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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높이 돋는 그 길, 꽃이 반겨주는 그 길 – 정읍사오솔길 1코스

<정읍사오솔길 1코스. 전북천리길 구간은 갈림길에서 파란구간을 따른다.>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ᄃᆡᄅᆞᆯ 드ᄃᆡ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ᅌᅵ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ᄃᆡ 졈그ᄅᆞᆯ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달아 높이 좀 돋아서 먼데까지 비추어라,
당신은 저자거리(장)에 가 계신가요? 진 데를 디딜까 걱정됩니다.
어느 곳에 짐을 내려놓고 쉬고 계신가요?
가시는 곳에 날이 저물까 걱정됩니다.-

여인이 장터로 간 남편을 기다리며 산에 올라 불렀다는 정읍사.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이자 한글로 조선시대에도 실려있는 노래다. 정읍현에서 전해진 이 노래와 이야기는 결국은 기다리고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이 얽혀 애잔한 느낌을 준다.

정읍사오솔길 1코스는 이 정읍사의 고향인 정읍시의 대표적인 걷기여행 코스로 명산인 내장산의 자락을 따라 걷는 힐링코스다. 산길을 따라 고즈넉히 걸으며 그 풍경에 취해 내려올 수 있는 이 길을 로드프레스가 걸어보았다.

*원래의 코스는 위에 표기된 지도의 붉은 색 코스다. 그러나 전북천리길에서는 월영습지 갈림길에서 바로 월영마을로 내려오는 구간을 설정하였다. 이번 답사는 전북천리길 코스로 걸었다.

*코스의 시작지점과 도착지점 외에는 필요한 것을 구비할 곳이 마땅치 않다. 음료, 식수, 간식 등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정읍사공원의 오솔길 안내도. 출발지점이다.>

출발지인 정읍사공원에 도착한다. 정읍사오솔길 안내도를 보며 다시 한 번 코스를 되새긴다.

이 공원을 나와 도로를 따라 전북과학대학교 방향으로 5분 여 걸으면 전북과학대학교 맞은편으로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가 나타난다. 이 곳에서 본격적으로 숲길이 시작된다.

<아침의 운무가 채 걷히지 않은 길, 싱그러운 숲의 향기를 즐긴다.>

도심과 완벽히 차단된 길은 고요가 가득하다. 아직 채 흩어지지 않은 운무가 남아있는 산길. 그 몽환적인 분위기와 젖은 숲이 빚어내는 싱그러움에 취한다.

시작부터 오르막길이지만 이 산을 넘어 장을 오갔던 수 많은 이들은 군소리 하나 내지 않았을 터이다. 심지어 정읍사를 노래한 여인도 정한수를 떠 놓고 빌다가 이제나 오실까 산 중턱까지 조심스레 나아가봤을지 모른다.

숲이 시작하고 나서 꽤 다양한 구간별 테마를 만난다. 만남의 길, 환희의 길, 고뇌의 길, 언약의 길, 실천의 길, 탄탄대로길, 지킴의 길 등. 각각의 구간마다 그 구간이 가지는 의미를 적어놓았다. 전체적 테마는 사랑의 길로 봐도 좋을 듯 하다.

<남사면 전망대에서 노령산맥의 산들을 바라본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이지만 남사면 전망대에 올라 노령산맥을 위시한 봉우리들을 더듬어본다. 삼성산, 입암산, 방장산 순으로 희미하게 잡힌다.

이 전망대는 만남의 길이 끝나고 환희의 길이 이어지는 시점이다. 정읍사오솔길을 만나는 길이 꽤 오르막이었다면 환희의 길은 조금 더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둘레따라 돌고돌아 진달래와 손을 마주치며 나아간다.

<북사면 전망대를 지나 비탈진 산길에서 진달래 꽃길을 걷다.>

북사면 전망대를 지나면서는 왼쪽에 비탈을 준 오솔길이 이어진다.

햇빛이 비치는 길마다 진달래가 아우성이다. 자신을 한 번 더 봐달라고 하늘거리며 몸짓하는 진달래의 꽃말은 ‘사랑의 기쁨’, ‘애틋한 사랑’이다. 정읍사의 내용을 생각한다면 후자쪽이 어울린다. 그러고보니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서도 길 위에 뿌려져 사랑하는 이의 이별을 꾸미는 꽃이었으니 그 미어지는 애틋함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이 꽃길은 한 없이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하다. 그 사랑스런 흔들림에 잎에 생채기가 날 새라 고이 쓰다듬어본다.

<두꺼비 바위의 웅장한 모습>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고뇌의 길’이란 이름만큼이나 꽤 고달프다. 그래도 산 속의 풍경과 맑은 공기가 확실히 보답을 하니 찌든 때와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는 생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그렇게 구간의 정상에서 두꺼비바위를 만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바위는 처음에는 지역 주민들이 ‘머리얹은 바우’라 불렀다는 점이다. 시집갈 때 머리를 올린 모습과 비슷하여 머리얹은 바우라 부르다가 가마를 닮아 가마바우로도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 이 등산로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이방인들의 눈에는 영락없이 두꺼비로 보여 두꺼비 바위로 굳어졌다고 한다. 이름이 여러번 바뀐 바위이다.

이 바위에는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있다. 그간의 정상부에 해방하는 곳이므로 오르막길을 올라오며 지쳤던 몸을 잠시 쉬는 것이 좋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같은 코스로 올라온 어르신이 호박즙과 사탕을 넌지시 건넨다.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듣고 이 산과 정읍에 대한 자랑을 토하신다. 듣기만 해도 즐겁다. 매일같이 이 산을 오르신다고 한다. 그 맑은 공기와 산세를 매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사랑의 언약처럼 단단히 매단 자물쇠>

두꺼비바위가 언약의 길의 시작지점임을 알리듯 바위 주변의 사슬마다 자물쇠가 걸려져 있다. 저마다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험한 산, 영험한 바위가 사랑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굳게 잠근 자물쇠가 녹이 슬도록 변치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

<두꺼비바위를 지나고서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충분히 쉰 후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이제는 오르막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만발한 꽃 사이를 지난다. 꽤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타나는데 계단을 이용해 안전하게 내려가는 것이 좋다. 아마 눈이 쌓이거나 비가 내려 진흙이면 꽤 조심해야 할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이야기를 들려주신 어르신의 뒤를 따라 내려간다. ‘꽃이 만발하니 좋다’며 뒤를 돌아보며 웃으신다. 자신의 고장을 찾은 이가 만족할 만한 길이기를 바라는 기대가 묻어난다.

“아무렴요. 정말 훌륭한 길입니다.”

실제로도 그렇다. 본격적인 내장산 등산은 아니더라도 이 산자락이 사계절마다 각각의 멋으로 얼마나 걷는 이를 황홀게 할 것인지야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음이다.

<월영습지안내소 앞 월영갈림길 안내판>

<월영습지안내소와 박재환 어르신>

내리막길을 걷다가 월영습지안내소를 만난다. 여기가 전북천리길 구간인 월영갈람길로 빠지는 곳이다.

안내소 앞에서 갈퀴로 낙엽을 끌어모아 청소를 하시던 어르신이 필자를 반가이 맞는다. 어디서 오셨느냐, 월영습지는 알고 있느냐부터 자세하게 묻는다. 그리고 이 월영습지가 현재 어느단계까지 복원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 정읍사오솔길이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지 열변을 토하신다.

‘여기 저 짝으로 보이는 산으로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장관을 지낸 사람이 난 곳이고, 요 앞에서는 유명한 대학교수 누구가 난 곳이다.’며 명당 설명이다. 원래는 생태해설사가 있는데 오늘 쉬는 날인지라 자신밖에 없다며 들어와 쉬었다 가라고 한다.

“가만히 여기서 청소를 하고 습지를 지키고 있으면 주말이면 서울이고 어디고 관광버스로 사람들을 산 밑으로 실어나르는지 등산객들이 엄청 오네. 와서 여기를 지나면서 ‘아이고 이런 데서 몇일 좀 살다 갔으면 좋겠다’고들 해. 그래서 내가 ‘아 그럼 얼마든지 쉬시오. 나는 맡기고 내려갈랑게.’하면 재밌다고 웃어. 그렇게 여기 한 번 걸어보면 좋은가봐. 암 좋지.”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다. 좀 더 이야기를 청한다.

“원래 작년에 여기를 올라와서 관리를 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올해는 안할려고 했어. 그런데 생태해설사도 붙여주고 어찌저찌 하다보니 올해도 이렇게 여기를 올라오게 되었네. 계속 습지가 복원되면 더 많이들 찾아 올 것 아니것소?”

어르신의 따뜻한 환송을 받으며 갈림길에서 월영마을로 향한다.

<월영마을의 어느 고택의 풍경>

내리막을 따라 도달하는 월영마을은 참으로 넉넉한 마을이다. 마을의 집들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어우러져 있고 여기저기 꽃들이 만발한 풍경이다. 집의 크기와 상관없이 각각의 모습마다 골목마다 집들마다 꽤 여유로운 모습이다.

마을 어르신의 눈인사에 답례를 하며 도착지를 향해 걷는다. 문 아래 틈으로 고개를 내민 강아지는 어떻게든 걷는 이를 따라가려 낑낑댄다. 그 축축한 콧등을 한 번 쓰다듬어준다. 낑낑대며 애타게 문 밖으로 나가려는 울음을 등 뒤로 하고 걷는다.

월영마을, 혹시 달그림자라는 뜻일까? 그렇다면 정읍사의 ‘달아 노피곰 도다샤’라는 문구와 어떤 연관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연관이 없더라도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

<도착지인 문화광장에서>

월영교에 도착하며 여정은 막을 내린다. 인근 내장저수지 앞에 위치한 이 곳은 캠핑촌과 공원, 다양한 체험시설과 휴양시설, 박물관이 함께 한 곳으로 내장산관광테마파크라 한다. 여름이면 워터파크도 운영하고 있으므로 휴가를 맞이하여 방문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출발지와 마찬가지로 도착지에도 정읍사 오솔길 안내도세 세워져 있다. 2코스는 내장저수지 주변을 돌며 다양한 풍경을 감상하는 길이다. 체력이 충분히 남았으므로 이어서 걸어볼까 생각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산길을 걷는 코스다.

전체코스가 아닌 전북천리길 구간을 걸었으므로 다음번에는 원래의 코스를 걷거나 정읍사오솔길 2코스를 이어서 걸어도 괜찮을 듯 싶다. 도착지에서부터는 내장산 자락이므로 여름 휴가나 가을 단풍 무렵에 걸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된다. 마침 캠핑장 등의 휴양시설이 있으므로 1박을 생각한다면 더 다양한 즐길거리를 구상할 수 있지 않을까?


 

길이 주는 그 아름다움 만큼이나 길에서 만난 분들의 따뜻함, 애향심을 느낄 수 있는 길이었다. 비록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여인의 슬픔이 묻어나는 길이건만 그 슬픔마저 소박하게 그려낼 수 있는 길이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챙겨야 할 것이 생겼다. 두꺼비바위에 채울 자물쇠 하나와 월영습지탐방안내소의 박재환 어르신께 드릴 간단한 간식. 그렇게 다시 오를 그 날이 기다려진다.

 

*본 기사는 월간 로드프레스 5월호에 실린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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