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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4일간 105km의 여정, KHT in 진안고원길 코스를 가다 ②

2.2일차 (동향체련공원 – 임도 – 안천스포츠파크 – 도라마을 – 용담체련공원) 33.3km
    메인캠프 : 용담체련공원 / 서브캠프 : 안천스포츠파크

<동향체련공원에서 2일차 여정을 시작한다.>

간밤에 부어터진 발을 이끌고 기다시피 걸었던지라 씻고 양 발바닥과 무릎 앞뒤에 파스를 붙이고 잠자리에 들었다. 8시 좀 넘어 기절할듯이 자서 새벽 6시에 일어났다. 10시간동안 푹 잔 셈이다. 

중간중간 고통스러웠던 발바닥이 한결 편안하다. 

오늘은 3박4일 여정 중 가장 긴 코스, 33.3km를 자랑하는 2일차 코스다. 10km의 임도와 용담댐까지의 긴 도로구간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어제의 그 마지막 보스 먹재의 고통에 비할까? 한 번 가보는거다.

동향체련공원의 화장실쪽 철망을 보면 리본이 붙어있다. 그 표식을 따라 뒷편의 철문을 지나 걷는다.

<이른 아침 농촌의 풍경을 걷는 맛>

8시 반 정도에 출발한다. 

도심이라면 아직은 출근할 시각이지만 부지런한 농촌의 아침은 그렇지 않다. 논을 지나 들려오는 구성진 트로트 가락 속에서 한껏 허리를 굽힌 채 부지런히 김을 매시는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며 걷는다.

별다른 갈림길 없이 쭉 직진을 하다보면 시멘트 포장길이 끝날 무렵 좌측으로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외금마을로 들어선다.>

농로를 따라 옮기는 발걸음, 외금마을을 통과한다. 

몇 번이고 다시 회복된 발바닥의 상태에 놀라며 열심히 걷는다. 이번 33.3km의 구간 중에는 동향면사무소(비록 오늘의 출발지는 동향체련공원이지만)에서 안천소운동장에 이르는 19.8km의 (진안고원길 코스 중 가장 긴 구간인) 12코스가 온전히 들어가 있다. 

거기에 16.6km의 11코스도 대부분이 속해있다.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외금공동집하장을 지나 계속 걷는다.>

마을을 나와 왼쪽으로 돌면 외금공동 집하장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계속 간다. 

이 구간을 한참이고 걷다보니 초입 외에는 리본표식이 안보인다. (사)진안고원길에 전화하니 맞는 방향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계속 곧게 나 있는 길이라 리본을 추가하지 않은 듯 하다. 초행인 나로서는 표식이 안보이면 불안하기 그지없는지라 행사를 앞두고 두 세개 정도 더 달면 좋겠다, 건의해 볼 생각이다.

<하능마을 방면>

기분좋게 걷다보면 하능마을과 상능마을을 만나게 된다. 사이좋게 붙어있는 이 형제와도 같은 마을을 통과해 임도로 나아간다.

이 10여 km에 이르는 임도는 이번 코스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진안고원길 12코스의 핵심 구간이라 할 수 있고 KHT 2일차 구간 중에서도 용담댐 공도교에서의 풍경과 더불어 가장 인상적인 구간이자 길이기도 하다.

<10km의 임도가 시작된다.>

임도의 입구로 들어선다. 10여 km의 거리이지만 그 올라가는 지세가 완만하여 큰 무리가 없다. 또한 이젠 마을과도 떨어져 온전히 홀로 상쾌한 숲을 걷는다는 사치를 누릴 수도 있다. 

걷다보면 시원한 바람과 그늘에 그대로 흙길에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황홀한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낯선 이의 방문에 놀란 뱀이 가는 몸을 구불거리며 도망친다. 다람쥐와 청솔모도 재빠르게 뛰어가다가 뒤 돌아 내 얼굴을 한 번 본 후 부리나케 사라진다. 고라니도 만난다.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요 좋은 땅이다. 번잡함을 잊으려 걷는다면 반드시 걸어보아야 할 구간이다. 

<고개의 정상즈음의 쉼터>

걷고 걸어 고개의 중간치, 정상 즈음에 다다랐다. 그늘을 지나 드러난 길에 다시금 뙤약볕이 쏟아진다.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벤치를 지나 그늘에 주저앉는다. 비교적 완만한 경사였기에 큰 힘 들이지 않고 고개를 넘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길을 걷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가지는 것을 잊고 그저 힘든 것을 넘고 해치우려고만 한 것은 아닌가?’하고 잠시 자신을 되돌아본다.

물론 3박4일이라는 기간의 한정이 있고 완주라는 목표가 있다손쳐도 결국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내가 스스로 온전히 걸으며 자문자답하고 또 길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만난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즐거움 아니던가.

<내리막길에서 만나는 환상적인 풍경>

그렇게 내리막길을 걸으며 ‘너무 힘든 것을 걱정하고 난이도에 집착했다.’는 반성을 하는 순간, 코너를 돌자마자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이어진 산들, 그리고 그 아래의 작은 마을들이 드러나는 그 전경에 서서 한참을 출발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렇게 마법처럼 나타나는지… 장봉도 갯티길, 강화나들길 등 다양한 길의 특정 구간은 그렇게 고개를 넘거나 코너를 도는 순간 아주 환상적인 풍경을 깜짝 놀랄 정도로 한 순간에 보여준다.

<임도를 내려와 갈골재로 향하다.>

하지만 나란 인간은 역시나 한 없이 나약하고 비루했다.

임도의 긴 내리막길을 내려와 작은 마을을 지나 도로를 건넜다. 그리고 다시금 이어지는 작은 고개인 갈골재. 그 10여 km의 임도를 걸어왔음에도 이 작은 고개의 급 경사가 주는 난이도에 방금 전의 선승같은 깨달음은 바로 잊어버리고 온갖 탄식과 욕설을 입에 담으며 숨을 헐떡이며 오른다.

정말이지 이렇게 연이어 만나는 작은 고개가 카운터펀치와도 같다. 큰재를 지나 안심하고 먹재에서 엊어맞은 것 처럼 10km 임도를 내려와 웃다가 갈골재에서 얻어맞는 것이다.

정말 만만치 않은 고개인 먹재와 갈골재. 잊지 않으리라.

<갈티마을에 들어서다.>

갈골재를 넘어 내려오니 길은 갈티마을로 이어진다.

몇 시간만에 보는 사람이 반갑다. 우편배달부이다. 갈티마을을 내려오다가 물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집 앞의 밭에서 일을 하는 어르신에게 잠시 사정을 구하니 손수 수돗가를 열어주신다.

시원하게 씻고 가라는 말씀에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한다. 물도 세 통을 전부 채운 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이어 걷는다.

<작은 고개인 갈티재를 넘어>

갈티마을의 끝자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갈티재를 넘는다. 소박한 시골집이 풍경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 갈티재는 큰 난이도가 있는 편은 아니지만 별다른 그늘이 없는 도로로 이어지는 길이다. 꽤 기나긴 도로길인지라 각오는 좀 해야 한다.

<도로를 따라 노채마을까지 나아간다.>

어찌보면 고갯길보다 더 힘든게 이런 도로길인지 모르겠다. 발바닥의 통증도 더할 뿐더러 뜨거운 한낮에는 복사열을 그대로 받게되기 때문이다. 쉽게 그늘을 찾기 힘든만큼 현명한 하이커라면 틈틈히 물을 마시고 그늘이나 정자 등이 보이면 충분히 쉬면서 체력안배를 해나가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멀디멀다. 총 거리 중 절반을 조금 지난 셈이다.

<노채마을로 들어선다.>

노채마을로 들어선다. 어느새 갈티마을에서 꽉 채웠던 500ml 세 통의 물 중 두 통이 바닥이 난 시점이다. 다행히 친절한 한 농가에서 수돗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물의 소비량이 심하다. 비타민과 함께 물을 들이킨다.

2일차는 다행히 중간 서브 캠프인 안천스포츠파크 인근에서 슈퍼 및 식당을 만날 수 있다. 조금만 참고 걸어가기로 한다. 

<노채마을을 지나 한적한 내리막길>

평화로운 노채마을을 지나 길은 산 아래의 내리막길로 향한다. 

완만히 이어지는 내리막, 밭일을 하던 어르신이 깜짝 놀라며 무슨 일로 왔냐고 물으신다. 

“행사를 위해 3박 4일간 진안고원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늘은 동향체련공원에서 산을 넘어 갈티재를 지나 이렇게 여기까지 내려왔다고 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신다. 아직 걸어온 만큼을 더 가야 하는데 어르신의 입장에선 걱정도 되면서 무슨 일 때문에 그리 걷는지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시다. 그 황당하게 바라보는 표정이 참으로 정겹다. 그래도 어르신의 밭일처럼 저도 이게 일입니다.

<2일차 서브캠프 안천스포츠파크>

안천스포츠파크에 들어섰다. 안천스포츠파크와 안천소운동장은 별개이므로 착각하면 안 된다. 다행히 구간을 따라 먼저 만나는 곳이 안천스포츠파크이니 행사때에는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널따란 잔디밭과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푸른 잔디밭도 멋지고 인근에 슈퍼와 식당이 있으니 각 구간을 서브코스를 기점삼아 걷는 이들이라면 좀 더 편안히 쉴 수 있겠다.

슈퍼와 식당은 도로로 올라가면 있다. 도로를 건너면 안천소운동장인데 건너지 않고 우측을 보면 터미널슈퍼와 작은 식당이 보인다. 

식당 앞에 ‘여름별미 냉밀면’이라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아아아 이 더위에 냉밀면이라면 더 바랄게 무엇이겠는가.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멀어 배를 채우기가 부담스럽다. 눈을 꼭 감고 냉밀면을 포기하고 슈퍼에서 콜라를 하나 산다.

내 인생에 있어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던 그 콜라. 슈퍼 앞의 평상에서 그렇게 콜라와 간식으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쉰다. 스포츠음료도 챙겨 넣었다.

<도로를 건너면 안천소운동장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안천소운동장을 만난다. 소운동장 건물과 트랙 사이로 그대로 직진해서 빠져나간다. 

이 안천소운동장은 19.8km의 12코스와 16.6km에 이르는 11코스의 시종점이기도 하다. 2일차의 33.3km구간 중 이제 남은 거리는 약 1/3이다. 게다가 고개라 할 수 있는 곳은 모두 넘은 셈이다. 

사실 이 시점에서 나에게 남은 체력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제의 여정의 피로가 100%로 풀리진 못 한 탓이다. 게다가 남은 길의 상당 부분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걷는 것이다. 약간 걱정이 되지만 스포츠음료의 추진력을 믿어보기로 한다. 

<망향동산 가는 길>

안천소운동장을 지나 잘 정비된 마을을 따라 걷는다. 안천교회를 지나면 곧 망향의 동산에 닿을 수 있다.

<망향의 동산에서>

용담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망향의 동산.

이 망향의 동산은 2001년 용담댐이 건설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실향민들을 위한 장소이다. 지금도 해마다 망향제가 열려 이제는 가지 못하는 정든 터전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래는 장소로 남아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용담호의 수려한 자락과 안천면 보현마을 및 면 일대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망향의 동산에서는 전망대 외에도 망향탑과 고인돌, 수몰된 지역에 있던 다양한 비석들을 옮겨 세워놓은 모습도 만날 수 있다.

<망향의 동산을 내려와 밭길을 지난다.>

망향의 동산을 내려와 밭길을 지나면 보현마을 일대가 펼쳐진다. ‘참으로 멋진 곳에 자리한 마을이구나’라는 느낌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몰민들이 망향제를 지낸 후 내려가며 이 마을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할까…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길은 밭을 돌아 마을 외곽, 용담호 언저리로 나아간다. 

<하배실마을로 향하는 길>

작은 고개인 오얏고개를 넘어 도로를 지나면 하배실, 중배실마을을 만날 수 있다. 

하배실마을의 당산나무 밑에 잠시 앉아 숨을 추스른다. 이윽고 마신 시원한 스포츠음료. 이름 말마따나 정말 산을 부술듯이 시원하고 맛있다. 눈을 잠시 감고 배낭을 배게삼아 눕는다. 이 그늘이 얼마나 달디 단 공간이더냐. 날파리 소리도, 새 소리도, 멀리 개 짖는 소리도 자장가와 같다.

<옛 집의 모습이 아직 남아있다.>

중배실마을은 옛 집들의 모습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어 걷는 이에게 큰 감수성과 영감, 추억을 준다. 흙담의 정겨움, 기와를 보수하지 못해 대신 얹어놓은 양철 슬레이트엔 녹이 벌겋다. 그나마 바람에 날아갈세라 끈으로 엮어 놓았다.

참으로 촘촘히도 쌓은 돌, 그리고 메운 흙. 그 돌담이 정겹기 그지없다. 짚을 이겨 넣은 모양새가 역력한 집을 촬영하려니 맞은 편 집의 어르신이 사람좋게 웃으신다. 그리고 창고로 들어가서 시원한 생수병을 들고 나온다. 감사히 받고 아름다운 마을을 떠난다.

<도라마을 입구>

중배실마을에서 도라마을 입구까지는 꽤 긴 구간 도로를 걸어야 한다. 진안고원길 11코스의 구간이 전체적으로 도로가 많으니 걷는이는 유의해야 할 것이다. 물 준비도 충분해야 함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그렇게 힘든 걸음을 이어간다. 어느새 발의 피로도는 어제를 뛰어넘었다. 몇 번이고 걷다가 서서 숨을 몰아쉬고 무릎보호대를 고정한다. 그렇게 걷고 있으려니 우체국 택배 차량이 지나가다 멈추어 선다.

“어디까지 가세요. 태워드릴까요?”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젊은이의 친절한 권유를 마음 깊이 담는다. 힘내라는 말과 함께 떠나간 차량의 뒷모습이 강렬하다. 그렇게 차량을 쫓아 걷다보니 도라마을 입구다. 

<도라마을을 지난다.>

꽤 입체적인 논밭 풍경이 인상적인 도라마을. 마을 집들을 지나 회관에 이르니 회관 앞의 정자에서 담소를 나누던 어르신들이 내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란다.

“여그 앉아 쉬었다 가시요!” 

한 할머니가 거의 역정에 가까운 말투로 더위 속에 걷는 나를 잡아 끈다. 그런데 바로 마을회관 전의 한 집 담벼락에 앉아 잠시 쉰 터였다. 

“방금 쉬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참으로 이 길에서 만나는 진안 사람들의 친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길을 걸으며 늘 그래왔다. 아직은 길을 걷는 이에게 열려있는 곳이 우리나라라는 생각이다. 식사를 권유하는 분도, 창고에서 시원한 생수를 가져와 챙겨주시는 분도, 수돗가에서 좀 씻다 가시라고 안마당을 스스럼없이 내어주는 분도 모두 고맙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 땅의 다른 길에서도 이런 관심과 친절은 찾아볼 수 있다. 외국의 트레일매직과도 같다. 숙박을 제공하는 거창한 것은 아닐지언정 더위속에 걷는이를 염려하는 마음이나 도움의 요청에 흔쾌히 응하는 모습, 차를 세우고 목적지를 묻거나 하는 마음들이 모두 그 길을, 그 고장을 빛나게 한다.

<도라마을에서 도로로 향하는 길>

이제 진안고원길 11코스이자 KHT 2일차 구간의 후반 최대 난코스가 남았다. 바로 아스팔트 길이다. 도라마을을 지나 도로까지 꽤 긴 거리를 걸으면서 마지막 힘을 끌어모을 준비를 한다.

용담댐 물문화관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아스팔트길은 위험성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인근의 지장산 코스를 잇기에는 그 등산로가 너무 험해 관리가 힘들 뿐더러 시간을 맞추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 진안고원길을 만들고 관리하는 (사)진안고원길에서도 이 구간에 대해 수 많은 방안을 생각했으리라. 그래도 결국은 어쩔 수 없던 것이니만치 걷는이는 최대한 안전하게 전방을 응시하며 걷도록 하자.

<길게 이어지는 도로길>

도로를 걷다보면 해당 구간에서 공사도 이루어지고 있다. 조심히 걷는다. 특히 아스팔트를 새로 까는 구간은 그 냄새까지 어우러져 여정의 말미에서 큰 인내력을 시험케 한다.

이 도로구간은 정말로 자기자신과의 싸움이라 볼 수 있다. 3박4일의 여정 중 가징 긴 날인 2일차, 그것도 1, 2일에 걸쳐 소진된 체력으로 걷는 후반 구간이기에 그렇다.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위험한지라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뿐이다. 

사실 PCT에도, 그리고 TE ARAROA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에도 이렇게 도로를 따라 걷는 구간은 생각외로 꽤 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해외의 길을 걸을 이들이게 또한 좋은 연습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사구간에서 갈림길이 나타난다.>

묵묵히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공사구간 한 곳에서 용담호 쪽으로 더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용담댐 물문화관까지 기나긴 도로구간 중 잠시나마 도로를 벗어나 안전히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한적한 밭과 나무그늘을 따라 걸을 수 있어 마치 오아시스라도 만난 듯 신이 난다. 혹여 못 보고 지나치더라도 어차피 나중에 다시 도로로 올라오니 큰 상관은 없지만 표식을 잘 확인하여 정석 코스대로 걷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다시 도로로 올라가는 길>

드문드문 나무 사이로 보이는 용담호의 수려한 풍경을 따라 걷다보면 다시 도로로 올라가게 된다. 오르막길 전의 그늘에 주저앉아 쉬고 있는데 아랫밭에서 올라오신 어르신이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는 듯 나를 보며 깜짝 놀란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냐는 말에 KHT와 진안고원길을 설명한다. 여지껏 자신의 밭길을 오가면서 리본과 화살표 이정표식을 보면서도 그게 무엇인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며 환하게 웃으신다.

한 달 후에는 더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걸을 것이라 이야기하며 자리를 일어나 도로로 오른다.

<이어지는 도로. 저 멀리 용담댐이 보인다.>

힘들게 걸음을 옮긴다. 여기까지 와서는 한걸음 한걸음이 고역이자 자신과의 승부나 다름없다. 

다행히 물은 용담댐까지는 갈 만큼은 있지만 더위속에서 시원함을 잃은 지 오래다. 용담댐에 이르면 매점이 있어 시원한 음료수와 간식을 먹을 수 있다. 오직 그것만 생각하기로 한다. 단순한 목표만 생각하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저 멀리 용담댐이 보이고 구비를 돌 수록 점점 가까워진다. 힘이 다 빠져 느려진 발걸음에도 아주 조금씩 목적지는 가까워져가고 있다.

<용담댐 물문화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 구비를 도니 용담댐 물문화관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도착지인 용담체련공원까지는 용담댐 물 문화관에서도 1.6km를 더 가야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심리적인 도착지점이 바로 용담댐 물문화관이다.

그렇게 오가는 차를 조심하며 걷고 또 걸어 용담댐 물 문화관에 도착한다.

<진안고원길 용담댐 물 문화관 출입로>

<야외공원을 따라 한 바퀴 돈다.>

도로를 다 오르면 표식이 물문화관의 펜스로 나 있다. 펜스를 보니 하나가 유독 낮게 조정되어 있고 리본이 묶여져 있다. 이 곳으로 향하면 된다.

야외에 설치된 조각작품을 감상하며 매점으로 향한다.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잠시 쉰 후 댐 둘레를 따라 걷는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정식 구간은 댐 위로 걷는 ‘공도교’ 구간이다. 이 공도교를 건너기 위해서는 5시 전까지는 도착해야 한다. 공도교의 출입 허용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기 때문이다. 혹여 5시 이후에 도착을 했다면 그대로 도로를 따라 내려가 신용담교를 건너면 바로 메인캠프인 용담체련공원이다.

거리상으로는 도로를 따라 신용담교를 지나는 것이 훨씬 가까우니 개인의 체력여하에 따라, 그리고 도착시간에 따라 합리적인 선택을 하면 될 것이다.

물론 보이는 경치, 즐기는 맛은 공도교를 건너는 것이 최상이다.

<공도교에서 바라 본 용담호의 모습>

<용담호 맞은 편 용담면의 전경>

공도교에 올라 걸으니 시원한 호숫바람이 그동안의 여정을 위로하는 듯 하다. 

걷는 방향으로 왼쪽은 용담호의 수려한 자태가 펼쳐지지만 사실 진면목은 용담호 보다는 오른쪽, 즉 반대편의 용담면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멋진 산과 금강줄기, 그리고 신용담교와 공원, 마을 등이 펼쳐지는 풍경은 2일차 후반부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공도교길은 시간 상 걷지 못하는 경우라도 나중에 시간을 내서라도 꼭 한 번 다시 찾아와보길 바란다. 댐 위를 걸으며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자주 있는 기회는 아니기 때문이다.

<공도교를 지나 이어지는 산책로>

공도교를 지나면 산책로로 이어진다. 침목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고인돌 공원에 닿는다. 그대로 표식따라 직진하면 또 다른 공원인 가족테마공원과 용담체련공원을 만날 수 있다.

(사)진안고원길의 정병귀 사무국장은 공도교에서 가족테마공원까지의 이 짧은 구간이 연인들과 사랑을 속삭이며 걷기 참 좋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그 혼잡을 벗어난 호젓한 길을 따라 사랑하는 이와 거닌다면 다른 말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잘 닦인 산책로와 아름다운 꽃, 우거진 나무가 참으로 인상적인 길이다.

<산책로에서 바라본 용담댐>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내가 건넌 공도교가 보인다. 걸을 때는 몰랐건만 이렇게 보니 또 꽤나 멋있다. 저 위를 걸었다니.

모든 길이 그렇다. 가끔은 뒤를 돌아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얼마만큼 걸었는가, 얼마만큼 올랐는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풍광이 전혀 다른 모습을, 생각지 못한 모습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가족테마공원에 다다르다.>

가족테마공원에 다다른다. 멋들어진 정자는 2층으로 되어 있는데 꽤나 고풍스러운 맛이 있다. 

공원에서 쉽게 표식을 찾기 힘든데 편하게 중간으로 가로지르면 된다.

<2일차 메인캠프 용담테마공원>

2일차 메인캠프인 용담테마공원에 다다른다. 여느 서브, 메인캠프 중에서도 3일차의 서브캠프인 주천생태공원과 더불어 가장 큰 면적을 자랑한다. 

여기까지 오니 발이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그래도 결국 일찍 출발하여 33.3km를 걸어냈다는 생각에 기쁘기 그지없다. 군대에서 행군할때 흔히 말하는 ‘눈물고개’나 ‘깔딱고개’를 넘은 셈이다. 이후의 이틀은 이보다 훨씬 편안할 것이라 생각하니 지금의 고통이 반갑기까지 하다.

주저앉아 발을 주무르며 2일차의 여정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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