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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⑧ 우면산 숲길 넘어, 관악산 계곡 찾아 _ 과천골 역사트레킹 – 곽동운

이번에 소개할 과천골 역사트레킹은 말 그대로 경기도 과천시 일원에서 행해진다.

그렇다면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이란 연재명과는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과천시가 경기도에 있지 서울에 있는 게 아니니까. 

도성을 관할했던 한성부는 도성뿐 아니라 성 밖 십리지역(4km)까지 그 행정 영역 안에 두었다. 이를 두고 성저십리(城底十里)라고 칭했다.

필자는 성저십리 개념을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에 적용했는데 지금의 서울에서 반경 40km까지를 서울학개론의 범위로 삼은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필자는 수도권 전철이 닿는 곳을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의 영역으로 삼았다.

 

  • 역사트레킹 한국학개론?

지금이야 필자가 무명이기에 과천을 가든, 남양주를 가든, 춘천을 가든 서울학개론이란 명칭을 써도 누구 하나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거다. 필자가 거물급(?)이 된다면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에 과천골 역사트레킹이 포함된다고 항의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곽 작가님, 왜 과천시에서 트레킹을 했으면서 서울학개론이라고 하세요? 그 말이 틀린 거잖아요.”

“맞습니다. 그 명칭은 분명 틀린 거예요.”

“그럼 빨리 고쳐주세요. 이름은 제대로 써야지요! 경기도청에서도 난리에요.”

“그래서 바꿨습니다.”

“뭘로요?”

“역사트레킹 한국학개론!”

날씨가 하도 더우니까 좀 썰렁한 상상을 해봤다. 이런 대화가 현실화 됐을 때 필자도 <로드프레스>도 모두 거물급이 됐으면 한다. 그날이 빨리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과천골 역사트레킹의 시작은 우면산 남쪽 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소가 졸고 있다는 뜻의 우면산(牛眠山)은 해발 293m로, 이웃산인 관악산(620m)보다 훨씬 키가 작은 산이다. 해발이 높지 않은 산이라 그런지 관악산보다 오르기도 수월하고 코스도 짧다.

우면산의 북쪽은 서울 서초구이고, 남쪽은 과천시에 속하는데 확실히 남쪽면보다는 북쪽면이 편의시설이나 표식들이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우면산의 남쪽면은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관리가 안 되어 있다. 편의시설도 전무하고 안내표식도 띄엄띄엄 있다. 그래서인지 우면산 남쪽면을 찾는 이들도 별로 없다. 

무슨 이유일까? 우면산 남쪽면도 분명 좋은 트레킹 코스인데… 이유는 남태령과 관련 있다. 

 

  • 남태령으로 개명한 여우고개

남태령(南泰嶺)은 관악산과 우면산 중간에 위치한 고개로 해발은 183m에 달한다. 우리나라에 워낙 해발이 높은 고개들이 많아 183m의 높이면 명함도 못 내미는 게 맞지만, 한자어에서도 보이듯 이 고개는 당당히 ‘남쪽의 큰 고개’로 명명되어 있다.

<남태령망루 ‘과천루’>

처음에 이 곳은 여우고개, 혹은 여시고개로 불렸다. 한자어 명칭도 ‘여우호’자를 써서 호현(狐峴)이라고 쓰이기도 했다. 그만큼 이 지역에는 여우가 많이 출몰했다고 한다. 그 옛날 관악산과 우면산의 울창한 수풀은 여우들이 서식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일대에서는 여우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우 굴들이 발견됐다. 그런 배경들 때문인지 이곳에는 천 년 묵은 여우가 사람을 홀리고 다녔다는 ‘전설의 고향’도 전승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곳은 왜 여우고개에서 남태령으로 개명을 하게 됐을까? 가장 유력한 설은 정조대왕 시대에 행했던 화산 능행차와 관련이 있다. 1789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경기도 양주에서 수원 화산으로 이장을 한 후, 정조대왕은 참배에 나섰다. 이를 ‘화산 능행차’라고 불렀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기 위해서 꼭 넘어야 했던 이 고개의 이름을 정조대왕께서 물으셨다. 이때 과천현의 이방이 여우고개라는 이름 대신 남태령이란 명칭으로 대답을 했다고 한다. 상감께서 행차하는 고개가 ‘여우고개’라는 요망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런 답변을 했다는 것이다.

여우고개가 토속적인 이름이기는 하지만 요망스러운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다. 더불어 고개의 명칭이 한 사람에 의해 급작스럽게 변경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정조대왕 이전 시대부터 여우고개가 아닌 남태령으로 불렸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한강 이남에는 정조대왕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혹시 남태령도 그에 편승된 것이 아닐까? 정조대왕과 관련된 스토리텔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남태령은 이미 보통 이상의 고개가 될 수 있으니까.

정조대왕이 남태령을 넘은 것은 5년 밖에 되지 않았다. 1794년 이후부터 능행차 노선이 시흥-안양 방면으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남태령 길이 협소하다는 이유가 가장 컸지만 과천에 김상로와 그의 형 김약로의 묘가 있어 일부러 남태령-과천 코스를 버렸다고 한다. 김상로는 영의정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사도세자의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자이다.

현재 남태령에는 ‘과천루’라고 불리는 망루가 설치되어 있다. 남태령이 삼남지방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던 만큼 망루를 설치하여 감시를 했던 것이다. 과천루는 현재 과천 8경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지역의 명물이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많은 이들이 찾지는 않는다.

 

  • 군대생활 생각나게 하는 남태령 참호와 벙커

천년 묵은 여우가 사람을 홀리고(?), 정조대왕이 능행차를 하러 다녔던 남태령. 현재 남태령에는 곳곳에 참호가 놓여 있다. 벙커도 있다.

<남태령에서 발견할 수 있는 벙커입구>

남태령처럼 서울 인근에서 그렇게 많은 참호와 벙커들이 정열 되어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안보(?)시설들을 가로질러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면산의 남쪽면이다. 그 참호와 벙커들을 파고,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군인아저씨들이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 그런 시설들을 무심히 지나치기는 했지만 필자도 군대 생활이 생각나서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렇게 우면산 남쪽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둘레길 여행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전무하다. 팔각정은커녕 그 흔한 벤치조차도 찾기 어렵다.

화장실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런 이유 때문에 우면산 남쪽 숲길은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 높아질 대로 높아진 도보여행자들의 눈높이로 보자면 이 코스는 ‘꽝’이다. 둘레길 트렌드에 맞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 이 숲길 정말 좋은데요.

  • 서초구쪽 우면산은 가봤는데… 여기는 처음이에요. 그런데 여기가 더 좋아요.

  • 너무 울창하고 사람도 거의 없어서 더 좋은 거 같아요.

저렇게 수강생들은 환호를 했다. 거의 한 시간 이상 이어진 울창한 숲길에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이다. 특히 이곳은 완경사로 계속 이어지다보니 사색을 하면서 걷기에 ‘딱’이었던 것이다. 묵언수행을 하기에도 제격인 곳이었다.

 

  • 너럭바위와 온온사

이제 트레킹팀은 우면산에서 관악산으로 넘어간다.

<너럭바위의 멋진 모습>

용담골이라는 곳을 통해 관악산에 진입을 하게 되는데 무척 흥미로운 풍광을 맞이하게 된다. 카펫이 깔려 있듯 너럭바위가 보기 좋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누가 일부러 깎아놓은 것처럼 평평한 너럭바위가 길이 돼주기도 하고, 의자가 돼주기도 한다. 그 위에다 식탁보를 깔면 밥상이 되기도 한다.

그랬다. 트레킹팀은 너럭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맛있게 행동식을 먹었다. 노닐기 좋은 곳에서 배를 채웠으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너럭바위 계곡을 지난 트레킹팀은 과천현의 옛 객사였던 온온사(穩穩舍)를 탐방하게 된다. 객사는 한마디로 관사를 말한다. 유명한 전주 객사를 떠올리시면 이해가 쉬우실  것이다.

<온온사의 모습>

1649년(인조27)에 창건된 이 건물은 정조대왕에 의해 ‘온온사’라는 특이한 이름을 갖게 된다. 잠깐 한자를 살펴보자. ‘평안할 온(穩)’자가 하나도 아닌 두 개나 들어가 있다. 정조대왕은 평화, 아름다움, 휴식이라는 개념들을 이름에 담고 싶으셨던 것 같다.

실제로 정조대왕은 화산 능행차를 하러가면서 과천현 객사에 머물렀는데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휴식하기에 좋았다고 하여 ‘온온사’라는 현판을 친필로 하사하셨다. 그 현판이 지금도 온온사에 잘 붙여져 있다.

지금이야 일대가 많이 개발이 되어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휴식하기에 좋은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온온사 뒤편 숲길은 꽤 아름답고 산보하기에 좋다는 것이다. 그 숲길을 따라 트레킹팀은 마지막 탐방지인 자하동 계곡으로 향했다. 드디어 추사 선생 글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 자하 신위 선생과 추사 김정희 선생

돌산인 관악산에도 경치가 아름다운 계곡이 있다. 이 계곡은 자하동이라고 불리는데 조선후기 시·서·화에 능했던 자하 신위(1769~1847) 선생의 호를 따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자하(紫霞) 신위 선생은 어려서부터 신동이라고 불렸는데 그런 소문을 듣고 정조대왕이 궁궐로 불러 크게 칭찬을 했을 정도였다.

<자하동 계곡의 흔들다리>

시(詩)·서(書)·화(畫) 모두에 능한 사람을 시·서·화 삼절이라고 부르는데 그 칭호를 얻었던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당연한 말일 것이다. 시와 글씨와 그림, 이 세 가지를 모두 다 잘하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신위 선생은 참 대단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왜 관악산에 신위 선생의 호를 딴 계곡이 있는 것일까? 신동이었으며 시·서·화 삼절로 불리기까지 한 신위 선생과 관악산이 무슨 연관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늘 그렇듯 천재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신위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파직과 복직을 반복하게 된다. 지방토호들의 횡포에 의해 파직 당하고, 당쟁의 여파로 인해 파직 당한다. 이에 세상의 환멸을 느낀 자하 신위 선생은 관악산에 은거하게 된다. 그렇게 하여 관악산에는 자하동이란 명칭이 생긴 것이다. 참고로 과천에 있는 자하동은 ‘남자하동’이라 부르고, 서울대 옆에 있는 자하동은 ‘북자하동’이라고 불린다.

 

  • 천재가 천재를 알아봤다!

과천의 남자하동 계곡 바위면에는 단하시경(丹霞詩境), 자하동문(紫霞洞門), 백운산인 자하동천(白雲山人 紫霞洞天),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등 4개의 바위글씨가 있다.

<바위글씨 – 자하동문>

<바위글씨 – 백운산 자하동천>

계곡을 따라 새겨진 이 바위글씨들은 예전에는 접근성이 많이 떨어졌다. 실제로 최근에 설치된 탐방데크와 흔들다리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문화재였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그 바위글씨들을 지나갔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을 알아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늦게나마 탐방시설들이 확충되어 바위글씨들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말 나온 김에 바위글씨에 대해서 살펴보자.

<바위글씨 – 단하시경>

지면 관계상 단하시경(丹霞詩境) 하나만 이야기하겠다. 사진에서도 보이듯 서체가 독특하지 않은가? 이 ‘단하시경’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글씨다.

‘단하’는 신위 선생의 다른 호로 추정되고, ‘시경’은 시흥을 불러일으키는 경지라는 뜻이다. 신위 선생이 관악산 계곡의 아름다움을 보고 지은 시를, 추사 김정희 선생이 ‘단하시경’이라는 바위글씨로 새겨 넣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추사 선생은 관악산에 은거했던 신위 선생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그런 돈독함이 ‘단하시경’이라는 바위글씨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추사 선생도 시·서·화 삼절이었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봤던 것이다. 

자하동 계곡 탐방을 끝으로 과천골 역사트레킹도 종료가 된다. 트레킹 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계곡물에 발 좀 담그고 바위에 새겨진 글씨도 감상해보자. 이런 것이 풍류 아니겠는가? 시·서·화에 능하지 않더라도 풍류는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법이지!

 

  • 과천골 역사트레킹
  1. 코스: 남태령 ▶ 너럭바위계곡 ▶ 온온사 ▶ 자하동계곡
  2. 이동거리: 약 8km
  3. 예상시간: 약 3시간 30분(쉬는 시간 포함)
  4. 난이도: 하
  5. In: 선바위역 3번 출구(지하철4호선) / Out: 과천역(지하철4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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