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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⑦ 서울 최고의 풍광을 찾아서_아차산 역사트레킹 – 곽동운

<아차산성의 모습>

역사트레킹 강의를 진행하다보면 다양한 에피소드가 발생된다.

그도 그럴 것이 적을 때는 5~6명에서 많을 때는 30명 가까이 되는 수강생들과 함께 트레킹을 행하다 보니 여러 가지 해프닝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암릉 구간이 있는 코스에 하이힐을 신고 와서 필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수강생, 시작과 동시에 막걸리 잔부터 돌리는 수강생… 이런 분들과 부대끼다 보면 팔자에도 없는 욕을 먹게 되어 낙담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필자는 다음 트레킹 강의 준비를 했다. 나름대로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욕을 먹으면서도 다음 일정을 준비할 때는 설레다니! 아무래도 트레킹 강의가 필자에게는 팔자인 거 같다.

에피소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코스는 징크스에 걸리기도 한다.

이번에 소개할 아차산 역사트레킹이 바로 그 징크스에 걸린 코스이다. 이상하게 아차산 역사트레킹을 행하기만 하면 비가 내렸다. 어떨 때는 시작 전부터 내렸고, 어떨 때는 중간부터 내렸다. 하여간 아차산 역사트레킹을 행할 때마다 필자는 하늘을 자주 올려봐야 했다.

그런데 징크스가 꼭 나쁜 쪽으로만 작동하는 것일까? 비가 오면 거추장스럽기는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우중트레킹이 아닌가? 빼어난 능선길을 자랑하는 아차산에서 우중트레킹을 한다면 그것자체로 낭만이 있을 거 같은데…

 

● 너무나 중요했던 아차산, 너무나 시원한 아차산

<아차산 표지석>

해발 285m인 아차산은 서울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해발 높이가 300미터도 되지 않으니 그리 높은 산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동네 뒷동산으로도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키가 작은 아차산이지만 예로부터 그 지정학적인 중요성은 엄청나게 컸다. 한강을 바로 옆에 끼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시대부터 한강유역을 지배하는 자가 한반도의 주인이지 않았던가?

“눈이 아주 시원하지 않습니까? 아차산에 올라와야 하는 이유가 아주 명쾌해지죠. 안 올라왔으면 이런 광경을 바라볼 수 있겠어요?”

아차산이 돌산이라 그런지 곳곳에 너럭바위들이 펼쳐져 있고, 또 곳곳에 전망대가 펼쳐져 있어 한강변 풍광을 바라보기에 더없이 좋다. 인근에 자리 잡은 구리시와 강 건너 하남시는 물론 시야가 좋으면 팔당댐 부근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필자는 전망대에 오르면 항상 저 멘트를 했었다. 고생스럽게 아차산을 오르느라 힘이 많이 들어갔을 수강생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위해서.

“강 건너편 몽촌토성 쪽 좀 보세요. 아니, 거기는 제2 롯데월드 타워고요. 한성백제의 옛 수도로 추정되는 몽촌토성 쪽이요.”

  • 찰칵찰칵

“그러니까 약 470여년 정도를 이어왔던 한성백제가 475년 9월 장수왕의 공격으로 막을 내립니다. 그때 백제왕이 개로왕이었는데…”

  • 찰칵찰칵

풍광이 좋은 코스를 탐방할 때마다 겪는 일이다.

그런데 아차산 코스는 그 강도가 더하다. 아차산은 바로 옆에 있는 용마산과 함께 서울둘레길 2코스에 속하는데 서울둘레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로 꼽힌다.

사실 저렇게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를 했지만 필자도 수강생이었다면 재미없는 강의에 집중하느니 사진기 셔터를 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 아차산과 바보온달

아차산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아끼산, 아키산, 에께산, 엑끼산 등등… 남쪽 한강변을 향해 솟아 오른 모양을 보고 남행산이라고도 불렸다. 지금은 이 일대 산들이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봉화산 등으로 제각각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예전에는 그냥 뭉뚱그려 아차산으로 불렸다.

앞서 언급한 서울둘레길 2코스는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으로 이어진다. 봉화산만 빠져있는 것이다. 봉화산은 서울둘레길에서 아예 빠져있다.

산 이름과 관련하여 또 다른 스토리텔링이 있다. 아차산의 한자표기는 ‘阿嵯山’, ‘峨嵯山’, ‘阿且山’ 등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아차(阿且)’와 ‘아단(阿旦)’ 2가지가 나타난다. 아차산으로 불리기도 하고 아단산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뜻이다. 지정학적으로 무척 중요했기에 불리는 이름도 다양했던 것 같다.

<온달장군과 평강공주 동상>

아차산이든 아단산이든 우리 같은 도보여행자들에게 네이밍이 뭐가 중요하겠나?

하지만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에게는 무척 중요했을 것이다. 왜? 온달장군이 아단성에서 전사했기 때문이다. 온달장군이 출전을 했던 때는 고구려 영양왕 때였는데 그 시기 신라는 한강 유역을 차지했고, 그 위쪽으로 계속 세력을 팽창하려 했다. 이에 온달은

‘죽령 서쪽을 빼앗지 못한다면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

이런 비장한 각오를 하고 출전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온달이 전사한 아단성이 현재의 아차산성을 지칭하냐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위에 <삼국사기>에 언급한 것처럼 ‘아차(阿且)’와 ‘아단(阿旦)’으로 둘 다 불렸다면 현재의 아차산성이 아단성이라는 것이 아닌가? 뭐가 문제인가?

“평강공주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바보온달이 590년에 아단성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단성으로 불린 곳이 하나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니 아단성이 또 있어요? 아차산이랑 이름도 비슷해서 헷갈리는데…”

“그렇죠. 말을 하고 있는 저도 헷갈립니다.”

“그래서 다른 한 곳은 어디인데요?”

“충북 단양에 있는 온달산성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 수강생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온달산성에 대한 언급을 해야 겨우 실타래가 풀리게 된다. 한마디로 단양의 온달산성도 아차산처럼 아단성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더 정확히는 ‘을아단성’이라고 불렸다.

● ‘아차’해서 아차산?

재미가 없다. 잘 쓰이지도 않는 한자나 남발하고. 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보자.

조선 명종 때였다. 홍계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점을 잘 쳤다. 이에 명종이 그를 불러 시험을 해보았다. 홍계관에게 궤짝 하나를 보여줬는데 그 안에는 쥐가 있었다. 임금은 홍계관에게 궤짝 안에 든 쥐의 숫자를 맞춰보라고 했고, 만약 맞추지 못한다면 사형을 당한다고 엄포했다. 이에 홍계관은 궤짝 안에 세 마리의 쥐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궤짝 안에는 쥐가 한 마리뿐이었다. 결국 홍계관은 처형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왕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쥐의 배를 갈라보게 했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거기에 새끼 두 마리가 들어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 홍계관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이에 급하게 처형의 집행을 중지를 명했지만 이미 홍계관은 죽고 말았다.

‘아차’하고 늦었던 것이다. 이에 그 사형장 위쪽 산을 아차산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냥 재미있는 야담이라고 보시면 된다. 참고로 조선시대의 공식 처형장은 서소문 밖이었다. 아차산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차산에서 죽은 사람은 홍계관이 아니라 앞서 언급했던 개로왕이었다. 백제의 왕 개로왕이었다.

아차산과 관련된 스토리텔링에 대한 소개를 하느라 정작 트레킹은 뒷전인 글이 되었다. 늦었지만 다시 트레킹에 집중해보자.

<아차산생태공원_인어공주동상앞에서 트레킹팀인증샷>

트레킹팀은 아차산생태공원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등산로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아차산생태공원은 작은 야외식물원처럼 꾸며져 있다. 아래쪽에는 작은 호수가 있는데 여름에는 분수를 뿜고,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 호수 안에는 인어공주동상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 인어공주 앞을 지날 때마다 동전 던지기를 하며 소원을 빌었다.

필자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동상이 동상인 만큼 ‘로또대박’이 아닌 다른 소원을 빌었다.

  • 우렁각시

● 보루를 걷다, 서울 최고의 풍광을 걷다

인어공주를 지나친 트레킹팀은 아차산성을 만나게 된다. 해발 200미터 고지에 자리 잡고 있는 아차산성은 둘레가 약 1km 정도인 테뫼식에 산성이다. 테뫼식이란 산 정상부를 둘러서 만든 성을 말한다.

아차산성은 한강이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다. 거기에 올라서면 백제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이 성은 백제가 수도 방어를 위해서 쌓았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에는 고구려로, 또 신라로 계속 주인이 바뀐다. 결국 아차산성은 백제, 고구려, 신라의 손길이 다 묻어있는 것이다.

아차산성을 지난 트레킹팀은 고구려 보루군을 만나게 된다. 아차산을 위시하여 용마산, 망우산, 수락산에는 여러개의 보루군이 있다. 보루(堡壘)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쌓은 구축물인데 성(城)보다는 작은 요새이다. ‘최후의 보루’라는 말을 생각하시면 쉽게 납득이 될 것이다.

<보루군에서 바라본 한강>

사실 아차산 역사트레킹의 백미는 이 보루군을 걷는 것이다.

아차산 정상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보루군은 확 트인 시야를 선사한다. 완만하게 이어진 산책로 옆으로는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고, 멀리는 북한산이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렇다고 한강이나 북한산 같은 자연물만 바라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서울의 동쪽편 시가지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풍광들을 다각도로 볼 수 있으니 서울둘레길 중에서 가장 멋진 코스라는 별칭이 붙은 것이다.
이 보루군들은 남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고구려 유적들이다. 이 보루군을 통해서 고구려의 국경지대 요새에 대한 이해 및 남하과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산들에 있는 보루들보다 아차산의 보루가 훨씬 더 잘 복원이 되어 있다. 확 트인 곳에서 트레킹도 하고 쉽게 볼 수 없는 고구려 유적들도 탐방할 수 있으니, 그거 정말 좋은 일 아닌가? 참고로 아차산 정상은 별다른 표식이 없는데 4보루가 정상이다.

● 징크스가 전화위복이 되다!

이제 트레킹팀은 긴고랑길로 하산을 한다. 긴고랑길은 지형이 순하다. 그래서 올라오기도 편하고, 내려가기도 편하다. 그리고 옆에 계곡도 있다.

“여러분 물소리 좀 들어보세요. 비가 내리니까 계곡물이 콸콸콸 흐르네요.”
“그래요. 또 물이 정말 맑은데요. 1급수 같아요!”

서두에 언급했듯이 아차산 역사트레킹은 징크스에 걸린 코스다. 강의만 하면 비가 내렸다. 이번 트레킹팀도 우비를 쓰고 걸어 다녀야했다. 비가 부담스러운 분들은 강의를 불참했다. 짓궂은 날씨가 필자의 ‘장사’를 방해한 것일까?

<비오는 아차산능선>

“비 덕분에 이런 시원한 계곡길 트레킹을 해보네요. 약간 천불동 계곡 분위기가 나는데요.”

“맞아요. 서울에서 이런 계곡트레킹을 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비 덕분이에요, 비 덕분!”

이미 트레킹팀은 계곡트레킹으로 모드를 전환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보다 훨씬 더 풍부한 긴고랑길 계곡의 유량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맑고 깨끗한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트레킹을 즐겼던 것이다. 그렇다. 이 모든 게 비 덕분이었다.

징크스가 전화위복이 되는 순간이었다.

 

● 아차산 역사트레킹

  1. 코스: 아차산생태공원 ▶ 아차산성 ▶ 고구려정 ▶ 보루군 ▶ 긴고랑길

  2. 이동거리: 약 8km

  3. 예상시간: 약 3시간 30분(쉬는 시간 포함)

  4. 난이도: 중

  5. In: 아차산역 2번 출구(지하철5호선) / Out: 긴고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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