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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음악 – 초원 위의 코자크족을 떠올리며 <Полюшко-поле(초원)>

<길이 멀리 펼쳐져있구나! 그래, 매우 유쾌한 길이로다!>

그 드넓은 대지, 초원의 압도적인 영향력은 하나의 신앙과도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땅과 수풀이 우거진 대지, 그 위를 달리는 말과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땅을 어머니라 불렀다.

“Mother Russia”

그 땅은 넓은만큼 무척이나 억셌다. 겨울이면 황량하게 얼어붙었으며 살을 에는 바람을 막아줄 그 어떤 자연적 장해물이 없기에 그 땅의 사람들은 강인하게 스스로 생존해야 했다.

눈이 녹는 봄이면 대지는 진창으로 변했다.

그 땅은 자신을 섬기는 민족에게도 쉽사리 따스함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 땅을 침범한 이방인에게는 무엇보다 가혹한 환경으로 징벌하였다. 유럽의 제왕인 나폴레옹도 그 땅에서 인생을 내리막으로 이끌 정도의 패배를 겪고 도망쳤으며 세계를 재앙으로 물들인 2차대전의 주역인 독일의 히틀러도 이 땅에서 처절하게 패퇴를 하고 전 유럽을 목전에 둔 채로 패망의 길로 접어들어야 했다.


 

이 음악을 소개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미술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일리야 레핀의 <오스만 술탄에게 답장을 쓰는 자포로제의 코자크인들>이다.

<오스만 술탄에게 답장을 쓰는 자포로제의 코자크인들>

무려 13년간 그린 가로 3미터 60cm, 세로 2미터 가량의 이 작품은 이 거칠은 대지를 뛰어다닌 코자크인들의 거칠은 기상을 그려낸 역작이다.

위에 이야기한 나폴레옹과 히틀러 이전에 오스만투르크가 있었다. 그 강대한 제국의 메흐메트 4세는 원정대를 보냈다가 참패하는 수모를 겪자 이들이 만만한 민족이 아님을 알고 복종을 강요하는 편지를 보냈다.

당연히 거기엔 자신의 강대함을 표현한 공격적인 어구와 자신의 발 밑에 엎드린 수 많은 공국들과 무너진 성들, 처형당한 왕들의 이름이 길게 적혀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짐짓 인자함을 비치는 회유의 문장으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이들, 그저 천둥벌거숭이라 불러도 좋을 코자크인들은 그 때에도 대단한 반골 기질이 강했다.

당시 이들이 보낸 편지의 번역본은 오늘날에도 전해지며 그 걸쭉한 욕설과 도저히 지면으로 담지 못할 음담패설은 당시 마호메트 4세에게 순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이나 되었을지 궁금할 정도이다.

2차대전 당시 항복한다며 두 손을 번쩍 든 독일군의 손을 말을 타고 달리며 내리치고는 ‘항복’이란 말은 나는 잘 모른다며 돌아 선 코자크 기병의 모습은 당시 이반 코네프 사령관이 직접 목도한 일로 기록에 남아있으니 그 기질을 알 만하다.

그림만 보더라도 ‘글을 쓸 줄 아는 탓’에 답장을 쓰게 된 인물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상대를 더욱 약올릴 수 있을지 골몰하며 한 마디 한 마디를 뱉어내고 자신의 그 악독한 단어에 스스로 취해 웃고 떠들고 옆에서 부추기는 병사들의 모습까지 어우러지니 그 왁자지껄함이 그림을 보는 이에게까지 전달이 된다.

이렇게 길게 코자크인들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 Полюшко-поле(초원)이라는 노래가 그들의 강인한 기상과 말 타는 풍경, 바람에 맞서 달리며 내뱉는 포효를 기가막히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원곡은 1933~34년에 크니페르가 작곡한 네 번째 교향곡 ‘콤소몰 전사들의 시(Поэма о бойце-комсомольце)’의 1악장 일부에서 따 왔다.

당시 소련의 군대의 강인함을 노래한 이 곡은 코자크인들의 전통민요라 착각할만큼 특이한 악색을 띈다.

먼저 초원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를 의미하는 타악기가 들릴듯 말듯 희미하게 퍼지다가 불어오는 바람을 표현하는 허밍이 어우러진다. 전체적으로 같은 곡조가 유지되지만 허밍이후 1 – 2 – 3 – 4(폭발) – 3 – 2 -1의 점진적으로 올라가다 내려가는 구조를 띄며 끝난다.

특별히 화려한 각 파트의 화음이 없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두의 목소리의 강약 조절만으로 클라이막스에 이르는 박력은 정말로 대단하다 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초입의 2번째 파트와 폭발 이후의 3번 파트로 버전에 따라서는 말이 울부짖으며 포효하는 듯한 화음이 짧게 곁들어져 듣는이에게 엄청난 쾌감을 선사하고 있다.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의 공연은 다양한 민요와 군가, 전통 춤이 어우러져 정말 황홀하다.>

많은 가수들이 불렀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버전은 역시 알렉산드로프 앙상블(Ансамбль Александрова, 다른 이름으로는 레드 아미 코러스, 즉 붉은군대 합창단으로 알려져 있다.)이 부른 버전으로 정식 앨범도 유명하지만 각 년도별로 공연에서 부른 영상들이 유명하다. (2010년과 1992년 영상을 추천한다.)


 

국내의 다양한 길들을 걸으며 때로는 산 속을, 마을을, 바닷가를 걷지만 끝이 없는 초원을 걷는 일은 꽤나 만나기 힘든 일이다.

간혹 그런 초원을 만났을때, 혹은 산에 올라 넓디 넓은 녹지를 내려다보면서 이 노래를 떠올린다. 그 대지의 강인함과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명력,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며 걷는 이의 감동까지 모든것이 어우러지는 곡이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벌판이라고 알려진 툰드라 지대와는 달리 러시아의 중앙, 서부는 정말로 그림같은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하루 종일 걸어도 집 하나 보기 힘들 정도의 그 초원, 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 러시아 일주는 나에겐 정말로 일생일대의 꿈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 잠시 선 잠이 들었을 때 귓 속에서 말 울음 소리가 들릴 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이 높이 자란 풀들을 훑고 지나갈 때, 그 초원의 바람결따라 이 노래가 내 가슴에서, 머리에서, 입에서 떠오르리라.

 

초원이여,

드넓은 초원이여,

초원을 따라 영웅들이 나아간다.

 

 처자들이여, 주목하시오.

위의 우리를 봐주시오,

길이 멀리 펼쳐져 있구나,

그래, 매우 유쾌한 길이로다!

 

 처자들이여, 주목하시오.

처자들이여, 눈물을 닦아주시오.

노래가 힘차게 울려 퍼질지니,

그래, 우리의 군가로다!

 

-본 기사는 월간 로드프레스 3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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