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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 산티아고 순례길 ① – 문원기

내가 왜 여행을, 그것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났을까?

<무모하다는 것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나는 대학 새내기 시절, 방학 내내 방구석에 박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가 국내 기차여행 ‘내일로’를 덜컥 떠나게 되었고, 이후 여행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군 입대 후에도 휴가를 쪼개어 전라, 경상, 강원, 충청 할 것 없이 기차가 닿는 이름난 국내 여행지들은 거의 다 돌아다녔다.

 그러나 자유로운 일탈과 휴식의 장이 되어야 할 내일로의 상업성과 획일성에 조금씩 회의감을 품고, 여행지에서의 2차적인 일탈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원래 몸을 막 쓰는 성격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부터 계속 해 온 육상과 농구 덕택에 체력에도 자신이 있었다.

 4만 원의 모텔 값이 아까워 4천 원짜리 담요를 깔고 공중화장실 바닥에서 잠을 청하거나, 군대 전투식량과 날계란을 빨아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전주역 한복판에서는 손빨래를 해다 말리고, 군산에서는 전신비닐 하나에 의지해 노숙을 하다 모기떼의 하룻밤 제물이 되기도 했다. 근본 없는 여행 경험으로는 나름 어디 가서도 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다.

 조금씩 쌓여온 여행 노하우를 바탕으로, 말년병장 시절 2주간의 휴가를 제주도에 쏟아 부었다. 150km 정도의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도보 여행의 매력을 느꼈고, 이 길의 원류가 된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게 되었다. 이후 P.코엘료의 <연금술사>와 <순례자>를 읽으며 그 마음은 더욱 강해졌고, 결국 군대에서 모은 월급으로 덜컥 비행기 표를 구매해 버렸다. 그리고 시작된 생애 첫 해외여행, 기적 같은 8월 한 달을 보내고 돌아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길게는 수년간 마음에 품고 바라오는 사람들도 많기에, 불과 수개월 사이에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본인의 여행을 글로 풀어낸다는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별다른 삶의 굴곡 없이, 부모님 용돈 받으며 평탄하게 자라온 24살의 청년이 쓰는 글에 어떤 깊이가 있을 것이며, 6000m가 넘는 고산을 넘나들며 세계를 무대로 삼는 ‘여행 고수’들의 여행기에는 또 어떻게 견줄 수 있을까. 영화 ‘The way’와 같이 아들의 유해를 안고 걷는 순례자도 있는 마당에, 본인이 이 길 위에 선 동기는 얼마나 하잘 것 없고 세속적이었던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평범함이 또 하나의 공감대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길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 치밀한 준비과정이나 각오가 뒷받침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나날을 선사해주는 여행이라는 것.

앞이 보이지 않는 20대를 터널의 맨 끝에 데려다주진 못하더라도, 평생 간직할 젊은 날의 추억 내지 유의미한 삶의 전환점은 분명히 되리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작년 여름, 비교적 가장 최근에 순례길을 걸었던 사람으로서 그 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순례길에 대한 정보 제공이나 개인적인 감상을 소개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도 이 글을 통해 한 명이라도 더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렇기에 아름다운 ‘까미노’의 사진들, 그리고 그 길을 심상으로 하여 적었던 시 구절도 많이 담았다. 아무쪼록, 예비 순례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낭만적인 여행기가 될 수 있기를!!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이고 있을 때, 좋은 말씀을 통해 격려해주신 로드프레스 측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Moon’s 산티아고 순례길] – 0. 계기와 준비

 재작년 여름(2017.07.31~08.28)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

 한국인에게 더 이상 산티아고 순례길은 낯설지 않다.

 2000년대 초반 다섯 손가락 안에 셀 수 있을 만큼 적었던 연간 순례자 수는 어느덧 천 명을 넘어간다.

주 올레를 비롯해 도보 여행이 활성화되면서 그 원조라 할 수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도 한 몫 할 것이고, 통계적으로 검증된 한국의 각박한 삶.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심신의 여유를 주는 이곳은 분명 매력적인 장소일 터. (신(身)의 여유를 느낄 수 있을지는.. 개인차가 심하다.)

때문에 일지에 남겨둔 기록을 바탕으로 반 년 전의 기억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글 솜씨가 그리 좋지 않지만, 이 글을 보고 다만 몇 명이라도 순례길을 알고 도전하게 되는 분들이 계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실 나에게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이름보다 ‘까미노(Camino)’가 더 친숙하다. 아마 다녀온 이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로 가는 길)’. 스페인 서부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걷는 길, 순례, 내지 여행이다. 가톨릭 3대 성지라고도 하며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굳이 종교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저 여가나 휴식 목적으로도 많이 온다. 출발지는 다양한데, 내가 걸은 길은 프랑스 국경 피레네 산맥의 ‘생장(Saint-Jeans pied de port)’ 에서 출발하는 프랑스길이다. 흔히 까미노라고 하면 이 프랑스길을 지칭하며, 약 779km 정도를 걷게 된다.

이 외에도 마드리드에서 출발하는 마드리드길, 스페인 북부 해안을 걷는 북쪽길, 포르투갈에서 걷는 포르투갈길, 은의 길 등등… 10곳이 넘는 공식 루트가 존재하지만 결국 종착지는 산티아고이다.

심지어 체력 좋고 심지가 굳다 싶은 유럽 사람들은 비공식적으로 자기 집에서부터 수천 km를 걸어오기도 하는데, 내가 만난 이들만 해도 독일, 벨로루시, 아일랜드(…) 등 출발지가 가히 스펙타클하다. 그만큼 까미노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길.

나는 왜 갔을까.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가지를 딱 집어 말 할 수는 없겠더라. 의외로 여러가지였다.

내일로, 제주 올레 도보여행 등으로 나름 여행에 자신감이 붙었고

  1. ‘대학 졸업하기 전에 유럽 한 번은 가보고 싶은데…’라는 마음이 강했고
  2. 군 전역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으며
  3. 뻔하고 편한 여행은 하기 싫은데
  4. ‘연금술사’, ‘순례자’등을 읽은 후 생긴 까미노에 대한 동경심도 있었고
  5. 결정적으로 탤런트 서유리 씨의 트위터가 큰 영향을 미쳤다.’

<서유리 씨의 트위터>

‘장기여행? 그렇지. 완주하려면 한 달은 걸린다는데. 내가 과연 언제 한 달이라는 시간을 자유롭게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게도 따끈따끈한 복학생 신분인 나에게는 군 전역 후 수중에 떨어진 3백만 원의 군대 월급도, 두 달여 간의 자유로운 여름방학도, 그리고 군대에서 규칙적으로 생활하다 나온 건강한 몸도 있었다. 여건이 완벽한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고, 나 자신에게 망설일 틈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1학기를 치르고, 방학이 되어 본격적으로 여행 준비에 나섰다.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아, 까미노 공식 카페에 질문만 100 개는 넘게 한 것 같다. 첫 해외여행인데다 800km의 도보여행이니만큼, 나뿐만 아니라 이 길을 준비하는 사람 모두가 별의별 고민을 다 할 것이다. 그 중 정말 핵심적인 것만 말하자면..

<별표는 내가 느낀 활용도. 중간 중간 버린 것들도 있다.>

이것이 내가 챙긴 짐의 모두이다. 배낭무게를 포함하여 5.5kg 정도가 나왔고, 길을 걸으며 몇 가지를 버렸으니 아마 최종적으로는 5kg 정도였을 것이다.

무게는 매우 중요하다. 피로도, 부상 위험, 물집, 짜증, 시간관리, 분실 위험 등등 짐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순례길의 전반적인 양상이 달라진다. 권장 무게는 자신 체중의 10분의 1 이내이며, 만약 5분의 1이 넘어간다면 심사숙고해야 한다. 내 생각엔 여름, 남성 기준으로 7kg면 충분히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챙길 수 있다.

나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스틱 대신 무릎보호대를 챙겼고, 긴소매를 토시로 대체했으며, 액상세제를 종이세제로 바꿨다. 또한 침낭은 커버만 벗겨내서 가져가고, 배낭 용량도 25L 짜리로 꾸렸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함에도, 카메라를 따로 챙기기 싫어 아예 카메라로 유명한 브랜드로 핸드폰을 교체하였다. 덕분에 난 까미노 도중 짐이 무겁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고되기에 순례길이라지만, 굳이 몸이 힘든 걸 자초할 필요는 없다. 절대!!

<요것들을 모두 합치면 5kg이 되는 기적!>

  1. 여행 경비

우선 비행기 값은 파리 in-out 왕복130만원(에어차이나). 복학하자마자 급하게 계획을 세우고 표를 구매해야했기에, 요즘 유럽여행이 보편화된 것 치고는 비싸게 구매하였다.

이후에 7월 31일부터 8월 27일까지, 오롯이 순례길만을 걷는 데 소모된 비용은 당시 기준 565유로, 한화 74만 원 정도(!!)이다. 그렇다. 까미노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국내여행보다도 훨씬. 훨씬 저렴하다.

흔히 1km 당 1유로를 잡고 가면 걱정 없이 다녀올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말인 즉 프랑스길 800km를 걷는다면 약 800유로, 한화 110만 원 정도를 잡고가면 된다는 소리다. 하지만 이는 비상금까지 포함해서이고, 실제로는 자기가 절약하기에 따라 훨씬 저렴하게도 다녀올 수 있다.

가령 공립 알베르게(숙소)의 평균 요금은 약 5~7유로이고, 그 외 식사로 하루 3끼에 5유로정도를 지출하면 딱 20유로 내외이다. 알베르게에서 전날 순례자들이 남기고 간 식재료는 공용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기에, 이를 사용해 요리하면 더더욱 절약할 수 있다. 20유로*4주(28일) = 560유로!!

물론 반드시 돈을 아끼는 것이 까미노에서의 미덕은 아니다. 지역마다의 특색 있는 음식도 맛보고, 하루쯤 좋은 호텔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몸을 쉬어주는 것도 필요하긴 하다. 그저 나는 어느 여행이든 조금 가난하게 다니는 데 희열을 느끼기에 그렇게 했다.

종종 숙박이나 음식을 ‘도나티보(기부제)’로 운영하는 곳도 있는데, ‘돈 아낄 기회다!’ 라며 철면피를 두르는 짓은 하지 말자. 우리가 오늘 낸 그 기부금으로 내일의 순례자들이 먹을 음식의 질이 결정된다.

아무튼, 나는 그 외에도 바르셀로나와 파리 관광을 했고, 또 TGV나 버스, 비행기 등 추가적인 교통수단을 이용했기에 총 26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3. 위험성 및 체력

산티아고 순례길은 위험한가? 지나치게 힘들지는 않은가?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 둘 다 ‘아니오’지만, 이것은 혈기 왕성한 20대 청년의 기준이므로 분명 개인차가 존재할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우선 사나운 지형이 거의 없다. 가장 험난한 길이 순례 첫날 넘게 되는 피레네 산맥인데, 해발고도는 1500m 정도로 제법 높지만, 거의 모든 오르막길이 포장도로 혹은 완만한 흙길로 이루어져 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으로 한라산을 한번쯤 올라보았을 텐데, 피레네는 체감 상 한라산 등정 난이도의 절반정도라고 보면 된다.

또한 대부분이 뻥 뚫려 있는 개활지이거나, 지역주민들이 머무는 시골길이므로 범죄의 위험도 극히 낮다. 겨울을 빼고는 늘 순례자들로 가득하며, 이들은 이 길을 걷기 위해 수고로움을 감내하고 고향에서부터 날아왔다는 것을 유념하자.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 받았지, 해코지를 할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된다.

스페인의 전문 범죄자라고 한들, 굳이 가난하고 꾀죄죄한 순례자들의 배낭을 표적으로 삼을 이유가 없다. 일반적인 유럽 여행보다 나는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야생동물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산지를 심심찮게 지났음에도, 워낙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 그런지 뱀 한 번 보지 못했다.

체력은.. 말하기 애매하다. 길의 난이도는 분명 그리 높지 않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순례길의 험준함에 겁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그 길이 짧지 않다는 점은 분명 문제이다.

평균적으로는 날마다 25km를 걷지만, 누구나 하루 이틀 쯤은 40km 가까이를 걷는 날이 발생한다. 사람의 걸음 속도가 평균 시속 4km 정도이므로, 이런 날에는 걷는 시간만 10시간이 걸린다. 이래저래 밥 먹고, 휴식하고, 둘러보고 하다 보면 새벽에 출발해서 저녁에 도착한다. 나는 4번 정도를 40km 넘게 걸었었는데, 다음 날에는 여지없이 쌍코피, 복통, 몸살 등에 시달렸다.

가급적 30km를 넘어 걷지 않도록 거리 관리를 해야 하고, 사전에 근처 둘레길 등 걷기 연습을 하고 가면 좋을 것 같다. 빠르게 걷는 것이 능사가 아니지만~ 한국인은 확실히 이곳에서조차 급하다.

그 외에도 물집, 화상, 베드버그, 관절통, 일사병 등을 조심해야 한다. 사실 물집은 아무리 조심해서 간들 한 번쯤은 생기기 마련이지만, 나머지 것들은 잘 관리하면 예방할 수 있다.

4. 그 외

– 영어 및 스페인어 –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 영어는 일상회화가 가능할 정도면 좋고, 스페인어는 문장구사능력 없이 기본적인 단어 정도만 알아가도 괜찮다고 느꼈다. 다만 까미노의 큰 의미 중 하나가 전 세계 순례자들을 만나고 교감하는 것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까미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와 스페인어이고, 이를 못하면 다양한 사람들과 깊은 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한국인끼리만 어울리다 올 수 있다. 나는 이 점이 참 아쉬웠다.

– 숙소 예약 –

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걸었던 시기가 8월로 최성수기에 해당했는데, 4주 간 하루를 제외하고는 모든 마을에서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구하지 못할 경우에는 평균적으로 4~5km를 걸어 다음 마을로 가면 되는데, 한번쯤 그런 경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안정적으로 체크인을 하려면 목적지 마을에 늦어도 4시경에는 도착할 것을 권한다.

– 배낭, 등산화, 스틱 –

배낭은 여름 남성 기준 30L 정도면 컴팩트하게 챙겨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등산화는 경등산화와 중등산화가 각각 장단점이 있다. 나는 뭐든지 가벼운 게 제 1의 기준이었기에 경등산화를 신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평지나 포장도로가 굉장히 많아서, 크록스나 아쿠아슈즈를 착용해도 되는 구간이 제법 있다. 나는 실제로 약 1주일, 200km를 크록스로 걸었는데 불편하기는커녕 그렇게 바람 잘 통하고 편할 수가 없더라.

스틱은 글쎄. 나는 필요성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평소 책가방이나 사무가방 정도와 함께 학교생활,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이라면, 먼저 신경 써야 할 것은 스틱을 드냐 마냐가 아니라 가방 무게를 얼마나 줄일 것이냐 라고 생각한다. 등에 착 달라붙는 등산용 배낭을 포함해서 5kg 정도의 하중이라면 사실상 맨몸으로 걷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기에, 스틱이 없더라도 그리 과중한 부담이 생길 이유가 없다.

800km를 걷는 도중 피로누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나는 그때 가서 사면 된다는 주의다. 스틱도 분명 비용이 들고, 무게와 부피를 차지하고, 걸리적거릴 때가 적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구매하고 보자’는 아닌 것 같다.

– 베드버그 –

나는 4주 동안 베드버그에 한 번 물렸다. 물리면 특정 부위에 수십 군데의 빨간 점이 생기고, 미친 듯이 가렵다. 베드버그 대응 요령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숙소 후기를 잘 읽어보고, 베드버그 출몰 리뷰가 많은 곳은 피할 것. 둘째, 목재침대보다 철제침대를 사용할 것. 셋째, 숙소에서 제공하는 담요는 사용하지 말고, 자체적으로 구비한 침낭을 사용할 것. 넷째, 침대에 스프레이를 미리 뿌릴 것. 다섯 째, 옷 등을 수시로 일광소독하고, 풀숲에 앉거나 가축들과 접촉할 때는 신중할 것!!

나는 물린 게 확인된 즉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모든 의복과 배낭 등을 열건조기에 돌리고, 건조가 불가능한 물품은 휴지에 손소독제를 뭍혀서 닦았다. 사실 베드버그는 운적인 요소도 많이 작용하지만, 예방이나 대응을 잘 하면 크게 방해받지 않고 순례를 마칠 수 있다. 물론 상황이 심각할 경우에는 즉시 처방을 받거나 대도시의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사실 가기 전에 아무리 질문을 통해 답을 구한다 한들, 직접 가서 느끼게 되는 것은 각자 다 다를 것이다. 나도 출국 직전까지 끊임없이 까페에 질문글을 올렸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과 불안감이 훨씬 컸다.

준비기간이 짧았던 만큼 더더욱 미완의 상태로 순례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지금 와 돌이켜보면 준비기간이 길었다고 해서 내 까미노가 더 풍성하고 행복했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까미노의 가장 행복한 기억들은 우연과 즉흥이 교차했던 날들 속에 존재했다. 아마 모든 여행이 다 그렇지 않을까.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낯선 공간에 나를 놓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인데, 모든 변수를 손에 넣고자 하면 그 여정은 이미 빛을 잃게 된다. 내 생존과 직결될 만큼 급한 궁금증만 해결하고, 나머지는 길에 맡긴 채 떠나보기를!!

<2017.07.29. 출국하던 날.>

-뜻대로 되는 것 없어 시작한 길이 있었다.

전체를 보고 걸으면 걸어낼 수 없는 길이다.-

[Moon’s 산티아고 순례길] – 0.5. 신고식 (파리 – 바욘)

 「신고식」

2017.07.30, 순례 D – 1

파리 샤를 드골 공항(CDG) – 바욘

파리행 비행기. 운 좋게 옆자리가 비어, 승무원의 눈치를 보며 슬쩍슬쩍 누워서 잤다.

국제선 비행기에 대해 무지한 나로서는 싼 맛에 예매한 에어차이나가 ‘혹시 추락하는 거 아니야?’ 라며 쓸데없는 걱정을 하였지만, 그런 건 전혀 없었다. 다만 기내식이 제대로 배를 채워주지 못했다. 왜 중국 비행기에서 크로와상이랑 요플레가 나오는 건데…흑…

현지시각 기준 오전 7시 30분, 샤를 드골 공항(CDG)에 도착했다. 미리 알아본 대로 RER B 표지판만 찾아 공항을 헤맸고, 무사히 탑승하여 파리시내로 향했다.

<드골 공항에서의 입국 수속>

RER에 앉아있으려니 뭔가 비현실적이다. 분명 엊그저께까지 내가 매일같이 앉아있던 곳은 신촌행 2호선 서울메트로인데… 알아들을 순 없지만 굉장히 짧고 시크한 지하철 안내방송. 쭈뼛쭈뼛 느껴지는 시선들. 지저분한 지하철. 스스로 열어야 되는 문.

자연스러운 척은 하려 들지도 않았다. 사실 파리에 대한 나의 인상은 여행 전에도, 여행 중에도, 여행 후에도 그리 좋지 않다. 가장 걱정이었던 것은 소매치기. 배낭을 와이어락으로 잠그고, 커버를 씌우고,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 앞으로 메고 다녔다.

옆자리에는 공항서부터 같이 앉아오고 있는 중국인 누나 April이 있었다. RER에 탈 때 캐리어가 무거워 보여 들어줬더니 고맙다며 이것저것 말을 걸어온다, 파리에 있는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 중이라는데, 한 손에는 레슨용 콘트라베이스가 들려있다. 도대체 20kg짜리 캐리어랑 콘트라베이스를 동시에 들고 어떻게 이동을 하려고 한 거지?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100% 풀리진 않는다. 이런 수법도 많다는 걸 들었기에… 지금 생각해보면 의심한 게 참 미안하지만.

혹시 산티아고 순례길을 아냐고 물었더니, 알긴 알지만 걸어 본 적은 없단다. 내가 그 길을 걸으러 가는 게 부럽다고 말한다. 나도 그녀의 삶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프랑스길의 시작지점인 생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파리 시내의 ‘몽파르나스 역(Gare Montparnasse)’에 가서 바욘행 기차를 타야 한다. 파리 지하철 노선도를 꼭 챙기길 바란다.

<줄줄이 연착되는 TGV. 너무하잖아…>

몽파르나스 역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심상찮다. 탑승시간은 다가오는데, 전광판에는 내가 타야 할 기차가 없다. 외국인들 틈바구니에 껴서 인포메이션 대기 줄을 한참을 기다렸다.

30분 쯤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지만,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 앞, 내 앞앞, 내 앞앞앞 사람 모두가 자기네들의 언어로 안내원에게 뭐라뭐라 욕을 하며 뒤돌아서는 걸 보았기에… 안내원은 자기도 왜 기차가 연착되는지 모르겠단다.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알죠..???

그 와중에 어느새 연착은 2시간을 넘어간다. 핸드폰 배터리는 갈수록 떨어져가고.. 급한 마음에, 역 안의 한국인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다행히, 저 멀리 중앙계단에 앉아있는 한국인 발견!! 27살의 종엽형. 우연히도 그분 역시 까미노를 걸을 예정이라고 한다.

정처 없이 기다리던 중, 갑자기 나온 안내방송에 역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둘 다 불어를 못하기에, 주변 외국인에게 통역을 부탁했더니, ‘오스트리츠 역(Gare d’Austerlitz)으로 이동하면 기차를 탈 수 있다’는 내용이란다. 몽파르나스 역의 구름 같은 인파가 순식간에 지하철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우리도 허겁지겁 뒤를 따랐다.

<오스트리츠 역. 하나같이 찡그리고 있는 표정의 사람들>

TGV는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본래 12시 반 기차였던 것을…. 그래도 시시각각 변해가는 창밖 풍경이 보기 좋았다. 8시가 넘고 9시가 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그렇게 9시 반쯤 되어서 ‘바욘(Bayonne)’에 도착했다.

<바욘 역>

우리 둘 다 오늘 생장까지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바욘에 숙소를 잡아놨을 리 없었다. 다행히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예약도 못한 채 무턱대고 찾아가기로 했다. 그나저나, 마을 분위기가 이상하다. 하나같이 흰 옷에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데.. 축제인가 봐?

어렵사리 숙박을 허락받았다. 바깥의 상황에 대해 물었더니,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바욘 축제의 마지막 날이란다! 축제기간 5일 동안 전 세계에서 1억 명이 온다고 하는데, 이게 말이 되나. 이 크지 않은 마을에?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진짜다!! 와우!! 규모만 놓고 보자면 그 유명한 ‘라 토마티나(La Tomatina)’ 보다 훨씬 크다고 하니. 같이 가보기로!

<맥주 퍼레이드>

<인파로 가득한 콘서트 현장!!>

어디를 가든 EDM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추고 있었다. 화장실도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아서(정확히 말하면 화장실의 수용 규모를 한참 넘어선 인파 때문에) 냄새도 좀 나고.. 여러 가지로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내 성향 상 잘 적응하지는 못했지만, 이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몽파르나스 역에서의 연착이 나쁜 신고식이었다면, 우연히 맞닥뜨린 바욘 축제의 마지막 밤은 기분 좋은 전야제였다. 종엽형은 파티가 썩 맘에 드는 모양인지, 어느새 나와 헤어져 유럽 청년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당장 내일부터 걸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본격적인 순례 하루 전, 안 그래도 설레는 마음이 축제 분위기에 더욱 증폭되어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문원기님은?

서울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농구와 피아노, 여행을 좋아하며, 최근 취업 걱정이 한창인 평범한 한국 대학생이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는지 태생부터 일본 도쿄 출신이고, 이후 한국으로 건너와서도 부산, 광주 등 이사를 수차례 다니다가 현재는 서울 거주 중이다. 로드프레스의 첫 세미나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또 다른 젊음의 갈무리를 할 겸 자신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내려 한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