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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보배라는 산, 왕이 직접 올랐다는 그 능선을 따라 – 양주마루금길 ②

<등산로 이탈 금지!>

어하고개에서 잠시 쉰 몸을 추스린다. 간식과 음료를 먹으니 기력이 조금은 회복되는 듯 하다.

고개를 오르는 중 경고판을 본다. 인근의 부대에서 세운 것으로 처음 보았을때엔 “아차, 등산로가 폐쇄되었구나…”하고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의 수고가 무위로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올라가지 마시오!”가 아닌, “지정된 등산로를 이탈하지 마시오!”라는 문구이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긴, 경기 북부, 특히 포천, 양주, 동두천시는 ‘산 마다 부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역의 특성상 많은 부대와 훈련장, 사격장이 있다.

물론 반드시 지정된 등산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경기 북부를 막론하고 당연한 사실이다. 다만 표지판에서처럼 군 관련 시설이 있다면 좀 더 주의를 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능선은 잠시 포천시의 관할지역으로 들어온다. 오르막이 유순하다.>

<석문령 정상께의 천보약수터. 음용적합, 부적합을 표기한 안내문이 없다.>

어하고개 초입의 오르막은 조금은 경사가 있다. 그러나 곧 다시 유순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행정구역은 어느새 포천시의 관할경계에 속하게 된다.

석문령까지 나아가니 천보약수터 방향 안내판이 눈에 띈다. 답사날은 마침 뙤약볕으로 기온이 한창 올랐던 날인지라 출발 할 때 준비했던 음료나 물은 모두 미지근하기 짝이 없다. 꽤나 시원해 보이는 약수터로 다가가 목을 축이려니 보통 약수터에서 보이는 수질검사 안내판이 보이지 않는다. 음용 적합/부적합을 기록한 안내가 없으니 그냥 마시기가 껄끄럽다. 

돌을 괴고 나름의 관리를 지속적으로 하는 듯 하지만 관에 정식으로 등록된 약수터가 아닌, 옛부터 지역 주민들이 관리하고 등산객들이 이용한 정도의 약수터로 보인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많은 등산객들이 물을 보충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었다.

조금 더 참기로 하고 율정동 정상 방향으로 나아간다.

<천보정 인근에서 만난 둘레길 표식>

<천보정. 포천시 관할 천보산맥의 정상이다.>

능선을 따라 율정동 천보정에 닿는다. 예전 답사기에서 말했던 천보산의 3곳의 정상비, 시설물 중 두 번째인 정자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지친 다리를 쉬어간다. 천보산맥 진입 기준으로 오른쪽에 위치한 포천시는 이 천보정까지 오르는 등산로와 산책로를 엮어 별도의 둘레길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안내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무 곳곳에 둘레길 표식이 보인다.

천보산 자체가 워낙 명산이고 걷기 좋아 답사하며 수 많은 등산객들을 만났지만 이 천보정은 그 중 가장 많은 이들이 모여있던 곳이다. 정자 인근의 운동기구에서 운동을 하거나 벤치에서 쉬는 이도 있었고 몇 분 전부터 나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던 젊은 커플도 여기까지 올라와 땀을 훔치며 정자에서 쉰다.

구두에 원피스를 입은 그 여성의 모습에 실례지만 웃음이 나온다. 연인의 불편과 노고는 잊은 채 ‘감악산은 이것보다 몇 배는 힘들지!’하고 큰소리치는 남성은 눈치깨나 없다. 천보정을 오르면서 흘깃 본 포천시에서의 오르막이 꽤 장난이 아니던데…

<나무 사이로 보이는 천보산 정상(양주시), 그 뒤로 칠봉산이 이어진다.>

<천보정을 지나 천주교 공설묘지에 닿다.>

<묘지 도로 뒤의 산책로로 진입한다.>

천보정을 지나 약간의 내리막과 평지로 이루어진 능선을 따라 걸으며 저 멀리,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를 본다. 천보산의 세 번째 정상비이지, 진정한 정상비라 할 수 있는 천보산 주봉이다. 그 아래 천년고찰, 고려시대 지공선사와 나옹선사에 의해 건립되고 조선시대 태조와 무학대사의 이야기가 담긴 회암사지가 있을 것이다.

걸음은 어느새 너른 포천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천주교 공설묘지에 다다른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기 십상인데 잘 보면 도로 뒷쪽으로 등산로/산책로가 잘 되어있다. 천보산맥을 종주하기 위해서는 이 등산로/산책로를 따라 나아가야 한다. 길이 잘 닦인 편이라 찾기에 어렵지는 않다.

<포천시와 양주시의 경계인 투바위고개로 내려오다.>

천주교 공설묘지에서 포천시와 양주시의 경계인 투바위고개까지는 금방이다. 예전부터 길이 험하기로 유명했던 고개이고 우천시나 폭설시에는 사고도 잦았던 고개이다. 도로를 횡단하여 맞은 편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반드시 주변을 잘 살피는 것이 좋다. 꺾어지는 커브 구간이므로 안전을 위해서는 포천시 쪽 내리막 방향으로 좀 더 이동 후 주위를 살펴 걷는 것을 추천한다.

이 투바위고개에는 식당 겸 휴게소가 한 곳 있다. 아침 일찍부터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만나는 유일한 식당이다.

행사 코스로 도착지를 장림고개로 잡더라도, 상시코스로 지행역까지 나아간다 하더라도, 개인 추천코스로 봉양리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도착지 부근을 제외하면 코스 내에서 유일하게 식사를 하거나 물을 보충할 수 있는 곳이니 공복이거나 물이 부족하다면 반드시 체크하는 것이 좋다.

<투바위고개의 식당. 추어탕 전문이다.>

<추어탕 2인분. 양과 맛이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

이 투바위고개 식당은 간판도 제대로 없지만 오랜 기간동안 추어탕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다. 주변의 양주, 포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산악자전거를 즐기거나 천보산맥 종주를 즐기는 등산인들에게는 (사실 큰 선택지가 없기도 하다만) 반드시 먹어봐야 할 맛집으로 인식된다.

점심이 지난 무렵이다. 허기가 보통이 아니었던지라 물도 시원하게 보충할 겸 가릴 것 없이 들어갔다.

1인당 12,000원… 만만치 않은 가격에 혀를 내두른다.

추어탕에 들어가는 미꾸라지는 통으로, 혹은 갈아서 넣는 등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일단 갈아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고 바깥 테이블에 주저앉아 지친 몸을 쉰다. 꾸부정하니 앉아 있노라니 몸이 으슬으슬 떨려온다. 땀이 식은 탓도 있지만 이 투바위고개의 바람이 만만찮아서일 것이다. 마침 달달하고 따듯한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던 차에 식사를 마치고 계산할 때 한 잔씩 뽑아 나가는 믹스커피가 눈에 들어온다.

그 한 잔의 달콤 쌉쌀함이 추어탕이 나오기 전 내 몸과 마음을 녹이고 또 채운다.

<같이 나오는 반찬 또한 별미이다.>

추어탕의 맛은 정말로 기대 이상이었다. 조금은 비싼 느낌이었는데 값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양 또한 푸짐해서 여느 3인분과 같은 수준의 양으로 전체적인 양과 질을 본다면 충분히 납득이 갈 만한 가격이다. 다만 의외로 매콤함이 강해 매운맛에 강하지 않다면 주문시 “살짝 덜 맵게 해달라.”고 하면 좋을 듯 하다.

감자조림과 김치, 마늘 장아찌 등 그리 튀지 않는 밑반찬도 하나같이 모두 입맛에 잘 맞는다. 아니, 녹양역에서 여기까지 산길만 따라 걸어온 사람에게 무엇이 안 맞겠냐만 정말로 그 하나하나마다 밥 한 수저가 사라진다.

앞으로 더 가야할 여정은 생각지도 않고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나서 앉아있노라니… 세상 만사가 다 귀찮다. 눈이 슬슬 감기는게 한 숨 자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져만 간다.

이를 악물고 일어나 양해를 구해 시원한 수돗물을 물병에 채운 후 다시 끊어진 고개를 오른다. 조금만 더 가면 천보산 정상이다!

약간의 오르막이 후 정상까지의 길은 꽤 편안한 셈이다. 다만 오전부터 예고되었던 미세먼지가 강해지며 어느덧 하늘은 회색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상비 직전의 약간의 오르막은 꽤 미끄러운 편이므로 로프 등을 잘 잡으면 좋다. 아울러 절벽지형인지라 등산로 바깥 부분으로는 절대 나가지 않는 것이 좋다.

<천보산 정상에 서다.>

정상비에서 기념 촬영을 한다. 그 정상비 뒤로 오늘 이른 아침부터 지금꺼지 걸어온 천보산맥 줄기가 길고도 길게 이어져 있다. 눈으로 그 궤적을 쫓다가 가물가물한 끝자락의 송신탑을 더듬는다.

“세상에, 우리가 도대체 얼마나 걸어온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이 길에 대한 약간의 의문과 애매한 느낌이 자신감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나 때문에 본 속도를 잃고 언제나 맞춰 걷느라 고생인 지리정보팀장도 그 기나긴 산줄기를 바라본다.

<양주시와 포천시, 동두천시의 방향안내판이 모두 모인 삼거리>

정상비를 지나 장림고개 방향으로 향하니 삼거리가 하나 나온다. 양주시와 포천시,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동두천시(장림고개 방면의 행정구역 일부는 동두천시에 속한다.) 등 세 지자체의 안내판이 한 자리에 모인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천보산을 사이에 둔 치열한 각축전의 현장일까. 초반부를 점령한 의정부시는 이쯤에서는 멀리 떨어져 낄 수 없는 판국이다.

동두천6산종주 구간에 속하는 해룡산 방면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쪽이 아마 왕방지맥의 분기점인 듯 하다. 체크를 한 후 장림고개, 칠봉산 방면으로 내려간다.

<장림고개. 천보산맥은 저 다리를 지나 칠봉산으로 이어진다.>

장림고개에 내려오니 다리 하나가 보인다. 천보산과 칠봉산을 잇는 다리이다. 그 밑으로는 좌로는 예전, 사람들이 넘어다녔을 거친 길이 펼쳐져 있고 우측으로는 카페와 캠핑장이 보인다.

저 캠핑장의 위치와 시설이 너무 마음에 든다. 행사를 한다면 저 곳이면 정말 좋겠다.’는 마음을 가져본다. 어린이 캠핑장이라는 것이 약간 걸리지만 정말 딱 맞아떨어지는 위치이다. (그리고 이후에 재차 방문하여 한국고갯길 투어(KHT TOUR) in 양주 행사를 위해 섭외를 하고 어렵게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다리를 지나 본격적으로 칠봉산을 오른다. 이름 그대로 일곱 개의 봉우리가 있는 이 산의 또 다른 이름은 이 전의 답사기에서 말한 바 있는 어등산(御登山)이다. 조선시대 세조가 자신의 부족함을 한탄하며 올랐다고 하며 이 곳에서 수렵 등을 했다고 한다.

<칠봉산 능선까지의 오르막은 꽤 만만치 않다.>

이 칠봉산의 정상께 능선까지 오르는 오르막은 꽤 만만치 않다. 천보산과 비교만 하더라도 높이가 더 높은데다 (천보산 423m, 칠봉산 506m), 녹양역에서 완만하게 올라가는 천보산 들입부와는 달리 장림고개에서 바로 치고 올라가는 지형의 특징 때문이다.

물론 반대편인 양주 봉양리나 동두천 제생병원에서 진입하면 조금은 더 쉬울 수 있겠지만 길이가 굉장히 길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진행방향대로 좀 더 힘을 내 단숨에 올라가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할 듯 하다.

난이도가 있는 오르막이라 하더라도 로프를 이용하거나 바위를 힘들게 올라야 하는 구간은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길도 이전까지 걸어온 능선처럼 쉽게 파악이 가능하다.

<칠봉산 정상, 돌봉>

<칠봉산 정상 표지석>

<정상부에서 본 양주시 중심부의 풍경. 좌측의 천보산맥, 우측의 도락산, 불곡산이 감싸안고 있다.>

<투구봉>

칠봉산의 일곱 봉우리는 발치봉·응봉(매봉)·석봉·깃대봉·투구봉·솔치봉·돌봉 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상부가 바로 돌봉이다. 각 봉우리마다 그렇게 부르게 된 연유를 적어놓았다.

돌봉은 임금이 하산하며 이 곳은 돌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함께 온 이들에게 말했다 하여 돌봉이고, 투구봉은 임금이 앉아 쉰 곳으로 병졸들도 갑옷과 투구를 풀었다 하여 투구봉이다.

세조는 마음을 추스르고 살책을 반성하며 행차했지만 그 행차를 보좌하고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 칠봉산은 꽤나 까다로운 산이었을 것이다.

<전사자 유해발굴지>

투구봉을 지나면 6.25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이 펼쳐진 이 곳에서 전사한 이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곳이 나온다. 이 전사자 유해발굴지와 유해 발굴지역(1호) 안내판을 보며 잠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감사의 예를 표하는 것을 어떨까?

<깃대봉. 이 곳에서 동두천 제생병원 방면으로 내려간다.>

깃대봉에 도달해 정자에서 한 숨 쉰다. 오늘 답사가 마무리되는 종점인 동두천 지행역 까지, 하루 일정의 80% 정도는 마친 셈이다. 크게 고갈된 체력을 조금씩 회복시킨다. 어느덧 해는 저물고 있다. 마음이 조금은 급해진다.

이 깃대봉은 매봉을 지나 양주 봉양리 방면으로 나아가는 코스와 동두천 제생병원을 지나 생연동, 지행역 방면으로 나아가는 갈림길이 갈라지는 곳이다. 봉양리 방면으로 나아가는 데엔 약 한 시간 가량, 지행역 까지는 약 두시간 가량 더 진행하게 된다.

<제생병원 방면으로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 나아간다.>

제생병원 방면으로 나아간다. 깃대봉에서 한 참을 내려오나 싶더니 앞에 다시 봉우리가 나타난다. 높지 않은 봉우리건만 지금까지의 여정에 따른 고갈된 체력으로는 꽤나 성가신 상대가 아닐 수 없다.

몇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지나 제생병원까지 걷는 길은 오늘 일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구간이다. 숲길과 공원을 이어 온전히 그 끝까지 나아가는 길은 도심지인 동두천시 생연동이 가까워질수록 고즈넉함에서 활발함으로 바뀐다. 주변의 주민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걷고 또 운동하는 공간들을 지난다. 어느덧 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동두천시 생연동에 도착한다.>

생연동에 도착, 짧은 골목을 지나 밝게 빛나는 도심지로 나온다. 이제 천보산맥을 전부 걸은 셈이다.

지행역을 향하는 발걸음, 피로를 숨길 수 없는 느린 걸음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 피어오르는 만족감, 성취감, 그리고 오늘 걸은 길에 대한 확신은 숨길 수 없다.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이는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의 여정에 대해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으며 걷노라니 벌써 지행역이다. 오늘은 여기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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