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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영화] 절대 가고 싶지 않지만 꼭 가야만 하는 여정 – The Way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그 어떤 이유에서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받고싶지 않은 연락일 것이다.

저명한 안과 의사인 톰은 그의 친구들과 골프를 즐기다가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흔히들 부드럽게 구르는 소리가 난다는 불어의 억양으로 전하는 메세지는 그 무엇보다 차가울 수 없다. 

“유감입니다. 당신의 아들이 사망했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은 톰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자랑거리이다. 세계 일류의 대학을 나오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 아들. 그래서 톰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그 아들이 나서길 바란다. 그러나 무려 서른이 되어서까지 아버지가 지시한 방향대로만 살아 온 아들은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아버지에게 소리친다.

“일이 아닌 여행으로 세상을 보신 적 있으세요? 저는 다양한 곳을 가고 싶어요. 많은 것을 느끼고 싶다고요!”

톰에게 그것은 ‘반항’을 넘어선 일종의 ‘인생’에 대한 배반이다. 성공가도를 달리고 수많은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길을 그만두고 훌쩍 세상 밖으로 나가보겠다는 아들의 고집은 톰이 가지고 있는 ‘올바른 인생관’에 완벽히 역행되는 행동이다. 

<언제나 싸우는 부자, 서로가 서로를 이해치못한다.>

아들을 태우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서도 부자는 서로 싸운다.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 못 하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너무나 답답하기만 하다. 이젠 자신 스스로 무엇인가를 정해서 자신이 가고 픈 길로 가고 보고픈 것을 보려는데 그것을 ‘실패로 가는 길’이라고 단정짓는 아버지는 야속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의 첫 문’으로 선택한 산티아고 순례길, 그 서른이 넘어서 떠난 첫 여행의 첫 날 아들은 비극적으로 죽고만다.

그리고 톰은 아들의 유해를 가지고 오기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의 프랑스 루트 시작 지점인 생 장으로 향한다.

<아들의 사망 원인과 아들이 가려 했던 길에 대해 듣는 톰>

경찰서에 도착, 서장에게 사고상황을 듣는 톰. 

그에게 있어서 아들과의 마지막 모습이 서로를 이해 못하는 다툼 후의 이별이었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다. 도대체 아들은 왜 그 길을 가려고 했을까? 결국 여정의 첫 날 죽어 영원히 걷지 못하게 된 그 길은 어떤 길일까?

톰은 아들의 유품인 배낭을 인수한다. 그리고 그 묵직함 속에서 아들의 식지않은 체온을 느끼기를 희망한다. 하나하나 배낭을 보며 그는 아들의 시신 처리를 보류했던 결정을 뒤집고 늦은 밤 경찰서장을 찾아간다. 

“화장하겠소.”

그렇게 한 줌의 재가 된 아들의 유골을 고이 담아 배낭에 매고 톰은 아들이 못 다간 길을 걷기로 한다. 첫 날 사망했으니 온전히 다 걸어야 하는 길이다. 

하지만 톰은 주저하지 않는다. 걸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경찰서장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그가 아들에게 허락치 못했던 그 세상 밖의 풍경, 그리고 그 역시 보지 못했던 그 모습을 뒤늦게라도 보기 위해 아들의 유골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의 여정을 시작한다.

<그는 온전히 ‘인생의 안내자’이자 ‘길벗’이 되기로 한다.>

걸을 준비가 없이, 즉흥적으로 시작한 그 길은 그에게 있어 진정한 순례의 길이다. 

때로는 아들의 유골이 담긴 배낭을 물에 떠내려보낼 뻔 하고 때로는 집시에게 도둑맞을 뻔한 위기도 겪는다. 그래도 톰은 어떻게든 그 배낭과 아들의 유골을 찾아서 걷는다. 그 걸음에 있어서 자신과의 성찰, 대화는 없다. “오로지 내 눈을 통해 아들이 그토록 보고자 했던 것을 보여주는 것, 내 발을 통해 아들이 그토록 걷고자 했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인생의 말년에 아들을 잃고서야 아비는 아들에게 있어서 삶의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로서의 자리를 되찾는다. 그리고 인상적인 풍경이 있는 곳, 갈림길이나 표식 등에 아들의 유골을 조금씩 뿌리며 그 걷고자 했던 길에 아들이 머물기를 기원한다.

<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연과 다양한 아픔들>

톰은 그 길을 걸어가며 네덜란드에서 온 ‘마약쟁이’ 유스트를 만나고(사실 생 장에서부터 서로 안면을 익혔다.) 뱃속의 아기를 잃은 슬픔을 가진 사라를 만난다. 아일랜드 출신의 ‘멋진 글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인’ 잭도 그 여정에 끼어든다.

그런 만남은 인위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같은 길을 걸으며 우연히 조우하고 또 대화를 하며 자연스레 동행하는 길이다. 그 가운데에서 서로는 서로의 가슴 속 사연을 꺼내놓지 않는다. 당연히 쉽게 꺼내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도 하다. 그래서 그들의 유머는 겉돌고 서로간의 거리는 일정 이상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 상황을 ‘길’은 방치하지 않는다.

서로의 상처를 모른 채 그 상처를 부지불식간 건드리면서 그들은 갈등과 폭발을 통해 서로를 알고 서로를 위로한다. 그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다. 그 길에서 모두가 자신의 숙제를 풀기위해 나서지만 결국 자신의 숙제는 자신이 풀어야 한다는 것은 진리이다. 다만 그 힌트를 줄 수 있는 이는 제 3자다. 그리고 그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길’이다.

<그 길의 마지막에서, 서로는 마음을 덮은 슬픔을 날려보낸다.>

길의 곳곳에서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톰. 아들은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화난 표정으로, 때로는 그저 바라볼 뿐인 눈빛으로 아버지의 여정을 따라간다. 철저히 방관자의 입장인 아들의 영혼, 아들은 자신이 걷지 못한 그 여정을 통해 자신이 변화를 바랬던 것 만큼이나 아버지가 변화되기를 조용히 응원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의 영상은 슬프도록 장엄하다. 그리고 그 의식 가운데에서 모두는 자신들의 슬픔의 근원이 해소되지는 않더라도 자신들의 마음속에 평안이 가득 차 있음을 느낀다. 다시 살아갈 이유, 다시 일어서야 할 이유를 찾고 그 원동력을 얻게 된 것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여정 속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움직이며 서로를 감싸안고 나누는 길 속에서 아버지는 더욱 더 너른 사계를 경험하고 보고자 마음 먹는다. 내 아들이 못했다면 나라도 해야한다는 그 의지는 여간해서는 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들의 영혼은 언제나 길의 여정 어딘가에서 아버지를 바라본다.>

이 영화는 때로는 유쾌한 코미디이자 아름다운 드라마이기도 하다. 

큰 격랑이 없이 잔잔한 그 길 위의 여정과 스틱의 리드미컬한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그 네 명의 여정 사이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도 나누고 싶기를 희망할 것이다.

길이 부리는 마법, 그 잔잔한 감동 속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름다운 영화이다. 

물론 우리는 꼭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니더라도 다른 길에서도 그와 같은 마법 속에 빠질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어쩌면 이 영화의 제목은 그래서 ‘The Way’인지 모른다. 

당신의 물음과 마음속 상처에 대한 해답 말이다.

 

*본 기사는 월간 로드프레스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