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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걷기축제에 대한 유감 – 이제 그런 축제는 서로 하지도 가지도 맙시다

<전국의 지자체마다 걷기축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을여행주간을 앞세워 전국의 지자체마다 서로 ‘걷기대회(걷기축제)’를 한다고 아우성이다. 컴퓨터의 메일함에 쌓이는 보도자료들, 많을 때에는 하루에도 수십개의 길 관련 보도자료중 태반이 걷기대회가 개최된다는 홍보성 자료들이다.

물론 길을 만들었으면 살려야 한다. 수차례 지적했던 길의 탄생에 대한 당위성, 의의나 체계적인 관리를 다시 들먹이지 않더라도 일단 만들어 놓은 것, 살려야 한다는 행동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그러나 수많은 걷기행사의 개요를 하나하나 짚어보자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길을 다녀보고 또 느껴본 입장에서는 허탈함을 감출 수 없는 내용들이 부지기수다.

평균적인 거리는 6~10km 이내이다. (심지어 5km도 있다.) 걷기 시간은 2시간에서 아무리 많아도 4시간을 넘지 않는다. 보통 2시간 반에서 3시간이 가장 많다. 그리고 그 코스 대부분은 가장 유명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오는 ‘1코스’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일까, 그 걷기행사를 위해 1코스의 해당 걷기구간은 행사 전부터 관리가 들어간다. 청소도 하고 제초도 하고 평상시 보기 힘든 리본 표식도 한다. 딱 ‘거기까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우리 모두 눈을 지그시 감아보자. 그리고 하나하나 떠올려보자.

축제를 알리는 음악과 현수막, 곳곳에 관광버스가 내리고 봉사요원들이 주차를 안내한다.

아이를 데리고 온 여행객을 위해 풍선이나 장난감을 파는 잡상인, 삶은 옥수수와 김밥, 꽈배기를 파는 상인들도 등장한다. 행사가 좀 크다 싶으면 엿장수에 닭꼬치, 케밥에 터키식 아이스크림을 파는 외국인도 나타난다. 그 놈의 젤라또를 붙인 쇠 막대는 언제나 잡기 힘들다.
그래도 번듯하게 지역의 특산물을 파는 매대는 나름 천지붕이 있는 부스를 갖추고 있다.

이윽고 출발시간이 다가오면 마이크와 확성기로 사람들을 모은다. 다같이 모인 가운데 몸 풀기와 준비운동, 바른 걷기에 대한 무슨무슨 협회 사람의 짤막한 시연이 끝난 후 배낭이나 등 등에 뱃지, 혹은 천이나 종이로 인쇄된 참가자 표식을 붙이고 걷기를 시작한다. 아! 아이들을 위해 페이스 페인팅 부스에 들리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코스 중간중간 사물놀이나 클래식 4중주, 젬베와 통기타가 어울리는 버스킹도 어우러진다. 가끔은 지역의 밸리댄스 동호회에서 허리를 흔들며 흥을 돋운다.

약 2시간 정도 걷고 돌아오면 등에 부친 참가자 번호를 토대로 경품추천이 이루어진다. 운이 좋으면 세탁기나 TV, 냉장고도 받을 수 있다. 나름 손에 땀을 쥐는 이벤트다.

불행히도 이게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벌이는 ‘가을여행 주간’의 걷기축제다. 거기에 그 길에 대한 설명, 걷기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없다. 언제나 계속 반복되는 이 행사로 1코스도 울상이지만 그 외에 버려진 나머지 코스들의 설움도 쌓여만 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10월말, 11월초는 남은 예산을 한 번에 몰아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마침 단풍도 아름답고 가을여행 주간이 딱 정해졌으니 누가 뭐라 할 것도 없다. 결국 ‘걷기’는 수단일 뿐이다.

이런 축제를 즐기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당신이라면 2~3시간을 걷기위해 왕복 기름값과 톨비, 식비를 10만원 이상 지출하고 휴일 하루를 온전히 써 가며 그 먼 곳까지 내려갈 것인가?

결국 지역주민이나 가까운 곳의 체육동호회, 관의 지원을 받는 단체들이 참여할 뿐이다. 혹은 자매결연을 맺은 다른 타 지자체에서 품앗이로 찾아오기도 한다. 어느 곳에서는 관 내의 중, 고생들을 끌어모은다. 봉사활동 점수가 미끼이다.

우리가 겨우 1개의 코스를 걷는다고 하여 그 길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종주를 하고나서도 그 길을 완벽히 통달했다고 말할 수 없다. 사실 걷기는 그 거리나 난이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걷는 이들은 알고 있다. 걷는이가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걷고 무엇을 느끼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다만 그렇게 걷는 이들을 위한 배려가 준비된 걷기행사가 너무나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아쉽다. 결국엔 그 축제를 기획한 이도, 그 축제에 얼굴을 비추기 위해 나타난 시장, 군수, 의장들도 그 길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합리적인 예산 소진’, ‘관내의 행사에 얼굴 비추기’가 목적인 탓이다.

그러다보니 엄청난 실수도 벌어진다. 행사의 시작은 분명히 ‘내일’이건만 보도자료로 오늘 아침에 ‘총 인원 3,000명 모여 성황!’이라는 미리 만들어놓은 기사를 접할 때도 있다. 그 기사 안에 “걷기 좋은 가을, 서울에서 찾아온 보람이 있다! 너무 황홀했다!”고 인터뷰한 참가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시에서 3,000명이 왔다고 자화자찬하는 뉴스가 메인에올라오지만 해당 지역의 작은 언론이 “실제로 1500명 왔고 작년 대비 50%가 줄었다! 행사 신청의 양식 및 경로의 부재부터 문제점이 한 둘이 아니다! 이대로 하면 안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봤자 노출이 되지 않는다. 그 아픈 성토, 잊혀지고 묵혀져선 안 된다.

애시당초 누구보다 그 길을 사랑하는 이가 그 길을 담당하는 부서에 앉아 그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할 가능성이 불행히도 제로에 가까운 것이 소위 말 하는 ‘그 바닥’이다.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진 축제에 걷기를 사랑하는 이가 온전히 ‘걷기’에 집중하기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다.

한숨이 나오는 가운데 그래도 소백산자락길 걷기는 10km, 20km, 30km로 구분하여 온전히 걷기에 집중하고 하루 동안 자신의 한계를 도전할 수 있는 구간을 만들어 필자의 큰 관심을 끌었다.

앞으로 걷기축제의 방식을 좀 더 ‘걷기’에 집중하는 식으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일시 종주, 혹은 1박2일이나 2박 3일간 최소 30km에서 60km 내외의 구간을 걷는 식의 장거리 행사가 필요하다. 그래야 정말로 걷고 싶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걷기축제가 된다. 아울러 말 그대로 전국에서 찾아오고 그 지역내에서 소비도 이루어지는 선순환 축제가 된다. 무엇보다 제대로 취지를 살릴 수 있게 되어 그 어떤 축제보다도 정직하고 순수한 축제가 될 것이다.

표차로 1000명 2000명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그 인원들이 그 지역을 걷기위해 순수히 찾아온 이들이 아니라면 장기적으로 그 지역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오히려 우리가 7월에 진행한 진안군에서의 3박4일 200명, 10월에 진행한 강화군의 100명이 그 지역에서 순수히 소비하고 100km를 걸으며 그 지역의 사람을 만나고 그 지역의 역사와 자연을 만끽한 것이 장기적으로 더욱 클 것이다.

실제로 수 많은 참가자들은 내년 4월에 예정된 진안군 진안고원길의 마지막 절반 100km를 기다리며 다시 진안군을 찾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 동안 수없이 강화군에 놀러 왔으면서도 마니산, 혈구산, 고려산을 오르고 외포리 항구에서 노을을 만끽한 이번 행사를 통해 ‘정말 강화군이 이렇게 멋진 곳이었는지 이번에 알았다’고 말하는 참가자들이 셀 수 없었다.

혹자는 그리 말할 것이다. ‘아직 이 쪽의 생리를 모른다.’고.

나는 반문하고 싶다. 걷기축제라면 걷는 이의 생리에 맞춰야 하는 것이 정석이지, 걷는 이가 주최하는 이의 생리를 파악하고 맞춘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상적인 세상을 꿈 꾸지 않는다. 이성적인 세상을 꿈 꾼다. 내년부터라도 걷는 이를 위한 제대로 된 ‘걷기 축제’가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그 세상이 열리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부수고 만들어 낼 준비는 되어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여, 자신이 없으면 솔직하게 부탁이라도 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녔기를 바란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