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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겅 지나 조릿대 품고 걷는 구도의 길 – 해남 달마고도

<달마산 미황사 앞에 서다.>

6시간 반, 그 시간과 거리는 중요치 않다.

​내가 새벽 5시에 집을 나섰고 위에 적은 긴 시간이 걸려 해남군청에 도착하여 업무를 마치고 또 30여 분을 더 달려서야 간신히 미황사에 닿았다는 구구절절한 사연이야 ‘땅끝’이라는 말 한마디면 깔끔하게 정리될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수 많은 길들을 만나고 또 새로이 조성된 길에 대한 소식을 접한지도 꽤 되었건만 이 ‘달마고도’라는 네 글자만큼 내 눈을 지긋하게 감게 하는 것도 드물었음이다. 그래서일까 그 쾌청한 날 오후에 미황사 앞에 서서 달마산을 바라보는 기분이란, 꽤나 오래간만에 느끼는 길에 대한 ‘순수한 감정’이었다.

​물론 오후에 순환형 길로 18km에 이르는 달마고도를 답사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렇게 다음 날을 기약하고 달마산의 웅장한 자태를 가슴에 품고 첫 날은 되돌아왔다.


 

1.달마고도란?

<달마고도의 지도>

했듯이 이 달마고도는 총 거리 18km 내외의 길로 미황사에서 출발, 큰바람재와 천제단 샘터, 노지랑골, 몰고리재를 지나 다시 미황사로 돌아오는 순환형 길이다. 전체적으로 4개 코스로 나뉘어져 있으나 각 코스의 시종착점이 대중교통으로 들고 나기엔 불가능하여 대부분 오전 중에 출발해 전체 코스를 일주하는 여정으로 달마고도를 걷는다.

​빠른 걸음으로는 대략 6시간, 천천히 걷는다고 해도 약 8시간 이내로 완주할 수 있으며 크게 높고 낮은 부분이 없어 큰 무리없이 즐길 수 있는 트레일이기도 하다.

​다만 이 트레일이 가지는 가치는 길이나 소요시간, 난이도가 아닌 바로 그 길이 위치한 미황사와 달마산에서 나온다.

<미황사의 사천왕문. 이 문 좌측으로 달마고도가 시작된다.>

그 옛날, 의조화상이 인도에서 온 경전을 소의 등에 싣고 가다가 소가 드러누워 움직이지 않은 곳에 절을 세우니 이 절이 미황사의 시작이다. 이후 번창한 절은 절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달마산과 함께 이름을 떨치게 된다. 남송에서 온 고관이 “이 산이 달마대사가 은거했던 산인가, 직접 보니 과연 그럴만한 산이다.”라며 칭송하고 마을 주민들을 부러워 했다는 기록 또한 이 절과 산이 얼마나 가치있는가를 보여준다.

​다만 150년 전에는 낡은 절을 중창하고자 40여 명의 스님들이 섬을 돌며 군고(농악)패를 벌여 시주를 받기위해 배를 타고 떠났다가 사고로 모두 목숨을 잃는 슬픈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설화에 따르면 당시 한 스님이 꿈에서 어여쁜 이가 유혹하는 꿈을 꾸고 일어나 ‘오늘은 떠나지 말자’고 했으나 모두 그 꿈을 무시하고 떠났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주변마을에서는 날씨가 변덕스럽고 궂은 날이면 “미황사 스님들 군고 치듯 한다.”고 하니 얼마나 큰 변고였는지 알 만하다.

​그 이후로 1980년대까지 미황사는 쇠락한 절이었다가 현공, 금강스님이 절에 들어와 다시 일으켜세웠다. 그 중 금강스님은 현 미황사의 지주이자 달마산을 한바퀴 도는 달마고도를 제안, 만든 이이기도 하다.

 

2.꿈 꾸던 첫 걸음을 내딛다.

<달마고도의 시작>

이 미황사를 둘러보고난 후 본격적으로 달마고도 답사를 시작한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아직 사천왕 자리는 비어있다.)에 도착, 좌측을 보면 달마고도 말뚝과 함께 오솔길이 나 있다. 산사의 오솔길로 시작하는 그 길은 가히 주변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일체의 중장비 없이 오롯하게 인력과 삽, 곡괭이, 호미 등으로 만들었다는 이 길은 참으로 호젓하다. 약간의 오르내림 속에 조릿대의 낭창임을 들으며 걷는 길은 고승이 뒷짐진 채 웃으며 걷는 모습을 닮았다. 혹은 아직 깨달음의 목전에서 번뇌에 빠진 제자가 해 지는 줄 모르고 고뇌를 거듭하며 걷는 길 같기도 하다.

​아직 깨달음과 거리가 먼 속세의 중생인 우리에게는 그저 솔직한 풍경에 대해 감탄하는 길이다. 이 먼 곳까지 와서야 조금은 세상 사이에 담을 하나 놓은 듯 한 느낌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너덜겅을 만나게 된다.

​’도합 몇개의 너덜겅이 있다고 했던가? 이게 첫 번째인가?’ 하며 그 웅장한 자태에 놀란다. 암릉인 달마산, 그 1만의 석불이 세워져 있는 듯 한 웅장한 모습을 보노라니 지금의 그 모습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바위들이 떨어지고 또 깨어져 이렇게 바위의 강을 만들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 놀라움도 잠시, 두 번의 너덜겅을 지나 만나는 세 번째 너덜겅은 앞서 우리를 놀라게 한 너덜겅과는 그 크기가 비교가 안된다. 그리고 그 앞에 <첫 번째 너덜겅>이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앞서 만난 그 너덜겅은 아예 너덜겅으로 치지도 않는다는 것인가.

<돌로 된 강이 흐르는 듯 하다.>

저 높은 산부터 깨어지고 쪼개진 바위가 부챗살 모양으로 아래로 갈 수록 그 넓이를 더해 산아래까지 보이지도 않게 펼쳐져 있다. 지금의 모습또한 웅장하기 그지 없는데, 시간의 태엽을 한 없이 되감아 원래의 모습을 본다면 이 달마산의 장대함이 과연 어느 정도였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 너덜겅 사이로 바위를 잘게 쪼개고 깎아 놓은 길이 한 줄 나 있다. 마치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처럼, 돌로 된 그 강을 건넌다.

​얼마만큼이나 갔을까, 임도로 접어들었다가 다시 숲속의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전체적으로 ‘一자’로 길게 솟은 달마산의 왼쪽을 도는 지점이다. 이 앞의 터닝 포인트의 이름이 ‘큰바람재’였던가, 이름에 걸맞게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큰바람재를 돌아 달마산의 뒷편으로 나아가는 길, 한 쪽은 남해안의 아름다운 바다와 다도해의 풍경, 한 쪽은 금강산의 만물상을 축소해 놓은 듯 한 기암괴석과 장대한 암봉이 인상적인 능선이 펼쳐진다. 마치 남송의 그 고관처럼 “정말로 달마대사가 이 산에 은거했을지 모르지.”하며 중얼거린다.

 

3.달마산의 뒷길을 따라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달마산 뒷편에서 만나는 풍경은 정말로 찬탄을 금치 못하는 길이다.

​미황사쪽의 전면부보다 더욱 많은 너덜겅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길의 폭은 한 사람이 다니기에 딱 좋을 정도로 좁아진다.

또한 맞은 편, 바다쪽으로 보이는 풍경의 아름다움과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은 따뜻한 해남군의 날씨덕에 송송 솟은 이마의 땀방울을 시원하게 말려준다. 그렇게 얕은 오르내림을 몇 번을 더하며 꾸준히 전진하는 그 길은 말 그대로 구도의 길이다.

​이 환상적인 풍경 속에 난 그 작은 길, 그리고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걸음과 자신의 체력으로 걷는 길은 여기에서부터 도전의 느낌을 자아낸다. 그 수려함 속으로 들어갈 수록 점점 수려함과 주변의 풍경을 사라지고 길과 그 길을 걷는 자신만 남게 된다.

​정말 신기한 노릇이다.

​잡념을 떨쳐내려는 생각 조차도 잡념으로 본다면 이 달마산 뒤의 구간은 그런 잡념마저 허락치 않는다.

그 정도로 힘든 길이냐 하면 분명 그렇지 않은데, 걷는이는 그 기나긴 자락을 따라 자신의 한계를 생각하고 또 도전하게 된다. 구비구비 그 산을 돌고 돌아 이어지는 길을 따라 천제단 샘터에서 문바우재까지, 오로지 자신의 걸음만 남는다.

<아마 불썬봉일 것이다.>

<다도해의 풍경을 바라보며 쉬어가다.>

긴 너덜지대에서 바라보는 봉우리. 관음봉, 불썬봉, 떡봉 등 다양한 암봉과 문바우 등 기암괴석이 자리한 달마산의 자태가 어느덧 더 이상 놀랍지 않다. 그만치 이 길이 익숙해지면서 이 길의 흐름 속에 온전히 걷는이가 녹아든 것이다. 싸구려 무협지에서 말하는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를 빌려 말한다면 아마 ‘신도합일(身道合一)’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그 봉우리 위를 나는 매 한마리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 매를 향한 시선은 이윽고 다도해의 수 많은 섬들로 향한다. 바로 앞의 다리로 이어진 큰 섬은 아마 지역이 다른 완도군일 것이다. 그 완도군의 양 옆으로 수 많은 섬들이 자리한다.

​내심 걱정이 많았던 그 첫 걸음이 어느새 우보만리로 바뀌고 복잡한 세속의 이해타산과 업무의 무거움 또한 쉬면서 보는 풍경 속에서 한 줄기 뺨을 스치는 바람보다 가볍다.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이 길 위에서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그러나 완주를 위해서는 언제까지라도 주저앉아 몰아지경에 빠져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상부 등산로 및 도솔암 방향의 이정표를 지나 계속하여 걷는다. 지질이 바뀌어 어느덧 길을 덮은 돌은 마치 돌칼처럼 날카롭고 얇게 부서진 석질로 변한다. 얉은 지식에 무슨 돌인지 알 길 없으나 이 산 하나에도 이토록 다양한 지질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꽤나 놀랍다.

​메스처럼 날카로운 돌 조각을 사진으로 담고 걷기를 계속한다. 가끔은 뒤를 돌아보며 내가 걸어온 8부능선따라 구비구비 이어진 길을 보며 그 먼 길을 걸으며 이렇게나 아무 생각이 없이 걸었다는 사실에 감탄도 하고 한숨도 쉬어본다.

물론 앞을 바라보면 숲 사이로 또한 걸어가야 할 길이 언뜻 언뜻 모습을 보이기에 아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4.다시 앞으로 돌아오다

<우측 끝에서 미황사로 향하는 길. 1월의 산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

그렇게 순례아닌 순례를 이어가는 길, 드디어 우측 끝 부분의 이정표에서 미황사 방면으로 몰고리재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내내 해남군의 따뜻한 날씨에 감탄했지만 이 우측에서 시작되는 달마산 전면부의 시작지점은 보다 한층 진해진 녹색으로 인해 도저히 1월의 산중이라고 볼 수 없는 풍경을 자아낸다. 또한 대부분의 지형이 탁 트인 전경을 보여줬던 달마산 뒷편이었기에 오래간만에 만난 이런 아름드리 숲길이 반갑기도 하다.

​이 달마산 전면부 구간의 길을 걸으며 “정말 이국적인 길이면서도 정말 한국적인 길이다. 도대체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하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잠시까지 걷는것에만 집중하던 어설픈 구도자가 다시 복잡함을 껴안은 것이다. 다행이도 그것이 속세의 허물을 만남이 아니기에 행복한 고민이다.

​481m의 낮은 산이지만 어찌 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높이’로 정해질쏜가.

이 달마산이 완벽한 표본이다. 그 7~8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그렇게 한 폭의 동양화이자 누군가의 여행기에서 본 외국의 어느 트레일의 모습도 가지고 있다. 그 다채로운 색상의 화려함은 미황사의 단청보다, 사천왕문 외벽의 탱화보다 아름답다.

<그 길은 산의 앞뒤로 이렇게나 다양한 표정을 드러낸다.>

미황사까지 돌아가는 길은 참으로 넉넉하다. 넓게 펼쳐진 해남의 산과 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바다와 함께 고즈넉한 길이 펼쳐진다. 지금까지 걸어온 달마산의 뒷편이 수도의 길이었다면 이 길은 위로의 길이다. 그래서 시원한 바람보다는 따사로운 햇살이 더욱이 어울리는 길이다.

​그렇게 임도를 지나 다시 오솔길을 따라, 잠시 도솔암 방면의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 계속 미황사로 나아가는 길은 하루의 고행을 갈무리하는 시간으로 부족함이 없다. 아무리 그래도 18km의 여정을 걷는다는 것이 밥 먹듯이 쉽지는 않기에 조금씩 다가오는 종착지는 약간의 감사함마저 느껴진다. 여전히 수행이 부족한 탓이다.

​하나, 둘, 셋, 넷…. 현수막으로 확인한 것만 여덟, 아홉까지 헤아렸을까, 몇 개의 거대한 너덜겅을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작은 순례길에서 만난 마지막 너덜겅에서는 확실히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이 억만년 전에 빚어진 산이 그토록 무너지고 부서져 이렇게 큰 돌줄기를 만들어 냈다. 이 길 위를 걷는 나는 얼마나 작디 작은가, 그 작디 작은 존재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란 이 산과 길, 바위가 바라보기에는 얼마나 찰나 속, 티끌의 무게이련가…

<마지막 너덜겅에서 잠시 쉬어가다.>

지척이 미황사이건만 이 마지막 너덜겅이 주는 압도적인 풍경 속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앞으로도 -당연히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이후로도- 위의 바위는 무너져 내릴 것이고 너덜겅은 더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수천, 수만년을 부서져 내리면서 언젠가는 달마산은 지금의 장대한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거대한 바위무덤으로 변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지금 내가 본 이 풍경은 이 시간 만큼은 최고의 달마고도 풍경으로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다.

​가만있자… 그 가운데 난 길을 걷는 아주 작은 나도 이 시간 만큼은 이 길에 어울리는 하나의 소품이 아닌가?

​아니, 소품이라니! 주역도 이런 주역이 없다.

​비록 다양한 고민과 아픔, 그리고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지만 나는 이 곳이 ‘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매우 귀중한 존재이다.

내가 얼마나 작은지를 느끼게 해주었던 이 길이 곧 내가 얼마나 큰 존재이고 한 장면을 상징하는 당당한 주체인지를 깨닫게 해주니 참으로 감사하다. 그 길 위에 드리워진 내 그림자, 약간은 지친 기색이 묻어나는 숨소리와 발걸음이 그 곳이 길임을, 내가 오늘만큼은 당당한 순례자임을 증명한다.

 

5.우매한 내가 걷기때문에 더욱 빛나는 길이었다.

단숨에 미황사로 내려와 달마고도의 완주를 끝냈다. 무엇인가 기념할 만한 스탬프나 완주 인증서 등은 없지만(현재는 스탬프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나 멋진 산 한바퀴를 전부 돌았다는 사실이 꽤나 감격스럽다.

​뿐만 아니라, 그 길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이고 내가 가진 고민과 무게가 이 산과 산 사이로 흐르는 너덜겅에 비하면 얼마나 가벼운지 알게 됨과 동시에, 이 길이 ‘길’로서 가장 빛나기 위해서는 그 길 위를 걷고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서, 그토록 작은 내가 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주제이자 방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마대사는 실제로 이 곳에 머물렀을까?

​그렇다 하면 어떻고 또 아니라 한들 어떠랴. 혹시 이 길을 걷는 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전생이 달마대사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길을 걸은 나 자신이다.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