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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4일간 105km의 여정, KHT in 진안고원길 코스를 가다 ①

전북 진안군,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십중팔구는 ‘마이산’일 것이다. 그 중 식도락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진안 흑돼지, 홍삼을 생각할 것이다. ‘무진장’이라 하여 인근의 무주, 장수를 엮어 전북을 대표하는 오지로 꼽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 정도면 얼추 진안을 가 보지 못 한 일반인들에게서 나올 것은 다 나왔다. 

오히려 학생들이라면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할 지 모른다. ‘진안고원’. 

북한에 개마고원이 있다면 남한에는 진안고원이 있다. 평균 고도 300m~400m의 고지대에 위치한 진안군은 그래서 800m짜리 산을 올라도 표고차 때문에 실제 높이는 400m 정도이다. 섬진강과 금강, 두 강의 발원지와 상류를 가지고 있으며 마이산, 천반산, 운장산, 구봉산 등 명산과 계곡을 품고 있다. 

용담댐의 용담호반에 이르러서는 수몰의 아픔을 간직한 신비로운 풍경이 빚어내는 풍취에 젖어볼 수 있다. 

이런 진안군에 위치한 명품 트레킹 로드가 바로 ‘진안고원길’이다. 100여개가 넘는 마을과 50개의 고원고개를 지나 진안군의 속을 즐기며 걷는 길, 어찌 명품이 아니겠는가?


 

<‘KHT in 진안고원길’ 행사구간>

로드프레스는 전국의 산맥과 지맥을 엮어 고원길을 이어 한국을 잇는 트레일 ‘KHT’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을 무주, 진안, 장수군의 고원지대를 잇는 것으로 시작한다. 

좀 더 구체화 하기 위하여 7월 14일부터 24일까지 11일동안 매일 출발해 3박4일간 진안고원길을 걷는 ‘KHT in 진안고원길’행사를 연다. 로드프레스와 (사)진안고원길이 공동주최하고 앱 ‘램블러’의 운영사인 (주)비엔투스가 공식파트너사로 참여하는 이번 대회는 진안고원길 14코스부터 8코스까지 100km(실제로 약 105km)를 역순으로 걷는다.

신청경로 : https://www.frip.co.kr/products/61062

로드프레스는 실제로 3박4일간 해당구간을 미리 걸어보며 진안군이 가진 다양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물은 (30도의 날씨 기준으로) 하루 4리터 이상을 마셨다. 기회가 될 수록 가득 채우자.
*각 일자마다 1곳 씩은 슈퍼나 식당이 있다. 필요한 것은 반드시 구입하자.
*행사시 숙박은 자가텐트를 사용한 백패킹이다. 메인캠프와 서브캠프에서 숙박할 수 있다.
*진안고원길의 역 방향이므로 화살표 기준 ‘진홍색’화살표와 리본을 따라간다.

1.1일차 (진안 만남의 광장 – 큰재 – 하가막마을 – 먹재 – 동향체련공원) 30.3km
    메인캠프 : 동향체련공원 / 서브캠프 : 하가막마을

<진안 만남의 광장 앞 ‘진안고원길’ 안내도>

진안군 중심지(버스터미널)에서 약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진안 만남의 광장.

이 곳이 진안고원길 1코스의 시작점이자 14코스의 종점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만남의 광장에서 14코스에서 8코스까지 역방향으로 걷는 것이 이번 행사의 목표이다. 

진안고원길은 표식이 잘 되어 있는 편이라 크게 염려할 부분은 없다. 다만 화살표 표지판에서 노란색 화살표 방향이 순방향, 진홍색 화살표 방향이 역방향이니 무조건 리본따라, 진홍색 방향따라 걷는다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진안 만남의 광장 옆으로 보면 언덕으로 오르는 샛길이 있다. 이 샛길을 따라 나무데크를 걸으며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된다.

<언덕 정상에서 만나는 정자>

언덕을 잠시 올라 정자를 만난다. 정자와 함께 석벽에 새겨진 한자가 눈에 띈다. 진안군의 풍경 속에 어느 선비가 그냥 지나칠 수 있었으랴, 그 일필휘지 아래 놓인 정자에서 이번 답사의 무사완보를 기원한다.

사실 출발하기 이틀 전에 해파랑길 33구간을 걸어 아직 몸이 100%는 아닌 수준이었다. 게다가 구간별 자료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든 후 새벽 4시 반에 일어난지라 온 몸에 피곤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 모든게 핑계다. 그래도 그 핑계를 댈 거리가 분명히 있으니 혹여 첫날 구간을 완주하지 못하더라도 할 말은 있다는 위안을 삼았다. 물론 30.3km의 길이야 뭐 하루 동안 못 걸을 것은 아니지만.

<시장을 따라 천변을 걷는다.>

언덕을 내려와 진안천 천변을 따라 잘 나 있는 길을 걷는다. 

북적이는 진안고원시장. 진안의 농산물과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번 1일차의 코스는 도착지인 동향체련공원 인근의 동향면사무소 일대를 제외하면 슈퍼나 식당을 만나기가 어렵다. 혹여 필요한 물품이 부족하다면 이 진안고원시장이나 읍내, 혹은 다음 아파트 입구의 대형 슈퍼마켓에서 반드시 구비해야 한다.

물론 반드시 필요하다고 해서 물을 4리터씩 짊어질 필요는 없고 중간 중간 공공기관 (면사무소, 마을회관, 보건소 등)에서 물을 채울 수 있다. 또한 워낙 인심들이 좋으신지라 마을을 지나다 어르신이 나와있는 집이라면 사정을 구하면 수돗가에서 얼마든지 물을 채울 수 있다. 나는 기간 내내 500ml 작은 통 3개를 채워 넣고 다니며 중간중간 채웠다. 

다만 썬크림이나 1일차에 먹을 초코바 등의 간식, 간단한 요깃거리 등이 필요하다면 진안교육지원청 방면으로 징검다리를 건너기까지 반드시 구비하도록 하자.

<1일차 도착지 전까지 마지막 쇼핑장소>

천변을 따라 고향마을 아파트에 다다른다. 이 아파트 입구에 대형 슈퍼마켓이 있다. 간단한 초코바와 이온 음료 하나를 구매했다.

<건너 천변으로 가는 길>

아파트에서 징검다리를 통해 진안천을 건넌다. 맞은편에는 진안교육지원청이 있다. 지원청을 지나 쭈욱 올라가는 길은 큰 그늘이 없는 길이다. 다리를 지나면 잘 포장된 자전거 도로(천변산책로)가 시작된다. 별다른 갈림길이 없으므로 계속 직진하면 좋다.

사실 진안고원길은 전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표식이 잘 되어 있는 길이다. 쭈욱 걷다가 리본이 눈에 띄지 않더라도 보통은 별다는 갈림길이 없이 계속 직진인 경우로 표식을 매달지 않은 것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계속 이어지는 천변 자전거도로>

천변산책로를 사이에 두고 심어진 나무들은 뜨거운 햇빛을 양껏 받아 기지개를 키고 있다. 더욱 무성히 자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면 좋으련만 내가 너무 일찍 온 셈인가. 두, 세 걸음마다 잠깐 만나는 작은 그늘을 세며 그렇게 살랑살랑 불어오는 강 바람을 맞는다.

옆의 산세가 진안천과 어우러진 모습도 꽤나 멋져 구경할 만 하다. 맞은편으로는 한창 논일 중이다. 

<강 사이로 자리한 원두막 쉼터가 아름답다.>

기나긴 천변산책로가 끝나고 도치교로 올라오게 된다. 

다리를 건너 도로를 따라 하도치마을 입구에서 표식을 따라 시멘트 농로로 들어선다. 잘 닦인 농로를 따라 진안군의 자랑인 인삼밭도 만난다. 그렇게 하천을 따라 걸으며 보는 호젓한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강 건너의 소박한 원두막과 컨테이너를 개조한 창고에 눈이 간다. 잘만 꾸며내면 별장이 따로 없겠다. 민물 낚싯대 두세개 드리워 놓고 음악따라 고개 까딱까딱, 낚싯대의 입질에 찌도 까딱까딱… 

생각만 해도 완벽한 휴가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럴 여유가 없다.

<상도치마을에서 도치재로 향한다.>

다시 도로로 올라와 상도치 마을을 만난다. 한적한 상도치 마을을 관통하는 맛이 좋다. 

어느 마을이나 낯선 이의 방문에 개들은 화들짝 놀라 짖는다. 진안군에서도 읍내에서 떨어진 한적한 마을, 하루 종일 낯선 이가 집 앞을 지나갈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간만에 찾아온 이 기회에 눈에 띄도록 밥값을 하느라 맹렬히 짖어대는 개들. 내심 속으로는 내 출현이 반갑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당산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며 물을 마신다.

14코스는 그다지 큰 난이도가 없다. 지금 넘을 도치재도 가볍게 넘을 수 있는 길이다. 마을 위로 올라가 잘 닦인 임도를 따라 도치재를 넘는다.

<신록이 우거진 길을 따라>

작은 고개이지만 제법 땀이 나는 도치재. 표식이 잘 되어 있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트럭 하나 올라갈 정도로 잘 닦인 길인지라 걷기 좋다. 시멘트 포장이 끝나 이어지는 흙길 구간에서의 신록의 우거짐은 ‘역시 이 맛이다.’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기분이 좋다. 새 지저귐 소리가 가득한 산 속을 걷는 이 기분이야말로 우리가 하이킹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고개를 지나 중기마을 방면으로 내려오는 길, 내리막길에서 멀리까지 펼쳐진 진안의 고원을 갈음해본다. 50개의 고개와 100개의 마을이라, 3박4일간 절반을 걷는 셈이니 그래도 여정의 끝에 이르러서는 어느정도는 맛 봤다고 자신할 수 있으리라.

<중기마을 회관 앞.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도치재를 넘어 중기마을에 도착한다. 마을회관 앞에서 잠시 쉬며 목을 축인다.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얼마 내려가지 못해 오른쪽으로 꺾게 된다. 14코스에서 두 번째 있는 고개인 연지고개를 넘는 길이다. 오히려 도치재보다 평탄하게 오를 수 있는 길이라 큰 염려를 할 일은 없다. 다만 중간 중간 갈림길이 있으니 표식을 확인하며 걷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 직진이다. 

아 참, 길 중간의 벌통도 조심할 것. 멀찍이 떨어져 조심히 지나오면 된다.

<연지고개를 지나 내려온다.>

연지고개를 넘는다. 가뿐하게 정상에 도달하자 맞은편 산 위로 까마득한 오르막길이 보인다. 움찔했으나 다행히 가야할 길은 아니다.

내려오며 펼쳐지는 맞은 편 상전면의 풍경 속에도 위로 오르는 길이 멀리서 보인다. 다행히 저 길도 가야할 길이 아니다. 기분좋게 내려와 왼쪽으로 돌아 시원한 그늘 밑을 걷는다. 조금만 걷다보면 화살표가 두 시 방면을 가리킨다. 작은 다리를 지나 건너 농로로 걸어가면 상전체련공원을 만날 수 있다.

<농로를 따라 상전체련공원을 만난다. 정자가 보인다.>

체련공원에서 잠시 쉰 후 도로를 향해 올라와 오른쪽으로 주욱 걸어가면 상전면사무소에 닿는다.

여기서 잠시 회사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서 마을로 들어서야 하나 착각할 수 있으나 도로를 따라 그대로 직진하면 된다. 물론 여유가 있다면야 회사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상전면사무소의 모습>

상전면사무소가 있는 이 곳은 면의 중심지라지만 슈퍼나 문을 연 식당 등을 찾기 어렵다. 한적한 시골마을 한 가운데 있는 면사무소이다. 그래도 면사무소 내에서 시원한 정수기의 물을 마실 수 있으니 실컷 마시고 양해를 구하고 물통에도 채운다. 

이 상전면사무소까지가 14코스, 13.4km 구간이다. 이제 동향체련공원까지 16.9km 구간을 더 가야 한다. 

<13코스의 시작. 면사무소 좌측 끝에 표식이 있다.>

상전면사무소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좌측 끝으로 화살표가 보인다. 이 화살표를 따라 면사무소 뒤쪽으로 나아가면 창고 옆으로 길로 올라가는 작은 통로가 있다. 이 통로를 따라 상전마을로 올라간다.

마을길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언덕길로 이어진다. 그 초입에서 잠시 땀을 훔치려니 트럭이 하나 다가와 멈추고 런닝셔츠 차림의 어르신이 밭일을 하다 오신 모양새로 내리신다. 더운 날씨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날 보고 무엇하느냐 묻는다.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진안고원길이라고 여기 아주 좋은 길이 있거든요. 저렇게 리본이나 팻말을 따라 갑니다.”

늘상 자신의 집과 농경지를 오가면서도 저 리본이 무엇인지 몰랐던 듯 어르신은 한참을 물어보신다. 그리고 한 마디.

“더운데 식사는 혔소? 나는 시방 밥을 먹을라는디.”

날도 더운데 배는 든든하냐 묻는다. 같이 집에서 밥이라도 하자는 말씀이다. 너무나 고맙지만 애석하게도 바로 밑의 상전면사무소에서 물을 채우고 간단하게 활동식을 먹은 참이다. 무리해서 못 먹을거야 없지만 앞으로 갈 길과 오를 길이 구만리인데 자칫 탈이 날까 염려스러워 마음만 받았다.

어르신에게 건강하시라 인사를 드리고 언덕길을 오른다. 계속 될 것 같은 언덕길은 잠시의 숲길로 빠져든다.

<반가운 숲길. 그림자의 소중함이란>

초여름인가 싶은 날씨에 언덕을 오르려니 만만치 않다. 그 와중에 만나는 잠깐의 숲길이 주는 시원함이란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초여름을 확인하게 해 주는 것은 더운 날씨 뿐만 아니라 그 속의 그늘과 바람의 시원함도 당당히 포함되어 있음을 느낀다. 아 참, 하나 더! 날파리도 추가한다. 본격적인 여름 하이킹을 알리는 이 날파리가 괜시리 반갑다.

<구불구불하게 뻗은 길들>

숲길을 빠져나오면 문화, 지사마을 등을 들르게 된다. 각 마을을 향하며 만나는 풍경도 풍경이지만 그렇게 평화로운 풍경 속에 나 있는 구불구불한 길이 참으로 아름답다. 

산 밑으로 자리한 마을,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와 인근 축사에서의 소 울음 소리가 길에 녹아든다. 걷는 이는 그 속을 걸으며 전원 속에 녹아든다.

<그림같은 풍경 속을 걷다.>

꽃동산이라는, 어린시절 동요난 동화에서나 보던 그런 단어가 어울리는 풍경을 지난다. 드넓은 대지를 가득 메운 꽃밭을 지나며 그 알싸한 향기에 취한다. 벌의 웅웅댐은 마치 잠시 누워 한 잠 자라는 듯한 유혹이다. 저 안에 드러누워도 필시 가만히 건드리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쉬다간 언제 오늘의 종착지까지 갈 지 모를 일이다.

<지사마을의 당산나무 뒤 돌탑>

지사마을을 지나 후가막마을로 향한다. 가막리는 꽤 큰 곳으로 이제 13코스의 가장 힘든 구간인 큰재와 먹재를 넘어야 할 시간이다.

후가막마을을 지나며 마을회관에서 물을 채우려 했으나 잠겨있다. 농번기라 그런지 여느 마을을 보아도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머무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큰재를 지나기 전에 물을 채워야 하는데 어쩌지…’하고 고민하는 순간 마을회관 맞은 편의 집에서 어르신이 나오신다. 다가가 수돗가에서 물을 좀 채워도 되냐 물으시니 잠시 있으라 하신 후 마당에 위치한 커다란 농산물 냉장 저장고를 여신다. 그 안에 얼음처럼 시원하게 500ml자리 생수가 박스로 싸여있다. 몇개든 가져가라는 고마운 말씀에 염치 없이 두 개를 든다.

감사하다는 인사에 미소로 화답하신 그 마음이 고맙다.

<큰재로 향한다.>

친환경 농장을 지나서 마을을 벗어나 산으로 오른다.

“13코스가 아마 진안고원길에서 가장 힘든 구간 몇 곳 중 하나일 겁니다. 재를 두 개 넘는데 그 중 하나가 이름부터 ‘큰재’입니다.”

진안고원길 정병귀 사무국장의 말이 떠올라 긴장이 된다. 그래도 다행히 물은 충분하다. 여기까지 왔으면 얼추 오늘의 절반은 온 셈인데 아무리 ‘큰재’인들 우보만리(牛步萬里)로 오르면 못 오르겠는가.

<본격적으로 큰재에 들어선다.>

큰재의 도입부, 즉 마을을 지나 주욱 길을 오르다보면 오른쪽으로 빠지게 되어있다. 무턱대고 앞만 보다가 입구를 놓치고 주택 공사현장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다.

긴장하면 보이는 것도 놓치는 법, 출구를 다시 찾고 앞의 그늘에 앉아 잠시 쉰다. 시원한 물을 마시며 ‘이것만 넘으면 오늘 여정의 3분의 2는 넘긴 셈 아닌가’ 되뇌인다. 어차피 계속 기다려도 흐르는 것은 시간 뿐, 빨리 완주할 수록 그만큼 쉬는 시간도 길어진다. 

엉덩이를 털고 숲길로 들어선다.

<큰재의 오르막>

조금씩 가파르게 올라가는 경사, 숨을 몰아쉬며 오르다 몇 번 걸터앉아 땀을 닦고 호흡을 추스린다. 

이 ‘큰재’만 따로 떼어놓고 유수의 산, 고개들에 비해 아주 높고 크다고 말할 순 없지만 역시나 더위 속에서 20여 km를 걸은 후 만나는 고개는 만만치 않다. 어느새 시원한 물 두 통이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바닥난다. 꽤나 난코스다.

땀이 뚝뚝 떨어지고 코가 뻥 뚫려 콧물이 줄줄 흐른다. 입에선 험한 말이 줄줄 나오는 순간 정상이 보인다.

<큰재의 정상>

큰재의 정상이다. 역방향이니 남은거리 4.3km라는 것은 13코스의 역방향 시작점인 상전면사무소에서 이제 겨우 4.3km를 걸었다는 소리다. 14코스의 13.4km와 더해보아도 17.7km다. 아직 13km가 더 남은 셈이다.

사실 길을 걸으며 이렇게까지 남은 거리를 측정하는 것은 힘든 걸음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의 심리란게 지점이 보이면 한없이 걸어도 오히려 멀게만 느껴지는 법이니까. 

그래도 ‘이제야 절반 좀 넘었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드디어 절반을 지나 종점을 향해 치닫는다.’는 생각을 하기로 한다.

이렇게 힘든 오르막이 있으면 또 내리막도 그만큼이나 이어지는 법, 그 동안의 보상이라 여기며 길을 내려온다.

<금강변으로 나가는 길. 공사가 한창이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금강변을 만나게 된다. 오른쪽으로 돌아 금강변을 따라 걸어가다 공사현장을 지나 포장된 길을 따라 내려오면 하가막마을을 만나게 된다. 

하가막마을 앞의 가막교를 건너기 전, 가막골가든슈퍼(답사 당일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성수기에 다시 열 것이라 생각된다.)을 지나 100m만 걸으면 1일차의 서브코스인 하가막마을 야영장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앞에 마을회관 및 화장실 등이 있어 쉬기 참 좋다.

힘을 다 소진한 이라면 무리하지 말고 여기서 첫 날을 야영한 후 탄력있게 일정을 조절해가며 걸으면 될 것이다. 

<1일차 서브캠프 하가막마을 야영장>

하지만 내 경우엔 큰재까지 넘은 이상 확실히 첫날의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첫날과 이틀을 고생하면 확연히 쉬워지는 3일, 4일의 여정에서 오는 여유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도 강렬했다. 

하가막마을 야영장을 사진으로 담고 문을 닫은 하가막가든슈퍼 앞의 평상에 누워 20여 분간 쉬었다.

더 쉬면 다시 못 일어나겠다 싶어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수돗가에서 빈 병에 물을 가득 채운 후 가막교를 건넌다.

<먹재를 향해. 코스는 아주 잠시 장수군을 지난다.>

멋들어진 명륜학당의 표지판을 지나 먹재를 향한다. 

가막교를 건너서는 진안고원길은 먹재 입구까지 잠시동안 장수군 지역을 걷게 된다. 그 길이가 길지 않더라도 다리하나 건너고 굽이 하나 돌 동안 두 군을 지나고 만난다는 것이 재미있다. 

이렇게나 오고감이 자유로울 수 있고 유럽의 경우는 정말로 국가간 경계가 큰 의미가 없을 정도로 기차와 버스, 도보로 오고가는데 우리는 언제나 북한을 지나 중국, 러시아로 오갈 수 있을까.

<굿당으로 쓰이는 당산나무>

마을길을 걸으니 한 눈에도 비범하기 그지없는 커다란 당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터주신이 있고 마을을 지키는 산신, 할멈신이 있다면 반드시 이 나무에 깃들어 있으리라.

그래서인가 이 당산나무는 굿당으로 쓰이고 있다. 소원성취를 위해 켜 놓은 많은 초들과 색색이 천을 붙들어 맨 그 자태, 이제 2020년이 목전이건만 이렇게 생생히 남아있는 이 땅의 샤머니즘의 형태를 길을 걸으며 볼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먹재로 향하는 길>

마을을 지나 먹재로 향한다. 

‘큰재도 넘었는데 먹재 쯤이야…’라는 생각 한 편으로는 벌써 다리가 후들거리고 풀려가는 상태로 ‘잘 넘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그래도 이미 하가막마을을 지나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겠는가. 먹재만 넘어 마을로 내려오면 5~6km만 평지를 걸으면 된다.

<먹재 입구. 정말 먹처럼 검은 그 속으로 들어간다.>

오르막을 오르다보니 드디어 길 왼쪽으로 먹재로 향하는 등산로가 나타난다.

한 눈에 봐도 길이 만만치 않을 듯 싶다. 입구에 앉아 다시 한 번 쉬면서 물도 마시고 숨을 추스린다. 그리고 훌훌 털고 일어나 그 먹재 속으로 몸을 던진다.

처음엔 큰재 정도의 경사인지라 숨을 헉헉 대며 오르다 쉬기를 수 차례, 땀이 비오듯 흐르며 거친 욕설을 추진력 삼아 어떻게든 올라갔다. 그러나 먹재의 하이라이트는 정상 전의 약 2~30여 미터 구간. 갑자기 경사가 확 올라 정말로 오르는 이의 인내심을 테스트한다. 

벌써 한 여름이나 다름없는 날씨 속에 20km가 넘게 걷고, 14코스의 작은 재 두 개에 13코스의 큰재 하나를 넘어 기력이 소진된 나에게 마지막 최종보스 격으로 등장한 먹재는 정말 기억에 남을만한 고개가 아닐까 싶다.

나중엔 차라리 위를 보지 말자, 아내만 보고 한 걸음만 걷고 또 걷자고 이를 다물고 올랐다. 그러다 결국 다시 고개를 드니 5~6m 앞에 정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먹재에 올라. 숨을 몰아쉬느라 사진이 흔들렸다.>

정상에 오른 후 곧바로 벤치에 드러누웠다. 정말 마지막 보스는 강했다. 아마 평상시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텐데 마지막 진기를 소진시키는 그 정상까지의 막바지 오르막에 제대로 당한 셈이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정상의 기쁨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제 내려가고 평지만 걸으면 된다… 평지만 걸으면 된다…” 혼자 되뇌이며 다행, 또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른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던 그 먹재.

<섬계마을 방면. 내려가는 길은 하나이다.>

먹재에서 내리막길 구간은 길이 매우 좁을 뿐더러 비탈이 심해 위험하다. 

게다가 낙엽이 가득 깔려 있어 미끄러질 위험도 있으니 충분히 유의하는 것이 좋다. 아무래도 약간 늦게 (오전 10시 넘어서) 출발한다면 이 먹재를 오르고 내려올 때 꽤 어둑해질 수 있는데 그럴 경우 발 밑을 더더욱이 조심해야 한다. 반드시 등산용 폴과 만약을 모를 일이니 헤드랜턴 작은 것이라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의외로 해 지는 쪽의 반대라 해가 빨리 떨어지고 해가 비치지 않는 곳은 금방 어두워진다. 

내리막길을 돌고 돌아 내려가는데 이 길이 상당히 긴 편이다. 다만 별다른 갈림길이 없어 표식만 확인하며 내려오면 된다. 

<하향마을을 벗어나>

먹재를 내려와 만나는 마을은 하향마을. 한 농가의 어르신에게 양해를 구하고 물을 마저 채운다.

첫날부터 만만치 않았다. 몸의 진기가 거진 다 소모되어 텅 빈 느낌, 이제 동향체련공원까지 편하게 평지를 걸으면 된다. 그래도 그렇지, 한 걸음 한 걸음이 상당히 고통스럽다. 발바닥에 열상을 입은 느낌이랄까.

<도로를 건너 자산정미소를 우측에 두고 돈다.>

<동향면이 노을로 물든다.>   

농로를 따라 아름드리 나무를 지나면 곧 도로에 닿는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굴다리를 건너 정미소를 끼고 동향면에 이른다.

노을이 뉘엿뉘엿 지는 때, 동향면 중심지에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 뜨겁던 더위도 어느새 가라앉았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마지막 손짓발짓을 해가며 조금씩 나아간다. 거 봐라, 우보만리라니까.

<마지막에 만나는 징검다리 가는 길>

농협하나로마트(규모가 작으니 크게 상상하면 안 보인다.) 사거리에서 직진, 나무데크를 올라 징검다리를 건넌다. 

1일차 메인캠프에서 숙영할 이라면 동향체련공원에서 다시 나오기 힘들 수 있으니 미리 중심가에서 필요한 것을 사서 숙소로 들어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물론 체력에 여유가 있다면 기록을 위해서 숙소에 도착, 짐을 부리고 다시 나와도 되겠지만.

원래의 13코스의 도착지는 사거리에서 리본을 따라 왼쪽으로 나아가 만나는 동향면사무소이지만 이번 3박4일 KHT in 진안고원길은 캠핑을 겸하는지라 개천을 건너 숙영지로 가야한다. 혹여 밤 늦게 도착하여 어둡거니 비가 내려 수위가 높아 징검다리가 잠긴다면 위험할 수 있으니 면사무소를 지나 동향면 마을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할 수도 있겠다.

개천을 건너 왼쪽으로 1km 남짓 쭈욱 나아가면 드디어 동향체련공원을 만난다.

<1일차의 메인캠프, 동향체련공원>

동향체련공원은 화장실 등이 잘 갖추어져 있고 잔디도 좋아 메인캠프로 삼기 부족함이 없다. 

인근의 동향면사무소를 위시한 중심가를 이용하여 식사 및 간단한 간식, 음료 등을 살 수도 있어 다음날의 여정을 준비하는데에도 부족함이 없다. 특히 마을과 떨어져 있어 고즈넉하게 방해받지 않고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것도 큰 장점.

잔디에 주저앉아 발을 주무른다. 들리지는 않지만 발이 비명을 지르는 느낌이다. 정말 날카롭고 긴 비명을. 

주변 리본표식 작업을 하며 기다리고 있던 (사)진안고원길의 정병국 사무국장이 울상을 짓는 나를 보며 웃으며 걸어온다. 

‘내일은 33.3km인데 이 다리로 어떻게 해야 하나…’

 

*KHT in 진안고원길 신청 : https://www.frip.co.kr/products/61062
 
*1일차 경로 확인/다운로드 :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408478 (램블러에서 KHT 검색)
 
 

2 thoughts on “3박4일간 105km의 여정, KHT in 진안고원길 코스를 가다 ①”

  1. ㄱ says:

    도전 합니다 글도 재밌어 읽고 또 읽습니다

    1. 장 재원 says:

      안녕하세요! 멋진 도전을 응원합니다! 그 길 위에서 뵙겠습니다. ^^

댓글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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