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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人터뷰] AT 완주를 통해 트리플크라우너에 오른 정승재씨를 만나다

*본 인터뷰는 월간 로드프레스 1월호에 실린 인터뷰로 인터뷰 당시의 기준으로 2018년 12월에 이루어진 인터뷰 임을 먼저 밝힙니다.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기자님, 잘 지내셨죠? 정승재입니다.”

‘이 사람이 언제쯤 국내에 오나, 오면 도착하는 날 맞춰서 인천공항에 나가서 태우고 어디가서
밥이라도 실컷 먹이고 싶은데…’ 하며 AT(Appalachian Trail)를 무사히 완주하고 귀국한다는 소식만을
기다렸다.

이번 완주로 인해 ‘트리플 크라운’(미국의 3대 장거리 트레일인 5,000km의 CDT, 4,300km의 PCT,
3,500km의 AT를 모두 완주한 이에게 붙는다.)을 획득, 트리플 크라우너로 기록될 하이커 정승재씨.

약 1년 2개월 전, PCT를 걷고 있던 정승재씨에게 메일로 인터뷰를 요청, 몇 번의 메일과 새벽의
전화통화로 인터뷰를 완성하여 로드프레스 온라인 채널과 로드프레스 예비 창간호에 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로드프레스가 주최한 ‘Hi Hikers!’ 행사를 통해 또한 자신의 장거리 하이킹 경험을 많은 이들에게 나누던 열정도 잊을 수 없다.

북경에서 바로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 인천에 들르지 못해 죄송하다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벌써 내 시선은 부산을 향해 있었다.

145일에 걸쳐 3,600km를 걸은 그를 향해 이동하는 고속버스의 5시간은 너무나 지루했다. 그렇게 부산
터미널에 도착, 터미널에서도 끊임없이 각 층을 걸으며 배회하는 그를 만나 반가운 재회를 했다.

이제 트리플 크라우너 정승재 하이커를 만나보자.

*이하 로드프레스는 ‘ROAD’, 정승재씨는 ‘정’으로 표기한다.


ROAD : 먼저 이번에 AT(Appalachian Trail) 을 완주함으로 ‘트리플 크라운’(미국의 3대 장거리
트레일인 5,000km의 CDT, 4,300km의 PCT, 3,500km의 AT를 모두 완주한 이에게 붙는다.)을 달성하신
것에 대해 축하를 안 할 수 없다. 정말 대단한 기록을 세우셨다. 수고하셨다. 축하드린다.

정 : 감사하다. 하하하.

ROAD : 언제 출발하시고 언제 돌아오신 건가?

정 : 출발은 (2018년) 6월에 했다. 뉴욕에 약 2주간 쉬다가 트레일을 걷기 시작한 것은 7월 6일이다. 도착은…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1월 27일 도착했으니 145일이 걸렸다. 다시 뉴욕에서 1주일 가량 쉬고
북경을 거쳐서 얼마 전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ROAD : AT보다 더 힘들었나? 사실 돌아오는 여정이라는 것 자체가 가장 지루한 길이다.

정 : 직항보다 40만원이 싸니까 어쩔 수 없었지만, 꽤 지루했다. 하하하.

ROAD : 이제 본격적으로 질문을 시작하겠다. 많은 독자들을 위해 아주 기초적인 질문과 이미 많이
받아 본 질문을 다시 할 수 있다. 민감한 질문도 있을 수 있다.

정 : 물론이다. 어떤 질문이라도 감사하다.

내가 만난 AT

<한 조망점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하는 정승재씨>

ROAD :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일종의 영예, 혹은 타이틀을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인가?

정 : 애초에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하면 좋겠다.’라는 욕심은 있었다. 아마 장거리
하이커라면 처음 들었을때 누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ROAD : 특히 CDT와 PCT를 걷고 나서는 더욱?

정 : 그렇다.

ROAD : 그럼 전의 길과는 틀리게 이번에 AT를 준비하면서 마음가짐은 어땠는가? 아무래도 큰 목표가
있으니 조금은 틀렸을 것 같다.

정 : 의외로 무덤덤했다. 심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이미 CDT와 PCT를 다녀온 경험이 쌓여 있고 그
문화도 익숙해져 있었고. 앞서 걸은 두 길에서 만난 많은 미국의 하이커 친구들이 있어서 많은 도움도
받을 수 있었기에 자신도 있었다.

ROAD : 이미 그 문화와 일상에 대해서 충분히 익숙하지만 그래도 사전 정보같은 경우도 많이 중요한
편인데 어떻게 얻었는가? 혹시 AT도 PCT처럼 협회 등이 있는가?

정 : 공식적인 협회가 존재한다. 그런 부분도 참조하지만 페이스북에 매년 공식 페이지가 생겨난다.
2018 AT Hiker 홈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고 공유할 수 있었다.

ROAD : 한마디로 함축하긴 어려울 것 같지만 기존에 걸었던 PCT나 CDT와 비교했을 때 어떤 부분이
AT만의 특징이나 느낌이라 할 수 있을까?

정 : 차별점이라… 일단은 ‘날씨’, 즉 기후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전체 일정 중에서 약 절반 가량이 비가
왔다. CDT나 PCT는 일정 중 10일도 비가 내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AT는 두어 달 내내 비가
내렸다.

ROAD : 우천대비 장비도 당연히 더욱 꼼꼼히 준비했을 것이고.

정 : 그렇다. 고어텍스(Goretex) 바람막이를 준비하거나 판초우의를 준비했다. 다른 하이커들은
고어텍스 바람막이에 레인커버를 배낭에 사용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판초우의로 전부 덮는 것이 편했다.

<전체 일정 중 절반 가량 내린 비는 고역이었다.>

ROAD : PCT는 처음 시작 시 한 달 정도 사막을 지나고 또 바로 설산을 만나는 등 풍경이나 기후대가
많이 변화하는 편으로 알고 있다. AT는 어땠는가? 전체적인 풍경도 궁금하다.

정 : 풍경이나 기후대는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뷰는 좋지만 CDT나 PCT처럼 광활한 풍경이
장대하게 펼쳐진다는 느낌보다는 산 속을 걷는, 산이 보이는 느낌이다. 한국의 산과 비슷하다.

ROAD : 최고 고도는 어떠했는가? PCT의 경우는 마운틴 휘트니 부근이 트레일에서 가장 높은
지점으로 알고 있는게 그 정도 고도까지 올라가는 구간이 있는지?

정 : South Bound(남쪽을 향해 걷는 사람. 줄여서 SOBO라고 한다. 반대는 North Bound, NOBO)로
걸었는데 South Bound는 AT에서 가장 높은 구간 언저리에서 시작한다. 마운틴 워싱턴이 가장 높은
구간으로 알고 있는데 고도는 앞서 걸은 다른 미국의 트레일보다 높은 편은 아니었다.

ROAD : AT가 역사상으로는 가장 오래되었다. CDT, PCT 등에 비교했을 때 트레일 엔젤 문화나
하이커들을 위한 시설 등은 어떤지 궁금하다.

정 :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너무 오래되다 보니까 좀 상업적인 느낌도 있는 것 같다.

ROAD : 상업적인?

정 : 뭐랄까, 다른 트레일에 비해 돈을 쓸 데가 많다고 해야하나? 마을이 자주 나타나고 조금만
걸어나가도 슈퍼마켓이 있으니 돈을 많이 쓸 수 밖에 없다. 트레일 엔젤도 많다.

그런데 나는 다른 대부분의 하이커들과는 달리 South Bound로, 즉 많은 이들과는 반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걸어왔기에 다양한 시설이나 서비스를 대다수의 North Bound 하이커들보다 덜 누린 편이다.

아무래도 정방향 하이커들이 걷는 시즌에 그런 여러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 부분이 많다.

ROAD : 정승재씨는 South Bound로 7월에 걸었는데, 그럼 North Bound로 걷는 이들은 출발 시점이…

정 : 2월에서 4, 5월이다.

ROAD : 그렇다면 North Bound로 걷는 이들이 도착하는 시점에 그 종착지에서 역으로 출발한 것이다.

정 : 그렇다. North Bound 기준으로는 길어도 약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인 듯 하다. 시작한 지 3일차에
이틀 뒤면 완주하는 North Bound 하이커를 만나기도 했다.

아무래도 AT의 끝지점에서 시작을 하다보니 그렇게 완주를 앞둔 하이커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표정이 정말 부럽더라. 하하하하.

ROAD : 하하하, CDT와 PCT, 두 개나 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트레일을 완주하는 하이커들을
보면서 부러웠나.

정 : 아무래도 그렇다. 나는 이제 시작이니까. 하루, 이틀만 더 가면 완주한다는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러운가.

<AT에도 많은 트레일 엔젤들이 존재한다.>

ROAD : AT 같은 경우는 PCT처럼 별도의 퍼밋을 받아 출발하는가?

정 : 별도의 퍼밋은 없지만 협회 홈페이지에서 출발일자를 기록(등록)하게 되어있다. 그것을 보고 어느
날에 몇 명이 출발했구나, 하는 수치와 통계등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는 전체 구간 내에서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이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공원 같은 구간을
만나는데 사전에 퍼밋을 신청하고 20불을 지불하면 퍼밋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을 출력해서 해당 구간
입구의 통에 넣고 가야한다. 보통 그 구간 전의 마을에서 출력해간다. 나 역시도 한 아웃도어 매장에서
출력해 가지고 갔다.

ROAD : CDT는 그리즐리 베어, PCT는 그보다 작은, 그래도 맹수인 블랙 베어가 있어 곰통을 소지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AT는 어떠한가?

정 : AT도 블랙 베어가 있다. 그런데 곰에 대한 위험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곰통을 소지하는 구간도
없었다. 물론 텐트를 칠 수 있는 쉘터마다 박스가 있거나 높은 곳에 걸 수 있게 봉을 전부 만들어 놨다.
그런게 없으면 나무에 걸 수 있도록 해 놓고.

ROAD : 쉘터같은 경우는 다른 트레일보다 잘 되어 있는가? 얼마나 많이 준비되어 있는가?

정 : 잘 되어있는데 사실 지역마다 다르긴 하다.

ROAD :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해보자. 퍼센티지로 따졌을 때, 전체 일정 중에서 쉘터를 이용해서
캠핑을 한 경우는 얼마나 되는가?

정 : 내 경우는 6~70% 정도? 다른 하이커들은 보통 8~90% 정도를 쉘터를 이용해 숙박했던 것 같다.
보통 쉘터에 맞춰서 운행량을 정하기도 하고.

ROAD : 무료, 유료 나뉘어져 있을텐데.

정 : 물론 무료, 유료 전부 있는데 거의 90~95%는 무료이다. 물론 비 오는 날에는 빨리 가서 자리를
선점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ROAD : 이미 CDT나 PCT를 걸으면서 장거리 하이킹에 있어서 먹고 쉬는 것에 대해 자신만의 루틴,
혹은 법칙 등이 있었을 것 같다. 식사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데 가장 많이 드신 것은 무엇인가?

정 : 내 경우엔 아침은 또띠야. 또띠야에 누텔라와 피넛버터를 발라먹거나 참치에 마요네즈를 섞어
먹었다. 주로 저녁은 라면이다. 라면에 국물엔 감자파우더를 섞어서 먹었다. 그게 제일 기본
식단이었다.

ROAD : 라면은 부피가 큰 편인데 마을의 마켓 같은데서 어느 정도씩 사는 편이었나?

정 : 그렇다. 그리고 지인 분들이 한국에서 보내주기도 하셨고.

ROAD : 구간의 난이도 같은 경우는 어땠나? 난이도가 길의 만족도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 : 세 곳(CDT, PCT, AT)중 가장 쉬웠던 것 같다. 안전성도 가장 높았고. 표식도 잘 되어 있고 길이 잘
되어 있었다. 숲 속을 계속 걷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다른 곳처럼 절벽에 길이 나 있는 것도
아니다.

ROAD : 그래서 많은 이들이 다른 미국의 장거리 트레일, 즉 CDT와 PCT 전에 먼저 AT를 도전하는
것일 수 있겠다.

정 : 그렇다. 대부분이 AT를 가장 먼저 시작한다.

ROAD : 예전, 1년도 전에 첫 인터뷰를 했을때가 기억난다. 그 인터뷰를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다시
질문을 해 보자. 어쩌다가 가장 길고 후반 20% 정도는 표식도 없는 5,000km의 CDT를 먼저 선택했고
AT를 가장 나중에 선택한 것인가?

정 : 사실별 내용은 없는데 내가 도전하려고 했던 전년도(2015년)에 PCT를 도전해서 완주한 형들이
있었다. ‘아직 CDT는 아무도 하지 않았구나, 그럼 내가 해 봐야겠다.’ 라는 생각이었다. 국내엔 아예
자료도 없고. 그런 미지의 부분이 선택하게 된 계기였다. 최초가 되고 싶은 마음과 가장 긴 길이어서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

ROAD : 승재씨의 답변을 들으면서 참 대단하다고 느끼는게, 국내에 아무런 정보가 없는 길을 먼저 가
본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 같은게 있었을 것 같은데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정 : 딱히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재미있겠다.’, ‘도전해보고 싶다.’ 정도.

ROAD : ‘막상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같은 것도?

정 : 맞다. 그것이다. 하하하. 내가 그런 스타일이다. CDT도 PCT도, 올해 AT도 그렇게 거창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AT는 일단 미국에 도착하고 뉴욕에 가서 준비를 하고 출발을 한 것이다. 기본적인
장비와 비행기표만 들고 미국에 갔고 현지 하이커 친구들이 ‘너 이것 안 했어?’ 하며 준비를 도와주고
알아봐주고.

그 친구들도 참 인연이 있다. 먼저 AT를 걷고 작년에 PCT를 걸은 친구들인데 나도 작년 PCT 구간에서
그 친구들을 만났다. 당시엔 둘이 연인 사이였는데 올해 만났을 땐 부부가 되어있더라. 하하하. 내년엔
둘 다 CDT에 도전한다고 한다.

<숲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

ROAD : AT를 걷는 동안 절반에 이르는 시간이 비가 내렸고, 또 7월이라는 여름에 출발을 해서 매우
습한 환경에서 산 속을 걷고 잤다. 당연히 모기 등 여러 해충때문에 힘들었을텐데 어떤 준비를 해
갔는가? 혹은 현지에서 추천할 만한 방법이 있다면?

정 : 역시 버그 스프레이가 답이다.

구간 내에서 만나는 웬만큼 큰 도시 내에는 R.E.I라는 아웃도어 용품을 파는 아울렛 매장이 있다.
전세계적 매장인지라 웬만한 아웃도어 용품은 다 있고 가격도 저렴하다. 이런 곳에서 버그 스프레이를
구매해도 좋고 작은 마을이어도 꼭 한 곳씩은 아웃도어 매장이 있기에 그런 작은 매장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버그 스프레이가 예방이라면 물리고 나서 바르는 물파스 같은 ‘애프터바이트’도 있다.

올해 특히 조심해야 될 것은 진드기였다. 이것때문에 트레일을 걷다가 집에 가는 경우도 많이 봤다. 사슴에 기생하는 진드기라 했는데 이 문제가 꽤 심각했다고 했다. 다행히도 나는 별 문제는 없었다.

다만 ‘포이즌아이비’, 우리나라 말로 옻나무넝굴이라 해야하나, 옻넣굴때문에 많이 고생했다. 수포가
생기고 간지럽고. 약을 먹어야 했다.

ROAD : 이번 AT를 완주하며 어느 정도까지 걷는다, 얼마만큼 걷고 하루는 쉰다 등의 계획을 세웠을 것
같다. 자신의 방식이 있다면 알고싶다.

정 : 여자친구가 합류하기 전까지는 사실 마음이 급한 부분이 있어서 저녁에 마을에 들어가면 쉬는
식으로, 매일 걸을 수 있을만큼 걸었던 것 같다. 마을 전에 해가 지면 랜턴 끼고 걷고. 보통 4, 5일을
걷고 좀 쉬고 하는 정도의 패턴이었다.

ROAD : 다른 길보다 한국인 하이커가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만남이나 교류는 있었는가?

정 : 그렇지 않았다. 현지에 계시는 재미교포 등산객 분들을 만난 정도. 오이를 얻어 먹었다.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비, 그리고 더위와 싸웠던 구간이 가장 힘들었다고.>

ROAD : 이번 3,600km를 걸으며 가장 힘들었던 구간은 어디였는가?

정 : 버몬트 지역이었다. 여름에 지난 구간인데 세상에 그 더위에 땀이…. 옷이 젖고 젖은 그대로 햇살에
마르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 때 내 몸무게 최저점도 찍었다. 완전히 해골같았다고 해야할까. 그 후
여자친구가 합류하면서 다시 살이 차오르긴 했다.

ROAD : 이번에도 당연히 휴대용 정수기를 사용했는가? 그래도 편의시설 등이 다른 트레일보다 잘
구비되어 있었다고 했는데.

정 : 그래도 휴대용 정수기는 필수다. 장거리 하이킹에서 소이어(sawyer) 사용은 어쩔 수 없다.
쉘터라고 해서 물까지 채워 간다거나 물을 제공받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다만 올해에는 다른 방식의 정수방법을 이용해 보기도 했다. 인공눈물 방식의 정수약을 떨어트리는
것이다. A타입, B타입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먼저 A타입을 일곱방울 정도 떨어트리고 B타입을
몇방울 떨어트리면 게토레이 색깔로 바뀐다. 그렇게 섞인 약을 물 1리터에 넣고 시원한 곳에 약
15~30분 정도 놓은 후 마시는 것이다.

ROAD : 버몬트에서의 여름을 지나 가을을 거쳐 눈이 내리는 겨울의 초입에 도착했다. 세 계절을 다
보냈는데 다른 트레일도 그렇게 다양한 계절을 지나게 된다. 복장 같은 것은 어느 정도는 그래도
준비해 갔는가, 아니면 그 조차 무게를 줄이기 위해 현지에서 구매를 했는가?

정 : 현지에서 구매를 했다. 아웃도어 매장에서 구매를 하거나 하이커들이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을
다른 이가 사용하도록 넣어두는 하이커박스를 이용했다.

올해엔 운이 좋았던 것이 초기 나와 함께 했던 하이커 친구가 전날 국립공원에서 바람막이 등을 사고
그 것을 하이커 박스에 바로 버린 것이다. 사이즈가 너무 컸다고. 내가 얻어서 아주 잘 입었다.

그 친구는 가벼운 하이킹을 즐기는 섹션 하이커인데 이런 장거리를 안해 본 친구였다. 막상 며칠
걷다보니 너무 즐거워서 끝까지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 친구는 배낭도 세 번 바꾸고 모두
하이커 박스에 버리고. 하하하. 점점 짐이 줄어들고 경량화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나중에 완주하기 2~3주 전에 다시 만났는데 완전히 전문가가 되어있었다. 수염도 안 깎아서 길고
걸어가면서 또띠야를 먹는 모습을 보며 와아…대단한데! 하고 생각했다.

<많은 하이커들과의 만남도 트레일의 매력 중 하나이다.>

ROAD : 또 기억에 남는 하이커가 있는가?

정 : 고등학생들이다. 미국 텍사스에서 온 친구들이었는데 어느 정도의 구간을 같이 걸었는데 아주 잘
걷더라. 어렸을 때 부터 아버지와 함께 하이킹을 즐기고 트레일에 대해 많이 익숙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AT 주변의 도시, 주에 사는 누구라도 애팔래치아 산맥, 트레일을 다 알고 익숙해 하니 그것을
사랑하고 즐기는 것도 그만큼 가까운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온 친구도 생각이 난다. 작년에 PCT를 완주한 친구인데 나도 작년에 완주했는데
트레일에서 마주친 적은 없는 친구였다. 그 친구와도 몇 주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년엔
CDT를 간다고 하더라.

ROAD : 외국의 하이커들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마음가짐이 우리와는 다를 것 같다.

예전에 누군가가 했던 말이 ‘한국에서 온 우리는 이 길을 걷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또 투자해서 왔기에 완주가 중요한 목표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유효한 비자의 기간 내에 완주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다.’고 했었다.

외국의 하이커들은 그런 부분에서는 좀 자유로운 편일까?

정 : 사실 초창기엔 나도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지금와서 보면 그것은 아닌 것도 같다. ‘비자’의 문제를
제외한다면 모두 동등한 위치와 선택이라 생각한다. 미국 사람들만 오는 것도 아니고 일본, 네덜란드,
그 외의 나라 누구라도 그렇게 오니까.

어쨋든 이 길을 오기로 한 이상은 누구나 완주가 목표인 것이고. 다만 이 길을 그렇게 어느 정도 걷다보면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 맞지 않을 수 있고 그런 이들은 자연스럽게 중간에서 빠지게 된다. 거의 절반을 걸어놓고 나서 집에 가는 사람도 있다. 아마 그 절반, 1,800km를 걸으면서 내면적으로 많이 고민하고 또 스스로와 싸웠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외국 하이커들이 매우 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나라면 그 기간과 걸어 온 거리가
아까워서라도 쉽게 포기라는 선택을 못 할텐데.

올해 PCT에 도전하신 많은 한국 분들 중 몇 분은 그렇게 중도에 포기하신 분들이 계시다. 나는 그것도
정말로 대단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존중받아야 한다.

<광활한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트레일이 주는 큰 기쁨이다.>

ROAD : 산불은 어떠했는가? 올해 산불은 정말 큰 피해를 기록 했는데 PCT 구간에서는 길이 통제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AT는 피해가 없었는지?

정 : PCT에서는 다 대피하는 등 난리가 났는데 AT는 비가 정말 계속 내려서 산불 피해는 없었다. 물론
그만큼 늘 후줄근하게 젖어있었고.

ROAD : AT 트레일 자체가 그 트레일 구간에 대해 접근성이나 교통 등이 다른 트레일 보다는 편리한
편인가?

정 : 그렇다. 유명한 관광지도, 국립공원도 많다보니 많이들 오는 구간이다. 데이 하이커들도 많고
관광객들도 많다.

ROAD : 승재씨가 생각했을 때 이런 장거리 하이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장비는
무엇인가?

정 : (단호하게) 신발. 아무래도 하이킹의 성패, 매일매일의 컨디션을 좌우한다. 그 다음은 배낭.
사실 옷은 아무거나 입어도 된다. 외국 친구들이 놀라워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그런 ‘완벽에 가까운’
등산 패션이다. 히말라야를 가도 될 정도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옷만 봐도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더라.

여자친구와 함께 걷다.

ROAD :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하나? 혹은 이미 너무 익숙해져서 누군가와 길게 같이 걷는다는 것이
두렵거나 어색한가?

정 : 음…혼자 걷는 것을 좋아할 때도 있고 누군가와 같이 걷는 것을 좋아할 때도 있고. 상황마다 틀린 것
같다. 같이 걷는 상황 내에서도 이 친구들과 얼마나 유대관계를 잘 맺느냐, 또 각자의 운행량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금방 헤어지기도 하고.

<AT의 정확히 절반 지점에 세워진 안내판>

ROAD : 사실 이 질문을 한 것이 여자친구와 절반의 구간, 즉 절반지점에서 도착지점까지 함께
걸었다는 것을 아까 식사할 때 들어서다.

정 : 그렇다. 절반 정도 되는 구간의 마을, 하퍼스 밸리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ROAD : 가자고 먼저 이야기를 꺼내셨는지, 혹은 여자친구분이 먼저 가고싶다고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하다.

정 : 처음에는 여자친구는 ‘기다리겠다. 무사히 다녀와.’ 정도였다. 그러다가 장난스럽게 ‘넘어와. 같이
걷게.’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래, 그럼 갈게!’가 된 것이다. 그 후 직장도 그만두고 비자도 받고 온
것이다.

ROAD : 포커스밸리라는 마을을 찾아서?!

정 : 그건 아니다. 내가 데리러 갔다. 하하하. 열세시간 걸렸다. 기차타고 큰 도시로 나가 워싱턴으로 간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뉴욕으로 가서 데리고 왔다.

ROAD : 왠지 그림이 살짝 그려진다. 그 입국장 문이 열리고 엄청난 배낭을 메고 나타나는 여자친구…

정 : 캐리어에 다 담아왔다. 하하하하.

ROAD : 그래도 그 느낌은…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 같다.

정 : 와…대단하다. 대견하다. 그리고 솔직히 ‘나라면 했을까?’라는 마음…

ROAD : 지금 얼굴에 갑자기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하하하.

정 : 아니, 그게… 하하하.

ROAD : 여자친구 분은 그래도 어느 정도 하이킹을 즐기기에 같이 도전하시기로 한 것인가?

정 : 전혀 이런 경험이 없었다.

ROAD :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가히 상상도 안 된다. 처음에 무엇을 가장 힘들어하던가?

정 : 화장실. 제일 걱정되는 것이 화장실이었고 식사도 그렇고. 그리고 몸이 자기 마음대로 안 따라주는
것에 대해서 많이 속상해 했다. 자신은 더 가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힘은 들고. 발도 물집이 심해지고.

ROAD : 다른 사람과 이렇게 길게, 또 ‘여자친구’라는 특수한 관계에 있는 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신경 써
가며 걷는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많이 다투었을 것 같기도 하다.

정 : 다투었다기보다는, 처음에 ‘여자친구가 어느 정도는 들 수 있겠다.’라는 짐의 무게로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하나 하나 빼기 시작했다. 침낭을 빼고 내가 그 침낭까지 두개를 넣고 음식도 4~5일치
2인분을 내가 다 들게되고 겨울옷도 내가 다 들고. 결국 여자친구는 가벼운 하이킹 차림으로.

그래도 그런 짐을 다 짊어메고 하루에 20에서 23마일 (32~37km)을 걸었다. 최고 26마일(약 42km)까지
걸었었나.

<1,800km에 이르는 구간을 함께 걸은 여자친구에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ROAD : 트레킹 폴, 배낭 등 기본적인 장비라 해도 처음 사용하는 여자친구로서는 익숙하지 않아서
매우 힘들어 했을텐데.

정 : 아무래도 그렇다. 익숙하지 않은 장비와 방식으로 매일 열 두시간 열 세시간을 걷는 것은 너무 힘든
일 아닌가.

ROAD : 사실 사랑의 힘 보다는 그렇게 되다보면 목표의식과 도전의식이 자신을 지배해야 가능한
일이다.

정 : 그렇다. 도전의식. 여자친구가 도전의식이 강하다. 운동 자체를 좋아하고 킥복싱을 즐기고
아마추어 대회 우승도 한 이력이 있다. 물론 쓰는 힘과 근육이 다르니 그렇게 운동을 좋아해서 잘
걷는다는 것은 아니고 그 만큼 도전에 대한 멘탈이 남달랐던 것이다.

ROAD : 그래도 그런 긴 여정을 승재씨는 그 짐을 다 메고, 또 여자친구분은 1,800km가량을 처음
장거리 하이킹에 도전하면서 완주를 한 것이다. 그렇게 힘든 여정 속에서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엔
감동하거나 그동안의 여정이 떠올라 운다거나…

정 :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역방향으로 걸은 우리에게는 최종 도착지인 AT의 최초 출발지에
도착했을 때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눈이 오기 시작하는 계절이고 전날에 물을 놓고 잤는데 물이 다
얼어있었으니까.

조지아의 스프링거. 매일 사진으로 본 곳이다. 우리가 도착하기 약 4주 전부터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나와같이 SOUTH BOUND로 걸었던 하이커들이 도착했다고 인증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 달간 그 사진들을 봐 와서일까, 막상 걷다가 도착했을때엔 ‘어? 여기네?”하는 느낌. 석판이 있고 밑 부분에 서랍이 있고 방명록 등 글을 쓸 수 있는 게 놓여져 있다.

<로맨틱한 우드 스토브. 난로이자 버너가 되었다.>

ROAD : 다음에 장거리 트레일을 여자친구가 간다고 하면 따라갈 생각은 있는지?

정 : 기회가 된다면 같이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때는 좀 더 여유있게 걷고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둘이 같이 걷는다는 것이 많은 것을 주는 것도 같다. 같이 걸으면서 일단 외롭지 않고 늘 이야기가 끊이지
않다보니 하루도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면서 서로에 대해 좀 더 속속들이 알게
된달까. 귀중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머나먼 곳에 있는 길을 오랫동안 함께 하다보면 일종의 ‘전우애’같은 정이 생긴다. 그래서
하이커들끼리 좀 더 끈끈한 무언가로 엮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혼자 있을때엔 24시간 걷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여자친구와 같이 걷다보니 내 스스로도 더 여유가
생기고 그만큼 시야도 넓어지고.

3년간 CDT, PCT, AT를 걸으며 같은 자리에 또 텐트를 친 적이 이번에 처음 있었다. 그만큼 더 쉬어가고 풍경, 자연을 즐기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하루종일 불을 피우며. 불만 9시간을 지폈다. 어휴, 나무를 얼마나 주워왔는지.

ROAD : 정확히 안다. 그렇게 불을 피우면 막상 불을 쬘 시간은 얼마 없다. 그 불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나무를 이리저리 주으러 다녀야 하는지.

정 : 그 주변에 떨어진 나무는 내가 다 썼지 싶다. 하하하. 우드 스토브를 썼는데 사실 이 장비도 아까
말한 그 하이커가 하이커 박스에 버리고 간 완전 새 것이었다. 처음엔 이게 뭐지? 했는데 사용 설명서를
보고 집어넣었다. 그런데 꽤 무겁다. 보면 예쁘지만. 하하하.

그가 생각하는 하이킹, 그리고 하이커

ROAD : 예전 CDT, PCT 때에도 도착지에서 엄청난 희열보다는 일종의 허망함을 느꼈다고 했다. 다른
장거리 하이커들도 대부분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도착지에서의 그런 무덤덤함과 허무함이다.

정 : 올해는 그보다도 더 담담했었다. 오히려 끝난 것 같지 않았다. ‘이게 끝난 것이 맞나? 내가
트리플크라운이 된 건가? 더 걸을 수 있는데? 걸어야 할 것 같은데?’ 같은 느낌. 뉴욕으로 돌아와서도
다시 가야 할 것 같은 착각이 들고… 여자친구도 담담했다.

ROAD : 그래도 목표를 이루었는데… 트리플크라운이라는 것이 별도로 인증을 받는 것은 아니지 않나.

정 : 그렇다. 개인의 영예일 뿐이다. 알아보니 미국에 트리플크라우너들의 모임같은 게 있는 것 같더라.
사실 ‘목표를 이루었다, 그래서 잃었다.’는 느낌에 그런 담담함이 생겼다고 본다. ‘이제 갈 곳을
잃었다.’는 허탈함… 인생의 목표 하나가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ROAD : 이미 그런 허무함을 느껴 온 경험이 있기에 그래도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을텐데도 어쩔
수 없었나보다.

정 : 찾아보면 전 세계에 걸어야 할 곳은 많다. 뉴질랜드에도 있고 유럽도 있고… 만약에 다시 내가
걷는다면 어디를 갈까?하며 떠올린 곳은 있다. PNT(Pacific Northwest Trail). 미국 지도상에서 왼쪽에
있는 트레일이다. 보통 트리플크라우너들이 세 곳을 끝내고 그 곳을 도전한다고 한다. 2,000마일 정도
된다고 들었다.

ROAD : 그 트레일도 다른 트레일처럼 하이커들을 위한 표식이나 문화 등이 잘 정착된 트레일인가?

정 : 그렇다. 협회도 있다. 많은 친구들이 나를 만나며, 혹은 내가 트리플 크라우너가 된 것을 보며
연락을 해서 이야기 한다. “야, 래빗!(Rabbit ; 정승재씨의 트레일 네임) 너 거기 꼭 가야해!”

ROAD : 갑자기 승재씨의 트레일 네임을 들으니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떠 오른다. ‘래빗’이라 스스로
지은 것인지, 어떤 의미인지 말해달라.

정 : CDT때 같이 걸었던 친구들에 비해서 내가 걸었던 속도가 빨랐다. 그래서 친구들이 지어준 것이다.

ROAD : 그런 트레일 네임은 보통 같이 걷는 하이커 동료들이 지어주나?

정 : 그렇다. 스스로 짓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보통 같이 걷다가 어떤 상황들이 생기면 그것이 별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PCT를 걷던 한 한국인의 트레일 네임이 ‘This way’라고 정해진 경우가 있다. 그 분이 길을
가다가 다른 이들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간 것이다. 그 때 외국인 하이커들이 “야 그 길 아니야! 이
길이야(This way!)!” 라고 해서 정해졌다. 길을 많이 잃으니까 정해진 이름이다. 하하하. 그 하이커는
‘정힘찬’이라고, 지금 군대에 가 있다.

ROAD : 그런데 작년부터 올해, 국내에서 미국의 장거리 하이킹 트레일이 국내에서 굉장한 관심을 받고
있는 듯 하다. PCT만 하더라도 아까 식사하면서 이야기 한 대로 올 해 4~50명이 떠났고. 갑자기 이렇게
많은 이들이 떠나게 된 계기가 뭘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있는지?

정 : 아무래도 다큐멘터리 ‘순례’가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녀온 이들이 쓴 책들도 힘을 더
했고. PCT에 대해 국내에서 쓴 분들이 3권, ‘Wild’까지 합치면 4권인데 그 영향이 크지 않을까?

그리고 최근에 산티아고 순례길도 방송으로 나오니까 그만큼 길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했지 않나
생각한다.

ROAD : 어떻게보면 먼저 그 길들을 걸었던 사람으로서 많은 이들이 그 길을 떠나는 것이 매우
반갑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우려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정 : 그렇다. 그 우려가 올해 사실이 되었고. 한국인 하이커 한 분이 출발지에서 며칠 되지 않는 곳에서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 하시는 일이 발생했다. 원래 심장계열이 좋지 않은 분이시라 들었다.

ROAD : 매우 가슴아픈 일이다…

정 : 그렇게 참으로 좋은 분이 길 위에서 떠나가는 슬픈 일도 있었다.

ROAD : 그리고 또 PCT 시즌 초에 트레일에서 한국 쓰레기, 담뱃갑과 꽁초 등의 사진이 PCT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기억도 있고.

정 : 맞다. 참 안타까운 노릇으로 그때 난리가 났었다. 다음 마을에 도착 후 문제가 된 한국인 하이커들이 사과문을 올렸고 많은 하이커들이 ‘이해한다. 다음엔 그러지마라.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응원했는데 결국 다들 얼마 못 가 돌아온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사전 정보도 많이 부족해보였고 1주일, 2주일?도 안되게 준비하고 ‘그래! 가보자!’하고 왔다고
들었다. 쉽지 않은 길이고 트레일 문화나 모든 부분이 국내와는 틀리다는 것을 숙지하고 왔다면
좋았을텐데.

<아름다운 자연은 즐기는 만큼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ROAD : 사실 이런 사례를 통해 드리고 싶었던 질문이 그거다. 1년에 4~5명이 도전하던 미국의 장거리
트레일에 4~50명이 도전하는 등 전 세계의 트레일을 걷거나 관심을 가지는 국내 인구가 늘어나는 것
같다. 가장 중요시 해야할 것, 가장 경시되어지는 것 등이 무엇일까?

정 : 일단 체력과 정신력이다. 자기자신이 얼마나 할 수 있는가? 하는 한계치를 분명히 알고 가야할 것
같다. 캘리포니아건 시에라건, 워싱턴이나 오리건 구간이건 자신이 가야할 주의 특성과 걷게 될 월별
기후변화 등 모든 지식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 사례중에 쓰레기 사건, 이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당연히 안 되는 것이다.

기본적인 것들, 이것을 안 지켰다는 것은 너무 실망스러운 일이다. 이런 일로 인해 앞서 이 길을 걸었던
한국인 하이커들이 쌓아 온 모든 긍정적인 모습들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CDT나 PCT를 걸으며 가장 신경쓰고 조심했던 것이, 다른 외국인 하이커나 트레일 엔젤들에게는
한국인 하이커를 보는 것이 최초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 밝게 웃고 더 상냥하게 행동하고 더욱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조심했었다. 그렇게 좋은 인상을 남기면 그것이 한국인 하이커에 대한 좋은
느낌과 도움으로 이어질테니까.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다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할 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ROAD : 또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단어 중에 “LNT”(Leave No Trace ;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자연을 위한 캠핑문화) 라는 것이 있다. 길 위에서의 “LNT”문화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그저 “내가 만든 쓰레기는 내가 그대로 가져온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가?

정 : 그렇다. 그 정도만 하더라도 좋은 일이다. 좀 더 철저하게 지킨다면, 예를 들자.

미국은 산 속에서 화기 사용이 가능하니 불을 이용해 조리를 해 먹는다. 이럴 때 옆에 계곡이 있고 물이 흐른다고 그 계곡물에서 식기를 씻거나 하지 않는다. 물티슈로 식기를 깨끗이 닦고 잔반이나 처리한 물티슈 등을 전부 싸가지고 다닌다. 용변도 땅에 파 묻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렇게 하다가 마을이나 캠핑장을 만나면 그 곳의 쓰레기 통에 싸 온 쓰레기를 처리하면 된다.

ROAD : 승재씨가 생각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이런 장거리 하이킹 문화가 쉽게 발전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 : 제도적인 부분도 걸리고… 아무래도 태생적 문화의 차이라 본다. 각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자연에서
오는 환경이 틀리다.

미국의 친구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나고 자라니 어릴 때 부터 하이킹과 캠핑이 익숙하다. 이번에 다시 느꼈는데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3박4일이나 1주일씩 하이킹과 캠핑을 즐기러 40명씩 오더라.

그런 베이스가 아예 틀리다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받아들이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 본다.

또 다른 삶의 길을 걸을 준비를 하다.

<도착지점에 다가갈수록 겨울이 다가온다.>

ROAD : 하이킹을 끝낸 정승재씨에게 드리는 질문으로, 가장 중요한 목표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
왔다. 그리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큰 목표를 이루고 나서 앞으로의 일정이나 계획이 궁금하다.

정 : 이젠 좀 휴지기를 가지려 한다.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자리도 잡고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준비를 해
놓은 후에 나가더라도 나가고 싶다. 어찌보면 낭만적인 삶이지만 떠돌이 같은 삶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이렇게는 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렇게 기반을 닦고 한 두달 정도 떠났다가 되돌아와서 다시 또 일을 하고. 요가 강사 쪽으로도 지도자 과정을 해 볼까 진지하게 생각 중이다.

ROAD : 그런 계획은 걸으며 미리 생각해 둔 것인가?

정 : 그렇다. 그렇게 내 스스로도 준비를 하면서 백패킹도 틈틈이 즐기고 사는 삶.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백패킹은 지인들 혹은 동호회를 꾸려서 활동을 해 볼까 생각중이다. SNS의 유명한 다른 친구들과도 교류를 해 보며.

ROAD :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 하겠다. 2019년을 맞이하여 로드프레스 독자분들에게, 그리고 승재씨의
인터뷰를 읽고 장거리 하이킹을 꿈꾸는 이들에게 인사를 전한다면?

정 : 독자 여러분, 우리나라의 다양한 길들을 소개하는 로드프레스를 보면서 ‘이렇게 아름답고 다양한
길이 있구나.’하고 느끼실 겁니다. 잡지를 통해서 보고 직접 가볼 수 있는 체험형 독자가 되셨으면
합니다.

로드프레스에서도 다양한 행사를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행사에 참여도 하고 즐기시길
바랍니다.

저는 2019년에는 로드프레스의 단단한 ‘팬’층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마니아’가 되고 이런
마니아들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죠.

예비 하이커분들, 정보는 이제 어디에나 있는 세상입니다. 낯선 곳에서의 장거리 하이킹은 자신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서 그 길을 즐기고 또 사랑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래간만에 로드프레스 잡지를 다시 받은 정승재씨>

어느 사진을 봐도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특유의 표정은 인터뷰 내내, 그리고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는 순간까지 계속 되었다.

이제는 그의 말마따나 ‘휴지기를 가지고 삶에 대해 어느정도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런
시기가 왔다고 하여 그의 웃음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거라는 확신이 든다.

하이커로서 자신이 가진 큰 꿈을 이룬 후,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기에 더욱 더 즐길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그의 앞날이 그 미소만큼 밝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세상의 모든 길을 걷는 그 날까지, 언제나 자신이 있는 곳에서 그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열정이 넘칠
정승재씨를 기대하며, 인터뷰에 응해주신 정승재씨에게 지면을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린다.

 

*본 인터뷰는 월간 로드프레스 1월호에 실린 인터뷰로 인터뷰 당시의 기준으로 2018년 12월에 이루어진 인터뷰 입니다.

이번 로드프레스에서 진행하는 한국고갯길(KHT) TOUR in 부산 행사 (8월 16~18일)에 정승재님과 동료분들이 참여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