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By

광고문의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⑥ – 문원기

「꿈 같은」

2017.08.09.수, 순례 D + 10

부르고스 – 산볼

26.3km / 318.1km

 

무려 12시간이나 자서 개운했지만, 물집이 말썽이었다. 피가 잔뜩 고여 있었다. 아오!!

이미 다른 동행은 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붕대로 발가락을 동여멤과 동시에, 빠르게 입에 빵을 구겨 넣었다.

성훈 형 옆에 분홍머리의 여자 한 명이 앉아 있다. 옷도 분홍색, 모자도 분홍색이다.

“어, 마그다라고, 부르고스에서 시작한다네. 우리랑 같이 걷고 싶대”

동갑내기 폴란드 소녀 마그다. 이렇게 여섯 명의 파티가 완성되었다!!

어제 저녁도 못 먹고 일찍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부르고스 구경을 거의 못했다. 이런 볼 것 가득한 도시를 잠만 자다 떠나야 한다니…

사실 까미노에 오기 전에는 마냥 걸을 생각뿐이었지, 마을 구경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와 보니, 마을마다의 고유한 분위기와 오랜 역사가 묻어져 나오는 건축물들이 정말 놀라웠다. 발걸음이 자꾸만 멈추고, 떠나기를 재촉하는 빠듯한 스케줄이 원망스러웠다.

물론 시간 관리를 아무리 잘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체력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도착하면 마을구경이고 뭐고 잠들어버리기 바쁜 것이다.

마그다는 동양 음악과 영화에 관심이 많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를 좋아한단다. 물론 일본이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서양 사람이 아시아의 문화를 알고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뿌듯한 사실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언덕의 정상. 현성형네가 한창 사진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정상에 서니 눈에 들어오는 경치. 아… 이런 게 메세따….!

<다 같이 점프샷!>

메세따는 오르막 – 평지 – 내리막으로 구성된다. 이때 그 규모가 만만찮은데. 언덕 하나를 오르내리는 데 길게는 두세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내 시야가 닿는 곳, 지평선 끝까지 해바라기가 펼쳐져 있다. 지루하기는커녕,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이 절로 휘둥그레진다.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해바라기 밭>

마그다는 이런 해바라기 밭을 태어나서 처음 본다며 해맑게 밭에서 뛰어놀고 있다. 맞장구는 안쳤지만 나도 당연히 이런 곳은 처음이다.

<돌무더기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마그다>

“하늘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어떻게 저래?”

당장 죽는다면 여한이야 있겠지만, 이왕이면 이런 곳에서 죽을 수 있기를.

<메세따를 내려오는 길의 풍경. 눈이 멀 것만 같았다.>

언덕을 내려오니 마을이 보인다.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Hornillos del Camino)’다. 오늘의 목적지인 ‘산 볼(San Bol)’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마을이므로, 저기에서 모든 물건을 사 가야 한다. 산 볼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여러 번 느끼는 거지만 이곳의 물가는 정말 싸다. 스페인어로 적포도주는 Vino tinto, 백포도주는 Vino blanco 라고 하는데, 1.5리터짜리 팩이 1유로도 하지 않는다.

포도주뿐인가. 맥주, 빵, 햄, 치즈, 과자 등등. 모두 한국의 3분의 2 정도밖에 값이 나가지 않는다. 워낙 농사가 잘 되는 땅이라 식재료가 싸다고 한다.

마그다는 뜨겁게 달궈진 벤치에 뻗어 있다. 그녀에겐 까미노 첫날이니 몸이 고단할 것이었다. 햇빛은 신경도 안 쓰는지, 그녀는 아예 피부를 포기하고 다니는 듯 했다(…)

그렇게, 산 볼에 도착했다.

<산 볼 알베르게. 잠깐 들르기만 하고 묵지는 않았다.>

이곳을 고른 이유는 다름 아닌 ‘황량함’ 때문이다. 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알베르게 하나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다. 건물도, 자동차도, 도시의 불빛도.

밤늦게까지 캠핑 얘기를 나누었던 게 불과 이틀 전, 첫 만남 때다. 모두의 마음이 통해 이토록 빨리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차근차근 오늘 밤을 준비할 차례다.

 

눈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은 

잔인한 무게로 땅 위에 군림하며,

이에 도전한 산들은 모두 잘려나가 

또 다른 평지가 되었다.

빛이 닿지 못하는 어느 시골길 옆

 허물어가던 집터는

칠흑의 밤, 알아봐준 나그네를 위해 

다시 한 번 바람과 겨룬다.

 

<버려진 옛 집터. 오늘 우리가 묵어갈 곳이다!>

나는 내가 우연을 믿는지 모르겠다. 신은 믿는가? 대답하기 어렵다. 종교를 가졌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이 자연과학적 원리에 의해 돌아간다는 것은 부정할 수도, 부정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때때로 노력과 기대를 넘어서는 행운이 찾아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알베르게 맞은편 언덕에 옛 집터 하나가 서 있었다. 오래도록 방치된 듯, 천장은 고사하고 외벽마저 반쯤 허물어져 있다. ‘혹시…’ 하며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삼 면에 가슴높이의 벽이 쌓여있고, 나머지 한 면을 막을 벽돌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평평한 시멘트 바닥은 여섯이 눕기에 충분하고, 잡초도 없으니 벌레걱정도 덜 수 있겠다…

“형!! 여기 딱일 것 같아요!! 와보세요!!”

먼저 벽돌로 나머지 한 면을 쌓아 올리고, 바닥에 담요와 침낭을 깐다. 두 개의 판초우의를 지붕삼고, 판초우의와 빨랫줄을 이어 반대쪽으로 팽팽하게 고정시킨다. 마지막으로, 배낭과 침대시트로 나머지 뚫린 공간을 막았다.

<즉석 텐트 완성!>

안으로 들어가 침낭을 덮어 보았다. 칼바람이 부는 바깥과 다르게 제법 온기가 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현성 형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곳이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 듯, 동갑인 성훈 형에게 은근히 추근거리기 시작했다. 기껏 예약해 놓은 알베르게마저 버리고 올 기세.

“야, 나도 여기서 자면 안 되냐? 여기 너무 대박인데?”

“니는 너무 키가 커서 안 들어간다~”

<모두가 모였다!>

점점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 난데없이 Bo가 벽을 타고 오르더니, 중국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한껏 고조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그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답가를 불러야 했다. 사실 은근히 부르고 싶기도 했지만…

<벽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나>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까지는 텐트 안에서 오순도순 저녁을 먹었다. 얇게 썬 토마토와 치즈를 집어넣은 간단한 샌드위치, 그리고 싸구려 와인이 오늘의 저녁이다.

얼마나 얘기를 나눴을까. 무심코 밖으로 고개를 내민 성훈 형이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언덕 너머, 보름달이 낮게 걸려 있다.>

눈이 시리도록 선명한 보름달이 지평선에 걸려 있었다. 얇은 구름을 좌우로 거느리고 있는데, 그 밝기가 무시무시하다. 별이 떠야 하는 시간임에도, 모든 별빛을 잡아먹고 있었다.

잠시간 얼어붙은 채 우리 눈높이에 걸린 달을 바라보았다.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모두 다르지만, 이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 날것의 자연 앞에 서 있는 작은 존재들이다.

그러나 달은 곧 지평선 아래로 사라졌고, 밤하늘의 본 주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허물어진 성당 안에서 별을 올려다보며 잠을 청하곤 했다.

여러 번 상상은 해 보았다. 나도 순례길에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문명의 불빛이 닿지 않는 황량한 곳. 과거로 사라져 간 지붕 없는 돌담에 기대어, 혹은 스산한 풀 소리뿐인 드넓은 초원에 누워 밤하늘의 별무리와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는 것.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조금 더 시야가 트인 곳에서 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그다와 함께 담요를 가지고 무작정 언덕을 올랐다. 우리가 떠나온 곳이 조그맣게 보이는 지점까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언덕의 정상. 얼마 전에 모두 깎여나간 듯, 풀들은 서로 스치는 소리조차 내지 못할 만큼 짧았다.

그렇게 빛도, 소리도 없는 초원에 누워 있다. 별똥별이 떨어진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Am I dreaming? Is it real?”

마그다가 뭐라뭐라 대답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사실 답을 얻기 위해 던진 질문도 아니다. 마음은 이미 반쯤 밤하늘을 날고 있다.

오늘 밤이 영원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사실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이 무수히 많은 별들이 다 사라지고 다시 아침이 밝아온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기 때문에..

마그다와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 각자의 별에게 말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칼바람에 몸이 얼어붙자 감각을 되찾는다는 핑계로, 또 그렇게 몇 분을 누운 채 발가락만 꾸물댔다.

꽤 늦은 시간에 내려왔으나 모두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감동한 건 우리 둘만이 아니었나보다. 30대에 접어든 성훈 형과 현성 형조차 어린아이처럼 기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날의 기적 같은 경험에 대해 담소를, 그리고 얼어버린 몸을 녹이기 위해 와인 한 잔씩을 나누었다.

침낭을 덮고 누웠다. 지금 내 위로는 바람에 펄럭이는 얇은 판초우의 한 벌 뿐이다.

그 위로는 여전히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을 것이었다.

 

천정

별이 뜨기로 한 밤이었습니다.

나만의 약속이라 못내 불안했지요.

혹여 캄캄한 밤 외로움에 빠질 날

위로해 줄 친구 몇을 모았습니다.

외딴 벌판 위 집터를 찾았습니다.

밤을 맞이할 나름의 정성이었지요.

이른 겨울바람은 예상하지 못한 채

얇은 천막에 우리를 맡겼습니다.

외벽에 기대어 올려다본 하늘

지평선에 뜬 달은 우리보다도 낮았습니다.

별빛은 달빛에 조금씩 스며들더니

이내 밤하늘의 주인이 됩니다.

우리의 두 눈을 모두 모은들

밤하늘을 아우를 수는 없었습니다.

분한 마음에 담요 하나 챙겨서

은하수가 오라는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나는 별이 춤추는 들판에 누웠습니다.

짧게 베인 잡풀은 아직 소리를 내기 일러

고요뿐인 그곳에 별이 떨어집니다.

큰 것은, 하늘을 끝까지 내달립니다.

황홀한 감정은 적막 속에 물들어

나는 때 이른 겨울 꿈을 꾸었습니다.

채 떨어지지 못하고 박혀버린 눈송이처럼

시리게 빛나던 머리 위 별들의 세상.

「여유」 

2017.08.10.목, 순례 D + 11 

산볼 – 까스뜨로헤리스

13.9km / 332.0km

 

새벽 5시 반.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날 일어나기로 약속한 시간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맞아, 우리는 노숙을 했다. 시멘트와 벽돌, 판초우의 따위에 둘러싸인 채로.

생각보다 따뜻했던지 등에는 땀마저 맺혀 있었다. 간밤에 날이 풀렸나 싶어 판초우의 너머로 손을 내밀어 봤다. 아이고, 여전한 칼바람과 새벽녘의 추위였다.

일찍 일어나야 할 이유가 있었다. 어제 캠핑용품을 빌렸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오신 오멸 선생님과, 역시 제주 출신의 오태경. 선생님은 제주 4.3 항쟁을 다룬 영화 ‘지슬’의 감독님이시고, 태경이 역시 영화감독을 꿈꾸는 학생이다. 출신, 성(姓), 전공이 모두 같은 두 사람이 머나먼 타국의 순례길 위에서 만났으니. 그야말로 기막힌 인연이다.

두 분은 캠핑을 하려는 우리에게 기꺼이 침낭을 건넸다. 응당 떠나기 전에 돌려드려야 했다.

우비를 걷어내고, 빨랫줄과 침낭도 말아 넣었다. 랜턴이 없으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일어난 지 10분도 되지 않은 6명의 젊은이가 추위에 떨며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캠핑장의 외벽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앞으로도 누군가의 낭만적인 하루를 위한, 혹은 먼 훗날 이 곳을 다시 찾을 나를 위한 공간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면서… 

짐정리가 얼추 끝나자마자 알베르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손이 얼어버릴 것 같다!!

“아니, 오늘 왜 이렇게 추운거야? 이 시간에 원래 이런가?”

“오늘은 조금만 가요. 추운 데서 자서 컨디션 별로다..”

“(저는 따뜻하게 잘 잤는데..ㅎㅎ)”

그렇게 오늘 우리는 14km만 걷기로 했다. 목적지는 ‘까스뜨로헤리스(Castrojeriz)’.

<저 멀리 걸어오는 우리들. 지평선 부근에는 아침햇살의 기운이 완연하다.>

아침이 될 무렵 ‘온따나스(Hontanas)’에 도착했다. 나머지 넷은 뒤쳐져 있었기에, 일단 나와 마그다 둘이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마그다는 한국어에 관심이 많은지, 어제오늘 틈만 나면 가르쳐달라고 성화다. 같이 걸을 날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그런 그녀를 한번 제대로 가르쳐보고 싶다.

그러나 경험은 없고 의욕만 앞서다보니, ‘안녕하세요’, ‘고마워’ ‘싫어’ 등의 기초단어만 몇 개 알려주는 데 그쳤다. 욕부터 가르친 건 함정

그녀는 그 정도만으로도 정말 고마워했다. 정성스레 알려주는 것에 감동을 받은 듯 했다.

나에 대한 고마움은 좀 넓게 보면 한국인에 대한 고마움일 것이고… 이 친구는 폴란드에 돌아가서 친절한 한국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걸었노라고 얘기하겠지.

이곳에서는 우리 한 명 한명이 곧 한국의 대표다. 사소한 실수가 그들에게는 커다란 편견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늘 언행을 바르게 하고, 우리 문화를 정성스레 알려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산볼에서 온따나스만큼의 거리를 한 번 더 가면 ‘산 안톤(San anton)’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마을 입구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아치형 구조물 하나가 서 있다.

<산 안톤 입구의 아치형 문>

14세기 수도원의 잔해라고 하니 약 700년의 역사를 가진 셈이다. 저 거대한 건물을 저만큼이나 무너뜨린 세월이 대단한 건지, 세월 앞에서도 저만큼 살아남은 건물이 대단한 건지.

<산 안톤 알베르게는 반쯤 무너진 건물 외벽에 기대 있다.>

이 오늘내일 하는 곳에는 무려 알베르게(!!)가 자리 잡고 있다. 입지가 입지인 만큼 전기도, 온수도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중세시대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기에 우리도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노숙으로 인해 피곤해진 몸을 돌보기에는 다소 열악한 환경인 것 같아 결국 포기했다.

<노천카페. 사장님의 선곡 센스에 감탄했다.>

한 번 발걸음이 멈춘 김에,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노천카페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사실 여유를 부릴 만한 게, 산 안톤에서는 까스뜨로헤리스가 육안으로도 보인다. 쭉 뻗은 가로수길을 사이에 두고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하는 거리다.

흥겨운 아일랜드 민요가 시작되자, 마그다는 아예 형들을 일으켜 세우더니 양쪽으로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스텝을 밟으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스텝 바이 스텝!>

한낮의 맥주 한 잔, 그리고 음악에 흠뻑 젖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늘은 한 달간의 까미노에서 가장 평화롭고 여유로운 날이었다.

<산 안톤과 까스뜨로헤리스를 잇는 직선도로. 참 걷기 편한 길이다.>

‘연금술사’와 ‘순례자’를 통해 세계적 작가가 된 파울로 코엘료. 그는 프랑스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이 까스뜨로헤리스를 꼽았다. 나도 공감한다. 몰리나세카, 오 세브레이로, 포르토마린 정도가 이에 견줄 수 있으려나.

왜 이곳을 최고로 꼽았는지는 와 보면 알게 된다. 이 마을은 작은 언덕의 중턱에 절반쯤 걸쳐 있다. 즉 평평한 개활지에 난데없이 불뚝 솟은, 바빌론의 공중정원 같은 모양인 셈이다.

꼭대기에는 성도 있다고 하던데 가보진 못했다. 10분만 걸어 올라가면 되는 걸 뭐가 힘들었냐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면 정말 더는 걷기가 싫다. 장보는 것도 귀찮아..

공립 알베르게 역시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테라스도 갖춰져 있어 경치구경하기 좋다.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이곳에서 술 한 잔 하면 참 좋겠다 싶었다.

빨래를 하는데 갑자기 오스피딸레로가 노발대발한다. 빨랫물이 세면대와 바닥에 튄다고 난리다. ‘어글리 코리안’을 외쳐대는데, 이 사람 인종차별하나? 다른 사람도 아닌 오스피딸레로가?

나중에 유럽인들이 그곳에서 빨래를 하자 똑같이 신경질을 부린다. ‘어글리 루마니안’, ‘어글리 더치 피플’… 그냥 결벽증이 지나친 사람이었다.

<한낮의 태양에 취한 마그다>

강한 햇살과 다르게 날씨가 쌀쌀했다. 실내에 머물며 발가락을 살펴보니 물집 상태가 말이 아니다. 핏덩이를 잘라내며 신음하는 나에게 아까 그 오스피딸레로가 한 마디 건넨다.

“Bad. You should go to hospital tomorrow.”

왠지 내일부터는 등산화를 신지 못 할 것 같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