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By

광고문의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② – 문원기

[Moon’s 산티아고 순례길] – 1. 시작 (바욘 – 생장 – 론세스바예스)

「시작」

2017.07.31.월, 순례 D + 1

바욘 – 생장 – 론세스바예스

27.1km / 27.1km

5일간 1억 명이 모이는 엽기적인 규모의 바욘 축제 다음 날. 이 수많은 인파를 받아낸 바욘 시내는 정말이지 무참했다. 화려한 축제의 뒷길에 걸맞는 쓰레기더미와 악취…

새벽부터 살수차가 물청소를 하는 가운데, 축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순례자 복장의 우리를 알아보고는 익숙하게 ‘부엔 까미노!’를 외친다.

생장행 기차에서 한국인 2명을 더 만났다. 프랑스에서 요리 관련 일을 하는 누리 형, 그리고 혁 형이다. 종엽형과 나까지 함께 결성된 4명의 한국인. 까미노의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헤어지고 다시 만나게 될 소중한 인연이었다.

프랑스길의 공식 시작점인 ‘생장(Saint-Jeans pied de port)’.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의 피레네 산맥 중턱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벌써부터 붐비고 있다. 오전 9시 경이니 사실 많은 이들이 벌써 걷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 누리형 가방에 태극기가 꽂혀 있다.>

순례자 사무실에 들러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샬(Credential)’을 발급받았다. 발급 과정에서, 자신이 까미노를 걷는 이유를 적어내야 한다. 조금 망설이다 ‘spritual’ 에 체크했다. 종교는 없지만, 내 영혼에 문을 두드리는 여행이 되어야 할 것이기에..

<피레네를 오르며. 크게 보이는 순서대로 나, 종엽형, 혁형, 누리형>

산맥 전체에 안개가 잔뜩 껴 있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피레네의 빛나는 경치를 보지 못해 아쉬우면서도, 한 여름의 무더위를 피해갈 수 있다는 점에선 매력적이기도 했다. 

청량한 안개를 한껏 빨아들이며 걸음을 내딛으니, 오전의 피로감이 빠르게 씻겨 내려갔다. 자유로이 방목되는 가축들의 방울소리가 안개 위를 수놓았다.

-내딛는 양 발 아래 날마다의 단막극이 펼쳐진다.

산중 풀 뜯는 가축의 종소리 위로 안개가 내려앉고,

햇볕은 다시금 안개를 몰아내며 여린 살을 태운다.

목숨까진 아니더라도, 여행에선 늘 뭔가를 걸어야 한다.-

< 칼바람이 부는 능선. 순례자들이 실제로 사용하던 숙소(피난처)>

능선을 넘자마자 안개가 급속도로 걷히며, 피레네의 풍광이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피레네 산맥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소백산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소백산을 올라보신 분들이라면, 눈을 감고 이곳의 경치를 상상해보자.

출발한 지 약 5시간 후인 오후 2시 반에 ‘르푀더 봉우리(Lepoeder)’에 닿았다. 근방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십여 명의 순례자들이 푸르른 목초지에 드러누워 쉬고 있었다. 부부가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푸드트럭이 이곳까지 올라와 있었는데, 사진만 찍고 지나치기 미안하여 샌드위치와 수박 한 조각을 사 물었다. 아….!!

<입 속엔 수박 한가득. 저 웃음은 정말 최대한 절제한 웃음이다!>

한쪽에선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무척 온순하여, 그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른 순례자들이 바라보는 방향은 제각각이었다. 나와 같이 순례의 첫 발을 내딛는 그들은 과연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까.

정상은 아름다웠으나,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지금의 뙤약볕이 무색할 정도로 산에서의 날은 금방 저물 것이니까! 서둘러 오늘의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가 위치한 산중턱까지 내려가야 한다. 부지런히 내리막을 탔다.

오후 4시쯤, 다시 짙어진 안개 사이로 수도원 같이 엄숙하고 밋밋하게 생긴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론세스바예스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작고 고립된 마을이었다. 아니, 마을이라고 볼 수도 없나? 애초에 수도원으로써 만들어진 곳이니까. 그럴 법도 하다.

사실 오후 4시면 늦게 도착한 편이다. 

이미 대부분의 순례자가 숙소에서 쉬는 듯, 근방이 조용했다. 서둘러 첫 알베르게 체크인을 시도했다. ‘알베르게(Albergue)’는 순례자들이 묵는 숙소. 게스트하우스와 비슷한데, 보다 격식 없고 자유로운 형태이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안개가 잔뜩 껴 있다.>

이곳을 비롯해, 까미노 대부분의 알베르게에는 순례자들을 위해 숙소를 관리하며 봉사하는 ‘오스피딸레로(Hospitalelo)’가 존재한다. 까미노를 한 번이라도 걸었던 자들에 한해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선배 순례자들이어서 그런지 다들 친절하다.

이 곳의 오스피딸레로로 보이는 할머니. 가이드북에서 배운 몇 가지 단어를 조합해본다.

“Una…. Cama… Libre?? Quanto…es???(하나…침대…가능해요? 얼마..에요?)”

내가 안쓰러운지 손을 휘저으시고는, 영어로 체크인을 해 주신다. 당차게 시도한 첫 스페인어 회화는 귀여운 실패로 돌아갔다.

안내받아서 내려간 지하 1층의 공용 침실. 줄곧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온 내게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막 샤워를 마치고 온 여성분이 스포츠 속옷 차림으로 태연히 돌아다니시는 것이 아닌가. 유럽의 문화, 그리고 알베르게의 이런 시스템에 대해 듣긴 했었지만, 실제로 맞닥뜨리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도 곧 정신을 차리고, 부지런히 신변을 정리했다. 빨래, 샤워, 스트레칭… 안개 속을 걸을 때는 몰랐는데, 어깨가 빨갛게 타 있어 화상연고도 듬뿍 발랐다.

순례 첫날이니만큼 순례자 메뉴를 먹기로 했다. 꽤 분위기 있는 2층 레스토랑에 50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모였다. 우리 테이블에서는 스테판이라는 독일 청년이 대화를 주도했는데, 영어, 스페인어, 불어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높은 사교성을 뽐냈다.

그에 반해 나는 오직 영어, 그나마도 유창하기 못하기 때문에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자연스레 점차 먹는 것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순서대로 파스타, 송어, 꿀에 절인 빵이 나왔고 와인이 곁들여졌다. 다 먹었지만 슬프게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흑..

순례자 메뉴는 외출 없이 알베르게 안에서 바로 먹을 수 있고, 또 그날의 동료 순례자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평균 가격이 10유로 정도로 한 끼 식사 치고는 비싼 편이며, 맛이나 양도 가격만큼 좋지 못한 경우도 많다. 나는 이 날 이후로 순례자 메뉴는 2~3번 정도만 더 먹었던 것 같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강한 피로가 몰려왔고, 곧장 침대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단잠 가운데 행복한 꿈이 찾아와, 한 달간의 여정을 시작하는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Moon’s 산티아고 순례길] – 2. 초심자 (론세스바예스 – 빰쁠로냐)

「초심자」

2017.08.01.화, 순례 D + 2

론세스바예스 – 빰쁠로냐

42km / 69.1km

새벽 5시, 저절로 눈이 떠졌다. 첫날은 모두에게 고단했던 듯, 아직 대부분이 고요한 숨소리만을 내며 자고 있었다.

짐을 싸 볼까~ 하고 전날 말려둔 빨래를 걷으러 갔는데… 오 마이 갓. 안 말랐다. 산 중턱의 습고 춥한 공기 속에서, 빨래는 어제 널어놓은 그대로 축축한 상태였다! 당장 오늘 입어야 할 옷가지가 섞여 있는데. 허겁지겁 탈수기에 돌리고, 밥을 먹으러 갔다.

<까미노에서의 표준적인 아침식단이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Holacio 라는 스페인 친구를 만났다. 

휴가차 까미노를 찾았다는 그는, 이 길을 걸으러 전세계에서 스페인을 찾아온다는 것에 대해 적잖은 자부심을 느끼는 듯 했다. 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평생의 버킷 리스트로 간직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던가를 되새겨보았다. 올라씨오! 충분히 자부심을 느낄만해!

밥을 먹고 왔지만 여전히 빨래는 눅눅했다. 퇴실시간이 다가왔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축축한 빨래를 배낭에 집어넣고 출발해야 했다. 안개 낀 아침의 론세스바예스는 추웠다. 바람막이를 껴입어야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빰쁠로냐(Pamplona)’라는 대도시. 40km를 넘는 거리기에,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종엽형, 누리형, 혁형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어제 하루 종일 피레네를 올라서 그런지, 중간 목적지인 ‘주비리(Zubiri)’까지의 길은 계속해서 내리막이었다. 무릎에 부담이 갈 것 같아 챙겨온 보호대를 착용했는데, 별 효과를 느끼지 못해 도로 벗었다. 중간 마을인 ‘부르게떼(Burgette)’에서는 표식을 놓쳐 길을 잃을 뻔하다가, 동네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까미노는 표식이 워낙 잘 되어 있어 길 잃을 염려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된다. 누가 봐도 까미노 길일 것 같은 멀쩡한 길을 놔두고 갑자기 골목으로 접어들어야 할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표식은 대개 노란 화살표나 조개문양이지만, 솔방울이나 리본 등 다른 형태로도 왕왕 등장한다. 직접 가서 찾아보는 재미를 느끼시기를!!

<걷다가 이런 걸 보면 괜히 코끝이 찡하다.>

<‘Buen Camino(좋은 길 되세요!!)’. 까미노에서의 대표적인 인사말이다.>

내리막길의 막바지, 주비리에 도착했다. 

내천이 흐르는 아담한 마을인데, 물을 보니 이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었다. 여름 까미노는 필연적으로 물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나는 후반부에는 아예 수영장이나 강이 있는 마을이나 알베르게를 필사적으로 찾아다니기도 했다.

겸사겸사 내천에 앉아 빨래를 말리고, 빵을 집어들었다. 다른 순례자들도 삼삼오오 자리를 잡는 가운데, 못 보던 한국인 한 명을 만났다. ‘도현’이라고,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순례길은 왜 찾았어?”

“까미노를 걸으면 더 크고 깊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예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아이들이 아닌 이상, 나도 이곳을 걷는 사람들 중 무척 어린 편이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이 스무 살의 동생이 내심 부러웠다. 같은 경험을 더 일찍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과거를 반추해보고는, 이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스무 살의 나는 정말 철없고, 우유부단하고, 대학생활에 취해있는… 지금보다도 더한 철부지였다.  

<그래, 난 내 길을 찾으면 되는거야. 그게 언제까지라도.>

그 당시의 내가 까미노를 찾았다면? 

글쎄. 긍정적인 깨달음보다는 힘들다는 투정, 혹은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에 휘둘려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군대에서 한껏 고민을 하고, 이곳을 찾은 24살의 내가 좋다. 이르지도, 그렇다고 늦지도 않은 때인 것 같다.

쉬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다. 오후 2시. 빰쁠로냐까지는 20km가 넘게 남아있는데!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채석장을 지나고, 작은 마을과 숲길, 도로의 반복이었다. 발길을 멈출만한 경치가 없었기에 빠르게 걸을 수 있었다.

오후 4시. 드넓은 대로변 옆을 걷고 있었지만, 걷는 이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도착 했어야 할 시간. 무더운 태양 아래 나는 아예 주저앉아 버렸다. 빨래나 말리자~!!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이 옷가지를 순식간에 말려주었다.>

그래도 결국, 가야 할 길을 늦추면 후회 내지 아쉬움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별 수 없이,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고작 이틀 차에 42km 정도를 걸으며 호된 신고식을 했다. 물론 50km 씩 휙휙 걸어제끼는 순례자들도 심심찮게 있지만, 그래도 무척 힘든 건 맞다. 37도 땡볕 아래, 휴식시간을 제외하고도 거의 11~12시간을 꼬박 걷는다고 생각하면.

고생 끝에 ‘트리니다드 데 아레(Trinidad de arre)’ 에 도착했다. 빰쁠로냐 근교로 접어드는 다리, 그리고 성당이다.

까미노는 1,000년의 역사를 구가하며, 특히 중세 유럽의 근간이었던 가톨릭의 성지이니만큼 종교적, 역사적인 장소를 많이 지난다. 이 다리에도 분명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는데… 핑계일 지도 모르지만, 나는 매일매일 주어진 길을 걷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기에만도 바빴기에 이 부분이 많이 미흡했다.

순례길은 분명 알고 가는 만큼 재미있고, 뜻깊고, 감동적일 것이다. 1분의 관광을 위해 10일을 투자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여행지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은 그곳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그러니, 스스로의 여건이 되는 하에서 최대한 많이 알아보고 가시기를!

빰쁠로냐 성내로 진입하려면, 1시간여를 더 걸어 ‘막달레나 다리(Puente de la Magdalena)’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강을 잇는 다리가 워낙 많아, 무엇이 막달레나 다리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길을 잃고 헤매다 별 수 없이, 산책 중이신 아주머니께 도움을 청했다.

“Perdon, donde esta el Puente de la Magdalena??(혹시, 막달레나 다리는 어디에 있나요?)”

“!*&%**@$^@&(%^(!*(!&#%*#&$#”

으어어아어엉…. 내가 익히고 간 건 정말 기본 중의 기본적인 표현들. “얼마에요?” “이거 어디에 있어요?” “침대 남은 거 있나요?” 정도다. 아, 혹여나 나를 북한사람으로 착각할까 봐 “남한 사람이에요.” 도 외워서 갔다. 그러나 이분들께서는 내 질문을 듣고 스페인어를 잘하신다고 생각하셨는지,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내신다.

“No abla Espanol~~!!(저는 스페인어를 못해요~~!!)”

이라고 말하니, 황당하신 듯 말 속도가 더 빨라지셨다. 그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스페인어로 질문해놓고 스페인어를 모른다고 하면 어쩌자는 거냐” 라는 말도 있었지 싶다.

아무튼, 감사하게도 그분들은 무려 30분이나 함께 걸으며 나를 막달레나 다리로 인도해주셨다. 성내에 접어든 시각은 저녁 7시. 시계를 보기 전까지는 7시인 줄도 몰랐는데, 낮과 다를 바 없기 밝았기 때문이다. 8월 초, 스페인의 태양은 오후 10시가 넘어서 저물었다.

공립 알베르게는 이미 만실이었다. 앞서 숙소 걱정은 크게 할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건 늦지 않았을 때의 얘기. 늦어도 오후 4시 이전에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권한다.

별 수 없이 비싼 사립 알베르게를 잡고, 해가 지기 전에 성내 구경에 나섰다. 마트에서 산 빵, 하몽, 치즈 그리고 맥주가 양 손에 들려 있었다.

오랜 역사가 빚어낸 공간에, 현 시대의 사람들이 참으로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는 해를 보며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알고 보니 스페인 기준으로는 오히려 저녁 먹기에 이른 시간이었다. 민망해라…)

<빰쁠로냐 성곽에서 저녁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

 

[Moon’s 산티아고 순례길] – 3. 적응 (빰쁠로냐 – 오바노스)

「적응」

2017.08.02.수, 순례 D + 3

빰쁠로냐 – 오바노스

22km / 91.1km

다음 날 아침. 전날 42km를 걸은 여파인지, 온 몸에 근육통이 찾아왔다. 식욕도 영 없었다. 입에 밥 대신 빵이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지 고작 4일째. 숙박비가 비싼 대가로 각종 빵과 잼을 무한 제공하고 있었으나, 몇 조각 먹고는 도저히 손이 가질 않았다.

느지막이 먹고, 씻고, 내친 김에 일지까지 쓰다가 퇴실시간이 다 되어 10시경 길을 나섰다. 사실 10시에 출발해도 된다는 배짱이 있었다.

“푸엔떼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 27km 정도니까.. 빨리 걸으면 5시간이면 충분해!!”

물론…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나는 아직 스페인 더위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었다.

빰쁠로냐는 큰 도시라 그런지, 벗어나는 데만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사실 까미노를 다녀오고 난 이후에, 아름다웠거나 특별한 추억이 깃든 길 위주로 기억이 재구성되었다. 기억이 편식을 하는 게지. 평범했거나, 인상 깊지 않았던 구간은 자연스레 기억에서 빠르게 사라져갔다. 빰쁠로냐를 벗어나는 길이 그랬다.

당시에는 그 밋밋한 길들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걸음을 재촉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 길들조차도 너무나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최대한 많이 남겨 보기를 바란다. 잠시나마, 그 때 그 곳에 깃들었던 나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좋은 길’>

빰쁠로냐 외곽을 벗어나자, 갑자기 드넓은 황금빛 평야가 나타났다. 추수철인지 군데군데 높은 짚단이 올라가 있고, 밭들은 하나같이 입대를 앞둔 훈련병처럼 짧게 베어져 있었다.

<땅, 하늘의 색깔과 참 잘 어울리는 표지판>

<땡볕 아래의 순례자, 낮게 떠 있는 구름>

맑은 하늘 중간 중간에는 그 넓은 밭 하나를 다 가릴 만큼 큰 구름들이 떠 있다. 구름의 방향은 시시각각 변했는데, 그 중 어떤 것은 잠시나마 우리 위에서 무더운 햇볕을 가려주기도 했다. 길의 경사는 조금씩 높아졌고, 순례자들을 ‘알토 데 뻬르돈(Alto de perdon, 용서의 언덕)’으로 이끌어나갔다.

언덕을 오르는데, 산등성이 한쪽에 난생 처음 보는 규모의 해바라기 밭이 펼쳐진다. 

해바라기의 개화 시기는 8~9월인데, 이 때문에 아마 이 시기를 걷지 않은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물론 다른 계절엔 다른 계절화가 피어나겠지만.

<해바라기와 함께~! 더위가 빚어낸 억지 웃음..>

<용서의 언덕 정상. 바람을 헤치고 가는 모습의 순례자상>

‘용서의 언덕이 왜 용서의 언덕이지?’ 

이곳을 오르는 이들이 한 번쯤은 궁금증을 가질 만하다. 용서를 하는 곳일까? 받는 곳일까? 전해져 내려오는 바에 따르면, 용서를 하는 곳이라고 한다. 

정상에 불어 오르는 거센 칼바람에, 자기의 미운 마음을 다 날려 보내라고… 그러나 이날은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다. 풍력발전기도 제자리.

나는 이 당시 딱히 누구를 미워하지도 않았다. 굳이 한 명만 꼽으라면, 아마 내 자신이 아니었을까. 나를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좀 더 사랑하기 위해 까미노에 온 것이니.

‘오늘 어디까지 가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빰쁠로냐에서 흔히 다음 목적지로 잡는 곳은 ‘푸엔떼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이긴 하다. 그러나 이 날은 너무 더웠고, 나는 결국 ‘오바노스(Obanos)’라는 마을에서 방전됐다.

<마을 초입에서 기부제로 에이드를 팔던 소녀>

까미노를 걸으며 이왕이면 이름나고 볼거리 많다는 마을(푸엔떼 라 레이나가 그러하다)에 머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솔직히 이방인인 내 입장에서는 이 마을이 그 마을이다. 가까운 게 최고의 미덕이다.

체크인 후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영화에서 딱 조연 배우 역할을 할 것 같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 다가온다.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루마니아 청년 Willy. 같이 ‘바르(Bar)’에 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솔직히 저녁이 걱정이긴 했다. ‘씨에스타(Siesta)’ 에 제대로 걸쳤기 때문이다.

씨에스타는 더운 지방에서 갖는 일종의 낮잠시간인데,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 우리나라 정서상 ‘아니, 그래도 이건 열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업종도 심심찮게 닫는다. 그냥, 마음을 내려놓자.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다. 기준이 있다고는 하는데, 다녀본 결과 솔직히 지역마다 사람마다 제각각인 듯.

식사 중에 두 사람이 더 합류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Wolfgang, 그리고 브라질에서 온 Daniel 이다. 볼프강은 온 몸에 문신이 가득한데, 막상 인상은 엄청 순하다. 연예인 김국진이 안경을 썼다고 상상하면 된다. 다니엘은 물리치료사인데, 내가 좋아하는 NBA 농구선수인 카이리 어빙과 정.말. 똑같이 생겼다. 본인에게도 사진을 보여주니 바로 웃으며 수긍했다.

볼프강은 오스트리아 빈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한다. 빈에서부터 오바노스까지는 찻길로 2,091km 이다(…). 워낙 오래 걸어서인지, 원래는 희었을 것 같은 피부가 거의 홍익인간이 되어 있다. 심지어 긴팔 긴바지는 챙기지도 않았다고. 자기도 피부가 타들어가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는지, 커다란 우산을 사서 지팡이 겸용으로 가지고 다닌단다.

윌리는 금융계에서 일하는 경제학자인데,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충만해 보인다. 대화 도중 집시가 화두로 던져졌는데, 가열차게 그들을 비판한다. 유럽에서 아예 내쫓아야 한다는 말에도 서슴이 없다. 집시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그 반응이 당황스럽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회적인 배경이 있겠지.

그럼 나는 무슨 얘기를 했냐고? 그들이 내게 궁금해 했던 건 다음의 두 가지이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까미노를 걷게 된 이유가 뭐야?”

“북한은 정말 위험해?”

나는 그냥, 두 질문 모두 둘러댔다. 한국어가 오고가는 자리였다면 무슨 입장이라도 열심히 피력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영어로 북한과의 그 복잡미묘한 관계. 정치공학적 구도를 풀어낼 재간이 없었다.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이날, 외국인들에 대한 나의 두려움이 상당 부분 깨져 나갔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인 것 같다. 

어차피 아일랜드인, 루마니아인, 브라질인 모두 다 영어가 주 언어가 아니다. 은연중에 나 스스로에게 동양인, 이방인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었음을 자각했다. 그저 한 사람의 순례자로서, 나 자신을 내려놓고 솔직해 질 필요가 있었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