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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박함 묻어나 더 아름다운 섬 울릉도 – 행남해안산책로, 저동옛길

<도동항에 도착하다. 행남해안산책로의 시작이다.>

그 섬에 발을 딛은 것은 어쩌면 내 생각보다 꽤나 질긴 인연의 시작일런지 모른다. 재작년 첫 발이 설렘 가득한 흥분이었다면 두 번째 발자욱은 약간의 두려움과 막막함이 공존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은 이 섬에 왔다. 목표는 단순하다. 이 섬의 다양한 길들을 걷기 위해서.

우리를 태운 배가 저동 혹은 도동항에 가까워질수록 그 신비로운, 그러나 등산 혹은 하이킹을 목표로 한 이들에게는 굉장히 위압감을 주는 봉우리들과 해안절벽의 기세는 강해졌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을 안고 내린 이 섬, 첫 번째로 도전할 길은 행남해안산책로와 저동옛길이다.

도동항에서 저동 중간까지 해안을 따라 조성된 행남해안산책로는 울릉도의 해식애 등 다양한 지질활동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멋진 산책로이다. 안전한 데크를 따라 약간의 오르내림을 거쳐 침식이 빚어낸 예술적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이 길, 그리고 옛 도동과 저동을 잇던 오솔길인 저동옛길로 이어지는 구간은 울릉도 트레킹의 첫 시작이자 몸 풀기로 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도동항 여객터미널 옆으로 행남해안산책로가 시작된다.>

방금 전 출항하여 분주함이 사라진 도동항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도동항 여객터미널까지의 멋진 교각을 따라 걸으면 여객터미널 옆으로 행남해안산책로로 이어지는 데크와 안내표식이 있다. 데크를 따라 약간 올라 동해의 푸른 바다를 조망하고, 뒤를 돌아 도동항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데크를 돌아 내려서면 눈을 의심케 하는 환상적인 산책로가 펼쳐진다.

<이만큼 동해의 바다에 압도되는 길이 또 있을까>

깎아지른 해안절벽, 부서지는 파도소리라는 진부한 표현일지라도 그보다 더 이 길의 첫 인상을 명확히 표현하는 말은 없을 듯 하다. 끝 없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포말의 부서짐과 윤슬의 아름다움에 취한다. 거칠은 콘크리트 계단의 길이더라도 그것이 이 파도를 그나마 오랫동안 이길 수 있는 방법이기에 불만은 없다.

<침식이 빚어낸 절경 속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난 느낌이다.>

길의 아름다움은 그 길의 난이도로 정해지지 않는다. 또한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이 그 길의 아름다움을 전부 대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해안산책로는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 하나 만으로 가히 압도적이라 할 정도로 울릉도에 첫 발을 내딛는 이를 매료시킨다.

너무나 맑고 깊은 바다, 빛의 방향에 따라서는 때로는 그윽한 하늘색으로, 영롱한 에메랄드 빛으로 다가온다. 그 위를 걷는 걸음은 선계(仙界)에 막 발을 내민 이의 감정과 같다. 가만히 걷고 그 바람과 바다를 만끽하다보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를 것이다.

<꽤 길게 이어지는 산책로>

<평탄하기만 한 길은 아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사이 얼마나 많은 감탄을 내뱉었는지 모른다. 함께 한 김태일 팀장은 특히나 지질과 자연생태에 관심이 많은 이다.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눈에 담고 머리에 새기는 모습이 진지하기 그지없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저 환상적인 풍경일 뿐인 이 길이 누군가에겐 그 이상으로 중요하고 또 심도있는 관찰이 필요한 길이다.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며 그 길을 걸으며 각자의 만족은 커져만 간다.

<카페 옆을 지나 저동옛길로>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 끝나는 무렵, 이 깊은 곳에서 어찌 장사가 될까 싶은 카페 겸 농장을 지나 산을 향해 오른다.

여기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저동옛길과 하나는 행남등대로 가는 길이다. 행남등대까지는 이 곳에서 걸어서 약 15분 가량, 왕복으로는 30여 분이 걸린다. 그래도 울릉도까지 왔는데 행남등대를 놓칠쏘냐, 발걸음을 옮긴다. (원래 행남해안산책로는 행남등대에서 소라계단을 통해 저동까지 이어져 해안길을 따라 저동항에 닿는 길이나, 태풍의 영향으로 소라계단부터의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등대 안내판을 따라>

<아름다운 길이 이어진다.>

등대 안내판을 따라 오르는 길, 그 길은 완만한 오르막이며 지금껏 옆에 둔 바다를 내려다보며 걷는 길이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동해의 길고 푸른 물결이 아득하게 느껴질 때 쯤, 조금은 땀이 난다 싶을때마다 시원한 바닷바람은 온 몸을 감싸고 활력을 넣어준다. 이제사 흙길을 밟는구나…하는 기쁨에 취할무렵, 등대에 거진 다 와서 보이는 풍경은 과연 올라온 보람이 있다 싶다.

<관음도와 북저바위, 죽도가 보인다.>

저동항의 앞으로 북저바위가, 그리고 그 뒤로 관음도와 죽도가 보인다.

아찔하게 깎아내려진 절벽 밑에 고인 물은 당장이라도 용이 솟아오를 듯 하다. 시원한 바람이 수면위로 흔적을 남긴다. 이 순간, 다시 한 번 이 곳이 울릉도라는 것을 깨닫는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이 풍경, 탄성이 자연스레 입에서 흘러나온다.

<행남등대에서 바라본 저동항의 풍경>

행남등대에 올라 뒤편의 전망대에 도달한다. 전망대에서는 저동항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오늘 트레킹의 목적지이다. 촛대바위도 멋지고 양쪽에 자리한 등대 사이로 만선의 고동을 울리며 나아가는 어선의 모습도 멋있기 그지없다. 그 뒤로 보이는 내수전, 바다의 북저바위까지 모든것이 어우러진 저동의 풍경이 평화롭다.

도동항이 조금은 더 관광객에 특성화된, 이른바 관광지화 되어있다면 저동항은 아직은 어항으로서, 주민들의 삶이 더 남아있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이제 저 저동항으로 간다.

<저동옛길, 그 옛길은 도동까지 산자락을 넘어 이어진다.>

온 길을 되돌아가 저동옛길 표지판을 만난다. 이제 저동항 방면으로 저동옛길의 자취를 담아 걸어가기로 한다.

본디 도동과 저동 사이의 해안선은 깎아지른 절벽과 높은 고개덕에 울릉도 일주도로도 한 수 감아주고 돌아가는 부분이다. 그렇다해도 자동차와 거리가 먼 시절, 울릉도 사람들은 두 발로 가장 빠르고 쉽게 갈 수 있는 합리적인 길을 닦았으니 그것이 저동옛길이다. 물론 쉽다는 것은 울릉도 사람들에게나 어울릴 표현이다. 이 저동옛길을 따라 저동항으로 나아가는 데엔 제법 힘이 든다.

<꽤 가파른 오르막을 만난다.>

<아직도 생명력이 강한 이 길이 아름답다.>

옛길이라고 하지만 이미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이 길은 강인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 그 생명력은 울릉도 특산물인 명이와도 닮았음이다.

명이나물의 ‘명이’는 그 지난한 개척의 세월, 겨울에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이 나물로 배를 채우고 명을 이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답사의 시기는 3월 말, 지천에 올라오는 싱그러운 어린 명이를 따라 그 세월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도동과 저동을 오가는 수많은 짐들, 때로는 신부를 태운 가마도 이 길을 따라 오갔을 것이다. 그 한 발자욱마다 짙은 땀이 스며들었음을 생각하니, 삶의 땀방울이 그대로 명이나물로 변해 다시금 삶을 이어가게끔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더해본다. 그 숭고함이 깃든 옛길, 그야말로 가치있는 길이다.

<거친만큼 참 순박한 길이다.>

<거쳐온 행남등대가 보인다.>

숨을 한참이나 몰아쉬며 걷다가 되돌아보니 지나쳐온 행남등대가 보인다. 어디만치나 왔는가 가늠해보니, 이제 벌써 이 옛길도 절정을 맞이한 셈이다. 전체구간 중 가장 높다 싶은 구간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만만치 않다, 길의 어려움도, 길이 가진 깊은 삶의 자욱도.

처음에 가졌던, 이 정도면 울릉도 트레킹의 첫 시작이자 몸 풀기로 괜찮은 길이라는 생각이 얕았음이 드러난다. 어디 길의 가치를 난이도에서 찾을쏜가. 스스로도 몇 번이나 그런 얕은 잣대를 버리려 함에도 이렇게 진득한 길을 만날 때마다 다시금 두들겨 맞고 깨우치니, 이 걸음은 우보(牛步)가 아닌 우보(愚步)이다.

<저동 촛대바위의 모습>

<저동항으로 들어선다.>

길게 내려오던 길은 어느새 산기슭부터 시작된 어촌마을의 끝자락에 닿는다. 이제 저동옛길과 안녕을 고할 때이다. 촛대바위의 우뚝함을 담고 잘 정비된 항구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이 옛길은 지금의 저동의 번영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공도화 정책이후 처음 개척자들이 왔던 조선시대부터 수탈의 흔적을 지녔던 일제강점기, 그리고 근대를 지나 현재까지… 삶의 흔적이자 생명줄과도 같았던 길은 이제는 옛 추억을 담은 힐링의 길로 남았다. 그렇게 우리는 그 길을 걸으며 절경을 탐하면서 또한 그 질박한 삶의 흔적도 좇았다.

내려와 작은 어선 정비소 옆의 구멍가게에서 캔 음료를 하나 사서 마신다. 목이 따갑게 내려가는 그 청량함, 이 길을 울릉도 여정의 첫 길로 선택하기 잘 했다는 자찬으로 축배를 든다. 다리를 잠시 주무른 뒤 촛대바위가 우뚝 선 방파제로 향한다.

울릉도의 첫 날, 반나절의 트레킹 여정은 이렇게나 속이 꽉 찬 보물이다.

<촛대바위 방파제에서 어선을 내려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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