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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진정한 샹그릴라를 찾아서 ① – 황민아

  • 무작정 찾아 떠난 중국의 진정한 샹그릴라 ‘니루’  

<게스트하우스에서>

중국 샹그릴라를 오빠와 함께 여행하던 어느 날 나는 중국인 게스트하우스 아저씨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 부근에는 사람들이 가지 않는 보물 같은 장소가 있어. 진정한 샹그릴라라는 소문도 있지. 하지만 그곳에 가려면 삼 일을 걸어가야 겨우 그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나와. 그곳에 사는 몇몇 현지인들 빼고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거야”   

나는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가 들려주는 동화 이야기에 빠져든 것처럼 아저씨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나요?”         

“나도 이야기만 들은 거라, 잘은 모르는데 일단 그곳으로 가기 전 마을까지는 어떻게 가는지 알려줄게. 그 다음에는 현지인들에게 물어서 가봐. 그곳 이름은 ‘니루’야.”      

<가운데 계신 분이 ‘니루’의 존재를 알려 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현지 중국인들도 잘 모른다는.

어쩌면 그곳이 진정한 샹그릴라 일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모험을 떠난다는 것이 나를 흥분시켰다.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중국인 배낭여행자 친구들도 경청해서 듣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나는 망설임 없이 짐을 쌌다. 당장이라도 그곳을 향한 모험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함께 이야기를 들었던 중국인 친구들도 우리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가방에 트레킹 폴과 식량, 텐트, 침낭 그리고 필요한 최소한의 의류를 챙겨 작은 가방에 집어넣었다. 

<’니루’를 찾아서. 중국인 친구들과 동행하여 떠난다.>

다음 날 아침,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고 있던 우리를 본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는 그곳을 꼭 찾기를 바란다며 따뜻한 포옹을 해주셨다. 나는 아저씨에게 꼭 그곳을 찾아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어제 미리 구매해둔 티켓을 들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버스를 찾고 있는데 구석에 작은 버스 하나를 발견했다.

모험의 시작점으로 가는 버스다.

차에 올라타니 시골 주민들의 알록달록한 보따리들이 가득하다. 중간 중간 보따리 속에 얼굴만 내미는 닭도 몇 마리 보인다. 우리는 맨 뒷 자석에 딱 붙어 앉았다. 버스가 달리기 시작했다. 함께하는 친구들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덜컹거리는 버스의 몸짓에 스르르 잠에 들었다. 한참이지나 잠에서 깨어날 때쯤 ‘니루’에 가기 전, 작은 마을로 가는 길목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까지 가는 버스나 대중교통은 전혀 없다. 가려면 히치하이킹을 하거나 아니면 꼬박 삼일을 걸어가야 한다고, 오늘은 시간이 늦었기에 근처 호스텔(?)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내일이면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길을 걸어 나아갈 것이다. 

<작은마을로 가기 전 묵었던 동네>

호스텔에 짐을 풀고 잠시 산책을 했다. 하늘에 별이 하나둘씩 피어났다. 곤충들은 콧노래가 화음이 되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바람은 살랑살랑 그들의 장난에 맞추어 이리저리 일렁였다. 나는 잔잔한 그들의 멜로디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도 너희처럼 콧노래 부르며 사는 삶을 살고 싶어.”             

여행한 지 고작 3주가 지났다. 정해진 것 없는 이 여행은 나를 궁금하게 만든다. 매일 밤 내일은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 나는 또 어느 곳에 서 있게 될까 라는 기대감을 안고 잠이 든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다. 그저 반복되는 일상, 치이다 못해 힘겨워 겨우 지탱하던 삶을 살았다. 그랬던 내가 내일의 기대감에 흠뻑 젖어 옅은 미소로 잠들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내 삶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내일이면 ‘니루’라는 곳을 찾아 떠날 것이다. 진정한 샹그릴라를 만날지 아니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오늘에 만족하고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날.  

창문 틈으로 새어나온 햇살에 눈을 떴다. 니루를 찾아가기 위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일뿐. 아침에 일어나 마을 주민에게 니루 마을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주민분이 대답했다.      

“전에는 비포장 길을 따라서 한참을 가야 했지만 지금은 포장도로가 깔려있어서 조금은 편하게 갈 수 있어요. 이 길을 따라가면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혹시 걸어가면 며칠이나 걸릴까요?”            

나의 질문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아저씨, 차도 아니고 어떻게 걸어갈 것이냐며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걸어가면 2박 3일은 걸어야 할 거예요. 텐트 칠 곳도 마땅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하려고……”

<도로를 걸으며 본 풍경>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런 걱정 없이 먹을 식량과 과자를 왕창 챙겨 가방에 넣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니 생존을 위한 식량은 필수이다. 무거워진 가방을 지고 우리는 새하얀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마을 주민들이 농사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인다. 뙤약볕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모습이 왠지 찡하지만, 눈물 날만큼이나 아름답다. 뜨거운 태양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농민의 땀방울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며 미래일 것이다.

이 세상에 진정한 위대함은 돈과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도로를 걷다 만난 중국인 아저씨와 아주머니>

날씨는 눈부시게 좋았고, 길목에는 복숭아나무가 가득했다.

대롱대롱 매달린 복숭아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니 주민 분들은 복숭아를 가득 따서 우리에게 주셨다. 탱글탱글한 복숭아를 받아 들고는 우리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을 걸으며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 여행 이야기. 국적은 다르지만 비슷한 나이 또래에 친구들이라 이야기가 참 잘 통한다. 취업에 대한 불안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중국인 친구들은 여행을 통해 여러 가지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것 같았다. 나와 오빠도 충분히 겪었던 부분이기에 친구들 말에 공감했다.   

하늘이 노란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여섯 시간이 지나있다. 어쩐지 발바닥이 아프다. 지치기 시작할 때쯤 우리는 더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걱정했다. 도로 주변으로 텐트 칠 곳이 없다. 도로를 걸으며 지나다니는 차를 하루 종일 한 대도 보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길 위에 텐트를 치는 것은 위험하다.     

“민아야, 아무리 생각해도 도로 위에 텐트 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마땅한 곳이 나올 때까지 더 걸어가 보자.”   

다독이는 오빠의 말에 수긍하고 조금 더 힘을 내보기로 했다. 지칠 때로 지친 우리,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고 있는데, 우리 뒤로 경운기 한 대가 오기 시작했다!

<경운기를 태워주신 아저씨>

우리는 팔짝팔짝 뛰며 경운기를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는 팔짝거리는 우리의 모습이 우스웠는지 경운기를 세우며 어디로 향하는지 물으셨다.           

“어디까지 가니?”              

“저희는 니루 마을을 찾아 떠나왔어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가시는 곳까지만 실례할 수 있을까요?”   

아저씨는 그곳까지는 안 가지만 자신의 집까지는 태워다 주겠다며 흔쾌히 우리를 태워주셨다. 덜덜덜 거리는 경운기 소리,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 갑자기 벅찬 무언가가 나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사소한 순간에 처음 느껴보는 이 감정.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것. 행복이다.        

나는 삶의 가치를 큰 것에 두며 살아왔다.

무언가 큰 것을 이루어 내야만이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왔다. 그래서 작은 기쁨은 나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게 하지 못했다. 난 늘 한 번의 행복을 위해 수많은 불행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깨달아 버렸다.

내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에도 작은 기쁨들이 내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그동안 내 마음에 욕심을 실어 수십 개의 함정을 파놓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아저씨의 집. 소박하면서도 운치가 그윽하다.>

15분 정도가 지났다. 아저씨는 경운기를 멈춰 세웠다. 이곳이 아저씨 집이라며 여기까지밖에 못 데려다줄 것 같다고 하신다.

아쉬웠지만, 그래도 우리를 태워주신 아저씨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작별인사를 했다. 아저씨께서 자신의 집 마당에서 텐트를 치라고 권유했지만, 마당에 소똥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텐트를 칠 수 없었다. 아저씨 말로는 조금만 걸어가면 물과 텐트 칠만한 곳이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계속해서 걸어 가보기로 했다.

<겨우 찾아낸 캠프사이트!>

지친 몸을 이끌고 삼십 분 정도를 힘들게 걸어간 길 위에는 깨끗한 계곡물과 텐트 칠 공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기쁨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늘은 이곳이 우리의 집이다.

고생을 하다 보면, 고생이 고생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겪는 힘겨운 과정이 예상치 못한 행복을 주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고통 없이는 큰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고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더 큰 행복과 기쁨을 만나기 위한 하나의 절차일지도 모른다. 행복, 기쁨, 희망, 사랑 이 모든 것이 어쩌면 빛바랜 것들과 떨어질 수 없는 가까운 관계일지도.         

이제부터 나는 좌절 속에서 희망을 찾아보려 한다. 설령 끝내 찾지 못한다고 해도. 스물여덞 나이에 어렵게 찾아온 오늘의 기적적인 깨달음이 어느 날 또다시 다가올지 모르니까.          

텐트를 치고 몸을 뉘였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하늘을 보았다. 아름답게 빛나는 얼굴. 닮고 싶은 너를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살짝 속삭였다.

“ 고마워, 내일도 잘 부탁해. “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