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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의 ‘산티아고’를 만든다는 말이 주는 혼란스러움, 그리고 가벼움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다. 그 가치의 소중함은 누구나 안다. – 사진출처 : Pixabay>

온 민족이 평화를 갈망하는 가운데 올해 전국의 둘레길 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길 중 하나가 바로 평화누리길이 아닐까 싶다.

마치 주마가편처럼, 김포시와 연천군을 잇는 경기도의 평화누리길 노선은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받았고 그만큼 뉴스를 생산하고 또 행사를 열었다. 다른 어떤 길보다도 그 ‘평화’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는 파급력은 컸다.

거기에 강원도에서 잇는 평화누리길 강원도 노선(철원군에서 고성까지)도 일부구간은 이미 개통되었고 각 지자체별로 협의를 거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행정안전부에서 ‘DMZ 통일을 여는 길(가칭)’을 조성한다는 발표를 접했다. 그 보도자료를 보니 인천 강화군에서 강원도 고성군까지의 도보여행 길을 잇는다는 내용이다. 농로와 임도를 살리고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총 286억 원(국비 200억 원, 지방비 86억 원)이 투입되어 456km로 조성된다.

잠시 혼란스러웠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평화누리길을 연장해서 잇는다는 것은 이미 ‘코리아둘레길’이라는 거창한 프로젝트에서 한반도 사(四)면 중 북부의 면으로 제시된 바 있다.

이 보도자료에는 이 길이 기존에 경기도 김포와 강원도 고성을 잇는 평화누리길의 연장이라는 이야기가 어디에도 없다. 가만히 읽다보니 길 이름도 ‘평화누리길’이 아닌 ‘DMZ 통일을 여는 길’이니 사실 별개, 새로운 길로 인식이 된다.

도대체 이 코리아둘레길과 DMZ 통일을 여는 길은 함께 봐야 하는 걸까, 따로 놓고 봐야 하는걸까?

결론적으로는 행안부의 자료를 토대로 볼 때 별개로 인식된다. 코리아둘레길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미 같은 의미를 지니고 아마도 거의 비슷한 경로를 타게 될 길에 286억원이 새로이 들어가는 셈이다.

길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명품 트레킹 코스가 많이 생겨서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다. 이제는 길에 대한 새로운 조성이 아니라 관리가 안되는 길을 과감히 버리고 가치가 있는 길을 추리고 그 길이 명품 길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과 편의적 개선을 도모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거의 매주, 매월 각 도와 시, 군, 구에 면, 읍, 동까지 수 없이 많은 길들이 새로이 조성된다는 뉴스를 접하는데 그 많은 길 중 사라지는 길이 없다. 오히려 이렇게나 더 장대하게 탄생을 한다는 데 과연 얼마만큼 환영받을 일일까?

또 하나 아쉬운 점은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만들겠다’는 보도자료의 제목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해외의 트레일 중 가장 유명한 길이기도 하고, 또 국내의 많은 이들이 30~40여일에 걸쳐 그 길을 걸으며 많은 영감을 받고 위로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의 의의와 역사적 가치를 따져보자면 단순히 ‘길의 대명사’이기에 갖다 썼다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깊다. 예수의 제자인 야고보의 시신을 실은 돌배, 그리고 그 돌배에 붙은 가리비, 비밀스레 묻히고 잊혀진 무덤과 그것을 발견한 설화 등 종교적 관점에서 (비록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알베르게 문 앞에 세워진 순례자들의 지팡이와 가리비 껍질 표식 – 사진출처 : Pixabay>

여기에 당시 이 길을 드러내며 알리려는 의도를 가진 국가와 주변의 정세까지 들어가면 이 길을 따라 순례를 한 이들의 신앙적 열망을 넘어 이 길이 그려내는 세계사적 가치란 더욱 커진다. (월간 로드프레스 1월호에서 곽동운 작가님이 상세히 설명한 바가 있다.)

그런 의의를 제외하더라도 의미가 담긴 표식, 풍경, 도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주는 종교적 영감, 세상의 끝이라 이름 붙여진 피스테라(피니스테레) 에서의 내려놓음, 알베르게 문화 등 꼽을 수 없는 것들이 더 해져 산티아고 순례길을 만든다.

이렇듯 종교적, 세계사적 의의와 그 길만의 문화가 담겨있는 길이 산티아고 순례길일진데 그것을 간과하고 단순히 ‘장거리 도보여행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생각만으로 너무 가볍게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붙인것이 정부부처가 내민 타이틀이라니 한숨이 나올 뿐이다. 마치 지금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한국인들의 행동만큼이나 실망스럽다.

국내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장거리 트레일인 제주올레길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현 이사장인 서명숙씨가 ‘한국에도 이와 같은 길이 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이렇듯 한국의 장거리 트레일 문화의 시작과 현재에 앞서 마치 떨어지지않는 딱지와도 같은 산티아고 순례길, 그 길은 자신의 이름이 이렇게나 한국의 길 문화와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을 알고있을까?

<오래된 순례길 표식. 그 지난한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 사진출처 : Pixabay>

‘한국의 무엇’이라는 것을 놓아버렸으면 좋겠다. 그것 자체가 그 ‘무엇’과 비교하고, 또 최소한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자존심이기도 하며 이기고야 말겠다는 경쟁심이다. 그것이 오히려 ‘평화’와 ‘보존된 자연’, ‘전쟁의 상흔’ 등의 주제를 가진 그 길을 더욱 독자적으로 세울 수 있고 주체성을 더 해 줄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DMZ 통일을 여는 길’은 기존에 있었던 수 많은 실패사례처럼 ‘관광 콘텐츠화’와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그 외의 알 수 없는 정치적, 사회적 목적이 더해진 길이 될 지 모른다. 단지 거기에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쉽게 알 수 있는(그러나 전혀 성질이 다른) 포장라벨을 붙여놓는다고 당장 성공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첫 삽 뜨기전에 멈춰주었으면 좋겠다.

“거점센터는 폐교, 마을회관 등을 새단장하여 게스트하우스, 식당, 카페, 특산물 판매장 등으로 사용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체류형 관광을 유도하고 주민 소득증대도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행정안전부는 ‘DMZ, 통일을 여는 길’이 조성될 경우 한국의 산티아고길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연간 100만 명 이상이 방문해 2,500억 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등 일자리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807km) : 연간 600만명 방문, 경제효과 1조원

김현기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분권실장은 “‘DMZ, 통일을 여는 길’을 세계인이 찾는 도보 여행길로 만들어 접경지역의 경제 활성화와 주민 소득증대에 기여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번영의 상징적인 장소로 육성하겠다.”라고 밝혔다. – 2018년 12월 16일 행정안전부 보도자료 中”

길 걷기를 사랑하고, 길의 가치를 찾으며 공부하고, 수많은 답사를 통해 노선을 잇고, 또 중간의 구간을 나누고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숙박방안을 찾아 장거리 도보여행이 될 수 있도록 연구하는 이들, 오로지 걷는 이의 시선으로 그 길을 계산하고 설계할 이들이 끼어들 틈이 안 보인다.

슬프게도 몇 번을 보도자료를 읽고 또 읽어도 안 보인다.

당신의 눈에는 보이는가?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