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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리본에 대한 불편함, 그리고 아직도 갈 길이 먼 길 표식

<지리산둘레길 1코스 개미정지 고개 지나서>

둘레길을 걷다보면 필연적으로 산길을 타게 되어 있다.

아무래도 모든 길을 설계할 때 이런 점이 반영될 것이다. 당연히 걷는 이로서도 일상에서 수 없이 걷게 되는 아스팔트 길, 시멘트 도로보다 당연히 흙내음 물씬 풍기고 녹음이 우거진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환영한다.

그렇게 전국의 둘레길을 걸으면서 그 길을 품은 다양한 산들을 만난다. 지리산둘레길의 지리산, 북한산둘레길의 북한산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팔공산둘레길도 팔공산을 그대로 두른다. 달마고도 또한 길게 ‘一’자로 난 달마산의 8부 능선을 따라 걷는다.

산 이름을 놓지 않고서라도 마찬가지다. 강화나들길의 구간 중 강화도의 명산인 고려산, 혈구산을 지나는 노선을 생각해보자. 전북의 금강 마실길도 금강변따라 수 많은 산을 지난다. 평화누리길 또한 김포의 명산인 문수산, 파주의 명산인 심학산의 정상께에서 발길을 돌려 내려간다.

이렇듯 둘레길과 산은 사실 뗄레야 뗄 수 없다. 그래서일까, 길을 걷는 이는 산을 즐기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어지럽다. 무엇때문에? 바로 ‘리본’이다.

우리나라의 산들은 기본적으로 등산로에 대한 표식이 아주 뒤떨어진 편은 아니다. 곳곳마다 방향 이정표를 세우고 있기에 산을 나서는 이는 아주 크고 넓은 산이 아닌 이상은 크게 길을 헤멜 염려는 없다. 오히려 아주 큰 산일수록 많은 이들이 찾기에 이런 류의 안내는 더욱 잘 되어 있다.

다만 산길의 특성상 다양한 등산루트가 존재하고 이 곳 중 다수는 별도의 안내 표식이 없는, 소위 말해 아는 이들이 가는 길, 혹은 ‘비법정탐방로’로 불린다. (물론 많은 이들이 오가서 일반 등산로와 진배없는 뚜렷한 길로 자리잡은 코스들도 많다.)

문제는 이런 곳을 오르는 등산 동호회, 흔히 산악회가 남기는 리본 표식이다. 그저 가만히 가는대로 가도 될 길에도 정신없이 리본이 붙여져 있다. 리본의 이유가 알림, 표식임을 감안한다면 하나도 쓸모 없는 것들이 부지기수이다.

<누구나 풍경 사진을 찍으려다 리본에 방향을 바꾼 일이 있을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정말로 멋진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나 고개의 정상부 나무에도 마치 인증처럼 붙여져 있다는 것이다. 당산나무, 성황당을 연상케 하는 그 가지각색의 리본들, 주렁주렁 매달린 그 리본들은 어떤 토속적인 신앙의 느낌조차 준다. 그래서 답사를 할 때마다 ‘여기가 네팔이냐?’하고 쓴 웃음을 짓게 된다.

산악회만으로도 벅찬데 개인까지 가세한다. ‘목포에서 온 牛步 황 xx’, ‘인천 川蘭 김 xx’ 등 멋드러진 호를 자랑하며 산악회 리본 사이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당당하게 자신의 전화번호까지 기입된 리본도 있다. 길을 잃으면 자신에게 직접 전화하라는 것일까?

이런 산악회의 리본이 둘레길의 리본과 만나게 되면 자칫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둘레길은 대부분 산의 언저리나 능선을 돌아도 산의 정상 표지석을 지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정상을 향해 가는 산악회의 리본과는 그 방향이 다르다. 그러나 둘레길의 리본 표식이 드문 경우, 그리고 한 방향으로 등산로와 겹쳐 주욱 나 있는 경우는 걷는 이는 무의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둘레길의 리본보다 일정 간격으로 나부끼는 산악회의 리본은 눈에 담으며 걷게 된다. 어쩔 수 없는게 낯선 산을 걸으며 ‘사람이 왔다 간 길이다.’라는 표식만큼 마음에 위안을 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 순간 둘레길과 정상을 향하는 등산로의 분기점을 놓치고 상당부분 산을 오르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정상까지 가 보고 집에 돌아가자!’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다행이지만 온전히 둘레길만을 걷기 위해 온 이라면 꽤나 짜증나는 일이다.

물론 혹자는 이렇게 말할 지 모른다. “앱을 사용하면 된다! 그렇다면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나는 그 말을 반대로 되돌려주고 싶다. “그렇다면 왜 당신들은 앱을 사용하지 않고 리본을 다느냐?”고 말이다.

단순히 뒤떨어진 산우(山友)가 쉽게 길을 찾게끔 하는 용도라면 뒤에서 오는 이는 어째서 달린 리본을 수거하지 않는 것인가? 자신들의 등산행사가 끝난 후 달려진 리본을 수거할 생각을 하지 않고 등반의 인증으로 남길 생각을 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가?

엄밀히 법을 따지고 들어간다면 저 수 많은 리본들은 당장 수거되어야 하고 버려져야 한다. 벌금을 책정해서라도 향후 산과 들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리본 공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계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산을 좋아하고 해외도 다녀본 이들이라면 외국의 산과 트레킹 코스에 이토록 동호회의 리본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더 잘 알텐데 어찌 한국에서만 이러는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분명 그 리본에 의해 도움을 받는 경우도 없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만 하더라도 눈이 산을 뒤덮은 감악산 둘레길에서 몇몇 산악회의 리본에 의지해 길을 찾은 일이 있고, 바로 얼마 전 다녀온 땅끝천년숲옛길에서도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눈보라 속에서 나뭇가지에 매달린 리본에 위안 삼으며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문제는 그런 부분은 지자체나 그 길을 관리하는 단체에서 표식을 확실히 세웠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고, 또 그토록 궂은 날씨가 아니었다면 쉽게 원래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남양주시에서 홍보하는 천마지맥. 지맥으로 향하는 표식이 없어 누군가 결국 써 넣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산과 길에 정확히 지자체, 혹은 관리 주체에서 세운 표식만이 존재하고, 또 그 표식만으로 누구라도 쉽게 산의 정상과 길을 구분하여 찾아갈 수 없는 것일까? 조금만 더 신경을 쓰고 잦은 답사를 통해 그 산을 파악하고 갈림길에 표식을 확실히 한다면 우리들이 ‘리본 공해’를 외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리본 속으로 뛰어들게 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지자체가 먼저 나서서 관내의 산이나 둘레길을 지정하고 허가된 정식 표식 외에는 붙일시 처벌한다고 공표를 하는 것은 어떨까? 시간을 들여 그 산이나 길의 불법 리본을 모두 수거하고 ‘산악회 리본이 없는 깨끗한 산과 길’로 홍보 마케팅을 펼치면 좋을 것이다.

수거가 어렵다면 여행객들이 해당 산과 길에서 수거한 불법 리본을 개당 50원 정도에 수매해도 좋을 것이다. 국립공원이라면 입구에서 봉투를 나누어주고 되돌아오는 길에 그 봉투에 담긴 양을 세어 마일리지를 적립하여 다양한 혜택을 주어도 좋다. 그 산과 길에 들어가는 엄청난 예산의 일부만 투자해도 지금보다 훨씬 깨끗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아울러 산악회도 ‘우리 산악회는 산을 사랑하기에 산을 어지럽히는 리본 공해에 반대하고 리본을 만들지 않습니다.’같은 다짐과 안내로 더욱 자신들의 취미에 전문성을 부여하고 격을 두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산은 산 자체의 색채만으로 아름다운 법이다. 부디 그것을 빌려 걸으면서 자신의 족적을 남기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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