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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채우고 문을 여니 김첨지의 인력거가 지나갔다 – 군산 한일옥

군산 구불길은 참으로 묘한 길이다.

서해의 바다가 가진 풍경과 항구의 번영, 그리고 길게 난 새만금방조제 따라 고군산군도를 둘러볼 수 있다. 그 이면엔 근대화의 물결,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은 그 시내를 간직한 풍경이 있어 걷는이의 발걸음을 흥분시킨다.

구불길을 통해 근대문화역사를 느낀다 하면 어느 코스도 빠지지 않겠지만 역시 6-1코스 탁류길이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주무대인 군산 원도심은 시계를 한참 되감아 올라간다. 그 사이로 만나는 역사의 길은 걷는 것 그 자체로 또 다른 기록이 된다.

그래도 무엇이든지 시장을 해결하고 볼 일이다. 역사가 오래 된 맛집이 많기로, 그리고 그 각각의 내공이 엄청나기로 따지자면 인근의 맛의 본향 전주시에도 떨어지지 않는 곳이 군산이다.

탁류길의 근대의 흔적을 따라 걷노라면 ‘8월의 크리스마스’의 무대였던 초원사진관이 나온다.

그 맞은편에 위치한 한일옥은 ‘소고기뭇국’으로 41년간 그 이름을 날린 식당이다. 식당의 크기는 그동안의 성공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에서 김첨지가 치삼이와 술잔을 기울였던 모습 같은 정취가 그대로 살아있다.

일본식 가옥과 한국식 가옥이 섞여서 한일옥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하니 건물 자체도  꽤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 구이며 제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

(중략)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 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들이라 하였다. – 운수좋은 날-

맛있기로 유명한 집이라 식사시간 즈음에는 기다리는 줄이 상당하다. 특히 찾아간 날은 군산시의 밤거리를 돌아보는 ‘군산야행’ 축제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궂은 날씨였지만 축제의 마지막 날을 찾은 사람들까지 그 근대문화거리는 북적이기 시작했다.

식당의 2층은 그렇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 개방하고 있다. 

세월을 곱게 찍어누른 떡살과 옛 그릇, 아직도 연필자욱에서 흑연 냄새가 날 것 같은 낡은 교과서와 공책, 손으로 돌리는 기계식 전화기 등이 기다리는 시간을 앗아간다. 

창문 밖을 보니 무료로 빌려주는 근대복장으로 차려입은 관람객들이 돌아다니니 완벽한 시간여행이다. 구경하노라니 단체손님이 빠져나가서일까 갑자기 내 차례가 다가온다. 운수가 좋다.

한일옥의 대표메뉴인 ‘소고기뭇국’이다. 한우를 사용하여 시원하고 맑게 끓여낸 그 한그릇은 근대문화거리와 기가막히게 잘 어울린다. 

휘휘 저어보니 가라앉은 고기의 양이 꽤 되는지라 푸짐한 한 그릇으로 손색이 없다. 말갛게 익은 무는 국물에 개운함과 시원한 단 맛을 더해준다.

한 입 떠 마시며 씹히는 쇠기름은 뱃속에 걸터앉아 젠체하며 녹는다.

잘 졸인 갈치와 무는 어느 새 밥 공기를 다 훔쳐먹는다. 차려지는 반찬들이 하나같이 정갈하면서도 맛이 있는데 반찬도 밥도 추가요금을 받지않고 양껏 시킬 수 있으니 한참을 걸어 온 여행객들에게는 고맙기 그지없는 집이다.

추가한 밥 공기가 놓이고 밖에 슬금슬금 내리는 비를 보며 밥을 만다.

시원한 고깃국물에 쌀밥이 녹아드니 자리를 뜨기가 싫어진다.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고기와 국물, 밥이 차오른다는 환상에 빠져본다. 두 공기째 담는 밥이라 몸도 마음도 여유를 되찾는다. 

새벽 6시부터 문을 연다고 하는데, 이제 곧 찾아오는 가을과 기다리는 겨울, 그 이른 새벽 쌀쌀한 날씨에 이 곳에 앉아 받아드는 국밥은 얼마나 그윽하겠는가 생각하니 밥을 넘기는 와중에도 침이 고인다. 

다음에 이 곳을 찾는다면 이른 아침에 여명을 깨워볼 참이다.

담근 지 얼마 안되어 숨이 팟팟한 김치와의 조화도 상당하다. 정통파라면 새콤달콤하게 익은 깍두기와 곁들여도 좋다. 어떤 것이던지 환영하는 이 소고기뭇국은 통도 크고 아량도 넓은 음식이다. 

그렇게 배를 가득히 비워내니 누구 말마따나 옆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남의 일이다. 조금만 더 앉아있자 앉아있자 주문을 외게되는 포만감.

이렇게 깨끗하고 딱 떨어지는 시원함을 느껴보는 게 얼마만이더라 헤아려보며 힘들게 엉덩이를 들어 계산을 하고 나가려니 문 앞에서번호표를 받아 기약없이 기다리던 손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간다.

“2층에 충분히 구경하며 기다릴 곳이 있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소설의 한 대목을 되뇌이며 빠져나가는 참에 군산야행 행사의 하나인 인력거가 손님을 태우고 비에 젖은 골목을 달린다. 배가불러 잊었던 김첨지의 날듯한 뒷모습이 되살아난다.

 

  • 한일옥 : 군산시 구영3길 63 / 063-446-5491
  • 메뉴 : 소고기뭇국 8,000원, 시래깃국 7,000원, 콩나물국밥 6,000원 등
  • 영업시간 : 매일 06:00 ~ 21:30 
  • 주차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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