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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일본 시고쿠 오헨로(御遍路) 순례길 – 이영섭

소원을 맺는 결원(結願)의 오쿠보지(大窪寺), 그 자유로운 길을 걷다.

글 사진 /이영섭

\걷는 거리 : 11.8km
\걷는 시간 : 4~5시간
\코스 : 마에야마댐~다로베에간~여체산~오쿠보지
\난이도 : 조금 힘들어요
\좋은 계절 : 3~5월, 10~11월

<오헨로 순례길의 주인공 홍법(고우보우)대사>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면 일본에는 오헨로 순례길이 있다.

이 길은 일본열도를 이루는 섬 중 가장 작은 섬인 시고쿠(四國)에 있다. 일본열도를 구성하는 네 개의 섬 홋카이도(北海道)・혼슈(本州)・규슈(九州)・시고쿠 가운데 시고쿠는 제주도의 10배 넓이로 북으로는 일본의 지중해라 불리는 세토내해에 포근히 둘러싸여있고, 남으로는 태평양과 맞닿아 있는 섬이다.

<오헨로 순례길 코스>

약 1400km 거리를 일주하는 1200년 된 일본 최고의 도보순례길, 오헨로는 서기 800년경 일본의 승려 고우보우(弘法)대사(774~835)가 수행한 발자취를 더듬어 88개 사찰(시고쿠의 4개현, 도쿠시마현 23곳, 고치현 16곳, 에히메현 26곳, 가가와현 23곳)을 순례하는 것이다. 원래 88이란 88가지 번뇌에서 유래한 숫자인데 이는 만다라의 세계를 지칭한다고 한다.

일본 불교의 종파인 진언밀교를 개창한 고우보우 대사는 우리나라의 원효대사처럼 대중적으로 추앙받는 승려다. 일본의 속담에‘고우보우도 글을 잘못 쓸 때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소박한 사찰음식 사누키(讚岐)우동은 이제 시고쿠 가가와(香川)현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작가 무라카미하루키(村上春樹)도 홀린 맛이다. 사누키는 가가와현의 옛 이름이다. 대사가 태어난 고향이기도하다.

세상의 번뇌를 털어버리는 수행의

오헨로는 도쿠시마현 료젠지(靈山寺)사찰에서 출발해 가가와현 오쿠보지까지 88개 사찰을 따라 50~60일 정도 걷다 보면 시고쿠섬을 일주하게 되는 대장정이다. 본래 목적은 종교적인 수행을 하면서 건강과 안녕, 평화 등을 기원하는 것이지만 요즘은 걷기가 유행하면서 순례길을 찾는 사람이 많다.

<오헨로 순례길의 차림>

전통차림은 소복에 삿갓, 금강지팡이, 지령(방울),두타봉투(경문책이나 납경장 등을 넣는 봉투), 납찰(納札・주소와 이름, 기원을 적은 종이로 명함을 겸한다). 납경장(영지에 참배한 증표를 찍어주는 수첩), 와게사(목에 거는 약식 가사), 경본 등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흰옷에 금강지팡이만 들어도 순례자로 접대를 받을 수 있다. 요즘은 편안한 복장으로 걷는 이도 많아지고 있다. 오래된 역사,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자 새로운 문화체험의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헨로 순례길 표식>

오헨로는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길이 많이 있기 때문에 꼭 걸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 버스 등 교통수단을 이용한 순례도 가능하다. 시고쿠는 우리나라 제주도와 비슷한 위도상에 있어서 고온다습하다. 6,7월엔 장마가 있고 9월은 태풍이 오는 계절이라 3~5월,10~11 월이 오헨로길을 걷기에 좋다.

오헨로 길 중 마지막으로 걷는 88번째 오쿠보지 코스는 소원을 맺는 결원의 길이다.

<오쿠보지의 모습>

마에야마(前山)댐~다로베에간(太郞兵衛館)~여체산(女體山)~오쿠보지(大窪寺·대와사)로 이어지는 1.8km(4시간 정도) 길은 88번 코스 중 일부로 다로베에간과 여체산을 힘들게 넘어서야 만날 수 있다.

오쿠보지는 산과 계곡을 만나는 마지막 관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긴 여정을 매듭짓는 길은 순례자가 쓰러질 정도로 험한 순례 고로가시(御遍ころがし・순례길 중 길이 험한 곳)다.

이곳은 고우보우 대사가 고야산(高野山)에서 입적하기 전까지 수행하던 곳으로 모든 소원을 맺은 결원(結願)의 장소이기도 하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오쿠보지까지 순례를 마치면 번뇌를 이기고 해탈의 경지에 든다고 한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감사의 표시로 고우보우 대사의 상징인 금강지팡이를 봉납하고 가기도 한다. 일찍부터 여성의 입산을 허락했기 때문에 뇨닌고야(女人高野)라고도 불린다.

지장보살도 동행하는 대자연을 품은

출발지인 마에야마 오헨로 교류살롱은 시고쿠 섬 입체 모형도가 있어서 오헨로 코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순례문화를 체계적으로 알 수 있고 오헨로의 역사와 고우보우대사에 관한 자료도 잘 정리되어 있다.

<마에야마 댐>

오헨로 교류살롱 바로 옆에 있는 마에야마 댐에서 본격적인 순례길에 나섰다. 오쿠보지 순례길과 첫 대면이다. 자연이라는 최고의 선물과 함께 깊은 산속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호젓한 길을 들어서자마자 댐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 아스팔트길을 만났다. 순례길은 아름다운 길이 아닌 소원을 비는 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빨간 모자와 흰색 턱받이를 두른 지장보살도 순례길을 동행한다.>

물을 막아 놓은 저수지를 지나 왼쪽으로 접어들자 숲이 나타났다. 숲 길가를 따라 자그마한 지장보살 석상이 드문드문 놓여 있다. 줄지어 앉아 있는 지장보살은 하나같이 빨간 모자와 흰색 턱받이를 하고 있다. 지장보살은 1km에 걸쳐 모두 88개가 늘어서 있는데 88코스를 의미 한다고 한다.

빨간 모자와 흰색 턱받이를 두른 지장보살에는 사이노가와라(賽の河原)라는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전설 속에서 지장보살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뜬 어린 영혼들의 보호자로 등장한다.

지장보살에 모자와 턱받이를 씌우며, 아기를 보살펴 달라고 부모는 기원한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모든 중생이 구원받을 때까지 그곳을 지키다가 마지막에 부처가 되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다.

<대나무숲길을 지나면 다시 삼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아스팔트길은 어느새 대나무숲길로 이어졌다. 대나무 사이사이로 계곡이 깊다. 계곡 길은 다시 삼나무 숲길로 변해 갔다.

청신한 기운을 내뿜는 쭉쭉 뻗은 삼나무 숲을 지나면서 산은 점점 깊어졌다. 곁을 슬쩍 보니 숲길과 함께 반석 위로 하늘빛이 내려와 앉는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햇살이 뒤척이는 맑은 물살에 탁족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기 때문이다. 물 흐르는 소리가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해 준다. 여기서는 급하게 가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친 몸을 추스르고 다시 길을 나섰다. 계곡을 왼쪽으로 끼고 산허리를 돌아서자 원시림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스며든다. 이제까지 미처 느끼지 못했던 숲의 향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소중한 것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삼나무 사이로 햇살이 들어와도 황홀한 눈빛으로 마주하는 여유도 생겼다. 그래도 산을 올라설 때는 말을 아끼게 된다. 지금껏 걸어온 길을 가늠해 보면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

<결원(結願) 등의 문구가 순례자의 마음을 달래준다.>

역시 결원의 길은 가벼운 길이 아니었다. 그래도 길가에 핀 꽃들과 우거진 수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동행이인(同行二人・순례길엔 항상 고우보우 대사가 동반해 지켜 준다는 의미), 감사, 결원(結願) 등의 문구가 순례자의 마음을 달래준다.

다로베에간 능선길을 넘어서자 바위가 많은 험한 길이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아 생각보다 힘이 덜 들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걷다 보니 편안한 숲길이 다시 펼쳐진다.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는 길이다. 오쿠보지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여체산은 오히려 고단한 몸을 위로해 준다. 하산의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 날아오를 듯 솟아있는 오쿠보지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다로베에간과 여체산 두 봉우리를 힘들게 오르고 내려와 만나는 오쿠보지는 땀을 흘린 뒤에 만나는 달콤한 휴식이었다.

천년을 뛰어넘은 동행 끝에는 자유가 있었다.

 

주변 볼거리

예술의 나오시마(直島)

<섬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안도 다다오의 지추(地中) 미술관 전경>

그림 같은 섬들이 떠 있는 세토내해에 포근히 안긴 작은 섬 나오시마가 예술의 섬으로 화려하게 변신 중이다.

구리 제련소가 고작이었던 평범한 섬을 예술 공간으로 바꾸는 이른바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빛은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건축은 인간이 자연을 느끼도록 하는 매체’라는 건축철학을 가지고 있는 안도 다다오가 총연출을 맡았으며 교육기업인 베네세그룹의 후쿠다케 회장이 “자연과 인간과 예술이 숨 쉬는 문화의 섬을 가꾸고 싶다”고 설계를 부탁하면서 시작되었다.

나오시마 남쪽 끝 전망 좋은 언덕에 베네세하우스(benesse house)를 만들고, 혼무라(本村)일대의 오래된 집을 예술가들의 손길로 옷을 갈아 입혔다. 그 결과 섬 주민들도 즐겁게 참여하는 행복한 마을로 새롭게 탄생했다. 특히 지형을 그대로 살린 지추(地中) 미술관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땅속에 미술관을 만들어 건축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당연히 지상은 없고 지하층만 3층까지 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10분 남짓 뒷동산을 올라서야 미술관이 나타난다. 천장이 뚫려있어 자연광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자연이 미술관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지추 미술관은 19세기 프랑스화가 클로드 모네(Coaude Monet)의 작품과 미국작가 월터드 마리아(Walter De Maria), 제임스 투럴(James Turrel)의 작품만을 위해 디자인되었다. 그 중에서도 클로드 모네의 말년 대작 수련의 못(6m×2m)과 3점의 연꽃시리즈가 백미다.

자연광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그림의 표정이 바뀐다. 클로드 모네와 안도 다다오의 빛에 대한 생각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가히 빛의 연출자다. 아쉽게도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한다.

지추 미술관과 더불어 베네세 하우스도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전망이 좋은 경사면을 이용한 기하학적 건축물은 바다를 그대로 끌어안았다.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를 이용해서 오픈된 공간을 빚어낸 것이다. 그야말로 섬전체가 살아있는 미술관이다.

소원을 비는 고토히라구(金刀比羅宮)

<평생 한 번은 꼭 참배하고 싶은 곳 고토히라구 본궁. 바다의 수호신을 모신 신사다.>

 코끼리 머리를 닮은 산중턱에 평생 한 번은 꼭 참배하고 싶은 곳으로 알려진 고토히라구가 있다.

곤피라상 이라는 애칭으로 옛날부터 사랑받아 온 바다의 수호신을 모신 신사다. 고토히라구의 상징은 신사입구에서 본궁까지 이어지는 돌계단이다.

그렇다보니 좁고 긴 언덕마다 들어선 가게에서 지팡이를 파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참배도 입구에서 시작해서 365개 돌계단을 지나야 오오문(大門)에 겨우 도착하고, 785개 돌계단을 올라서야 본궁이 나타난다. 오쿠샤(奧社)까지는 1368개다.

<‘곤피라상 참배’라는 글귀를 붙인 개가 유명하다.>

돌계단과 함께 ‘곤피라상 참배’라는 글귀를 붙인 개가 유명하다. 옛날에는 참배를 대신 부탁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행운을 상징하는 노란 부적과 황금색 개 한 마리 세트가 최고의 인기다.

커다란 이중문 오오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다섯 명의 아줌마가 “가미요 아메” 라는 엿을 판다. 다른 신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옛날부터 다섯 가문에게만 영업을 허가해 주었는데 신사를 찾는 이들은 좋은 일이생기기를 기대하면서 엿을 사 먹는다고 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 신사는 문화재도 많고 절과 공존했던 시기에 세워져 독특한 건축양식도 많다. 본궁 앞 전망대에 서면 사누키 평야가 발 아래로 그림처럼 펼쳐진다.

저 멀리 가가와현의 후지산이라 불리는 이이노야마도 한눈에 들어온다. 소원성취를 이뤘는지 땀에 젖은 참배객들의 얼굴이 편안하다.

 

*본 기사는 월간 로드프레스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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