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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 역사로드② – 달마고도와 땅끝천년숲옛길을 따라 송호리까지 

<신비로운 운무 속, 미황사에 서다>

즐겁게, 그러나 나름 나태한 몸을 꾸짖으며 걸었던 어제의 트레킹, 두륜산 도립공원의 아름다움이 못내 가시지 않은 상태로 눈을 떴다.

​부지런히 정비를 하고 인근 백반집에서 조식을 마친 후 선 곳은 달마산 자락에 위치한 미황사다. 바로 작년 이맘때에 돌았던 그 달마고도와 땅끝천년숲옛길을 걷기위해 다시 이 곳에 온 것이다.

​물론 이번에 걸을여정은 꽤나 변경된 코스이긴 하다. 미황사에서 출발, 달마고도 전체의 절반 가량을 걸은 뒤 달마산 뒤편 노지랑골과 편백나무숲을 지나 도솔암으로 오른다. 도솔암을 너어 반대편 달마고도 코스로 내려온 후 몰고리재에서 땅끝천년숲옛길(땅끝기맥)으로 빠지게 되는 코스이다.

땅끝천년숲옛길 구간도 작년처럼 그대로 땅끝전망대를 지나 갈두항까지 가지않고 중간에 만나는 명당인 십자혈(이 너른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참으로 많은 이들이 묘를 세웠다.)에서 임도를 통해 송호리 방면으로 내려와 송호해수욕장 옆, 땅끝 황토나라테마촌까지 나아가게 된다.

<비가 내리는 아침, 달마고도를 걷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달마고도의 들머리>

고요한 아침이다. 평일의 아침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통에 경내는 조용하기만 하다.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위에서 내려오는 운무가 이 달마산 기슭을 감싸안았다. 미황사는 그렇게 신비하게 1년여만에 다시 찾은 우리를 반겨주었다.

​들머리에서 기념 촬영을 마친 후 달마고도로 빠져든다.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걷는 달마고도이다. 앞의 두 번은 미황사까지 원점회귀의 전체코스 완주를 두 번한지라 나름 익숙하다고 자신할 만 하다. 그래서 발걸음에 긴장이 풀린다.

​그러나 해남군의 따뜻한 기온과 이슬비가 내려 습하디 습한 환경이 얼마 못 가 온 몸을 땀투성이로 만든다. 역시나 중생의 젠 체하는 걸음을 자비없이 꾸짖는 달마산이로다.

<안개속의 너덜겅>

<앞이 보이지 않기에 더욱 신비롭다.>

<거친 산세와 압도적인 너덜겅 사이의 길은 유순하디 유순하다.>

달마고도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꼽는다면 아무래도 너덜겅일 것이다. 많은 산을 다녀보고 많은 둘레길을 다녀본 이들에게 너덜지대야 흔하디 흔한 만남이겠지만 이토록 큰 바위의 파도를 곳곳마다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바위는 그 동적인 흐름의 모습대로 한 없이 정적이다.

​누구라도 이 달마산의 능선을 바라보면 단박에 알 것이다. 산세가 험하다. 오르기에 만만찮고 능선을 따라 암릉을 넘기가 까다로운 산이다. 게다가 압도적인 너덜겅은 그 자체로 발 밑의 위험이기도 하다. 이렇게나 산세는 으르렁 대건만 그 사이로 사람의 힘으로 쪼개고 다듬고 채워넣어 만든 길은 너무나 유순하디 유순하다.

​묵묵히 그 길을 따라 걷는다. 그게 달마고도의 멋이요 맛이다.

<천제단 암자터. 정비가 잘 되어있다.>

<바위를 깎고 쪼개만든 길은 제법 걷는 맛이 있다.>

큰바람재를 지난다. 달마고도 1코스가 끝난 셈이지만 사실 이 달마고도는 코스의 구분이 없다. 코스의 끝자락에서 빠져나가거나 되돌아가는 길이 없는 탓에 발을 들이면 일단 미황사까지 한 바퀴 둘레를 다 걸어야 하는 셈이다.

엄밀히 따지면야 몰고리재 방면이나 도솔암 방면에서의 하산로가 없지는 않다만 마을까지 거리도 길고 교통편도 머뜩찮은지라 그저 도를 닦듯이 한 바퀴 완주를 하는것이 마음이 편하다.

때문에 이 1코스가 끝난다해도 큰 감흥이 없이 바로 2코스로 이어진다.

2코스에서 만난 천제단 암자터를 보니 ‘요 1년 사이, 달마고도도 참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달마고도의 들머리를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한 대리석 기둥같은 방향 안내판(사실 이건 꽤 실망스러웠다. 기존의 나무 안내판이 더 정감 있을 뿐더러, 딱히 기존의 안내판을 철거하지도 않은 채 그저 보여주기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에서도 변화를 느끼긴 했지만 작년에는 꽤나 정비가 필요했던 이 천제간 암자터가 말끔히 정리되어 걷는이를 위한 참 좋은 휴식 쉼터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풀과 나무가 뒤엉켜 있고 쓰레기가 나뒹굴던 이 곳이 이렇게나 말끔히 정비되고 새로이 제단과 암자터의 모습을 되찾고 있어 이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로써 매우 반가웠다.

뿐만 아니다. 쓰레기 등이 가라앉아있던 우물도 깨끗하게 환경정비를 마치고 오물들 퍼내 맑디맑은 물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정비에 많은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성큼 다가온 봄처럼,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어온다.>

원체 익숙한 길이기에 말이 없다. 나눌 풍경또한 궂은 날씨 덕에 손에 꼽기도 어렵다. 묵묵히 걷는 구도자의 모습 그대로 그 유순한 길은 휘어지고 오르내리고 돌무더기 속으로 안내한다.

노지랑골을 지날 때 즈음하여 만나는 작은 약수터. 물론 이런 동절기, 갈수기에는 음용이 불가하다. 가만히보니 도롱뇽알이 한가득이다. 답사일자는 2월 말, 아직은 스산한 겨울의 끝무렵이건만 예년과는 다른 온화한 날씨와 해남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주는 따듯함이 이렇게나 자연의 시계를 앞당겼다.

<작은 약수터에서 만난 막 부화한 도롱뇽 유생>

“도롱뇽 알이 부화했습니다. 벌써 유생이 나왔습니다.”

“정말 그렇네요! 여기 정말 따듯하구나…”

​지리정보팀장이 손을 물구덩이에 넣어 조심스레 뜬다. 이제 막 부화해 유생이 된 도롱뇽 새끼 한 마리가 태어난 웅덩이를 벗어나 처음으로 맞이한 바깥 풍경에 잔뜩 긴장했다. 다소 이른 봄에 용기내어 나온 생명이다. 조심스레 놓아준다.

<도솔암 오르는 길>

<꽤 가파른 오르막이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 나아가면 어느새 도솔암 오르막 분기점이 나온다. 밑으로는 구불구불 포장된 임도가 이어져 있다. 딱 그 밑에서 끝나니 도솔암 주차장 외에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게다. 다만 아는 이만 알 정도의 길이다.

이 분기점에서 잠시 쉰다. 여기서부터는 달마고도를 따라 계속 걷지않고 오르막길을 따라 도솔암을 만나고 반대편으로 내려가야 한다.

작년의 한국고갯길 투어 (KHT TOUR) in 해남 행사에서도 많은 참가자들이 이 갈림길에서 잠시 쉰 후 코스를 벗어나 도솔암을 보고 내려왔다. 다들 그 오르막의 경사에 혀를 내둘렀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길 자체는 잘 나있는 편이기에 숨 한 번 고르면 금방 도솔암을 만날 수 있는, 달마고도 전체 구간 내에서 도솔암까지의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도솔암을 만나다.>

<도솔암에서 바라본 달마산의 바위 봉우리들>

약 10~15분 정도 올라 도솔암을 만난다. 사실 작년 달마산의 능선을 종주했을때 처음 만나고 이 번이 두 번째 만남인데 그 때나 지금이나 흐린 하늘 속의 풍경만 보여줘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래도 그 자체로도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가만히 그 돌담에 서서 기암괴석을 자랑하는 달마산의 능선에 취한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도솔암은 정유재란 때 왜군들에 의해 불에 탄 이후 수백년 세월동안 잊혀져 왔다. 이후 2002년, 평창 오대산 월정사의 법조스님의 꿈 속에 이 풍경이 펼쳐지게 된다. 법조스님은 한달음에 해남으로 내려와 30여일만에 불도들의 도움으로 이 험한 절벽에 단청까지 올려 쌓았으니 21세기의 새로운 전설이 탄생한 셈이다.

조용히 계단을 올라와 담장에 기대었건만 낯선 이의 방문을 느꼈는지 암자 안에 계신 분이 기척을 낸다. 기도와 수행을 하는데에 겉보기에는 이만큼 속세와 단절된 곳도 찾기 힘들테지만, 반대로 이 산을 오르는 이는 누구나 이 곳을 땀흘려서라도 찾기 때문에 쉬이 수행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조용히 내려오는 등 뒤로 밭은 기침 소리가 이어진다. 폐를 끼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떠난다.

<반대쪽의 내리막은 꽤나 각오를 해야하는 길이다.>

<가파른 길에 떨어진 동백 한 송이는 파계를 생각케 할 정도로 관능어린 색채를 띄고 있다.>

도솔암을 내려와 산 반대편의 달마고도로 내려가는 길은 굉장히 가파르다. 마치 어제 두륜봉에서 대흥사로 내려가는 길 만큼이나 발 끝에 긴장을 더하게 되는 구간으로, 지형의 특성 상 길 자체가 젖어있기에 미끄러질 위험이 큰 구간이다.

물론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조심히 잡고 내려갈 수 있지만 발 밑의 돌이 구르는 경우가 많아 반드시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조심조심 내려오다 잠시 숨을 돌리니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발 밑에만 집중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하였으나 이 내리막은 동백꽃이 천지이다. 겨우내 바랜 갈잎의 위, 새파랗게 올라온 잎과 눈이 아찔할 정도로 빨갛게 달아오른 동백꽃의 조화는 지금까지 걸어오며 쌓아온 무채색의 걸음을 단 번에 깨 버릴 정도로 관능적이다. 그 대비에 취한다.

<몰고리재로 향한다.>

<땅끝천년숲옛길로 이어지는 몰고리재 분기점>

조심히 내려온 발걸음은 곧 달마고도를 만난다. 오르막보다 몇 배나 길고 몇 배나 힘든 내리막이다. 평탄한 길을 따라 역방향으로 나아간다.

이제 달마고도의 오른쪽 끝인 몰고리재에서 땅끝천년숲옛길을 만난다.

이 땅끝천년숲옛길은 작년에는 달마고도보더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던 구간으로 기억된다. 산의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며 나아가는 그 길은 적당한 난이도와 곳곳에서 보여지는 다도해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어 참으로 마음에 드는 구간이다. 작년의 답사 당시에는 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설 속을 걸었는데 올해는 그래도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전체적으로 바위가 많고 오르내림이 있는 편이라 후반부에 걸을 때에는 적절하게 체력을 배분하는 것이 좋다. 물론 바로 전 도솔암을 오르고 내려오는 것 만큼 험한 길은 전혀 아니다.

<사구미 해변 방향으로 다도해의 풍경이 펼쳐진다.>

<해남 최고의 명당이라 하는 십자혈>

땅끝천년숲옛길을 따라 한참을 걷는다. 어느덧 날씨는 맑게 개었고 능선을 따라 걸으며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한다.

걷다보면 꽤 너른 평지가 나타난다. 바로 해남에서도 최고의 명당이라 말하는 십자혈 구간으로 이 땅끝천년숲옛길을 따라서는 세 곳을 만날 수 있다. 다만 이번 답사에서는 첫 번째 십자혈에서 임도를 따라 송호리 방면으로 내려간다. 작년에 걸었던 이들이라면 이 십자혈을 모두 만났으리라.

<매화꽃이 한창이다.>

<비옥한 땅과 산, 하늘은 맑게 개었다.>

<저 산 너머로 땅끝탑이 위치해 있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 길, 매화꽃이 한창이다.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참으로 비옥한 땅이다. 해남군의 풍요로움, 그리고 해남 사람들의 넉넉한 인정이 어디를 바탕으로 발현되는지 알 수 있음이다.

이 번, 해남의 길을 걸으며 지나가던 트럭이 멈춰서서 ‘혹시 읍내로 나가실것이면 태워줄랑게요, 얼릉 타소.’하며 땀에 젖어 걷는 우리를 걱정하는 인정을 만났다. 덩치가 산 만한 이들이기에 백반집에서는 추가 밥에 인색하지 않았고 추가 요금도 받지 않았다. 어디에서 무엇을 물어도 자신의 일인양 여기저기 알아보고 말해주는 등 이 해남 사람들은 참으로 따듯하고 넉넉하였다.

그래서일까 잘 닦여진 임도, 멋진 풍경, 따사로운 기온, 소박하지만 정취 가득한 마을 풍경 등 이 곳이 ‘참으로 걷기 좋은 고장’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전국의 많은 둘레길과 산길을 다녀보았지만 아무리 멋진 풍경을 가졌더라도 그 곳이 ‘걷기에 좋은 길’인가 아닌가는 풍경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남도 걷기여행의 진면목이랄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 곳을 걸으며 해남군이 ‘트레킹 명소’로서 얼마나 완벽한 곳인지 새삼 확신하게 된다.

송호리를 지나 도착지인 땅끝 황토나라테마촌에 도착한다.

노을이 뉘엿뉘엿 지고 있다. 오늘 하루도 잘 답사했다는 안도감과 성취감 속으로 내리막길에서 본 동백의 처연함 속에 숨긴 농염함이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결국 중생의 깨달음이란 이다지도 얉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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