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By

광고문의

3박4일간 105km의 여정, KHT in 진안고원길 코스를 가다 ③

3.3일차 (용담체련공원 – 용강산 – 탁조봉 – 주천생태공원 – 삼거) 25.1km
    메인캠프 : 삼거 유원지(노적봉쉼터 뒤편) / 서브캠프 : 주천생태공원 운동장

<해가 가리워지니 너무나 시원하다.>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찮다. 

차라리 더운 날씨보다야 비가 좀 내려서 시원한게 낫다. 산길이 미끄럽고 바위가 위험해지지만 그래도 그것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앞의 이틀은 무더웠다. 물론 최악은 비가 오고 난 후 말끔히 개어 수증기가 피어올라 더욱 더워지는 것이다. 

그래도 설마 최악의 패를 뽑으랴.

날씨가 잔뜩 찌푸린 3일차의 아침은 서늘하기까지 했다. 걷기에 더 없이 좋은 날씨다. 용담체련공원의 리본 표식을 따라 철문을 나서면(동향체련공원을 생각하면 찾기 쉽다.) 다시금 마을이 이어지는 농로가 나타난다. 상쾌한 마음으로 3일째의 여정을 시작한다.

<노온마을의 벽화는 하나하나 보는 재미가 있다.>

벽화가 인상적인 노온마을로 들어선다. 

사실 이 때부터 발바닥이 벌써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연이어 걸은지도 얼마만인가, 그동안 원숭이 꼬까신 신듯 발바닥은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어제 그렇게 파스를 발바닥에 붙이고 잤건만.

아니다, 발 조차 가누기 힘들 정도였던 어제에 비해 그래도 파스라도 붙였으니 지금 움직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노온마을은 각 집마다 담장에 그려진 벽화가 참으로 정겹다. 하나하나 마을 사람들, 혹은 벽화를 그린 이의 얼굴을 재미있게 묘사한 것도 있고 포도와 인삼 등 진안군의 특산물을 그려넣은 것도 많다. 이가 빠진 담장의 기와 부분에는 뻗어나온 소나무를 운치있게 그려냈으니 보통 센스가 아니다.

<새마을 마을로 들어선다.>

<인삼밭 위의 교회가 인상적인 새마을 마을>

도로를 지나면 새마을 마을. 마을이 두 번 겹친다. ‘역전 앞’이나 ‘족발’ 같은 느낌이다. 새마을 마을을 통과해 걷노라니 진안군의 자랑인 인삼밭이 여기에서도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그 검은 가림막 위로 멋드러진 교회와 산이 펼쳐지니 프랑스의 포도밭 풍경과 흡사하다. 한국적이면서도 또한 상당히 이국적이다.

<송풍초등학교, 용담중학교 옆길>

용담면사무소에서 물을 채울까 했으나 아직 문을 열기 전이다. 

이른 시각에 나와선지 면사무소 옆의 작은 슈퍼, 아니 점빵도 문이 닫혀져 있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일단은 표식대로 길을 따라 간다. 송풍초등학교 옆 길로 올라서 면 중심지를 벗어난다.

<회룡마을 정자>

회룡마을로 들어선다. 양 쪽의 당산나무 밑으로 쉼터가 위치해 있다. 잠시 앉아서 쉬노라니 벌 한 마리가 야단이다. 그래 어디에 꿀 발라 놨겠구나 하고 훌훌 털고 내려간다. 

운 좋게 나와계신 어르신께 양해를 구하고 물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회룡마을 마을회관을 지나>

회룡마을 마을회관에 도착할 무렵 드디어 고대하던 비가 쏟아진다. 시원한 양은 아니지만 충분히 흙먼지를 잠재울 정도는 된다.  콩 볶는 소리 요란하게 아주 짧게 내린 비 만으로 온도가 떨어진다. 흙냄새가 피어오른다.

마을회관에서 오른쪽, 작은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 곧 개울 건너 아주 작은 언덕을 넘는 길이 나타난다. 양 쪽에 집들이 있고 그 사잇길이니 표식을 잘 확인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언덕을 지나 내려오는 길>

언덕을 지나 내려온다. 

3일차의 여정 동안에는 큰 고개가 둘 있다고 들었다. 바로 용강산과 탁조봉. 첫 날의 큰재와 먹재, 둘쨋 날의 10km 임도와 갈골재에 이어 이번엔 용강산과 탁조봉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되어야 고원길 아니겠는가’라는 마음으로 발을 옮긴다.

<용강산을 향해>

인삼밭을 지나 꾸준히 오르다보면 용강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표식만 따라 가면 되니 어려울 것은 없다.

가는 길에 다시 한 번 콩 볶는 소리가 나고 비가 한 차례 후드득 떨어진다. 아까나 지금이나 풀을 적시고 흙 냄새를 뿜어낼 정도로 길은 완전히 적시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려한대로 해가 드문드문 나타나면서 온도가 올라가고 습기가 강해진다.

용강산이 부디 착한(?) 산이기를 바라며 등산로를 향한다.

<용강산 등산로>

3일차에 들어서서 이젠 저 나무 계단만 봐도 숨이 ‘헉’하고 들이마셔진다. 물론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지만 그래도 명색이 산길이니 저 안으로 쑤욱 들어가는 것은 어느정도는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다. 

입구에서 물을 마시고 잠시 쉰 후 등산로로 몸을 던진다. 

하지만 너무 걱정했을까, 의외로 용강산을 오르는 길은 그렇게까지 험하지는 않은 편이다 완만하게 지그재그로 올라서면 숨 몇번 헐떡이는 사이에 금새 능선에 닿는다. 아무래도 인삼밭을 지나 조금씩 계속 오르막길을 걸었기에 나도 모르게 꽤 이미 올라온 셈인 듯 하다. 

‘어쩌면 요 몇일 사이에 그만큼 힘이 생겼는지도 모르지.’

인간은 간사한, 그리고 자신에게는 한 없이 관대한 생물임을 다시금 느끼며 자화자찬을 슬그머니 뒤로 밀어넣는다.

<금봉재봉. 진안의 평균 고도를 생각하면 높이 오른 것이 아니다.>

능선을 따라 정상을 향해 걸으니 누군가 금봉재봉 정상임을 표시해 둔 종이를 만난다. 그럼 그렇지, 진안군의 평균 고도를 생각한다면 그리 많이 오른게 아닌 셈이다. 어쩐지 너무 쉽게, 짧게 올랐다 싶었다.

약간은 허망한 마음을 감추고 능선을 따라 오르막내리막을 반복하며 나아간다. 용강산의 정상엔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거기까지는 가야 그래도 산의 정상(420m)을 오르는 셈이다.

능선까지 오를때엔 거침이 없었는데 감시초소로 가는 길이 오히려 더 힘들게 느껴진다. 그래도 곧 도달할 수 있었다.

<정상에서 가야할 길을 바라보다.>

드디어 산불감시초소에 올랐다. 아래로 펼쳐지는 용담호와 곧 가야할 도로, 마을들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 진안고원길의 10코스 순방향이라면 저 도로의 높이에서 이 정상까지 박차고 올라야 할 길이다. 상당히 어렵다. 오히려 역순이었기에 마을부터 천천히 오르막길로 절반 이상을 걷고 조금만 고생하여 오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아까의 기고만장함이 부끄러워진다.

붉어진 얼굴을 감추며 잠시 쉰 후 내리막을 향해 걷는다. 아니나다를까 내리막길이 상당히 험하다. 

‘이 길을 순방향대로 올라왔다면 정말 최고의 난코스 중 하나였으리라.’ 

다행의 한 숨을 내쉬며 내려간다. 낙엽이 쌓인 길에 비까지 젖어있어 미끄럽기 그지없다.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마을로 내려오다.>

마을로 내려와 잠시 양해를 얻어 수돗가에서 물을 채운다.

여기저기 펜션 공사가 한창이다. 아무래도 풍경이 빼어난 호수와 멋진 산이 있으니 펜션만큼 어울리는 것도 없겠다. 무작정의 개발에 난항을 내세우기보다는 가끔은 그렇게 한적한 이 펜션에서 쉬어갈 날을 생각해보며 좋게 여겨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사실 전북의 또 다른 호수인 옥정호만 하더라도 옥정호 둘레길, 물안개길 부터 다양한 길들이 존재하고 있고 또 임실군에서도 옥정호의 관광자원화에 뛰어들고 있는데 이 용담호는 아직은 잠잠하다. 꼭 옥정호처럼 관광개발을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만 좀 더 다양한 길들이 연계되어 생겨났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꽤나 긴 구간을 도로를 따라 걷는다.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

용강교와 도실교를 지나 선화교와 신정교에 이르기까지, 긴 도로구간동안 다리를 건너며 만나는 용담호의 풍경은 너무나 고혹적이다.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건만 그렇다해서 이 자연이 인공적인 것은 아니다. 태고부터 있어 온 진안의 산야가 있었기에 거기에 사람의 손을 대어도 이렇게 멋진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리라.

교각 밑에서는 낌짝 놀랄 정도로 큰 물고기를 보기도 했다. 나중에 확인해 본 즉 용담호 전체가 낚시금지구역으로 내수면어업 허가증을 가진 이에 한해서만 어로행위가 가능하다 하니 수자원도 풍족하겠다는 생각이다. (혹여 호수 사진을 보며 군침을 흘릴 조사분들은 맘 편하게 포기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더위 속에 도로를 걷자니 시원한 음료수가 다시 생각난다. 문 닫은 용담면사무소 옆 슈퍼 이후로 슈퍼를 전혀 만나지 못했다. 그 와중에 ‘휴게소 전방 800m’라는 표지판(정확히 800m였는지 600m였는지 기억은 잘 안난다.)을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치며 참고 걸어보지만 이미 문 닫은 지 오래되어 방치중인 건물이었다. 

차라리 표지판이라도 없던가…. 미지근한 물로 갈증을 달랜다.

<탁조봉으로 향하는 길>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국제캠핑장 방면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있다. 두 번째 난코스인 탁조봉을 지나기 위해서는 이 길로 들어서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용강산은 ‘산’이고 탁조봉은 ‘봉’이니 산 보다야 덜 하겠다 싶은 마음이다. 잠시 얼굴을 내민 해도 다시 구름 속에 들어가 날씨는 선선한 편이다. 이렇게 시원할 때 바짝 넘어버리는 게 낫지 않겠다 하여 탁조봉을 향한 발걸음에 힘을 더한다.

<탁조봉 입구>

드디어 탁조봉 입구를 만난다. 

이 와룡마을 등산안내도의 옆 길로 들어서면 탁조봉을 넘을 수 있다. 이후 주자천을 따라 금평마을, 주천 생태공원으로 이어지는, 오늘차 여정의 절반을 이룰 길이다. 남은 후반의 대부분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운일암반일암 숲길 자체가 난이도가 ‘하’라고 진안고원길 지도에 표시된 만큼 수월하리라.

입구로 들어서니 시원하다못해 차가울 정도의 바람이 불어온다. 느낌이 좋다. 한적한 길은 호숙가에 붙은 구간은 꽤나 잔도의 느낌이 날 정도로 벼랑길(벼룻길)의 모습을 빚어낸다. 그러나 그런 구간도 잠시, 호젓한 숲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기분좋게 이어진다.

<쉽게 보면 안 될 탁조봉 오르막>

그런데 점점 길이 험해지고 꽤 높아진다. 방금 용강산을 넘었건만 어째 용강산보다 더 힘든 느낌이다. 결국 오르다가 중간에 주저앉아 쉰다. 떨어지는 땀을 닦으면서 ‘또 두 번째 카운터에 속았다’는 한탄을 한다.

큰재를 넘고 의기양양하다가 먹재에서 모든 기운을 다 뺏겼고, 10km 임도를 넘으며 아름답다!고 소리지르다가 갈골재에서 제대로 얻어맞았다. 이번에도 그렇다. 용강산을 넘고 ‘내 체력이 좋아졌구나!’하다가 탁조봉에서 어퍼컷을 맞은 격이다.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내며 오르고 나니 입에서 저절로 환호가 나온다. 그래, 오늘 넘을 거 다 넘었다!!!

<내리막길의 중간에서>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니 만만치 않은 높이였음을 실감한다. 

탁조봉의 내리막길 또한 용강산의 내리막길과 더불어 쉽지 않다. 꽤 미꾸러운 구간이 많고, 특히 정상에서 내리막 초입의 밧줄구간은 상당히 위험하니 반드시 밧줄에 의지하여 한 발 한 발 조심히 내딛도록 하자. 본 기자는 한 번 뒤로 넘어져 버린 구간이다.

밧줄 구간은 게다가 암벽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자칫 크게 다칠 수 있다.

그렇게 조심히 내려온 후 내리막 중간에서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한다. 작은 높이라도 오르막은 힘든 일이고 내리막은 그만큼의 보답을 받는 길이다. 그 보답을 찬찬히 음미한다.

<성암마을을 향해>

탁조봉을 완전히 내려와 성암마을로 향한다. 

길게 뻗어 있는 이 길은 주자천변을 따라 이어져 있다. 생각보다 꽤 길이가 긴 편으로 느긋한 마음으로 걷는 것이 좋다. 심해졌던 발바닥의 통증은 이쯤되면 이제 오히려 무뎌져 별다른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피곤하기만 할 따름이다.

계속 걷다보면 주천 하수처리장을 지나 멀리 성암마을이 보인다. 중간에 다시 비가 내려 마을 정자에서 쉬었다.

<금평교를 지나 금평마을로 들어선다.>

성암마을을 지나면 성암마을과 금평마을을 잇는 다리 금평교를 만난다. 이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돌아 금평마을의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주의할 부분이 있다. 일반적인 진안고원길 표식은 마을의 중간 한 집의 벽에서 마을 밖으로 나가 주천면사무소 방면, 중심지 방면으로 이동하도록 안내하지만 KHT 코스는 마을안에서의 표식을 무시, 그대로 직진하며 마을을 관통, 주천생태공원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서브 캠프가 주천생태공원의 운동장에 있기 때문이다. 행사를 앞두고 길이 엇갈리지 않도록 별도의 포기를 할 예정이다.

물론 원래의 진안고원길 표식을 따라 이어서 나아가도 문제될 것은 없다. 오히려 주천면 번화가 내에서 마트를 이용하거나 식당을 이용하여 식사 및 쇼핑을 할 수 있다. 서브캠프에서 잔다고 하더라도 장을 보고 서브캠프로 나아가도 되니 큰 문제될 것은 없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움직이면 될 것으로 보인다.

<주천생태공원으로 가는 길>

<길을 따라 계속 나아가면 운동장이 나타난다.>

주천생태공원은 생각외로 규모가 매우 큰 공원이다. 그리고 금평마을을 지나 주천생태공원으로 들어서는 길 자체가 공원의 뒤로 이어지는 길이기에 공원을 나타내는 작은 안내판 외에는 공원인지 쉽게 알 수 없다.

그래도 길을 따라 계속 나아가면 어느새 꽃들이 만발하며 녹음이 우거진 생태공원을 만나게 된다. 이 부분 역시 행사를 앞두고 길 안내가 필요할 것 같아 체크를 한다.

<3일차 서브캠프 주천생태공원 운동장>

주천생태공원 운동장에 도착한다. 아마 3박4일간 이용할 수 있는 캠프 중 규모에 있어서는 가장 큰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화장실 등도 잘 갖추어져 있고 약간 걸어야 하지만 주천면의 중심지와도 도보로 이동이 가능해 필요한 것을 구매하며 쉴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트랙 주변으로는 농구코트, 베드민턴 코트 등도 있으나 사용하기 위해서라면 약간은 관리가 필요한 구간. 

꽃이 만발한 공원 내에 위치해 있어 이 곳에서 캠핑을 한다면 참으로 낭만적이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다.

서브캠프를 둘러보고 바로 이동을 한다.

 

<구령대 뒷길>

운동장의 구령대 뒤로 나아가면 길이 나 있다. 도로로 올라가지 말고 공원으로 왔던 방향으로 거슬러간다. 운동장 트랙 끝 즈음으로 베드민턴 코트와 농구코트를 지나면 잔디위로 또 다른 길이 깔려 만나는 세갈래길이 나온다.

세갈래길에 도착하면 길이 없는 곳, 즉 왼쪽의 꽃밭으로 직진해 들어선다. 땅이 고르게 되어 있어 큰 염려는 안해도 좋다. 조금만 걸으면 수로가 나타난다. 

물론 행사를 앞두고 길 안내 표식을 다시 할 곳이니 큰 염려는 안해도 좋다.

 

<수로를 건넌다.>

작은 널빤지가 놓여있는 수로를 건너면 밭을 지나 도로로 올라갈 수 있다. 지도에서 보면 먹고개라 하는 곳이다.

도로로 올라가면 충혼탑이 나오고 진안고원길 9코스인 ‘운일암밤일암 숲길’ 구간으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원래의 진안고원길 표식(붉은색 화살표, 리본)을 따라 가면 된다. 초행으로 답사에 나선 나는 원래의 구간이 아닌 행사용 구간인지라 약간 오르는 길을 못 찾는 헤프닝이 있었으나 KHT 행사때엔 그런 일은 없다고 봐도 좋다.

<닥밭골로 향하는 길>

충혼탑에서 도로를 건너면 닥밭골로 나아가는 길이 이어진다. 

그동안 3일째 길을 걸으며 봤던 그 진안군의 익숙한 농촌 풍경이다. 아름다운 산, 그 밑의 논과 밭, 인근을 흐르는 강물, 인삼밭 그리고 한적한 풍경과 바람에 실려오는 꽃 향기.

닥밭골이라는 지명이 재미있다. 혹시 ‘닭발골’이 변형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본다. 고개나 산의 지세가 닭발처럼 생겼다던가. 그러나 실제로는 한지 종이를 만드는 주재료인 닥나무가 유독 많이 자라는 고개라 하여 닥밭골이라 한다. 보물산인 셈이다.

<닥밭골 가는 길>

농로를 지나 산으로 들어서면 정말로 싱그러운 향기 속에서 옛 추억 가득한 숲길을 걸을 수 있다. 

예전에는 캠핑장이나 유원지로 이용되었던 듯 이끼가 가득하고 군데군데 주저앉은 나무평상 캠핑사이트와 벤치, 야외공연장 등이 보인다. 꽃과 나무의 이름과 종을 알려주는 생태알림판은 그 자체로 생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가 전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이 참 아름답다. 길 위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에 신발이 젖지 않도록 종종 걸음으로 건넌다. 그 걸음이 너무 빨라 계곡이 꽤 서운해 하지않았을까 마음 한 켠이 편치 못한 길, 닥밭골 가는 길이다.

<닥밭골로 들어선다.>

본격적으로 닥밭골로 들어선다. 

골짜기란 이름이 붙었지만 오르막이 심하거나 걷기 불편한 길은 아니다. 길은 찾기 쉽고 표식도 잘 되어 있으면서도 사람의 손이 뭍지 않은 듯, 엄밀히 말하면 오랫동안 손을 타지 않은 듯 한 길이다. 여기까지 오는 길도 호젓하고 감수성이 넘쳤는데 닥밭골 길은 더욱이 그렇다. 

<이름모를 재실을 지난다. 돌담이 너무나 아름답다.>

닥밭골길의 가장 큰 아쉬움은 너무 짧다는 것이다. 오늘도 25.1km를 걷는 여정이고 용강산과 탁조봉을 지나 여기까지 걸어왔지만 그래도 이 닥밭골길이 너무 빨리 끝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좀 더 이 숲을 편안하게 걷고 싶은 욕심이다.

사당, 혹은 어느 명망가문의 재실일까 알 수 없는 한옥의 뒷편을 지나며 그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얼마만인가 이렇게 운치있게 이끼로 뒤덮인 돌담장을 본 것이. 낮은 돌담장이라 한 번 앉아보고픈 욕심도 생긴다. 어여쁜 소녀가 고풍그런 옛 교복을 입고 이 돌담장에 앉아 있다면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 될 성 싶다.

<녹음을 벗어나 도로로>

펜션을 지나 길은 다시 도로를 만난다. 짧았지만 너무나 운치있는 숲길이었기에 쉬이 그 매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렇게 충전을 하고 만나는 도로는 다행히 그리 길지 않다. 중간중간 운일암반일암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물을 만날 수도 있다. 그 맑은 물을 보노라니 이 더위에 바로 뛰어들고 싶다. 워낙 인기있는 계곡이기도 하니 이 곳에서 자유롭게 피서를 즐기는 진안군 사람들은 참으로 복이 많은 셈이다.

<도로를 따라 다리를 건너 운일암반일암 야영장으로 들어선다.>

<주차장을 가로지른다.>

도로를 따라 걸으면 곧 운일암반일암 야영장으로 들어서는 다리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를 지나면 ‘크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 이 계곡에 이만한 자리가 있었는가 싶은 넓은 야영장 겸 주차장을 만난다. 워낙 넓어서 이 곳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감이 안 잡힐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천변을 따라 걸어 올라간다고 생각을 하면 좋다. 말 그대로 넓은 주차장을 가로질러 끝까지 나아가면 (주차장무대를 지나) 운일암반일암 숲길 산책로로 이어지는 나무데크가 나타난다.

<운일암반일암 나무데크 산책로>

드디어 진안군의 자랑 중 하나인 운일암반일암 계곡을 만난다. 

이 운일암반일암 계곡은 ‘기암절벽에 옥수청산’이라는 말로 대변된다. 도로가 나기 전엔 깎아지른 절벽에 오로지 물과 나무, 구름 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운일암이요, 워낙 산세가 높고 바위벼랑이 높아 하루에도 해를 반 밖에 못 봤으니 반일암이다. 

<도로에서 본 운일암반일암의 풍경1>

<도로에서 본 운일암반일암의 풍경2>

<도로에서 본 운일암반일암의 풍경3>

그 말마따나 이 운일암반일암 계곡은 백악기때부터 빚어진 바위가 무너지고 깎여 정말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신선계를 빚어내는 곳이다.

이 운일암반일암을 멋지게 관찰할 수 있는 길은 지금 걷는 산책로가 아닌, 계곡 건너 도로변이다. 참고하여 나중에 여유가 있다면 반드시 맞은편을 걸어보는 것을 잊지말자.

<데크를 따라 계곡을 걷는다.>

맑은 계곡의 시원한 물 소리, 그 물의 깨끗함과 시원함이란 보기만 해도 충분히 느껴진다. 

신선놀음이 다 무엇이더냐, 당장 아래로 내려가 부어터진 발을 계곡 물에 담그고 싶다. 그렇게 쉬고 있노라면 운이 좋으면 막 계곡물에서 꺼낸 시원한 수박 한 조각 쥐여주는 맘 좋은 이를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신선놀음이고 무릉도원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는 예로부터 있어온 듯 눈에 띄는 커다란 바위마다 옛 선비들이 자신의 이름이나 한시를 새겨놓았다. 물론 지금에서야 그런 행위는 몰자각하다고 비판 받지만 세월을 입어 바위와 함께 멋지게 풍화되어가는 일필휘지의 각인은 그 자체로 주변 풍경에 썩 어울리는, 괜찮은 풍류거리이다. 

<데크 산책로의 끝에서. 다리가 아닌 산으로 간다.>

데크를 따라 걷기도 이제 끝난다. 여기서 출렁다리가 보여 아아, 이제 정말로 여정의 끝이구나 생각했는데 화살표가 산을 가리킨다.

갑자기 그동안 산세에 반해 잊고 있었던 발바닥의 통증과 육제의 피로가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아니야… 아닐 것이다. 분명히 누군가 이 표지판을 돌려놓았을 것이다. 악의적인 장난이다!!!’

하지만 산을 올라야 한다. 마지막까지 카운터 훅을 잊지 않는 3일차 코스. 바로 저 출렁다리를 건너 도로를 따라 걸으면 금방이련만 길 표식은 야속하게도 걷는 분에게 ‘그래도 이왕 걸은 것, 진안군의 멋진 풍경 끝까지 보시라’고 운일정으로 안내한다.

<운일정 오르는 길도 상당히 힘들다.>

운일정을 만나는 길은 3일차 여정의 마지막 구간에서 만나는 정말 마지막 보스다. 

전체적인 높이와 난이도로 본다면 사실 오전에 걸은 용강산이나 탁조봉에 감히 비할 바가 아니지만 체력이 거의 소진된 막바지에 이르러 만나는 고개, 그리고 반드시 넘어야 일정의 마무리가 가능한 마지막 1%라는 점이 걷는 이를 더욱 힘들게 한다. 웃음마저 나올 정도. 

게다가 전체적인 오르막 난이도도 쉽지는 않은데 막판에 운일정으로 오르는 바윗길과 가파른 돌계단은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고 싶을 정도이다. 어찌보면 정말 참으로 재미있는 길이다, 이 길.

<운일정을 만난다.>

그렇게 힘들게 산을 올라 드디어 운일정을 만난다. 

이 운일정에서의 풍경은 직접 확인 하시라. 대불암을 비롯하여 계곡과 산세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내가 고생한 만큼 직접 올라와서 보시길 권하고 싶다면 못된 심보라고 말씀하시겠지만 정말로 모든 시름을 잊고 노고를 한 번 잊어보시길 바란다.

여기까지 올라와 앉으니 이젠 내려가면 끝이라는 생각에 오래 앉아있기도 힘들다. 갈대보다 약하고 목화솜보다 가벼운게 인간의 마음이다.

<칠은교 앞에서 다시 계곡을 오른쪽에 끼고 걷는다.>

이미 풀려버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온다. 

등산용 폴이 없다면 난감할 수 있는 길이다. 물론 등산용 폴을 사용하더라도 바위 틈에 끼지 않도록 잘 확인해서 내려와야 할 구간이 있다. 

내리막 중간에 갈림길에서 표식이 쓰러진 곳이 있는데 단 두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칠은교 방향’, ‘우리는 내려가 계곡을 만나야 한다.’. 그러면 길을 헤맬 염려는 없다.

다 내려오면 칠은교를 만나는데 이 칠은교를 건너지 말고 자세히 보면 다리 옆으로 다시 계곡을 타고 걷는 길이 나 있다. 그대로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삼거 유원지의 노적봉쉼터>

길 중간에서 (사)진안고원길의 정인호 코스팀장을 만난다. 용케도 걸어오셨다며 웃으며 기다리는 그 모습이 반갑기 그지없다. 계곡을 따라 걸으며 진안고원길에 대한 감상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묻고 답한다. 정말 우수한 길이고 관리가 잘 되는 길이라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는 말에 자랑스레 웃는다.

다만 계속되는 하천 제방 공사로 맑디 맑은 계곡물이 옛날 같지 않아 안타깝다며 수심이 가득한 표정을 보며 나 역시 조금은 걱정이 된다. 이 청정한 환경, 자연이 빚어낸 습지와 하천에 인간의 손을 대는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기야 하겠지만, 정말로 이 아름다운 풍경을 해치고 얻는 이익이 더 클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여러번의 조사와 검토를 통해 예상결과를 도출하여 하는 나랏일이겠지만 말이다.

삼거 노적봉 쉼터에 도달한다. 이 노적봉 쉼터는 민박과 슈퍼를 겸하고 있다. 바로 옆의 다리를 건너서도 식당과 매점 등이 있으니 3일차의 마지막 메인캠프로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주차장에 화장실도 매우 깨끗하고 넓어 마음에 든다.

<노적봉 쉼터 바로 뒤의 공터. 이곳이 삼거 메인캠프이다.>

체련공원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넓은 공터라 수십동의 텐트가 들어서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매점과 식당이 가깝고 화장실도 가깝다. 계곡도 앞에 있으니 마지막 잠자리가 꽤나 멋지겠다는 생각이다. 밤에는 별이 쏟아지겠지?

마지막 진기를 다 쏟아내고 진안고원길 트럭에 기대고 있으려니 뒷좌석 아이스박스에 얼음물이 있다고 한다. 눈이 번쩍 뜨인다.

속까지 찌르르한 얼음물을 들이키며 3일차 여정을 끝낸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