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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음악>몽유도원의 느낌을 그대로 – “아름다운 강산” by 신중현

그 날은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이건만 그 작은 산은 수많은 덩쿨과 날파리가 들러붙어 더위를 배가시켰다. 우연찮게 넓적사슴벌레를 사진에 담고 산길을 내려온다. 폐쇄된 저수지를 지나 제방을 오르니 바로 1초전의 풍경이 한 눈에 사라졌다.

그 “바람의 언덕”이 주는 쾌감은 엄청난 것이었다.

여태 걸어오고 흘려온 땀을 모두 날려버릴듯 한, 눈 앞에 에어컨이 있는 듯 시원한 바람이 전신을 감쌌다. 한쪽은 끝이 보이지 않는 갯벌, 반대편은 수면을 뒤덮은 갈대들로 무성한 저수지, 그 너머는 황금색으로 익어가기 시작한 논이었다.

눈앞의 산맥과 바다는 서로의 시원한 기운을 걷는 이에게 경쟁하듯 내쏘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그 제방에 취해있었다. 유난히도 덥고 길었던 그 길에서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지고 그 황홀경에 몸을 맡긴채 이대로 나는 나를 벗어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부유하고 싶었다.

외국 여행을 하면 가끔은 약물에 취해 기분이 High’해진채 넋을 놓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약물과는 1g도 상관없는 나이지만 그 때의 기분은 정말로 ‘High’ 그 자체였다.

그 길은 강화나들길 11코스 “석모도 바람길”이었으며 더 정확히는 장구너머를 내려와 수문과 어류정낚시터를 지나 보문사 방면의 제방에 올랐던 때였다.

<보문사 방면의 제방. 꿈꾸던 바람의 노래를 듣다.>

그렇게 넋 놓은 나에게 지금 어떤 음악이 제일 잘 어울리냐고 누군가 물었다면 난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과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 두 곡을 꼽았을 것이다. 그 중 한 곡을 골라라 하면 역시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이다.

이 곡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故 박정희 전(前)대통령을 찬양하는 곡을 만들라는 정부의 압력을 거절하고 “독재자가 아닌 이 강산을 노래하는 곡이야 얼마든지 만들수 있다!”며 만들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서는 잠시 넣어두도록 하자.

이 곡은 그 자체로 너무나 위대하고 완벽한 쾌락을 선사하기 때문에 음악적 취향이 맞는 이를 만난다면 이 곡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해도 몇시간이고 모자를 곡이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이 ‘아름다운 강산’은 다른 뮤지션들의 리메이크를 제외하더라도 창작자인 신중현 선생님에 의해 매우 다양한 버전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했다. 그만큼 작자에게 있어서도 너무나 강렬하고 사랑스러운 자식이었음이다.


 

<젊은날의 신중현>

최초의 탄생은 1972년이다.

당시 A면에 가수 장현, B면에 신중현이 이끌던 밴드인 “더 맨”의 음악이 실려 앨범이 발매되면서 이 명곡은 세상에 알려졌다. 그런데 이 앨범의 표지에 “장현과 더맨”이라는 타이틀이 자리하면서 장현과 그의 밴드 더맨, 나아가 “더맨”의 노래를 모두 장현이 부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혼선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1972년작 아름다운 강산은 분명 신중현의 보컬이 들어간 완벽한 신중현의 곡이다.

파이프오르간을 연상케 하는 신디사이저의 신비한 전조가 이어지다가 리드미컬하게 곡을 리드하는 오소독소한 베이스의 옥타브 주법은 단숨에 귀를 빼앗는다. 여기에 산들바람처럼 가벼운 신중현의 보컬이 더해져 완벽한 하나의 허밍을 만든다.

후렴구에서 나오는 다양한 보컬의 활용과 고조되어 폭발하는 사운드는 1972년에 이미 완벽히 완성된 하나의 거대한 록의 탄생을 알게 한다.

이 10여분의 긴 곡의 클라이막스는 5분에서 6분이 넘어가는, 곡의 2/3에 도달해서부터 시작이다. 반복되는 코드의 진행 속에 베이스의 화려한 주법과 신디사이저의 사이키델릭한 흐름, 거기에 드디어 신중현의 기타가 거친 오버드라이브가 걸린 기타 솔로가 더해져 환각의 완성을 이룬다.

8분이 지나면서 터져나가는 마치 금지된 마지막 선을 넘을듯 넘지않는 애타는 감정의 폭발을 드러낸다. 깊게 눌러도 터지지는 않은채 그 손가락을 감싸안으며 한계점가지 끌어들이는 풍선과의 긴장어린 놀음이다. 떨어질듯 떨어지지 않는 구름 위에서의 유흥이다.

그 거대한 몽유도원, 신계로의 여행이 끝나며 청자는 비로소 여기가 어딘지 가늠하게 된다. 완벽한 사이키델릭의 완성이자 음악을 통한 정신 해방, 혹은 이상향의 실현을 보여준다.

<신중현과 엽전들의 활동모습. 베이시스트는 ‘울고싶어라’로 유명한 이남이씨이다.>

1975년, 신중현과 엽전들에서 이 곡은 새로이 탄생하게 된다.

기존의 1972년 버전보다 비교도 안되게 깔끔하게 녹음된 것도 주목을 끌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기타 톤의 변화다. 예전의 오버드라이브 가득한 기타 톤은 마치 유리결정처럼 영롱하고 깨끗하게 변했다.

그 가운데 전면에 나선 기타의 리드와 전체적인 주법에서 큰 변화는 없지만 정박의 진행으로 곡에 긴장을 더하는 이남이의 베이스는 주목할 만 하다.

곡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후반의 기타솔로는 충격적이다.

신중현의 기타가 곡의 초반부터 오버드라이브를 배제한 깨끗한 톤으로 전면에 나섰다면 후반에서는 기타 이펙트와 와우페달을 사용한 다양한 톤이 서로 주고받으며, 또는 뒤를 받치고 전면에 나서주며 듣는이를 무아지경으로 몰고간다.

마지막 스산하기까지 한 허밍과 어우러지는 다양한 톤들의 환영은 금단의 선을 넘어서 마주하게 될 결과의 오싹함마저 상상케 한다. 또 다른 사이키델릭의 완성이라 볼 만하다.

<신중현과 뮤직파워 1집에서 새롭게 태어난 아름다운 강산>

1980년, 신중현과 뮤직파워에서 다시금 새롭게 옷을 갈아입은 이 곡은 기존의 사이키델릭함을 생각하던 이들을 완벽하게 배신(?)한 사운드로 돌아온다.

먼저 곡 자체가 굉장히 드라마틱해졌다.

힘있는 기타 스트로크가 끝까지 곡을 리드해가며 여성 보컬의 차용(코러스를 넘어선 서브보컬의 위치에 이른다, 기승전결의 확실한 구분과 점진적으로 시작해서 폭발에 이르는 주제를 반복하며 여운을 남기는 페이드아웃과 허밍까지 록을 넘어서 대중가요, 그것도 매우 힘 있는 대중가요로서의 완성을 보인다.

기존의 사이키델릭한 사운드가 일반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운드가 아니었다면 이 1980년의 버전은 말 그대로 국민가요로서의 위상을 확립했다 볼 수 있다. 가수 이선희도 이 버전의 곡을 편곡하여 불렀고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후반부의 파워풀한 진행도 이 버전에서 최초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다만 외국의 한 록 평론가는 완벽한 사이키델릭 록의 완성인 이 위대한 곡을 왠 여자가 ‘아메리칸 아이돌’ 창법으로 힘만 앞세워 불렀다고 비꼬았으니 그만큼 초기 버전이 가지는 록음악으로서의 위상은 세계적으로 평가받을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후대 밴드가 이 명곡을 카피했으나 거의 대다수는 그만큼의 몽유도원도를 그려내지 못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밴드 “곱창전골”만이 이 원곡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그려내었으니 듣다보면 리메이크가 아닌 숭앙, 헌사에 가까운 카피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혹여 관심이 있다면 1975년작 아름다운 강산과 곱창전골의 아름다운 강산을 비교해서 들어보는 것도 좋다.


 

길을 걸으며 다양한 기쁨을 맛보지만 그 바람의 제방만큼 몸과 마음을 1초만에 매료시킨 일종의 황홀경은 쉽게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그런 황홀경을 위해서라면 극한에 가까운 고통 (더위와 갈증, 배고픔, 혹은 혹한 등)이 동반되면서 그것을 일거에 상쇄시킬 풍경과의 만남이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져야 하기때문에 더욱 더 오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 흡사한 상황이 다가온다면 난 그 자리에 앉아 이 노래를 들을 것이다. 눈을 감고, 마치 명상하는 자세로 산들바람과도 같은 가벼운 그의 목소리와 심장박동같은 베이스에 몸을 맡기리라. 후반부의 기타 선율에선 울고 웃으며 누가보면 광인(狂人)이라 해도 좋을 모양새로 그 길에서 몸을 비틀댈지 모른다.

혹여 산 속에서 길을 걷다 그런 사람을 만나걸랑 그저 무시하며 지나가길 바란다. 이미 그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을테니 뭐라 말을 걸고 몸을 잡은들 음악이 끝나기 전에는 알아채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