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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걷고싶다 – ‘해남 달마고도’

<해남 미황사 설경 – 해남군청>

‘땅끝’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리감은 상당하다. 인간이란 본디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세상의 중심으로 인지하는 까닭에 ‘땅끝’이라는 말은 내가 있는 곳과 제일 멀리 떨어진 곳을 가리키는 뜻으로 인식한다.

정확한 지명을 대보자. “해남군”.

비행기로 1시간 20여분이면 일본 후쿠오카, 1시간 40분이면 오사카나 도쿄, 2시간 이내로 중국 상하이에 닿는 시대임에도 대한민국의 “해남군”이 주는 엄청난 거리감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서울에서 차로 꼬박 6시간 이상 운전해야 가는 곳, 아래로 더 갈 길이 없는 그 곳은 여행보다는 “배추”와 “고구마”로 더 익숙한 곳이다.

그러나 그런 곳이기에 인간의 삶은 더욱 느리게 발전하고 길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남아있다.

그 곳에 있는 ‘땅끝길’은 남도의 끝자락이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모든 길의 시작지점이라 볼 수 있으며 ‘코리아트레일’도 그 시작지점을 해남으로 지정하고 있기에 길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먼거리만큼이나 깊은 애착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지역이다.

이러한 가치를 지닌 해남군에 또 다른 명품 길인 ‘달마고도’가 생겼다고 하여 큰 관심을 얻고 있다. 어찌보면 일종의 열풍이라 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다. 그렇다면 하루가 멀다하고 수많은 길들이 생겨나는 이 시대에, 머나먼 고장의 둘레길이 이렇게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해남 달마산 설경 – 해남군청>

이 달마고도는 해남군의 명산인 달마산의 둘레를 따라 걷는 길이다.

산의 둘레를 걷는다는 것이 그 무슨 대단한 길일까 싶겠지만 달마산은 영험한 산이다.

달마산은 해남군에서도 남단에 치우쳐 긴 암릉으로 솟은 산이다. 두륜산과 대둔산을 거쳐 완도로 연결되는 13번 국도가 지나는 닭골재에 이른 산맥은 둔덕같은 산릉을 넘어서면서 암릉으로 급격히 모습을 바꾼다.

이 암릉은 봉화대가 있는 달마산 정상(불썬봉)을 거쳐 도솔봉(421m)까지 약8㎞에 거쳐 그 기세를 전혀 사그러뜨리지 않으며 이어진 다음 땅끝 (한반도 육지부 최남단)에 솟은 사자봉(155m)에서야 갈무리하는 것이다.

달마산을 병풍 삼아 서록에 자리잡은 미황사 는 이 산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신라 경덕왕 8년(749)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항)에 닿자 의조 스님이 100명 향도와 함께 소 등에 그것을 싣고 가다가 소가 한 번 크게 울면서 누운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다시 소가 멈춘 곳에 미황사 를 일구었다고 한다.

어여쁜 소가 점지해준 절인 동시에 경전을 봉안한 산이라는 뜻이다.” -해남군청

이 땅의 불교를 이야기 할 때 빠질 수 없는 산임과 동시에 지금도 그 깎아지르는 듯 한 바위의 거칠음이 보는 이를 아찔하게 하는, 전체 고도가 높지는 않더라도 보는 눈이 있다면 한 번에 ‘보통이 아닌 산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 영산이다.

그렇다면 그 달마산 안에 위치한 사찰은 어떠한가?

달마산을 대표하는 사찰과 암자 하면 떠오르는 것이 미황사와 도솔암이다.

<달마산을 병풍처럼 두른 미황사의 대웅전 – 해남군청>

미황사는 사실 근래까지 버려지다시피 한 절이었다고 한다. 그 역사를 따진다면야 신라 경덕왕 8년(749년)으로 올라가고 한창 절이 번성할 때엔 스님이 400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숭유억불로 과거의 영화는 잊혀진 이야기가 되었으며 100년 전에는 절을 살리기 위해 시주를 모으고자 배를 타고 떠난 소속 스님 40명이 풍랑에 전원 익사하는 큰 사고를 겪기도 하였다. 그 뿐이랴, 한국전쟁 때 빨치산을 숨겨주었다고 해서 주지 스님이 총살을 당하며 폐사(閉寺)의 갈림길에 섰으니 이 땅의 아픔을 그대로 갈무리한 절이나 다름없다.

<깎아지른 정상부에 석축을 쌓고 세워진 암자 도솔암 – 해남군청>

도솔암도 미황사의 말사답게 이야깃거리가 수두룩한 암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기도 도량으로 나와있는 도솔암은 미황사의 말사이건만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 스님이 미황사 창건 전에 수행정진하였던 암자니 나이로는 미황사의 형 뻘인 셈이다.

정유재란 당시 전화로 불에 타 터만 남았던 이 암자는 달마산의 정상부에 있어 재건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곳으로 여러번의 복원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암자이다.

그러나 2002년 6월, 오대산 월정사의 법조 스님이 3일간 연달아 꿈을 꾸고 찾아와 도솔암 터에올라 32일만에 단청까지 복원, 중창했다 하니 ‘뜻이 있으니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짐’이 정말로 부처님의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복원된 도솔암은 달마산 정상부의 수려한 풍경과 어우러져 아침 저녁으로 해가 뜨고 질 때마다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암자로 유명하다.

이렇듯 멋진 사찰과 암자가 달마고도의 전부가 아니다.

조선시대 제주도를 오고가던 포구이자 영암군에 속한 수군진이었던 이진진성 등의 역사유적과 바위 너덜겅과 갖가지 사연을 가진 계곡(재), 샘이 있어 걷는 걸음마다 재미가 묻어난다.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길의 탄생과정이다.

이 달마고도는 최근의 길 열풍에 따라 급조한 길도, 편의를 위해 중장비를 투입하여 고르게 다듬고 깎아내린 길도 아니다.

미황사의 주지 금강스님 (폐허나 다름없는 미황사를 1989년부터 2년간 직접 지게에 돌을 지고 날라 고치며 다시 생명을 불어넣은 스님이기도 하다. 2000년부터 17년째 주지를 맡고 있다.)이 길을 구상, 일체의 중장비를 불허하고 손수레와 호미, 삽, 지게를 이용, 40여 명의 일손과 함께 250일에 걸쳐 만들어낸 ‘원시적’이자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한’ 길이다.

그렇게 기존의 9km의 옛길에 새로이 9km를 이어붙여 총 18km의 둘레길이 탄생하였으니 어찌 이 길을 걷지 않을 수 있을까.

<달마고도 노선도>

산길을 올라 여정을 시작한다면 6시간에서 7시간 정도 걸려 달마고도를 돌 수 있다.

혹여 이 겨울에 땅끝의 여명을 받아 아침에 오른다면 쉬엄쉬엄 걸어 내려올 때 쯤엔 뉘엿한 낙조의 감동에 몸을 떨지도 모를 길이다.

천년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간 고찰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즐거운 여정이며 너덜겅에서 느껴보는 자연의 신비도 잊지못할 길의 추억으로 쌓일 것이다.

한 겨울에 걸을만한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따뜻한 남쪽 여행을 꿈 꾸는 이라면, 길을 통해 산과 바다를 모두 바라보며 몸 안의 나쁜 기운을 온전히 버리고 밝아오는 새해의 깨끗한 기운을 담고 싶다면 달마고도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

‘모두가 부처’라는 말마따나 그 영험한 산의 둘레를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심중에서 무언가 깨닫게 될 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분명 그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모두 길을 걷는 것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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