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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⑦ – 문원기

「함께」  

2017.08.11.금, 순례 D + 12  

까스뜨로헤리스 – 프로미스타

26.4km / 358.4km

애매한 추위 탓에, 밤새 침낭을 덮을 지 말지 뒤척이며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슬슬 체력이 달리는지 한 번에 눈을 뜨기가 힘들다. 만약 동행이 없었다면, 어차피 나 혼자라는 생각에 시간관리를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마침 일지도 조금씩 밀리기 시작할 때였다.

체력보다도 새끼발가락이 훨씬 더 큰 걱정거리다. 어제 밤 치료를 했다지만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동행을 먼저 보내고, 뒤에 남아 물집치료를 좀 더 했다.

<연고와 바셀린을 바르고 비닐로 덮어씌웠다.>

등산화는 통증이 심해 별 수 없이 아쿠아 슈즈(크록스)를 신었다. 그런데 웬걸. 오히려 걷기에 더 편하다!! 메세따같이 길이 험하지 않은 곳에서는 등산화보다도 더 나은 것 같다.

<크록스. 구멍으로 간간히 모래가 들어온다는 점만 빼면 정말 편하다.>

<전방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모스뗄라레스 언덕.>

아침의 태양은 어김없이 동쪽에서 나를 추격해 온다. 오전에 넘어야 할 곳은 바로 ‘모스뗄라레스 언덕(Alto de Mostelares)’. 거대한 메세따 언덕이다.

언덕 입구까지 가는데 만도 30분, 거기서부터 정상까지 또 30분이 걸렸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하니 먼저 올라온 일행이 경치를 만끽하며 쉬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지형이다. 조물주가 칼로 잘라내기라도 한 듯, 무서울 정도로 평탄하다.

<평지 그 자체! 저 멀리, 봉긋이 솟은 까스뜨로헤리스가 보인다.>

쉼터 한 켠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게시판이 있다. 남은 길에 대한 다짐, 사랑고백, 힘들다는 투정, 그리고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어느덧 중간지점에 다다른 순례자들의 소회가 담긴 곳이다.

 여기저기 조형물들도 많이 보인다. 사람들은 이곳에 저마다의 염원을 십자가로, 돌탑으로, 혹은 그들의 언어로 남겨 두었다.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졌기를. 그래야지 저것들이 저 곳에 있는 의미가 있다.

<언덕 정상에 설치되어있는 게시판. 한국어도 적지 않다.>

‘TODO LO QUE TIENES LO HAS DESEADO O TEMIDO ANTES (네가 가진 모든 것은 네가 이전에 원하였으나, 동시에 두려워하던 것이다)’

너무나 깊게 와 닿는 말이다. 당장 이 산티아고 순례길이 나에게 그러한 존재였다. 도전하고 싶지만, 동시에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곳.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미 절반을 걸어냈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내가 소망하는 것들은 당장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기엔 아득히 높아 보일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 길을 걸었던 젊은 날의 용기와 끈기를 기억할 것이다.

어느덧 다시 내리막이다. 맑은 날, 광활한 평지, 내리막이 겹쳐 긴 가시거리를 만들어 낸다.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여도, 내리 한 두 시간을 걸어야 닿을 수 있기에 현혹되면 안 된다.

<정처 없는 길. 가방이 심히 무거워 보이는 요한 형>

모스뗄라레스 언덕을 내려서고, 다음 마을의 Bar에서 윤유 형과 선영 씨를 다시 만났다. 둘은 우리와 동행이었지만, 아무래도 커플이다 보니 종종 둘이서만 걷곤 했다.

6명이서 함께 걷는 길.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따스하게 내려쬐는 햇빛과 아름다운 경치에 파묻혀 새삼 감정이 올라올 때면, 잠시 동행보다 뒤쳐져서 나만의 동영상을 남기곤 했다.

주기적으로 스스로를 찍으며 드는 생각은, 나의 몰골이 갈수록 초췌해진다는 것이다. 마음의 행복과 겉모습은 완전히 별개다.

하염없이 걷고 있노라면, ‘Pet shop boys’의 <Go West> 라는 노래가 생각나 찾아듣곤 했다.

서쪽 끝,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이 바로 까미노 아니던가? 이따금씩 광활한 자연 속에서 스스로가 보잘 것 없게 느껴질 때, 이 경쾌하면서도 진지한 노래는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GO WEST! Life is peaceful there. In the open air. Where the skies are blue…”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과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곡이라고 생각한다.

서쪽으로 가라. 네가 구도하는 그 모든 하루하루 나는

너에게 매일의 웃음과, 눈물과, 깨달음을 건네주겠다.

말을 나누고 음악을 울려라. 걸음뿐인 여정은 지독한 낭비다.

고된 팔다리를 어루만져 줄 친구는 네 스스로 찾으라.

 

그런데 계속해서 평원을 걷고 있자니, 문득 엉뚱한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마침 사진작가 요한 형님이 계시기에 믿고 아무 말이나 막 던져 보았다.

“형님, 근데 여기 그거 될 거 같지 않아요? 그 착시 사진 있잖아요 왜. 원근감 없어지는 거”

“오, 괜찮겠는데요? 한 번 해 볼까요?” (요한 형님은 동생들에게도 존댓말을 쓰신다)

“성훈 형, 잠깐만 뒤로 가 보실래요? 10m 정도.”

“마그다, Stop. One step left. No! 반대로. like me. 내 손 봐봐! 아 좀 적당히 알아들어~~”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시범작. 생각보다 너무 훌륭했다. 예상대로 이 드넓은 평지에는 원근감이라곤 아예 없었다. 우리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시간이다!!

<진격의 거인, 마그다!!>

그동안 메세따에서 이런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한 사람은 거의 없지 않았을까. 툭 던진 한 마디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결과물이 너무나 흡족했다.

“우리 이제 좀 정상적인 사진도 찍어요~”

“그럼 그냥 찍어볼까요? 최대한 포즈 거만하게 잡아 봐요!“

<가장 행복했던 길은 함께 했던 길>

땡볕 아래, 사진을 찍는 데만 거진 두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남는 건 기록과 사진뿐이다.

현실의 나는 늙어갈 테지만, 사진 속에서는 언제나 혈기 왕성했던 24살 청년이다. 더군다나 그 시절을 공유했던 이들과의 기록이라면, 모두의 한 때가 그 속에 깃들 수 있는 것이다.

벌어지는 시간의 간극 속에서 슬퍼할지, 아니면 이를 흐뭇한 추억으로 간직할지는 결국 오롯이 나의 선택이다.

오늘의 목적지 ‘프로미스타(Fromista)’로 향하는 길. 웬일로 숲이 무성해지나 싶더니, 돌연 물길이 등장한다. ‘Canal de Castilla’. 근처의 경작지에 물을 대기 위한 거대한 수로이다.

땅만 보고 걷던 와중에 물을 보게 되어 반갑지만.. 안타깝게도 내 몸을 맡기기엔 다소 더럽다.

<아름다운 운하길. 물을 보니 확실히 기운이 난다.>

물의 폭이며 깊이, 주변 경관이 완벽하다. 인간의 손으로 가꾼 티가 나지만, 누가 만들었든 따질 게 무엇인가! 마그다는 물 앞에서 완전 신이 난 듯, 해맑게 웃고 있다.

운하가 끊기는 지점이 곧 프로미스타의 입구다. 오늘 묵을 알베르게 이름은 기찻길 옆의 ‘까날 데 까스띠야(Canal de Castilla)’. 확실히 운하가 이 마을의 랜드마크이긴 한가 보다.

숙박비에 순례자메뉴까지 해서 15유로라는데, 론세스바예스에서의 안 좋은 추억이 떠올라 멈칫 했다. 10유로를 내고 짠 생선 한 마리와 그저 그런 파스타를 먹었었지 않는가?

그래도 다른 곳을 갈 엄두는 나지 않아 돈을 지불했는데, 생각보다 맛이 너무 좋다!

맛도 맛인데 양이 정말 많다. 입맛이 저렴한 나는 배부른 게 최고인데, 세 개의 코스요리 중 이미 두 번째에서 포만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음식을 남겨야 하나, 행복한 고민이구만!

게다가 오늘의 투숙객이 우리밖에 없어서 시끄럽게 놀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당장 마트에 가서 술을 샀다. 성훈 형 특제 깔리모초. 적포도주와 콜라를 1:1 비율로 섞고, 잔이 넘치지 않도록 얼음을 넣어준다.

안주는 초코케잌인데, 누가, 왜, 어디서 사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맥주와의 조합이었다면 영 안 어울렸을 테지만, 와인과 함께라서 그나마 괜찮았다.

오늘은 6인이 함께 보내는 마지막 밤이다. 윤유 형과 선영 씨가 일정 탓에 내일 아침 기차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한껏 즐거운 파티 분위기를 내지만, 방 안에는 은근한 아쉬움이 감돌고 있었다.

찬란한 하늘에 눈이 멀 것 같아

낮춘 눈높이엔 친구가 있었고

손잡고 수그린 꽃밭의 향기

눕고 싶었던 적 한 두 번 이었으랴.

「행복」

2017.08.12.토, 순례 D + 13

프로미스타 – 까리온

18km / 376.4km

아침 9시, 모처럼 여유로운 기상!

커플은 기차를 타고 약 60km 앞 ‘사아군(Sahagun)’으로 떠났다. 이를 ‘점프한다’라고 한다.

동행들을 먼저 보내고 숙소에 남아 중간점검을 했다. 그간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프로미스타는 모처럼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곳이다. 사진을 올릴 겸 내 페이스북 계정을 쭉 훑어보았다. (까미노에는 와이파이 잘 터지는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학 입학, 처음 갔던 내일로 기차여행, 멘토링, 군 입대와 전역, 과거 여자친구와의 사진들…

대학 입학 후 도대체 무얼 했나 싶지만, 생각보다 내 뒤에 남겨진 발자취가 적지 않았다. 순간순간 충동에 이끌려 즉흥적으로 한 일들도, 나름의 고심을 거쳐 도전한 활동들도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나름의 계기와 단초가 되어 지금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뿌듯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든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총합일까, 혹은 그 이상이거나 이하일까.

복잡한 생각의 파편들이 정돈되지 못한 상태로 깊숙한 무의식을 부유하고 있다. 마냥 정처 없이 길만 걷는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2016년 1월, 내일로 기차여행을 떠났을 때다.

외나무다리로 유명한 경북 영주의 무섬마을에서 탤런트 윤택 씨를 만났다. 싸인을 부탁드린 내게 윤택 씨는 무언가를 길게 적어주셨다.

<무섬마을에서 만난 윤택 씨의 싸인>

‘여행이 견문을 넓히는 중요한 삶의 밑거름이지만, 자칫 현실을 벗어나는 도피가 아닌가를 생각해 볼만하다.’

당시에는 무심코 넘겼지만, 까미노에서 불현듯 떠올라 계속해서 마음속을 맴돌았던 말이다.

여행은 당당히 삶을 직면하기 위한 도전인가? 혹은 그저 현실로부터의 무책임한 일탈일 뿐인가? 여행은 어떠해야 하며, 그간 내가 다녔던 여행들은 둘 중 어디에 가까웠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퇴실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주인분의 독촉에 짐을 싸들고 나왔다.

오늘 머물게 될 ‘까리온(Carrion de los Condes)’까지는 쭉 찻길을 따라 걷는데, 지루하다면 지루할 수 있는 길이다.

<프로미스타를 벗어나는 길. 가슴에 푸른 조개를 품고 있다.>

한 시간 반쯤 걸으면 나오는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Poblacion de Campos)’. 먼저 출발한 일행이 Bar에 앉아 쉬고 있다. 배가 고파, 큰 맘 먹고 4유로짜리 수제버거를 주문했다.

음식에 곁들여지는 한 잔의 카페 콘 레체(Cafe con leche = 우리나라의 카페라떼).

나는 순례 초반에는 돈을 아끼기 위해 커피를 입에 대지 않았으나, 3~4주차에 이르러서는 거의 매일 아침 길을 나서며 한 잔씩을 즐겼다. 동틀 녘의 쌀쌀함과 ‘오늘도 시작이구나’라는 막막함 앞에서, 그보다 더 내게 힘을 주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옆 건물이 우리 테이블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으나,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며 자취를 감춘다. 순식간에 더워진다. 출발이 늦었던 탓이다. 로스 알고스 가던 길의 끔찍함이 되살아난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수돗가에 옷을 적시는 나를 불신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마그다.

“Moon, Does it work??”

“Of course! Trust me.”

이곳에서 나의 이름은 ‘Moon’이다. 문씨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순례자들을 만날 때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가리키며 나를 소개하곤 했다. 썩 낭만적인 첫인사법이다. 

계속되는 도로 옆길. 나는 내친 김에 도로를 걷기로 한다. 크록스를 신고 있는 나로서는 흙길을 걷는 것이 영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타협은 있어야 몸과 마음이 편하다.

이번에도 영 아니올시다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마그다. 그러나 은근히 부러웠던 듯, 곧 노선을 갈아탄다. 도로에서는 모래 들어갈 걱정이 없기에 지나가는 차만 조심하면 된다.

까리온까지 약 18km. 우리가 수 시간 걸쳐 걷는 길을 저들은 아마 15분이면 주파할 것이다.

도중에 이탈리아인들과 조우했다. 직업군인 페데리꼬, 마우로, 리따. 이들의 목적지 역시 까리온이다. 페데리꼬는 직업군인답게 국방색 옷을 입고 있는데, 몸도 아주 탄탄해 보인다.

<도로 옆길, 얘기를 나누는 페데리꼬와 요한 형>

페데리꼬는 입이 아주 걸쭉하다. 변태적인 농담도 서슴지 않는데, 내가 상상해왔던 전형적인 이탈리아 남성이다. 그런 그가 불쾌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앞서 가 버리는 리따.

다음 마을인 ‘비야멘떼로 데 캄포스(Villamentero de Campos)’에서 쉬기로 했다. 왜 하나같이 Campos로 끝나는 거지 하고 사전을 검색해보니, ‘밭’이라는 뜻이란다. 밭이 많아 Campos인거라면, 여기 마을 절반 이상은 Campos로 끝나야 할 듯…

이 마을 어귀에는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얼마나 큰 지, 단 두 그루만으로 주위의 모든 햇빛을 막아준다. 그 덕에 냉기를 유지하고 있는 돌 벤치에 누웠다. 넓적 복숭아도 까먹고, 발도 말리고. 옷도 적셨다.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마그다의 표정이 심상찮다. 프로미스타에 책을 두고 왔단다.

걸어서 되돌아가려면 3시간. 히치하이킹을 시도해 보겠단다. 좋은 선택이다. 차를 이용하면 10분이면 갈 테니까. 잠시간 나, 성훈 형, 요한 형 셋이 되었다.

다음 마을에서 한 번 더 멈추었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어서는 아니었다. 다만 끝없이 반복되는 도롯길에 정신적으로 지치는 감이 있었다.

오늘도 1일 1 또띠야를 먹어치우고 있는데, 요한 형이 누군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이스라엘에서 온 뮤지컬 배우 지망생, 아멜리아다.

‘꿈을 위해 계속 나아가도 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까미노를 찾았다는 그녀. 짊어진 고민의 무게에 부합하듯, 배낭 크기가 요한 형 저리가라다. 도대체 무엇이 들었길래??

이런 고민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천연덕스레 그녀 무릎을 타고 오른다. 사람을 피하지 않는 걸 보아 가게에서 기르는 냥이들인 듯.

<귀여운 새끼고양이!>

말, 양, 소, 고양이, 강아지… 까미노에서는 이들 역시 순례자요, 동료요, 또한 풍경이다. 자신이 기르는 애완견과 함께 800km를 걷는 순례자들도 꽤나 자주 볼 수 있다.

다시 출발! 지금부터의 마지막 6km는 계단식 오르막과 내리막이다. 글로 묘사하기가 조금 어려운데, 하나 당 길이가 500m 정도인 계단이라고 보면 된다.

못내 지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같은 메세따라 하더라도, 산볼이나 까스뜨로헤리스의 환상적인 경치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비슷한 경치에 눈이 높아져 버린 건가?

그래도 나는 메세따가 좋다. 아무리 황량하고, 또 지루해서 땅만 보고 걷게 될 지라도.

한국에 돌아가면 이 황량함과 찌는듯한 더위마저 금세 그리워질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까리온 도착! 광장에서 낮술을 하고 있는 페데리꼬 일행과 인사를 나누고는, 오늘 묵을 곳인 ‘에스피리투 산토(Espiritu Santo)’로 향했다.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큰 알베르게다.

체크인을 하며 순례자 여권을 내보이는데, 어느새 제법 ‘세요(Cello = 스탬프)’가 많이 찍혔다. 거리상으로 절반을 왔으니, 크리덴샬도 거의 절반이 채워진 것. 제주 올레길을 걸을 때도 스탬프를 찍으며 흐뭇해했었는데, 역시 원조는 따라올 수 없는 맛이 있다.

사실 까리온에서 가장 유명한 알베르게는 ‘산타 마리아(Santa Maria)’라는 곳이다. 역시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곳인데, 날마다 계단에 빙 둘러앉아 순례자들을 위한 음악회를 연다.

이곳의 공연영상을 통해 ‘He venido para que vivais’, ‘Color esperanza’ 같은 좋은 노래를 접했다. 생명과 자연을 예찬하는 노래인데, 기회가 된다면 들어보시기를 바란다.

약 10일 만에 누리 형, 혁 형과 재회했다. 오멸 감독님, 태경이, 심지어 종엽 형도 만났다!! 유이&마호&나나라는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였는데, 스페인어를 전공하는 대학 새내기들이라고 한다. 역시 종엽 형의 사교성은 대단하다.

알베 마당에 농구장이 있어 요한 형, 페데리꼬 등과 함께 게임을 했다. 고된 순례길 와중에 운동까지 하려니 말 그대로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 이내 그만둬버리고 저녁준비에 동참했다.

요리를 잘하는 종엽 형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순례자들이 저녁을 준비하느라 부엌이 꽉 찼다. 간신히 가스불 한 쪽을 확보하고 닭볶음탕을 끓이기 시작한다.

<닭볶음탕. 얼마나 매운 게 그리웠는지, 고추를 통으로 들이부었다.>

<왼쪽에서부터 태경, 나나, 유이, 오멸 감독님, 종엽 형, 마호>

나, 요한, 성훈, 마그다, 종엽, 누리, 혁, 감독님, 태경이, 유이, 마호, 나나까지! 무려 열 두 명이 모였다. 프랑스길의 중간 지점답게 가장 많은 인원이 함께 한 날이다.

물론, 언제 그랬냐는 듯 내일 다시 각자의 길을 걸어 나갈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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