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By

광고문의

신망리역에서 만난 완벽한 평화누리 – 유일순대국

<유일순대국. 신망리역 맞은 편에 있다.>

비가 굉장하게 내렸다. 벌써 거진 1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다.

그날 나는 무슨놈의 마가 끼었는지 앞 뒤로 수일 째 화창했던 날 사이, 딱 그 하루의 폭우를 선택하여 온 몸으로 비를 맞아가며 연천을 걷고 있었다. 평화누리길 12코스, 통일이음길이 그 길이었다.

신망리역을 지나며, 젖은 몸이 조금씩 떨려왔다. 아침 일찍 나선터라 공복이기도 하고 뭔가 배를 채우고픈 마음이 강했다. 그때 철로 건너에서 보이던 순대국 간판. 국밥이면 사족을 못 쓰는 나에게 그 유혹은 어떤 것 보다도 강렬했다.

한참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아직 남은 거리가 20여 km나 되기에 자칫 밥을 먹은 것이오히려 탈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만 남긴 채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순대국… 순대국… 순대국…”

무슨 주문이라도 외우는 듯 그렇게 순대국을 중얼거리며 신망리역 철로를 따라 걸었다. 무던히도 길게 느껴지던 그 길의 여정을 마치고 잔뜩 젖다 마르다를 반복해 지칠대로 지친 심신을 태운 버스가 신망리역에 정차했을 때, 나는 그 순대국을 떠 올리고 남은 거리를 걸어가더라도 이 것은 먹고 가야 되겠다는 심정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유일순대국의 입구는 도로변 반대쪽에 있다.>

출구를 찾지 못 해 잠시 당황하다 도로 반대편, 마을 안쪽으로 출구가 있음을 발견하고 들어선다.

참으로 애매한 시각이다. 오후 4시 반.

마늘을 다듬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던 아주머니 두 분이 “무슨일로 오셨느냐?”고 묻는다.

웃음이 나온다. 아니, 식당에 밥 먹으러 왔지요. 하긴 때를 한참 놓친 격인데다 몰골이 말이 아니니 맞이하는 이도 당황했을 것이다.

메뉴판을 잠시 훑어보고 순대국”특”으로 주문한다. 오늘 이만치나 고된 여정을 한 나에게 이 정도의 포상은 당연하지 않을까? 주문을 하고 나서 내부를 둘러보니 정말 나 혼자 가게를 전세 낸 셈이다.

<유일순대국 내부의 모습>

<인근 군부대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최전방에 인접한 지역이기에 일대에는 군부대가 많다. 그래서 이 유일순대국의 벽면에는 군인들의 흔적이 한가득이다.

휴가 복귀 전에 배를 채우고 위병소를 향했을 발걸음, 휴가를 나와 동기들과 꽃마차를 기다리며 뜨던 들뜬 한 수저, 고난한 일과를 마치고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나누고 하루를 되돌아봤을 부사관, 간부들의 한 사발이 각각의 사연을 담고 벽에 쓰여져있다.

작대기 한 두개와 이름뿐인 흔적에도 웃음이 만발했을 것이다. 혹여는 거기에서 선임의 흔적을, 후임의 흔적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 때 그 유일 순대국에서 너의 이름을 봤다는 꾸중아닌 꾸중에 탄약고 근무자는 웃음을 참았음이라.

필자 역시 군 생활을 이 연천군 최전방에서 보냈지만 지역이 떨어져 있어 군 생활 중 신망리역을 지날 일은 없었던 듯 하다.(인근의 태풍전망대로 향하는 길을 더듬어 보아도 확실히 신망리 방면에서 이동했던 기억은 없다.)

그래서 필자에겐첫 만남인 곳이지만 이 가득한 군생활의 흔적들을 보노라니 어느새 너무나 익숙했던 청춘의 26개월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휴가를 나갈 때, 전곡역의 까치분식에서 밥을 시키면 언제나 사람 수만큼계란후라이를 해 주었었지… 의정부 역에 내려서 바로 지하철을 타지 않고 역사의 롯데리아 햄버거를 먹는 것이 즐거움이었어. 할인행사로 데리버거가 개당 1,000원일때 이등병 100일 휴가를 나왔던 우리들은 각자 네다섯 개 씩 먹었었지. 벌써 20년 전의 이야기네…’

<내 앞에 놓인 순대국 한 그릇>

잠시 옛추억에 젖어 흐뭇한 미소를 띄고 있을 때, 순대국 한 그릇이 눈 앞에 놓이며 어서 현실에 집중하라는 듯이 나를 일깨운다.

그 푸짐한 구성, 구수함 가득한 들깻가루가 빚어내는 모양새에 종일 굶은 뱃속이 아우성이다. 구수하게 피어오르는 그 냄새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다.

필사의 인내력으로 당장 뱃속으로 집어삼키려는 본능을 누르고 먼저 국물을 한 수저 떠 입에 담는다. 하얗게 돼지 뼈를 우린 육수에 별도로 풀어넣는 다대기가 얹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양념과 간이 되어 끓여져 나온 이 국물은 감자탕의 국물과 아주 비슷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거부감이 없다.

거기에 펄펄끓는 게 아닌, 마치 토렴하여 내어놓는 국밥 마냥 (실제로 예전엔토렴을 해서 내었다고 한다.)적당한 온도를 가지고 있어 바로 뱃속을 뜨겁게 채우기에도 좋다. 이 기묘한, 감자탕을 눈 앞에 둔 듯한 맛과 향이 아주 일품이다.

<푸짐한 머릿고기와 내장이 몸에 원기를 더한다.>

국물은 백점 만점에 백점 그대로다. 그럼 그 안은 어떨까?

“특”답게 푸짐한 고기와 내장이 저마다의 감칠맛을 자랑한다. 각 부위마다 독특한 질감과맛을 자랑하는 덕에 어느 수저질에도 진부함이 없다. 이것은 꼬들하고 저것은 부들하다. 요것은 고소한 비계맛이 일품이라면 저것은 살코기가 가진씹는 맛이 확 치고 올라온다.

각각의 개성이 넘치는 꾸미들을 포용하는 것은 예의 그 구수한 국물이다. 지금 내 앞에 만한전석을 가져놔본 들 눈이라도 가겠느냐?

떨리는 몸이 안정을 되찾고 난리법석이던 뱃속도 어느새 고요해진다. 텅빈 뒤주가 가득 찬 것처럼 내 배도 마음도 온전히 가득찬다. 그렇게 한 뚝배기를 다 비울 때 쯤 문이 열리고 군인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아직 일과시간이 남았건만 이른 저녁을 먹으러 오는 것을 봐서는 오늘 당직을 설 당직사관이나 외부에 업무를 보느라 돌아다니고 복귀중인 간부일게다.

의외로 여기저기 식당이 많은 신망리역 일대이지만 그렇게도 군인들이 무던히 찾는데에는 이곳만의 맛과 정이 있어서가 아닐까? 반가이 맞아주고 스스럼없이 주방에 ‘국밥 하나요!’를 외치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다음 날 아침, 내 선택은 역시 유일순대국이었다.>

기분좋게 식사를 마치고 내일 몇 시에 문을 여는지 물어보았다. 아침엔 주인 할머니가 일찍 여신다고 한다. 6시 정도부터 문을 연다고.

일부러 물어본 것은 다음 날 아침도 이 곳에서 먹기 위함이다. 지금 내가 너무 맛있게 먹은 순대국이 오늘의 험한 여정이 탄생시킨 금칠일 수 있으니 다음 날 멀쩡하게 다시 한 번 먹어보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함이다.

두 끼 연속 순대국이니 오히려 평은 더 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과연 나를 감탄시킬 수 있으려나.

<얼큰함을 더해 줄 청양고추절임 다짐>

이튿 날, 숙소를 나와 유일순대국으로 향했다.

사람 좋아보이는 할머님이 국자를 휘휘저으시다 봉창 두들기는 사람에 놀란양 맞아주신다.

이윽고 나온 순대국”특”, 맛과 향이 그대로다. 살짝 더 깔끔한 느낌도 없잖아 있다. 아마 국밥의 특성 상 오후에 더 졸여지면서 진해지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크게 차이가 없는 그 국밥 한 그릇은 너무나 어이없게도 내 의문을 박살내며 다시 한 번 마음의 뒤주를 가득 채워버린다.

허겁지겁 퍼 먹는 내 등 뒤로 주인 할머니의 타령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50년 전에 여기를 와서 군인들을 상대로 술 장사니 뭐니 안해 본 것 없었어.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자식을 낳고 자식이 커 가니 아, 내가 내 자식 보기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해야겠구나 싶더라구. 그래서 순대국집을 차렸지. 내 청춘이 여기 다 들어갔소. 여기에 내 인생 절반을 똑 떼어다 쏟아버렸지…”

‘이제는 충분히 자랑스러워 해야 할 일, 자랑스러워 해야 할 맛 입니다.’

마음 속으로 답하고 마지막 국물을 들이킨다. 끈적하게 달라붙는 입술과 든든한 뱃속에 갓뽑은 자판기 커피 하나가 더해진다. 이른 아침 그렇게 문을 나서니, 평화누리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바로 평화누리다. 이 순대국이 평화누리다.

● 유일순대국 :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연신로494번길 12 (신망리역 맞은편)/ 031-834-0522

● 메뉴 : 순대국 8,000원 / 특 10,000원, 수육大 25,000원 / 中 20,000원, 모듬순대 大 25,000원 / 中 20,000원 등

●영업시간 : 06:00~20:00

● 주차 : 매장 입구 주변 가능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