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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영화] “궁금해서 그러는데, 다음은 뭘 할거야?” – A Walk In The Woods

<스티븐(左)과 빌(右)의 위치가 이 영화를 말해준다.>

*본 기사는 영화의 내용과 결말에 관련된 부분이 들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윌리엄 브라이슨(줄여서 빌이라고 하자.)에게 그 날은 무진장 꼬이는 날이었다.

책을 발행하여 홍보하는 방송채널에서 사회자는 그의 신경을 긁어놓는다. 유럽과 호주, 아시아를 여행하여 책을 내면서 정작 당신이 살고 있는 미국에는 관심이 없냐는 질문, 빌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다. 아주 짧은 그 초대석 프로그램에서 빌은 책에 대한 홍보보다는 당혹감만 가지고 나온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와 같이 장례식에 참석하여 슬피 우는 미망인 앞에서 “이거 참 기쁜일이…”라며 말이 헛 나오는 실수를 저지른다. 아침부터 무언가 꼬인 것이 쉬이 틀어지지 않는다.

결국 화도 나고 지친 빌은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집 뒤의 산책로를 걷는다. 그 산책로를 걸으니 눈에 띄는 것은 AT 트레일(Appalachian Trail) 안내판.

그의 집은 AT 트레일 구간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했던 것이다.

잠시 길을 걷다 돌아온 그는 AT 트레일이 궁금해서 검색창에 입력을 해 본다. 그리고 나오는 너무나 멋진 사진…

<이 바위에 우뚝 선 하이커의 사진에 빌은 매료되고 만다.>

<Appalachian Trail의 전체 노선. 3,500km에 달하며 도전자중 10% 가량이 완주한다.>

3,500km에 이르는 장거리 트레일이자 PCT와 CDT에 이은 미국 3대 트레일 중 하나인 그 트레일에 빌은 그 자리에서 매료되고 만다.

그 날 당장 집 앞 마당에서 30년 전에 사용하던 텐트를 쳐 보는 빌. 아내는 뜬금없이 하이킹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부스럭대는 남편이 걱정이다. 어떻게 말을 해 봐도 듣지않고 묵묵히 준비를 하는 그 고집을 누가 꺾을쏜가.

그나마 아들 샘은 아버지를 돕고자 자신이 잘 아는 아웃도어 매장에 빌을 데려간다.

30년 전 숲에서 텐트를 치고 간단히 캠핑 정도를 즐겼던게 전부인 빌에게 텐트의 방수기능, 폴대의 재료, 천의 재질과 내구성 등은 세상에서 처음 듣는 외국어나 다름없다. 게다가 배낭! 280달러가 넘는 배낭의 가격에도 놀라지만 배낭에 왜 방수커버가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얼추 손 한 가득 장비를 사온 빌의 책상에 놓인 책 “곰의 습격”은 아내의 작품이다.

거기에 온갖 부정적인 기사만 잔뜩 찾아 스크랩 해 놓는것도 잊지 않았다. “부패된 시신이 트레일에서 발견….’, “트레일 살인사건, 미궁 속으로…”, “곰에게 습격 당한 자…”, “정체불명의 감염, 야생 동식물에서 옮아…”…

문제는 아내의 이런 갸륵한(?) 정성도 아무런 준비나 지식없이, 정말 한 순간에 AT 트레일에 빠져든 빌에게는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비의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 빌은 동행자를 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벌써 4번째 손자의 탄생을 기다릴 정도로 나이많은 빌의 도전에 친구들은 웃음과 놀림으로 화답한다. 여러 번 전화를 돌려도 긍정적인 반응은 없다.

그 때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

40년 전 같이 스페인과 영국 등 해외를 여행했던 망나니 친구 스티븐 캣츠. 당시 여행지에서 싸우고 난 이후 서로 신경을 끊고 40년이나 연락조차 하지 않고 지냈던 그 친구가 빌이 다른 친구에게 AT 트레일을 가자고 요청했다는 것을 듣고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스티븐은 빌에게 내가 함께 가도 괜찮겠냐고 묻는다. 안 될게 무엇인가! 그렇게 빌은 흔쾌히 허락하고 이튿날 공항에서 스티븐을 기다린다.

“너가 나를 한 방 먹이는구나…”

소형 국내선 경비행기 안에서 내리는 스티븐은 알콜 중독이 역력한 모습으로 군용 륙색을 거칠게 승무원에게 맡긴 후 몇 개의 계단조차도 힘에 겨워하며 간신히 발을 옮긴다.

“한 쪽은 티타늄 무릎이고 한 쪽은 인공 관절이거든.” 그 우습지도 않은 농담에 빌은 어색하게 응대할 뿐이다. 이 친구와 3,500km의 AT를 걸어야 한다니.

<헐떡이는 숨, 흘러내리는 바지, 불룩한 배는 스티븐을 상징하는 요소다.>

결국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여정은 시작된다.

첫 날 숙소를 지나 약 30m(그래, 30m이다.)를 걸으면서 이미 숨을 헐떡이고 다리를 저는 스티븐. 빌은 혼란스럽다. 그래도 자신의 여행을 해야 하는지라 친구를 매몰차게 채근해본다. 스티븐은 사람 좋은 농담으로 맞받아치면서 빌의 뒤를 헐떡이며 쫓아간다.

이들의 여정은 의외로 매우 순탄하다. 어느새 빌과 충분히 보폭을 맞추게 된 스티븐. 그리고 40년의 거리를 단 한번에 단축시키진 않았지만 약간의 거리를 두고 스티븐을 받아들인 빌. 그들의 여정은 다양한 짧은 만남과 에피소드 속에서 유쾌하게 흘러간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시선은 아주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난다.

스티븐에게 빌은 이미 저명한 작가가 되고 멋진 아내와 결혼도 하고, 그 꿈꾸던 ‘볼보’차에 멋진 집에서 손자들도 넷이나 가진 성공한 인생이다. 같이 여기저기 젊음을 불태우며 좌충우돌 여행을 했던 그 빌이 아니다.

빌에게 스티븐은 인생의 말년이 되도록 알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을 못 차린, 두 건의 기소중인 사건을 뒤로 하고 털레털레 여행간다는 소리에 참여한 한심한 친구이다.

물론 의기투합하여 위험을 벗어나고 악천후 속에서 동고동락을 하지만 풍경 속에서 휴식을 취할 때마다 빌이 들려주는 지질학적, 생태학적 이야기들이 스티븐에겐 지식이 없는 이를 위한 강요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거친 소리로 대꾸를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이 위축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스티븐은 더욱 자신을 포장한다.

<놀라운 풍경 앞에 매료된 두 사람. ‘행복하냐고? 행복은…음….’>

영화의 거의 끝무렵까지 이 둘의 여행은 그렇게 완만한 굴곡을 따라 흘러간다.

물론 고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여행에서는 더 이상 얻을 게 없다며 렌트카를 타고 여정을 단축하자는 스티븐, 단호히 거절하며 홀로 걷겠다고 떠나는 빌의 뒷모습을 보며 스티븐은 서둘러 배낭을 메고 쫓아간다.

가만히 보면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스티븐이 항상 빌의 선택을 따르고 결국 자신의 의견을 내려놓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모든 여정 속에서 빌은 언제나 스티븐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다.

“이건 내 여정이고, 너는 너가 원해서 왔을 뿐이니까.”

그러나 스티븐을 동반자가 아닌, 여행의 초대받은 자로 인식하는 빌의 생각은 스티븐이 자신의 삶에서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을 바위에 앉아 버리면서, 그리고 여행의 말미에 크다면 클 수 있는 사고를 당하고서도 빌을 원망하지 않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뀐다.

그날 밤 두 달여만에 가장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치켜세워주는 빌과 스티븐. 그리고 거기에서 두 사람의 기나긴 여정은 끝이 난다. 전체의 거리 중 절반을 약간 못 미친 지점이지만 이미 그들은 그 여정에서 더 이상 얻을 수 없는 큰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빌은 자신의 책상에 놓인 스티븐의 선물을 보고 웃음을 짓는다. 이 유쾌하고 잔잔한 영화 중 가장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그 장면에서 빌의 웃음은 그리움, 그리고 미안함과 고마움의 눈물을 감춘 웃음이라는 것을 영화를 본 이는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 선물이 무엇인지는 직접 확인하기를 바란다.)

<둘이 친해지는 방법은 공동의 적을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와 여행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는 여행을 즐기는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자신과 성향이 같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도 막상 여정 속에서 얼마나 나와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른지 깨달으면서 때로는 그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물며 40년만에 만난, 그리고 삶의 방식과 태도, 나아가 사회적 위치까지 다른 친구와 두 달을 걷는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빌은 스티븐을 동반자가 아닌 초대받은 자로 인식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빌을 인정하고 그의 선택을 따르는 양보(물론 대부분의 선택은 ‘객관적으로’ 빌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것이긴 하다.)를 하며 스티븐은 스스로에게 충실한, 어찌보면 빌보다 더한 인내의 여행을 하고 있었다.

길을 걷는다는 것, 그 사이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인연만큼 회자되는 것이 관계의 회복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가족과 걷고 또 친구와 걷는다.

다만 그 걷는 걸음에 있어서 자신이 리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함을 깨달았다. 권유하는 이보다 더 대단한 이가 계획에 없던 낯선 여정에 흔쾌히 동참한 이며, 권유하는 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참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여정만큼 함께하는 이의 여정도 중요하고 같은 곳을 향해 걷고 있을지라도 그 길에서 원하는 목표는 서로 상이할 수 있음도 깨달아야 한다.

<육포를 나누고 서로 가진 물의 양을 체크하는 대화 속에서 신뢰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또 양보하면, 결국 완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 혹은 완주해도 얻지 못하는 것을 훨씬 빠르게 얻고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나긴 여정은 거기에서 멈추어도 좋지 않을까?

우리는 완주를 위해 걷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트레일을 거슬러 내려오는 차량의 뒷칸에서 하이커들을 바라보며 밝게 웃는 스티븐과 빌의 모습,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기쁨과 행복이 아니던가.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