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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잣집 지나 함라재 넘어 금강이라 – 함라산둘레길 (삼부잣길 구간)

<함라산길 지도 – 자전거코스와 둘레길이 구분되어있다.>

백제의 유구한 문명과 역사를 지닌 도시 익산.

익산시는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이자 호남의 관문 역할을 했던 곳이다. 드넓은 곡창지대를 가지고 있어 넉넉한 인심으로도 유명했으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등을 통해 그 옛날부터 매우 중요시 여겨진 고장임을 알 수 있다.

이 익산에도 아름다운 둘레길이 있다. 바로 함라산 둘레길이다. 

높은 산이 없이 대부분이 너른 평야지대인 탓에 이 함라산은 해발 205m임에도 꽤나 도드라져보인다. 높이는 높지 않지만 산세는 수려하고 길게 뻗어있어 그 줄기는 금강의 연안까지 닿는다. 이 함라산 둘레를 도는 길이 함라산 둘레길로 전체 길이는 약 24km에 이른다. 

그 중 많은 이들이 찾는 코스는 함라면 함열리에 위치한 삼부잣집 돌담길을 따라 함라재를 넘어 둘레길에 합류, 남쪽으로 돌아 웅포 곰개나루까지 걷는 코스이다. 약 10km에 이르는 구간으로 소요시간은 3시간 반에서 4시간 가량 소요된다.

로드프레스는 따뜻한 햇살이 동토를 녹이던 날 이 길을 걸으며 함라산이 가진 고즈넉함을 맛 보았다.

*함라산 둘레길 삼부잣집 출발 구간은 도착지인 곰개나루까지 식사를 할 곳이나 음료등을 살 곳이 없다. 출발 전 삼부잣집 인근의 읍내에서 필요한 것을 미리 구비하는 것이 좋다.

*표식이 약간 부족한 편이지만 크게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면서는 야생차나무 군락지와 입점리고분전시관, 웅포곰개나루 등 세 곳의 지점을 기억하고 표지판을 따라 가면 된다.


 

<삼부잣집 주변은 한옥마을 조성에 한창이다.>

삼부잣집을 따라 오늘의 여정을 시작한다.

이 삼부잣집은 이배원 가옥, 김안균 가옥, 조해영 가옥을 말하며 만석꾼 집안들이었다고 한다. 인심도 넉넉해 지나가는 길손이 있으면 그냥 보내는 법이 없이 불러들여 노잣돈과 식사를 대접해 보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척제 이서구’가 지은 ‘호남가’에도 “풍속은 화순이요, 인심은 함열인데”라고 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삼부잣집의 인심을 말한 것이라 하니 얼마나 넉넉히 베풀었는지 알 수 있다.

각 부잣집마다의 전설도 재미있다. 

이배원의 조부(혹은 어머니라는 말도 있다.)는 가세가 기울어 처가인 웅포를 향해 가다 함라에서 하루 묵게 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사정을 듣고는 누룩장사나 해 보라 하여 그 말을 듣고 장사를 시작, 성공했다고 한다. 그 성공을 바탕으로 곡식도매업을 벌여 만석꾼으로 거듭났으니 그의 소유 배가 엽전을 하도 많이 실어 가라앉을 정도였다니 상상이 쉬이 가지 않는다.

전북에서 제일 큰 가옥이라는 김안균 가옥에 대한 전설로는 어느 날 길을 가다 길 가에 쓰러진 스님을 구해 보살펴주었는데 그 스님이 명당이라 찍어준 자리(지금의 자리)에 집을 지었더니 이렇게 거부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함라산 산길 한 가운데 큰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있어 마을 사람들이 겁을 먹고 다들 되돌아왔는데 한 소년이 용기를 내어 앞으로 다가가니 그게 구렁이가 아니고 구렁이처럼 또아리를 튼 채 놓여진 엄청난 돈 꾸러미들이라 그것을 가지고 내려와 부자가 되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삼부잣집의 어느 집안인지는 모르겠으나 앞의 두 집안이 각자의 전설을 가지고 있으니 조해영 가옥의 전설이 아닐까 추측해 볼 따름이다.

 

<김안균 가옥을 지나 올라간다.>

삼부잣집을 둘러보노라니 이 삼부잣집 주변으로 한옥마을 조성이 한창이다. 함라한옥마을협동조합의 이양몽 대표님을 만나 마을에 대한 내력을 더 듣는다.

“원래는 함열이 함라였고 함라가 함열이었어요. 이름이 서로 바뀐 것이죠. 일제강점기에 함라에 기차역을 세우면서 함열이란 이름을붙었고 그래서 그 지역이 함열로 굳어졌지요. 원래 함열이었던 지역은 이름을 뺏겼으니 함라로 개칭했고요.”

꽤 재미있는 이력이다. 말씀을 더 청해본다.

“이 삼부잣집들이 정말로 다들 베푸는데 아까지 않았어요. 그런데 베풀면서도 원칙이 있었지요. 배불리 먹이고 채워주면서도 그냥 주는게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꼭 일을 시켰어요. 곰개나루까지 가서 소금을 좀 사서 와라, 굴비를 좀 가지고 와라 하는 식으로요. 그래야 서로 편하거든.”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 댓가를 제공한다면 인심을 받는 이도 면목이 서고 주눅들지 않는다. 제공하는 이도 노동의 댓가를 주었으니 그 사람을 허투루 여길 수 없다. 조상들의 지혜가 이렇게나 대단하다.

“여기에서 곰개나루까지 30분이면 넘어가는 고갯길이 있거든. 그리로 해서 다녔었지요. 지금은 둘레길이 생겨서 그 길이 잊혀져가고 있지만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길이었어요.

 
여기가 참 명당인 곳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도 아주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백제가 다시 부흥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던 백촌강 전투 때 나당연합군이 진을 친 곳이 이 곳이예요. 소정방이 여기에서 주둔하면서 공기를 두고 놀았다는 공기바위도 있지요.”

가만히 듣다보니 마을의 이력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마을 전체를 한옥테마마을로 조성하는 사업이 한창이다. 그렇게 한옥체험관과 다양한 체험시설, 휴식시설을 갖추어 다시 태어날 것이라 하는 이양몽 대표의 말을 듣고보니 정말로 이 마을이 앞으로 어떤 미래를 그리게 될 지 상상하기 어렵다.

 
어떤 모습이건간에 이런 명당 속 전설이 있는 곳이니만치 크게 알려지지 않을까 싶다.
 

<인근의 교회에서 운영하는 올래뜰 쉼터>

멋진 교회 옆에 쉼터가 자리하고 있다. 

함라성결교회에서 함라산 둘레길을 걷는 이들을 위해 준비한 쉼터이다. 일반적인 쉼터와는 달리 확실히 쉬어갈 수 있게끔 단독 가옥 형식으로 꾸며져 있으며 그 안에는 취사가 가능한 주방설비와 식탁, 정수기, 냉장고, 화장실 등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무더운 여름, 혹은 혹한기에 이 길을 걷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고마운 것이 이런 쉼터의 존재일 것이다.

마을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 마을에 위치한 종교시설까지 나서서 함라산 둘레길을 자랑스러이 여기고 편의를 제공하는 모습은 다른 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멋진 계곡. 수량이 늘어나는 철이면 폭포소리 시원할 것이다.>

마을길을 올라 산으로 향한다.

멋진 계곡사이로 폭포가 떨어진다. 한겨울이라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말라버리기 일쑤인 다른 폭포들과는 달리 꾸준히 물이 흐르고 있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폭포가 장관일 때 한 번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이다. 깎아지른 절벽 위로는 대나무숲이 울창하다.

걸으면 걸을수록 참으로 가진 것이 많은 마을이라는 생각이다. 

<함라산으로 들어선다.>

<오르막길이 만만치 않다.>

산 밑에서 표지판을 따라 함라산으로 들어선다. 

길게 누운 함라산을 능선따라 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세로로 질러 넘는 길이기에 오르막길 초입은 꽤나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바람따라 흔들리는 대나무의 몸사래를 헤치고 오르니 숨이 턱까지 찬다. 그래도 이 정도는 걸어야 산을 올랐다 할 수 있다. 조금만 참고 오솔길을 오르다보면 능선따라 조금은 숨을 고를 수 있는 길이 펼쳐진다.

<오래된 함라산 둘레길의 리본표식>

함라산 둘레길은 기본적으로 리본표식에 의존하는 길이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아주 간혹 보이는 리본을 보면 꽤 오래 전 매달아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도에도 1코스와 2코스를 구분하지 않았는데 별도로 코스가 나뉘어져 있는 모양이다. 

익산시청에 문의하니 전체 둘레길이 하나이고 별도의 구간, 코스 나눔은 없다고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빠른 통일, 정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나무표식이 잘 되어있어 전체적으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특히 이 함라산에 들어와서는 말 그대로 산을 최단거리로 세로로 질러 넘는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다른 길로 빠지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갈림길에서 길을 안내하는 표식>

야생차 군락지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이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면 곧 오르막길은 다 넘게 된다.

능선의 정상에 다다르면 위로는 출렁다리가 놓여져 있고 함라산 정상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있다. 둘레길은 그대로 능선을 직진하여 내리막으로 접어드는 코스다. 시간에 여유가 있거나 정상을 정복하고 싶다면 정상을 향하면 좋다. 다리에서 왕복으로 약 40분 가량 소요된다.

이 함라산 고개는 함라재라고도 한다. 옛 보부상들과 과객들이 오갔던 길이다. 금강변까지 갈 수 있는 최단거리 길로 이 고개를 넘어 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온다. 재 아래에는 금광이 있었으며 호랑이가 살고 있어 호환도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온다.

그 때의  보부상, 혹은 어린 학생의 마음으로 걷는다. 지금에도 이렇게나 쉽지 않은 고개인데 그 때 매일같이 이 고개를 넘었을 이들을 생각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고개를 넘어 기분좋은 산길이 이어진다.>

<잠시 쉬어가거나 용변을 해결했다는 똥바위>

걷기좋은 내리막길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다. 문득 능선 정상에서 내려오는 이 길이 왠지 감악산 손마중길과 닮았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예전 걸었던 산길을 새로운 길에서 떠올려보며 하나하나 걸어온 길을 되짚어본다. 길에서 길을 생각하는게 길을 걷는이의 모습이다.

이윽고 똥바위에 닿는다. 

쉽게 잊혀지지 않을 이름의 이 바위는 말마따나 똥을 누던 바위이다. 이 고개를 넘나드는 이들이 금강의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쉴 겸, 겸사겸사 용변도 해결할 겸 찾았다는 곳이다. 아니나다를까, 딱 자세(?)가 나오는 바위 두 쪽이 눈길을 끈다. 한 눈에 아하, 이 양 바위에 앉아 이렇게 저렇게 했겠구나 하고 상상이 된다.

옛길을 걸으며 그 길을 걸었던 이의 발자욱을 쫓고 행동을 따라하지만 이 똥바위에서 만큼은 그저 상상만으로 끝내기로 한다. 앞의 벤치에 앉으면 금강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제 걷기 좋은 길의 시작이다.>

똥바위를 지나 내려가는 길은 너덜지대이다. 겨울에는 낙엽이 바위 위에 쌓여 더 미끄러우므로 조심해야한다. 특히 날이 점점 따뜻해지면서 중간중간 얼은 땅이 녹아 진흙밭이다.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너덜지대를 내려오면 걷기 편한 임도가 나타난다. 시멘트 포장까지는 아니어도 잘 다져진 길로 전기공사 및 산림보호를 위한 차량이 오다닌다. 이 길은 길게 이어져 있으며 대략 1시간 가량 이어진다.

<야생차나무가 자라는 북방 한계선>

감성 넘치는 길을 걷다보니 야생차 군락지를 만난다. 

그렇다. 이 부지에 듬성듬성 난 저 나무들이 야생차나무인 것이다. 차나무가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기에 야생적으로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곳은 이 익산 함라산까지라 한다. 그러고보니 제주를 비롯해 하동이나 보성, 무안, 영암 등 녹차 재배지도 죄다 남쪽이다. 그 곳의 차나무들도 온갖 사람의 정성을 따라 잎을 틔우는데 이렇게 익산 산기슭에서 스스로 군락을 이루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기특하다.

보호를 위해 펜스를 두르고 사람의 출입을 막고 있다. 풍길리야 없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속에 덖지않은 생 찻잎의 향이 한 자락 섞이지 않았을까 코를 연신 벌름거려본다.

<국가지점번호판과 표식안내판>

이 길을 따라 함라산둘레를 계속 걸으면서 국가지점번호판을 보게된다. 

함라산 둘레길 안내판에 붙어있어 위급 상황 때에 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국가지점번호판과 길의 만남은 중요하다. 걷는 이에게 어떤 식으로 올 지 모를 위험을 대비해 무엇보다 확실히 자신의 위치를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별도로 안내판에도 둘레길의 위치를 수치화하여 현위치를 나타내는 숫자가 있다. 이런 부분은 꽤 신경을 썼다고 볼 수 있다.

<함라산에서 내려와 갓점마을을 지난다.>

긴 산길을 걷다가 갓점마을로 내려온다. 

이 한적한 농촌마을은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기와를 얹은 집들과 세월을 그대로 맞은 담장이 걷는 이를 반긴다. 동네 개에게는 낯선 이의 방문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하다. 온 동네가 떠나가라 짖어대는 검둥개, 그 서슬에 놀라 해는 이미 정오를 지나고 있는데 수탉이 목청을 뽑아댄다.

마을 입구에 흔히 있는 사랑방 역할의 정자는 새로 기와를 얹어 멋스럽기 그지없다. 붉은 기와와 노란 기둥과 난간의 배색이 잘 어울린다. 잠시 앉아 물을 마시며 쉰다. 정자 밑의 개울은 봄이 되면 늘어난 수량과 함께 작은 물고기가 노닐 것이다.

<입점리고분전시관에 도착하다.>

갓점마을에서 도로를 지나 농촌 마을길을 가로지르면 새로생긴 도로를 만난다. 그 위로 입점리고분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사적 제 347호로 지정된 입점리고분은 총 21기의 고분이 발굴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자리한 유적이다. 5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고분군에서는 금동관대, 금동관모, 금동신발 등의 높은 지위를 입증할 수 있는 유물들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토착무덤 형식인 구덩이 형식의 돌곽무덤과 함께 중앙집권국가인 백제의 양식인 굴식 돌방무덤이 같은 자리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의 토착세력이 백제에 흡수, 귀속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1986년 출토된 금동관모>

전시관 안에 들어가 백제와 이 지역의 역사를 살펴본다. 다양한 유물을 감상하며 이 지역에 자리를 잡았던 토착세력이 문화적으로도 꽤 강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선은 금동관모에 가서 멈춘다. 1986년 출토된 이 금동관모의 무늬가 주는 수려함은 신라의 관모와는 분명히 틀리다. 신라의 관모가 여러 금동판을 덧대어 보기에도 화려하게 만들었다면 백제의 관모는 여러개의 금동판을 덧대지않고 최소한으로 하되 그 금동판의 무늬 자체에 신경을 썼다는 느낌이다. 내 졸속한 감상이 그러하다. 

<이런 풍경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눈이 간다.>

전시관을 나와 발걸음은 금강으로 향한다. 전시관 인근의 마을길을 걸으며 겨우내 잠 자고 있는 농기구들을 눈에 담는다. 꽤나 손 좀 봐야 움직일 것 같은 경운기와 녹을 닦아내야 할 기구들, 이제는 쓰이지 않을 나무 탈곡기까지 헛간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상이 기지개를 켤 때 쯤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 때엔 슬레이트 지붕 뒤의 야산도 초록내음이 물씬하리라.

<세월의 폭격을 맞은 다리. 그 자체로도 감성을 더해준다.>

마을을 지나 꽤 긴 농작로를 지난다. 기분탓일까 민물내음이 느껴지는 듯 하다. 금강이 지척이다.

길을 따라 걸으며 낡디 낡아 붕괴중인 다리를 만난다. 당연히 다리위로의 통행은 금지되어 있다. 세월이라는 폭탄을 맞은 덕에 난간도 녹슬은 철근을 그대로 드러낸채 위태롭게 몸을 드리우고 있다. 다리 입구의 완공 각인을 보니 1960년대이다. 그래도 50여년 이상 많은 이야기를 몸 위로 받아내었을 것이다. 

누가 건축물에 생명이 없다 하였는가? 

생물학적인 생명은 없을지언정 그 건축물이 지녀온 삶은 있다. 삶과 생명은 모두 Life를 쓰니 넉넉한 마음이라면 그 삶을 생명으로 인식해도 좋다. 그렇다면 이 다리는 생명이 다하기 직전이다. 남은 삶이 의외로 길게 이어질 수 있겠지만 다리 위를 지나는 이들의 이야기는 이제 더는 듣기 힘들 것이다.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기나긴 금강변을 따라 걷는다.>

드디어 금강에 오른다. 충청남도와 전라북도를 아우르는 젖줄 금강, 이 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부여와 공주 등 백제의 숨결이 깃든 곳을 그대로 지나 세종시와 대전 신탄진, 대청호에 닿는다. 이 금강변 자체도 거대한 트레일인 셈이다. 

이 거대한 트레일은 자전거길로도 유명하다. 아직 날씨가 춥건만 강변을 걸으며 몇 대의 자전거를 스쳐보낸다. 누군가의 “수고하세요.” 한 마디가 종착지를 향해가는 걸음에 힘을 더해준다.

<봄이 오면 유람선도 바빠질 것이다.>

잔잔한 수면은 가끔 바람이 불어 스르렁거리는 물결을 제외하곤 고요하기 그지없다. 

수상레포츠와 유람선을 즐길 수 있는 선착장도 겨우내 침묵했을 것이다. 이 금강변이 벚꽃으로 뒤덮이면 오래간만에 모터소리도 요란할 것이다. 그 때는 이 길을 걷는 이도 더욱 많을 것이고 선착장도 북적일 것이다. 

그 번잡함을 꿈 꾸는 이들에게 이 겨울은 꽤나 길게 느껴지겠지만 봄이 지척임을 걷는 이는 알고 있다. 조금만 참으시라 전해주고 싶다.

<이 아름드리 소나무 밑을 지나면 곰개나루가 나온다.>

웅포 곰개나루 전망대에 올라 금강을 바라본다.

예전 이 지역의 물류를 책임졌던 곰개나루, 이 곳에서 곡식을 실은 배가 마포까지 올라갔다던 이야기는 옛말이다. 그 때의 흔적과 기록을 좀 더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큰 전시관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의 그런 부흥을 느껴볼 수 있는 조형물이나 스토리텔링으로 꾸민 시설물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이 곳에서의 낙조가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확실히 번성했던 옛 영화가 깃들은 곳이라면 낙조또한 그윽할 것이다. 그리고 처연할 것이다.

<곰개나루 오토캠핑장에 도착하다.>

종점인 곰개나루 오토캠핑장에 도착한다. 캠핑장의 시설이 넓고 쾌적하다. 봄이나 가을이면 둘레길 여행과 더불어 금강변에서 하루 캠핑을 즐기기에도 꽤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걷기를 마친 후 금강변에 다시 올라 강 바람속의 희미한 봄 내음을 맡아본다. 얼어붙은 땅이 녹고 저 강변 속에도 새로운 생명들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을 터다. 그 기운을 받아 기분좋게 잘 걸었던 하루다.


 

<무언가 더 이야기를 해 줬다면 어땠을까?>

걸으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을 통해 내가 걷는 곳의 이야기를 듣고 그 내력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다만 그 행운이 언제나 지속되지는 않는다. 

이 함라산 둘레길은 분명히 대단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삼부잣집과 더불어 함라산이 가진 다양한 역사적 사료들과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금강으로 가면 그 방대함은 더 커진다. 이런 좋은 자원들을 가졌다면 그것을 길에서 잘 녹여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나 멋진 환경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저 강변길과 산길의 만남 정도로만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길에도 음식처럼 맛이 있다. 그리고 아름다움의 유무를 가를 수 있는 외모가 있다. 이 함라산 둘레길은 맛도 외모도 평균 이상이라 할 수 있는 길이다. 이렇게 뛰어난 길에 어떤 채색을 하면 좋을까?

길은 길대로 두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온당한 말이다. 다만 길을 길대로 두는 것과 그 길이 가진 이야기를 알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냥 걷고나서 접어두기엔 아쉬운 길이라 그렇다. 

봄이 제철일 때 그 마을과 강변이 기억날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로드프레스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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