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By

광고문의

[칼럼] 당신은 그 길의 주인인가, 담당자인가?

<이 사진을 올린 블로거 ‘빈땅’님은 화살표의 상태가 이 길의 현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고 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창피해서가 아니었다. 불같이 화가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걷기행사를 위해 한 지자체의 군청을 찾아가 담당 공무원을 만났다. 지도를 얻고 그 지도 내의 각 구간에 대한 특이사항이나 편의시설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길 여행 전문 인터넷 뉴스 채널이고 월간 로드프레스를 발행하는 로드프레스라고 합니다. 이번에 1박2일로 걷기행사를 해당 길에서 열려고 하는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담당 공무원은 잔뜩 화가 난 표정과 목소리로 우리에게 반문을 했다.

“도대체 누구 허락을 맡고 걷기행사를 하려고 하는데요?”

내 귀가 의심스러웠다.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의 예산을 들여 둘레길을 만들어 놓고, 막상 그 길을 걷고싶은 사람들을 모아 걷겠다고 하니 ‘누구 허락을 맡고 걷느냐?’는 말이 나올 줄 생각을 못 했기 때문이다.

그 길이 DMZ에 접경한 길도 아니요, 해외의 장거리 트레일처럼 별도의 퍼밋(PERMIT)을 요청해서 받는 길도 아니다. 아니, 퍼밋을 요청해야 하는 길이라도 그 길을 걷겠다고 정보를 얻고자 찾아 온 이에게 그런 응대를 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각 지자체가 둘레길이란 것을 만든 의도는 사람들이 찾아와 걸으며 그 지역의 특색있는 경치와 문화, 사람들을 만나보고 또 그 지역에서 소비를 하게끔, 관광 활성화를 위해 만든 것이다.

즉 우리는 그 지역에 소비를 하러 온 사람들이며 그 지역을 즐기러 찾아 온 것이다. 그것도 한, 두명이 아닌 여러명이 모여 1박2일간 걷고, 먹고, 마시고 또 쉴 생각이었다.

크게 환대를 받을 예상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환대해야 옳을 일이다.) 이렇게 적대적으로, 공격적으로 나올 것은 정말로 꿈에도 생각지 않은 일이었다.

“왜 그리 공격적으로 나오시는지…”

끓어오르는 화를 최대한 참고 담당자와 이야기를 시도했다.

담당자로서는 자신이 신경써야 할 일이 생기는 것이 불편한 듯 했다. 우리가 1박 2일간 46km 가량의 전체코스를 완주한다고 하자 더욱이 신경이 쓰이는 듯 했다. 무엇이 그리도 불편했을까? 그 답은 곧 알 수 있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1코스만 걷기 때문에 편의시설도 1코스에 모여 있습니다. 이 쪽이 해수욕장도 있고 유명한 관광지니까요.”

“나머지 2코스에서 5코스까지는 어떻습니까?”

“거기는 사실 정말 걷고싶은, 걷기 마니아들이 오는 곳이라 표식이 없습니다. 예전에 설치한 표식도 많이 낡아서 떨어져 나가기도 했고요.”

“우리가 정말 걷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제가 인터넷에서 걸었던 사람들의 기록을 보니 노란색으로 리본이 달려 있던 사진을 봤습니다.”

“지금은 리본도 없습니다.”

“이번에 걷기행사를 하며 저희가 먼저 그 길을 완주하며 노선 데이터를 만들 생각입니다. 혹시 군청에서 리본을 가지고 있다면 저희가 전 구간을 걸으며 리본 표식 작업을 해 드리겠습니다.”

“군청에서 가지고 있는 리본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초 상태는 어떻습니까?”

“말씀드렸다시피 1코스만 사람들이 오는지라 2~5코스는 제초가 전혀 안되어 있습니다. 꼭 행사를 하신다면 필요부분에 대해서 제초작업을 해 드리겠습니다. 지도를 가지고 걸으면서 체크를 해 주시면 행사 전까지 해당 부분은 최대한 제초를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초작업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이다. 그것은 걷기 행사를 여는 이에게 매우 큰 도움이며 또 진드기나 풀 알레르기 등 다양한 위험요소를 차단할 수 있는, 정말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길의 관리 상태에 대해서 담당자로부터 이 정도로 절망적인 설명(설명이라기보다는 실토에 가깝다.)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쓰러진 채 방치된 길 안내판>

전국에 관리가 안 되는 걷기 길이 이 길 뿐이겠냐만은 사람이 많이 오는 길이 아니기에 아예 기본적인 표식, 안내판 작업도 안 하고 있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사람이 안 오는 길은 그 길이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관리가 잘 되는 길은 사람이 즐거이 찾아온다. 한 명이 찾아오더라도 그 길에 좋은 인상을 가지면 다른 이와 다시 온다. 혹은 그 길의 좋은 인상을 블로그나 SNS를 통해 남기면 다른 이가 그 정보를 보고 그 길을 찾아온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이 길이 그렇게까지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절대적으로 걷는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 길을 만들고 운영, 관리하는 이들의 잘못이다. 인터넷을 통해 그 길을 걸은 이들의 다양한 소회 속에서 표식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을 가장 많이 읽었다.

낡아서 글씨도 안 보이는 표지판, 쓰러져 있는 안내판도 부지기수에 심지어는 화살표 표지판이 하늘을 가리키는 것을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 사진에 달린 말이 걸작이었다. “말 그대로 이 길로 승천하라는 것인지…”

길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노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길에 관련된 문의와 요청을 처리하고 응대하는 것은 담당자의 의무이다. 아울러 그 길에 대해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도 담당자이다.

2년마다 한 번씩 담당보직이 바뀐다고 하지만 그 보직을 받는 이는 받자마자 그 길을 걸어봐야 하고 적어도 분기마다 1회는 그 길을 걸으며 노선을 확인하고 표식의 유무를 체크하고 편의시설의 미비를 조사해 올려야 할 것이다.

열리지 않거나 오물로 넘쳐나는 화장실, 녹슬어 나오지 않는 수도, 잡초에 뒤덮인 벤치와 쉼터를 그 길을 걸으며 숨을 헐떡이고 짜증을 내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철저하게 관리를 한다면 그 길이 바로 서게 된다. 걷기 좋은 길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러한 노력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길에 대한 설계와 기획의 과정까지 되짚지는 않더라도, 현재 자신이 길 관련 담당자고 또한 그 길이 어떻게든지 이미 만들어져 버린 길이라면 그 길에 녹아있는 세금을 생각하고 자신이 받는 봉급의 출처를 생각하길 바란다.

아울러 그 길을 걸으려는 이들은 그 길에 호의를 가지고 있고 그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 지역에 찾아오는 손님을 대하는 자세에서부터 그 길에 대한 첫 만남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도저도 싫다면 과감히 현직을 그만두거나 기안을 올려 수십, 수백억이 들어간 그 길을 폐쇄하기를 바란다.

부디 제발 그러하기를 바란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