보면서 끝이 아닌 시작이 될 것임을 떠올려 본다. 


 

<다음 여정을 기다리며, 내려오는 길에 한 컷>

PCT, CDT, Te Araroa, Kungsleden, Camino De Santiago, ,Inka Trail, The Great Himalaya Trail, Simien Trail, 熊野古道… 세계의 각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길이 있다. 

그 길은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경관을 보여줌은 물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그 길을 걷는 이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우리나라에도 수 많은 길들이 있다. 그러나 그 길들은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여 도를 넘나드는 길이라도 그 길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Trail이라 보기는 어렵다.
 
로드프레스가 꿈 꾸는 일명 ‘KHT(Korean Highland Trail)’는 이 땅의 척추인 대간과 정맥, 지맥을 훑으며 고원길을 잇는 대한민국의 트레일을 그리는 작업이다. 물론 기존에 백두대간 트레일이 있다. 그러나 KHT는 좀 더 체계적인 관리와 다양한 행사, 그리고 홍보를 통해 KHT의 구간이라 부를 수 있는 길을 찾아내어 연결하고 다듬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길을 연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길 안에 도전, 성찰, 그리고 지역민의 삶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 자신에게 부족한 것의 절실함을 깨닫는 기회의 길이 되도록 할 것이다.

그 첫 번째 발걸음인 진안의 진안고원길 구간을 걸으며 ‘내가 할 수 있다면 전국민이 다 할 수 있음’을 알린다. 

오는 7월 14일부터 24일까지 11일간 펼쳐지는 KHT in 진안고원길, 한 번 도전해 볼 만 하지 않은가?

신청경로 : https://www.frip.co.kr/products/61062

1박2일 하프코스 신청경로  : https://www.frip.co.kr/products/64769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