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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길 위의 여행자, ‘남한산성 둘레길’을 걷다 ② -김은선

남한산성 둘레길 3코스

남한산성 둘레길 3코스: 경기도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현절사- 벌봉-장경사- 망월사-동문- 경기도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5.7km, 2시간 소요)

<남한산성 탐방안내도>

지난 1-2코스에 이어 이번에는 동문 쪽으로 향하여 청량산과 남한산의 산세를 조망하며 걸어봅니다. 짧은 산행 길에 바로 정상길로 걸어 올라가 그림 같은 첩첩산중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하차, 2번 출구로 나와 9번 버스를 이용합니다. 버스에 친절하게도 남한산성탐방안내도가 비치되어 있네요. 지도에 열광하는 필자는 얼른 하나 챙기고요.

산성로터리주차장이 중심거리로 여기서 모든 코스가 10분 거리에 있기에 어디든 시작점으로 삼아도 좋습니다.

동문 쪽으로 향하여 3코스를 산길로 걸어가 봅니다. 4코스는 겹치는 부분이 많기에 개원사까지 같이 돌아보며 도립공원의 맑은 산행을 즐기고요. 산성 성곽 전체를 도는 5코스는 날이 좋은 어느 날 또 내 몸이 좋은 어느 날을 위해 조금 남겨 두자고요.

아 또 하나, 여름 밤엔 서문 (우익문) 밖 전망대가 서울 시내 야경 출사 포인트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더위에 지친 어느 여름 밤 여친과 함께 드라이브 겸 나오세요. 북문에서 서문 쪽으로 올라 서문 밖으로 나가 오른쪽으로 50 m정도에 서울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답니다. 

많은 분들이 서울 시내 야경사진을 찍으러 오는 곳이고요, 산성을 따라 오르는 길에는 불빛이 없으니 손전등 하나 정도 들고 여친과 손 꼭 붙잡고 가보세요. 한 여름 시원한 산 속에서 안전하지만 칠흙같은 어둠 속에 서로의 믿음이 마구마구 샘솟을 테니까요.

자, 이제 오늘의 발걸음을 내딛어 봅니다.

연일 영하 십 몇 도를 오가던 2018년의 2월 우리는 한 겨울 눈 내린 남한산성으로 갑니다. 유난히 눈이 많았던 올 겨울, 눈 덮인 남한산성을 차곡차곡 걸어봐야겠지요.

<연무관의 모습>

산성로터리에서 동문 쪽으로 길을 내려서 얼마 가지 않으니 왼쪽으로 군사들의 훈련장소인 연무관이 보입니다. 계단을 오르면 다소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데요. 군인들의 기상을 닮은 듯. 건물 내부 가운데 대들보에는 용을 그렸고 측면 대들보에는 봉황을 그려 넣은 것이 인상적입니다.

조금 더 내려가 현절사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와 지수당을 거쳐 갑니다.

지수당은 연못에 지은 정자로 한 바퀴 둘러보며 운치 있는 연못과 정자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고요. 서흔남비가 관광안내소 뒤에 숨겨져 있었네요. 영화 <남한산성>에서 고수가 연기한, 그 중요한 연락책을 맡았던 실존인물입니다. 그를 기리기 위한 비석입니다.

현절사로 마치 골목을 들어서듯 오릅니다. 지난 가을 이 길 끝에서 눈앞에 펼쳐진 은행나무 장관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남한산성 내에는 소나무군락도 유명하지만 수령이 100년 이상 된 나무들이 많기에 나무 한 그루에서도 기이한 멋을 찾을 수 있습니다. 침괘정에 있는 은행나무는 가을에 꼭 만나야 할 포인트입니다. 가을에 남한산성으로 단풍구경 삼아 와도 좋죠. 그땐 침괘정을 꼭 들르시길 바랍니다.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3명의 충신을 모신 현절사>

현절사는 경기로 유형문화제 제 4호입니다. 삼학사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화의를 반대하고 결사 항전을 주장하다가 인조가 항복한 뒤 중국 선양으로 끌려가 참형 당한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세 명의 학사를 이르고 그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라는군요.

청태종이 자신의 충신이 되면 모든 것을 사하고 높은 자리를 주겠다며 회유하였지만 끝내 충절을 꺾지 않았고 곤욕을 치르고 참형을 당하고야 만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숙종 14년 (1688)에 세웠습니다. 이후 김상헌, 정온의 위패도 함께 모셔졌고 죽어서도 나라와 임금을 향한 강직한 선비정신의 상징적 건물입니다.

현절사를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벌봉을 향해 산을 오릅니다. 눈앞에 펼쳐진 설경이 탄성을 자아내며 유난히 파란 하늘이 흰 눈과 함께 시원함으로 맞아주네요.

<봉암성 암문과 성벽>

산길을 오르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산성이 웅장합니다. 멋진 라인을 보여주는 성벽에 잠시 취합니다. 동행이 있어 좋은 것은 그녀가 바라보는 모습을 담을 수 있다는 거죠.

말하지 않고 느낄 수 있는 모습으로 한 컷 남기고요.

저 작은 문이 제3암문입니다. 봉암성 암문이라고도 하는데 예쁘게 자리한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동장대터도 나오고요.

어.머.나. 저 작은 암문을 지나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작은 암문을 지나는 순간 와!!하는 탄성을 자아내는 풍경이 바로 펼쳐집니다.

<제3암문을 지나 펼쳐지는 정상능선>

아름다운 능선을 바라보며 그리고 암문을 뒤돌아 보며 연신 탄성이 절로 나네요.

펼쳐진 남한산의 첩첩 산중 능선이 마치 산수화를 보는 듯 합니다. 정상을 오르는 맛이 이것이겠죠? 너무 쉽게 오른 정상에 기분이 한껏 들뜨네요.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연신 셔터를 눌러봅니다.

벌봉까지 목적을 삼았기에 30븐 정도 더 소요하여 다녀왔지만 굳이 벌봉은 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외동장대터 정도 돌아서 능선 길과 겨울 산 정상의 햇살, 그리고 눈 아래 펼쳐지는 산들의 능선을 더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 한 표 더 합니다.

<장경사신지옹성과 멋드러진 한 그루 나무>

벌봉과 외동장대터를 지나며 저 멀리 하남시 풍경을 만끽하고 다시 봉암성 암문으로 향하여 하산 길을 잡습니다.

저 멀리 봉암성 암문이 보이고 이내 등산객이 자분자분 걸어 오시네요. 스치듯 서로를 지나고 암문을 나가 장경사신지옹성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잠시 옹성 밖으로 나가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성벽 아래 암문을 나섭니다. 빠져 나와 고개를 드니 나무 한 그루가 참 멋들어지게 서 있네요. 가지 결이 참 예쁩니다.

“ 외로이 서 있는 나무야, 그리고 너를 휘돌아 감은 옹성아. 성벽 밖 끄트머리에서 서로를 지키려는 듯 그렇게 긴 세월을 함께 했구나”.

<장경사와 대웅전의 모습>

장경사는 30분 정도 하산 길에 바로 들어섭니다.

 

남한산성의 규모에 비해 절이 9개나 있었는데요 많은 이유는 남한산성을 고쳐 쌓고 전쟁을 위해 조선시대 하층민이었던 승려를 많이 동원하였기 때문입니다.

 

원효대사의 제자인 서산대사가 임진왜란 때 승훈을 세우고 그 호국정신을 계속 이어 받아 승려들의 나라를 위한 충절이 남달랐는데요. 인조 2년(1624)년 남한산성을 축성하기 시작할 당시에도 전국의 승려들을 징집하여 성을 쌓고 감독하게 하였습니다.

장경사는 이들의 숙식을 위해 인조 16년 (1638)년에 건립한 군막사찰입니다. 축성 후엔 훈련을 계속하여 승군으로 활약하였습니다.

산성 내 9개의 사찰 중 유일하게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있으며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 15입니다. 비록 1975년 화재 후 다시 중창하였지만요. 대웅전 지붕은 겹처마를 두른 팔작지붕으로 된 건물입니다.

장경사는 입구에 달마대사가 두 분이나 계시네요. 서 계시는 분 한 분과 앉아계시는 한 분 이렇게요. 산중 절이라서 일까요. 절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금은 보기 드문 마니차의 모습>

절에 가보시면 윤장대는 종종 보셨을 텐데요, 장경사엔 조금 생소한 모습의 경통이 보입니다.

“마니차”라고 하는데, 불교 경전을 넣은 또는 써놓은 경통입니다. 윤장대도 마니차도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과 같다 합니다.

손으로 하나 하나 돌리며 한 바퀴 돌아봅니다. 흠흠… 전생의 업장이 소멸되고 이생의 안 좋은 인연들이 멀리 저 멀리 사라지라고 내심 빌었습니다.

장경사 경내를 돌며 보이는 불교의 좋은 말씀들을 천천히 읽으며 마음을 가라앉혀봅니다.

장경사를 지나 넓은 도로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망월사가 보입니다.

깎아지른 80도 경사가 들릴까 말까 망설이게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지나칠 수 없죠. 경내가 보이는 거리기에 급경사지만 거쳐갑니다. 거꾸로 걸어가니 좀 덜 힘드네요.

 

한 바퀴 얼른 둘러보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이제 좌익문 (동문)을 지납니다. 남문에 비해 좀 수수한 게 작다 느껴집니다.

좌익문을 지나치면 다시 산성로터리 쪽으로 15분 정도 걸어 올라옵니다. 오는 길에 남한산성유산센터가 있는 왼쪽 4코스로 진입하면 개원사를 갈 수 있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그곳까지 포함해 보시는 것도 좋겠죠.

설경에 취해, 정상의 아름다움에 취해 쉬엄쉬엄 얘기도하며 걷기도하며 10시에 시작된 산행이 3시를 훌쩍 넘겼습니다. 얘기에 취해 전경에 취해 점심도 안 먹고 영하 13도의 겨울 산행을 한 후라 그런지 뜨끈한 국밥 생각이 절로 나더군요.

<남원추어탕에서 뜨끈하게 몸을 보양합니다.>

남원유원지 아래로 대로변을 따라 양쪽에 음식점이 즐비하니 무엇이든 먹을 수 있습니다.

필자는 동행하신 분이 익히 맛을 아는 이 집으로 찾아갔고요. 진하게 갈은 추어탕에 생 부추와 들깨가루를 듬뿍 넣고 밥을 말아 게눈 감추듯 퍼먹었습니다. 갓 담근 겉절이와 잘 익은 깍두기를 얹어 먹으니 어느새 바닥을 닥닥 긁고 있더군요. 가격은 만원.

봄바람이 불어와 얼은 땅을 녹이고 땅밑 뿌리를 끝까지 내려 줄기로 물을 차올리면 딱딱한 껍질을 비집고 싹이 눈을 띄우겠지요.

나무가 한 줄 한 줄 초록을 두르고 연한 잎으로 초봄의 추위를 견디며 색을 더하면 온 산이 풍성해질 겁니다. 다시 오는 그날의 모습에 나 또한 더 다부진 발걸음으로 다시 만나려 합니다.

 여름이 오면 남한산성 계곡 길로 내려서 물길을 따라 꾹꾹 걸을 것이고요, 가을이 오면 갈아 입은 옷으로 카메라를 둘러메고 다시 만나렵니다. 도보여행자는 길 위에서 쉬었다 길 위에서 다시 시작하니까요. 다시 오지만 같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니까요.

 

*본 기사는 월간 로드프레스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