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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한겨울인 그 길을 온전히 가지다 – 감악산둘레길 1코스 손마중길

걷기좋은 계절이라는 가을이 끝나가고 이젠 겨울이다. 

그래도 본격적인 겨울의 설경은 아직 눈 앞에 펼쳐지지 않아 낮아진 온도만으로 겨울을 체감하고 있을 뿐이다. 
그 가운데 감악산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먼저 혹독한 겨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음은 행운일까 혹은 고난일까?

감악산둘레길을 따라 만난 그 설경은 분명히 행운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감악산은 화악산, 송악산, 운악산, 관악산과 더불어 경기 오악(五岳)중 하나로 옛부터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 영산이다. 높이는 675m에 이르고 그 전체적인 크기가 매우 넓어 파주시와 양주시, 연천군에 면할 정도로 큰 산이다.

감악산둘레길은 이런 감악산의 둘레를 따라 한 바퀴 도는 회귀형 코스로 총 길이는 21km에 달한다. 각각 손마중길, 천둥바윗길, 하늘동네길, 임꺽정길, 청산계곡길 등 5개 코스로 이어져 있다.

이번에 걸어본 길은 제1코스 손마중길로 범륜사에서 출발, 운계전망대와 선고개를 지나 산촌마을에 이르는 편도 3.9km, 2시간에 이르는 코스이다. 

다만 전체회귀형 길의 개별 코스이므로 돌아오는 시간을 감안해야 한다. 구간의 고도는 해발 330m에서 150m에 이른다. 전체적으로 초반에 높이 올라 서서히 내려가는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돌아올 때에는 그만큼 오르막길이 길게 시작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른 아침 차를 몰아 도착한 감악산 출렁다리 주차장.

이 주차장에서 감악산의 상징이자 연 100만명이 방문한다는 출렁다리를 통해 범륜사로 갈 수 있다. 
실질적인 감악산둘레길의 시작은 범륜사로부터 시작하니 이왕이면 이렇게 감악산의 명물을 통해 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울보다 3, 4도 가량 낮은 감악산의 기온과 살을 에는듯한 칼바람이 인상적이다. 밤새 내린 서리가 하얗게 얼어붙은 알림판을 지나 며칠 전 내렸다는 흰 눈이 그대로 녹지 않은 채 남아있는 계단을 오른다.

 
먼저 다녀간 누군가의 작품이다.

최근 새겨진 듯 한 발자욱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오늘 새벽에 만들어진 눈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감악산의 낮은 온도가 눈사람의 삶을 길게 이어주리라.

앙증맞게 두 팔을 벌려 걷는 이를 반기는 모습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홀로 걷는 이가 어디서 이런 환대를 또 받아보겠는가.

 
계단을 올라 전망대로 나아가니 감악산 출렁다리의 웅장한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다리 위로 하얗게 쌓인 눈이 운치를 더한다.

이 다리는 도로 때문에 끊긴 설마리 고개를 이어주는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한국전쟁 당시 이 곳에서 격전을 치루고 혁혁한 전공을 올린 영국 글로스터셔 대대와 제 170 독립박격포 c소대를 기념하기 위한 다리이다. 정식 명칭은 ‘글로스터셔 영웅의 다리’이다.

 
이 감악산 출렁다리는 총 길이 150m에 폭이 1.5m로 우리나라 산악의 현수교중 최고의 길이를 가진 명물이다. 

이 다리가 주는 긴장감과 아름다움 때문에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 다리를 찾는다고 하니 지역경제 발전에 톡톡한 효자 노릇을 하는 셈이다.

해가 오르면서 차갑던 대지가 녹아 안개를 뿜어댄다. 그 사이로 보이는 맞은편 능선은 기나긴 현수교와 더불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다른 세상, 현세를 벗어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될 분기점인 셈이다. 

 
다리를 중간 정도 걷다가 뒤를 돌아본다.

뚜렷한 능선과 맑은 하늘, 선명한 사계는 확실히 현세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 다리를 통해 신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인가, 그렇게 낭만어린 생각을 잠시 해본다. 

 
운계폭포를 만난다.

새로운 감악산의 비경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운계폭포는 지난 7월 통수식을 한 인공폭포이다. 범륜사 밑, 깎아지른듯 한 절벽을 자랑하는 풍경에 화룡점정을 찍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인공적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본다면 정말로 한 폭의 그림을 자아낼 듯 하다.

강추위 속에 사람의 손길로도 막지 못한 그 얼어붙은 모양새가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점점 물살이 얼음을 타고 옆으로 비껴떨어지면서 얼음도 몸집을 키울 것이다. 그렇게 또 다른 빙벽이 완성되어 겨울 절경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폭포를 지나 돌계단을 거쳐 범륜사에 닿는다.

 
하얗게 내려앉은 설산의 손짓 속에 시작되는 둘레길은 이 범륜사로부터 시작된다. 범륜사를 둘러보는 것은 돌아오는 길에 하기로 하고 해탈교를 건너 왼쪽으로 향한다.

 

이 감악산둘레길은 2016년 출렁다리 개통과 더불어 파주시에 속한 두 개의 코스를 먼저 임시 개통하였고 이후 순차적으로 개통하여 온전히 완성된 지 얼마 안되는 길이다. 그렇게 ‘신상’ 길을 걷는 것은 또 그만큼의 매력이 있으리라.

물론 새로운 길이라 하여도 그 길이야 원래부터 있던 길이고 그 안에 녹아있는 수많은 삶의 흐름과 땀, 눈물의 이야기는 아직 새파란 내가 감히 가늠하기 어려울 깊이이다.

 
나무데크 구간을 지나 본격적으로 임도로 들어선다. 
폭이 좁아짐에 따라 발걸음이 긴장된다. 옆의 능선의 비탈짐은 자칫 미끄러지면 답이 없을 정도로 험하다. 

이 손마중길은 감악산 북쪽에 위치한 객현리의 사람들이 정성현으로부터 들어오는 손님을 마중하거나 전송하기 위해 오갔던 길이라 한다. 그래서 손마중길이다. 

도로가 제대로 나 있지 않던 그 때, 그 험한 산골을 따라 멀리에서 찾아 온 손님을 안내하는 것도 참으로 미안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미안함은 송영의 길에서 더욱 커졌으리라. 보내야 하는 아쉬움과 있는 동안 더 잘해주지 못한 송구함이 길을 밟는 발자욱마다 도장 찍듯이 새겨졌을 길이다. 

문득 장에 나가 물건을 팔기 위해 험한 산길을 걸어야 했던 강화도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살린 강화나들길 5코스 고비고개길이 생각난다. 길에 새겨진 그런 이야기야 어디 한 둘이겠냐마는, 유독 그렇게 삶의 진득함이 묻어난 길은 걸을때마다 먹먹함이 밀려온다.

 

운계전망대를 지나 산길은 이어진다.

선고개 까지의 산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상당히 올라가는 구간이다. 다만 이 감악산의 형세 자체가 ‘岳’이 들어가는 산 중에서는 난이도가 높지 않은 편이기에, 그리고 정상이 아닌 둘레를 걷는 둘레길이기에 큰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다.

물론 길의 험중함과는 별개로 겨울의 트래킹은 언제나 조심해야 할 부분이 발 밑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선고개 구간은 손마중길에서 가장 난코스에 속한다.

천천히 내려가는 길인데 발 밑의 돌들에 낙엽과 눈이 쌓여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산길을 내려가며 멀리에서 들려오는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새가 날아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홀로 이 길에 있다는 그 완벽에 가까운 고독은 바꾸어 생각하면  또 다른 길 위의 정복감이다. 다만 그 정복감은 이 산, 이 자연을 발 밑에 두는 것이 아닌, 이 길이 주는 선물을 온전히 홀로 차지하고 있다는 소박한 감동이다. 

그 소박한 감동은 단단하다. 

그래서 오래간다.

 

거친 돌을 조심해 지나온 선고개, 이윽고 길은 다시 평탄해진다.

어느새 높이 오른 햇살, 대지는 그런 햇살의 기운을 받아 눈을 녹여 그 수분을 흡수한다.
그렇게 더부사는 산길, 거기에 사람의 발걸음 하나가 더해지니 그 길이 생명력을 얻는다. 

결국 길과 사람은 하나이다. 

숨겨지고 잊혀진 옛길을 복원하는 사업, 그 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성, 지역의 관광자원 연계성 등이 아닌, 그 길을 걷는이가 느끼는 만족도이다. 

비록 둘레길이 온전히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이 감악산둘레길의 첫 코스인 손마중길이 주는 만족감은 대단하다. 

 

쉼터를 떠나 산촌마을 방향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다.

천천히 굽이져 내려가는 이 길은 선고개에서의 험난한 발 밑에 긴장한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길이다. 드문드문 산세 사이로 보이는 적성면의 풍경은 참으로 멀게만 느껴진다.

선고개 초입부터 눈 위에 발자욱이 없었다.

아무도 밟지않은 전인미답의 그 눈길을 밟아가는 기쁨이 더해져 온다.

 

잠깐 나타나는 너덜지대를 지나면 길 우측으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산촌마을 방면으로 산을 다시 오를 차례이다.

계단은 그리 오래되지 않고 오르막 길도 거의 없이 다시 내리막으로 이어지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한참을 그렇게 산길을 따라 걷는다. 

걸으면 걸을수록 참으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산의 전체를 둘러 걷는다는 것은 그리 자주 만날 수 있는 코스는 아니다. 그 중에서도 이렇게 난이도도 큰 어려움이 없으면서 산이 가지는 온전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게다가 날도 잘 정한 셈이다. 눈이 쌓인 길이라 더욱 운치있다.

풀이 우거진 한 여름이 아니라면 봄, 가을, 겨울 어느때라도 참으로 맛깔나게 걸을 수 있겠다 싶다. 

 

발걸음을 옮겨 이어진 임도를 따라 계속 걷는다.

갑자기 한채, 두채 나타나는 건물, 산촌마을인가 싶은 순간 걸어온 길의 종착점, 그리고 새로운 길의 시발점을 알리는 표지판을 만난다.

순환형 길이 아니기에 여기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쉽다. 2코스 천둥바윗길까지 온전히 걸을 수 있지만 그렇게 걷는다면 돌아올 교통이 마땅치 않아 콜택시를 불러야 할 판이다.

천둥바윗길까지 걸은 후 그대로 온 길을 되돌아간다면 산 속에서 해가 질 판이다. 

전체 순환형 코스의 1개 구간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아쉽다. 

한창 달아오른 몸의 열기는 돌아가는 길에서 풀어야 할 참이다. 

 
그 길의 끝에 서서 눈과 서리가 만들어 낸 다양한 눈꽃을 담아본다.

걸어왔던 아름다운 그 길 만큼이나 빛나는 그 모습, 숨을 돌리고서야 보이는 길 옆의 보석의 반짝임. 

그 아름다움에 취해 우두커니 정자에 앉아 한참을 쉰다.

지금까지 천천히 내려온 기나긴 길을 되돌아간다는 건 고행이 아니다.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되돌아가는 길, 숨이 턱까지 찬 상태에서 선고개를 넘는다.
 
그제서야 이 길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누군가는 출발지로, 또한 누군가는 도착지로 나아간다.
 
그렇게 드문드문 오가는 발걸음이 험난한 겨울 앞에 놓인 이 길에 온정을 더할 것이다. 
 
복된 그 길, 걸어온 그 발자욱을 새로이 덮으며 이 아름다운 길에 땀과 이야기를 담아본다.

 
다시 현세로 돌아가는 그 갈림길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결국은 건너야만 할 그 다리가 유독 아득해보인다. 
 
아쉬움에 한참을 미적이고 서성거린다.
 
그 옛날, 힘들게 예까지 온 손님을 떠나보내야 하는 손마중길 위의 그 누구도, 그리고 그 모습과 마음을 알면서도 떠나야 하는 손님도 그랬으리라. 다시 되뇌인다.
 
그래서 손마중길이구나…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