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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⑬ 세고비아에서 리듬 좀 타봤다! – 곽동운

  • 필자 주: 지난 겨울(2018년 12월~2019년 1월)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방문했습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도보여행의 취지에 맞는 곳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시티트레킹 정도가 되겠네요.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은 잠시 ‘역사트레킹 세계사개론’이 되어봅니다.

 

  • 세고비아와 ‘세고비아’는 무슨 관계?

예전에 통기타가 하나 있었다. 열심히 튕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유시인까지는 못되더라도 좋아하는 후배 앞에서 폼 좀 잡아보겠다고… 그때 튕기던 기타가 바로 ‘세고비아 기타’였다. 그런 기억 때문에 세고비아는 필자에게 전혀 낯선 도시가 아니었다. 세고비아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약 7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세고비아 기타는 유명 기타리스트인 안드레아 세고비아의 이름을 따서 상품명으로 삼았다. 안드레아 세고비아는 다른 악기용으로 작곡된 음악들을 기타 연주에 적합하게 편곡을 하는 등, 현대 기타 연주의 대가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안드레아 덕택에 ‘세고비아 기타’가 이름을 얻게 됐고, 그 상품명 덕분에 세고비아라는 도시가 우리 귀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세고비아에 가면 안드레아와 관련된 기타 박물관 같은 것이 있는 줄 알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도시 세고비아와 안드레아 세고비아와는 별 관계가 없다. 그는 남부인 안달루시아 출신이고 데뷔도 안달루시아에서 했다. 그냥 그의 이름에 ‘세고비아’라는 도시 이름이 들어간 것뿐이다. <강철군화>의 저자 잭 런던처럼 그냥 사람 이름에 도시명이 포함된 것이다.

 

  • 세고비아의 랜드마크 수도교

<수도교의 웅장함>

2019년 1월 28일, 5년 만에 다시 방문한 세고비아. 그 세고비아의 랜드마크 수도교(aqueduct).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도교가 주는 감흥은 대단했다.

“정말 환상적이야!”

무슨 말이 필요할까? 사람이 만든, 더군다나 2천 년 전 로마시대에 만든 건축물이 저렇게 아름답단 말인가! 수많은 아치들이 줄지어 이어지는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마치 리듬을 타는 것 같았다. 무지개형 아치들이 리듬을 타고 있으니 통기타를 튕기면서 이 노래를 부를 것 같다.

  • somewhere over the rainbow

잠깐 여기서 수도교의 스펙을 살펴보자.

기둥: 120개 / 아치: 167개

관로: 253030cm / 총길이: 16,220km

최고높이: 28.10m / 교량구간: 728m

앞서 언급했듯이 수도교는 로마시대인, 기원 후 1~2세기에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당시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반도는 로마의 식민지였다. 로마인들은 곳곳에 식민도시를 세웠는데 세고비아도 그 중 하나였다.

정착지는 세워졌지만 문제가 하나있었다. 세고비아는 넓은 평원에 자리 잡고 있는 터라 대규모로 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수원지와 거리가 멀었다. 수도교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로마인들은 외곽에 있는 프리오 강(Rio Frio)에서부터 중심부까지 수로(水路)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무려 16km에 달하는 수로가 만들어졌다.

<관로. 지금은 물이 아닌 낙엽이 쌓여있다.>

수도교는 그 수로의 교량구간이다. 즉 16km 송수관 중 728m 정도가 아치형 다리 위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로마인들은 왜 수도교라는 교량을 만들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냥 수로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하물며 시멘트도 없던 시대에 그런 거대한 구조물을 축조한다는 건 엄청난 공사였기 때문이다.

수도교를 잘 즐길 수 있는 곳은 아조구에호(Plaza de Azoguejo) 광장인데 그곳을 중심으로 양 옆쪽을 보면 왜 로마인들이 거대한 아치형 교각을 세웠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양 옆의 언덕으로 인해 광장은 협곡 형태를 띠게 된다.

이제껏 수로를 타고 온 물이 협곡으로 떨어지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 것이다. 협곡을 넘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인위적인 구조물을 연결하여 최종목적지까지 물을 도달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양편을 이으려고 하니 거대한 구조물이 필요했고, 교량 형식이니 아치가 그려졌다.

또한 협곡의 높이가 있으니 아치가 복층 형식이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고비아의 수도교가 탄생됐던 것이고, 그 가치를 높이 사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기에 이른다.

 

  • 악마가 만든 수도교?

<수도교의 마지막부분>

옛날 옛적에 이 거대한 교량은 악마의 구조물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접착제도 없이 큰 돌조각들이 무지개를 그리며 놓여 있으니, 눈앞에서 보고도 그런 의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관련해서 전설이 하나 있다.

매일같이 물 주전자를 들고 비탈진 길을 오르내려야 했던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일이 고된 나머지 소녀는 새벽닭이 울기 전까지 자신의 집까지 물길을 내주겠다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고,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기에 이른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소녀는 비극적인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게 열렬히 기도를 하게 된다. 그동안 악마는 수로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태풍이 발생하여 일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새벽닭이 울게 됐는데 그때 악마는 돌조각 하나만을 세우지 못한 채 건축물을 다 완성시킨 상태였다.

돌조각 하나 때문에 거래는 무산됐지만 수도교는 온전히 그 자리에 생성됐고 소녀의 영혼도 빼앗기지 않게 됐다. 소녀는 마법 같았던 지난밤의 일을 세고비아 시민들에게 실토하게 됐고, 이에 사람들은 아치를 통과한 물은 유황 성분이 제거된 성수라고 여기며 새로운 건축물을 기쁘게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전설에도 내포되어 있듯이 옛날 사람들 입장에서는 거대한 수도교가 경외적인 존재였을지 모른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축조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수도교가 자신들의 식수를 공급해주고 있으니, 그 존립 자체를 인간 영역 밖에서 끌어오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도교를 두고 거대한 ‘마법덩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고비아 시민들은 19세기 중반까지 그 ‘마법덩어리’에서 물을 공급받았다.

기둥들을 따라서 가봤다. 수로의 지상구간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세고비아는 수도교를 중심으로 그 안쪽은 구시가지이고, 그 밖은 신시가지로 분류된다. 수로의 지상 구간은 신시가지쪽에 있었다.

한 10분 정도를 걷다보니 정수장과 함께 드디어 지상구간이 나왔다. 전설에 유황이 제거됐다고 언급됐듯이 정수장도 수도교와 함께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정수는 이물질을 물에 침전하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정수장에는 심도가 깊은 물탱크를 만들었는데 그 물탱크에 모래나 황 같은 불순물들을 침전시키고, 깨끗한 윗물만 빠져나가는 식으로 정수시스템을 만들었던 것이다. 간단한 구조였지만 그들의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지상 구간의 수로는 말 그대로 수로였다. 화강암을 깎아내고 그 위에 253030cm 규격의 홈을 파 내 관로를 삼은 것이다. 수도교의 맨 위 부분도 그렇게 관로가 놓여 있다. 고대 로마인들의 건축기술에 다시 한 번 감탄을 했던 대목이었다.

 

  • 왜 돌에 구멍이 뚫려 있지?

<수도교. 일정간격으로 구멍이 뚫려있다.>

“왜 수도교에 있는 돌들에 구멍이 뚫려있습니까?

2번째 봐서 그런가? 5년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교량에 있는 돌들에 구멍이 뻥뻥 뚫린 것이다. 도대체 왜 구멍이 뚫린 것일까? 그런 의문을 품고,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어가 안 되는 영어로 직원에게 물어봤던 것이다. 좀 잘난척(?) 하는 의미로 이 말도 덧붙였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 쏜 머신건(기관총) 때문에 구멍이 뚫린 건가요?”

나름대로 우쭐해하면서 물어봤는데 직원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NO!”

그러면서 검색을 했고 결과를 보여주었다. 알고 보니 그 구멍들은 돌들을 들어 올릴 때 일부러 뚫은 것이다. 가위처럼 생긴 집게로 돌을 들어 올렸는데 이때 돌이 잘 잡히라고 구멍을 낸 것이다. 그래서 구멍은 일정 간격으로 뚫려있었다. 가위처럼 생긴 집게는 세고비아 성당에서 우연히 그 실물을 보게 되었다.

어쨌든 돌에 뚫린 구멍들은 기관총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괜히 ‘시건방’ 떨다가 창피를 당한 셈이었다. 그래서 기관총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포메이션 센터를 빠져나왔다.

 

  • 황새들의 놀이터 세고비아 성당

<세고비아 대성당>

<세고비아 대성당에 전시된 가위형 집게>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다음 탐방지인 세고비아 대성당을 향해갔다. 세고비아 대성당은 1525년부터 1577년까지, 52년 동안 건축된, 규모가 상당히 큰 성당이다. 노을이 질 무렵, 작은 첨탑들이 황새들의 놀이터로 이용될 만큼 세고비아 대성당은 뾰족한 고딕양식이 일품인 곳이다.

현재의 세고비아 대성당은 옛 성당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옛 성당은 세고비아 성 인근에 있었는데 1520년에 발발한 코무네로스(Comuneros) 반란 때 파괴됐다. 코무네로스 반란은 당시 집권자인 카를로스 1세의 과중한 세금 부담 등에 반대하여 세고비아, 톨레도, 바야돌리드 등 주요 도시에서 봉기한 사건을 말한다. 이들 도시에서는 자치조직인 ‘코무니다드’가 만들어졌는데 그 구성시민들을 ‘코무네로스’라고 불렀다. 그 이름을 따서 코무네로스 반란이라고 명명된 것이다.

반란군들은 옛 성당을 접수하여 세고비아 성의 성벽부근을 방어하고 있는 카를로스 1세군을 격파할 생각이었다. 그런 공방전 끝에 옛 성당은 파괴되고, 5년 후 현재의 자리에 대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듯 현재의 대성당은 건축 당시에는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자 지어졌고, 지금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대성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성당을 위에서보면 3층짜리 아치형 지붕이 층층이 쌓아 올려진 것처럼 보인다. 그 사이사이에는 수많은 스테인 그라스들이 성당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세고비아 대성당에서 가장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높이가 90m인 종탑이다. 이 종탑은 1614년에 세워졌는데 멀리서보면 왕관을 올려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곳에 올라서면 세고비아 시내를 시원스럽게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 요새였던 세고비아 성

<세고비아성>

대성당을 뒤로 하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일명 ‘백설공주 성’이라고 불리는 세고비아 성을 향해갔다.

세고비아 성은 월트디즈니사의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의 모델이 됐다고 해서 그런 별명을 얻게 됐다.

애니메이션의 배경 모델이 될 만큼 세고비아 성은 매우 아름다웠다. 또한 독특했다. 하지만 이곳이 처음부터 그런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성이 들어서기 전에는 요새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 기원은 로마 점령기 이전의 셀티베리안(Celtiberians)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다.

이곳은 수도교의 종착점이 될 정도로 로마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전략적 요충지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즉, 거의 2000년 전부터 중요한 거점으로 쓰였다는 뜻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코무네로스 반란 때에도 이 일대는 격전지였다.

세고비아 성을 두고 안내책자에는 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이 성이 ‘붕’ 떠 있다는 것이다. 에레스마 강(Eresma)과 클라모레스 강(Clamores)이 휘돌아나가는 작은 협곡에 위치해 있는 이 곳은 연결다리를 폐쇄시키면 외부와는 격리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천혜의 요새였던 셈이다. 한편 그 옆을 흐르는 강들은 유량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수도교를 건설해 그 먼 곳에서 물을 끌어 왔던 것이다.

그렇게 협곡 요새로 기능하던 곳이 13세기 이후부터는 왕이 거주하는 왕궁으로 변모 했고, 그 이후부터 수세기동안 증개축이 거듭되었다. 세고비아 성은 감옥으로도 쓰였는데 마드리드에 있던 왕실 법정이 옮겨옴에 따라 죄수들을 격리할 공간을 마련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세고비아 성은 1862년에 발생한 큰 화재로 거의 모든 게 파괴되는데 20년 후 대대적으로 복원 공사에 나서게 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은 1882년에 재건축된 것이다. 한편 세고비아 성은 현재 왕립 포병학교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한쪽 면에는 각종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고비아 성 탐방을 끝으로 세고비아 도시 기행은 종료가 된다. 수도교, 대성당, 성까지. 그러고 보면 세고비아 여행은 건축기행이라고 할만하다. 10km도 안 되는 구간에 볼만한 건축물들이 연이어 있으니 시티트레킹으로 제격이지 않은가?


 

  • 세고비아 시티트레킹

세고비아 버스터미널 ☞ 수도교 ☞ 세고비아 대성당 ☞ 세고비아 성

 

*이상으로 지난 해 4월까지 월간 로드프레스에 귀한 시간을 내어 서울학개론을 연재해 주셨던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동운 선생님의 연재를 마칩니다.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에 관심이 있거나 참가를 원하는 독자분은 네이버 카페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https://cafe.naver.com/trekkingmaster)’에 가입하시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카페 내에서도 ‘순례길과 배낭여행’이라는 주제로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를 얼마 전 최종 완료하여 즐거이 보실 수 있습니다.)

지면을 빌어 곽동운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