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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⑤ – 문원기

「헤어짐과 만남」

2017.08.07.월, 순례 D + 8

그라뇽 – 아헤스

44.7km / 268.1km

 

첫 알람을 새벽 5시에 맞춰 두었으나, 일어나지 못했다.

30분가량이나 줄기차게 울렸던 듯, 간신히 눈을 뜨니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잠결이었음에도 ‘What the hxxx’ 과 같은 욕이 선명히 들려왔다.

다른 이들의 단잠을 30분이나 방해했다. 5시에 일어나지 못할 것이었다면 그 시간에 알람을 맞추었으면 안됐고, 맞추었다면 반드시 일어났어야 했던 것을..

그 시간대에 낯선 소음으로부터 방해받는 게, 피곤이 쌓일 대로 쌓인 순례자들에게 얼마나 짜증나는 일이었을까.

불과 어제 밤에만 해도 서로 식사와 음악을 같이 하며 울고 웃었던 사이. 너무나 미안했다.

원래 이 알베르게에서는 아침식사도 제공했지만, 도저히 이들과 아침을 맞이할 자신이 없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세수조차 하지 않고 길을 나섰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이토록 일찍 나온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한국인 동행들과 따로 걷기로 한 것이다. 나헤라에서부터 품기 시작한 생각이다.

왜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결코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진우 어머니과 진우, 재중 형님, 철진 형님, 국일 형, 주연 누나…

아마 ‘이 길은 혼자 걸어야 하는 곳이다’라는 강박과 불안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일찍 나온 만큼, 로스 알고스의 밤하늘에서 보았던 별들의 향연을 다시 한 번 기대했다. 그러나 온 하늘이 흐렸다. 구름은 자비 없이, 또 남김없이 새벽하늘을 덮어버렸다. 별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사라지자 지루해졌고, 그 지루함은 곧 무서움으로 바뀌었다. 새벽의 넘쳐 나는 정신력이 주변에 대한 지나친 예민함으로 터져 나왔다.

길을 찾는 다른 이들의 랜턴 빛이 보인다. 내가 제일 먼저 나온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그러나 모두 너무 멀어서, 근방 수 백 m에는 나 혼자나 다름없다.

무서움에 발걸음을 재촉하던 내 눈 앞에, 세로로 높게 서 있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어두워서 제대로 읽진 못했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곳이 라 리오자 지방과 레온 지방의 경계였다.

레온 지방에 접어든 것이다!!

다음 마을에 이를 때쯤. 아까 수 백m 가량 앞서 있던 그 랜턴 불빛을 따라잡았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익숙하다 했더니, 재중형님이었다. 새벽같이 출발한 나보다도 앞에 계셨다니…

<칠흑같은 밤, 재중형님과 함께. 둘 다 얼굴이 탱탱 부었다.>

같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1시간가량을 걷다가, 내가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형님께서는 내가 혼자 가고 싶어 하는 걸 알고계신 듯 했다.

‘또 뵐게요’ 라는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 언제 다시 만날 지 기약 없는 헤어짐이다.

마음이 복잡했다. 내 알람소리로 다른 순례자들을 깨워버렸다는 죄책감과, 한국인 동행들을 떠나온 것에 대한 편치 못한 감정이었다. 이왕 헤어진 것, 두 번 다시 마주치지 않도록 앞서가야만 할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눈비비고 일어날 시간에 이미 ‘벨로라도(Belorado)’에 도착했다.

도시가 전체적으로 활력이 없고 너무 휑했는데, 도시를 지탱해주던 주력 산업이 사양화된 탓이라고 한다. 볼 게 없으니 멈추지 않아도 되고. 걸음을 재촉하는 나에겐 나쁠 것 없었다.

20km 떨어진 ‘토산토스(Tosantos)’까지 한 번도 쉬지 않았다. 토산토스를 지나서는 아예 도로로 걸었다. 구불구불한 까미노 숲길보다, 쭉 뻗은 도로를 타는 것이 빠르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게 무슨 순례길인가? 대중교통을 타 버리는 것과 크게 다를 건 또 뭔가?

사방으로 안개가 짙게 껴 있다. 하늘도, 땅도, 그리고 내 마음도 흐렸다.

도로로 걷는 와중에, 여태껏 본 적 없던 대형 트레일러들이 나를 지나쳐갔다. 4대가 연이어 지나갈 때는 거센 바람에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표지판에는 어느덧 ‘부르고스(Burgos)’가 보이기 시작한다. 프랑스길이 지나는 3대 대도시(부르고스, 레온, 산티아고) 중 하나이다. 대도시가 가까워지는 만큼 짐을 나르는 화물차들도 보이는 것이겠다고 생각했다.

<흐린 마음을 대변하듯, 구름과 안개가 잔뜩 껴 있었다.>

안개가 잔뜩 껴 있는 오르막길. 도로 양 옆으로 안개를 뚫고 해바라기 군락이 보인다.

“이곳도 날만 맑으면 참 예쁘겠구나…”

마음이 탁 풀리면서,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온다. 시계를 보니 11시 30분,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Villafranca Montes de Oca)‘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마을 초입의 Bar에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점심식사 중이다. 슈퍼마켓에 들어가 빵, 잼, 치즈, 하몽, 과자 그리고 맥주를 샀다. 스페인어로는 ‘Supermercado(수뻬르메르까도)’ 라고 읽는다. 

칼도 없이 딱딱한 바게뜨를 얼기설기 썰어내려다 실패하고, 결국 입으로 뜯어먹기 시작한다. 빵 한 입 먹고, 잼 한 숟갈 먹고. 치즈랑 하몽 조금 뜯어 먹고. 잼이 손에 묻어 끈적대는 와중에, 맥주를 건드려 반쯤 엎어 버렸다. 과자는 이미 벤치 주변에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무슨 이런 궁상맞은 식사시간이 있나… 문득 스스로가 처량하다.

사실 내가 뭘 크게 잘못한 것이 없다. 몸 건강히 걷고 있고, 못 걸을 만큼 아픈 곳도 없고. 한국에서의 학교생활도 잘 일단락 지어놓고 왔다.

오늘 새벽의 알람 사건도, 어찌 보면 단순한 해프닝일 뿐이다. 그런데 왜 이리 우울한 걸까? 단순히, 흐린 날씨 탓인 걸까?

안개는 걷혀 가고 있었다.

비야프랑카를 지나면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이 산길에는 그늘이 거의 없는데, 정확히 말하면 나무그늘이 사방천지지만 무성한 덤불 탓에 접근이 어렵다. 언제 흐렸냐는 듯 다시 쨍쨍해진 하늘이 원망스러워진다.

<한낮에 지나는 산길. 나무그늘은 그림의 떡이다.>

<노천카페. 서양에도 장승이 있나? 밤에 지나가면 무서울 듯!>

한 동양인 남자가 얼마 없는 그늘을 기어이 찾아내 햇볕을 피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일본인일까? 중국인일까? 한국인일까?

요한, 한국인이다. 천주교 신자냐고 물었더니, 종교와는 관련 없는 이름이라고. 굉장히 동안이었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 4살 많은 형이었다! 요한 형님!

배낭만 해도 무척 크고 무거워 보이는데, 앞에 작은 가방 하나를 더 달고 있다. 알고 보니 사진을 업으로 하시는 분이다. 까미노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고 계시다고. 가방 두 개를 합치면 21kg인데, 그 무게로 인해 걸음이 더디다고 하셨다. 호기심에 매어 보니 숨이 턱 막힌다.

같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바로 다음 마을에 한국인 몇 명이 더 있을 거란다. 오늘의 원래 목적지였던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다. 그런데… 이런. 알베르게가 만실이다. 이 마을에는 여기 알베르게 딱 하나라고 들었는데?! 수용인원이 100명이 넘는다고 방심했던 게 화근이었다.

다음 마을인 ‘아헤스(Ages)’까지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맥이 빠져 멍하니 앉아있던 와중에, 역시 숙소를 놓친 한국인들을 만났다.

커플룩을 맞추고 걷는 윤유 형과 선영 씨. 100m 밖에서 봐도 이 둘은 커플이다. 둘 다 배가 몹시 고파 보여서, 아까 슈퍼마켓에서 사고 남은 음식들을 드렸다. 하몽은 그냥 먹기엔 다소 질기고 비렸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하지 않던가! 맛있게,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아헤스 가는 길. 막대기를 짚으니 제법 순례자 같다!>

아헤스까지는 약 3km 정도라 한 시간도 안 되어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 45km를 걸었음에도, 체크인을 하니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다. 얼마나 속도를 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피곤함은 생각보다 덜했으나, 다리가 너덜너덜했다. 양쪽 새끼발가락의 통증도 심상치 않다. 샤워를 마친 후 살펴보니 새끼발가락 전체가 커다란 물집으로 뒤덮여 있었다.

흔히 발가락에 잡힌 물집은 실바늘로 뚫어서 물을 빼내는 방식으로 치료하는데, 나는 그냥 손톱깎이로(…) 물집을 자른다. 농구할 때부터 해 오던 방식이다. 라이터로 간단히 소독을 한 후에, 물집에 손톱깎이로 구멍을 낸다. 이때 물집 속의 체액을 쭉 빼내는데, 악취가 없으면 다행이다. 있으면 어쩔 수 없고.

물이 다 빠져 나오고 겉가죽만 남으면, 죽은 살의 경계를 따라 손톱깎이로 깔끔히 잘라 낸다. 그럼 채 완성되지 않은 분홍빛 속살이 드러난다. 거기에 약을 바르면 끝!!

숙소 안에서 해프닝이 발생했다.

침대 옆에서 요가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하던 이탈리안 커플. 굉장히 선남선녀다. 그런데 스킨십의 농도가 짙어지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야릇한 소리가 방 안에 스민다. 열 명이 넘는 사람이 버젓이 있는데… 참으로 대담하다. 조용히 자리를 피해주었다.

알베르게에 한국인이 한 명 더 있었다. 엄청난 파마머리의 성훈 형. 오랜 수험기간 끝에 소방공무원에 합격하고, 임용 전에 까미노를 찾았다고 한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기도 하단다. 취업에 성공하고 이곳을 찾으면 어떤 기분일까? 얼마나 홀가분할까? 물론 거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을 것이며, 그 마음속에는 또 다른 고민들이 자리 잡고 있겠지만,

나도 떳떳한 직장을 갖고, 내가 번 돈으로 언젠가 다시 이 길을 걸어야지. 반드시!

<아헤스의 저녁. 왼쪽부터 성훈, 요한, 윤유, 선영, 그리고 나>

동행과 헤어진 지 하루 만에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다. 어느덧 5명이다.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이런 저런 얘기가 흘러나온다.

“저는 이번에 취업했으니까 제가 다 쏴도 되요. 마음껏 드세요.”

가난한 대학생 순례자는 거절을 모른다. 성훈 형님 살짝 당황.

“부르고스 지나면 캠핑 할 수 있는 곳이 있대요!”

“해요! 이 때 아니면 언제 해요. 이렇게 다 같이 있을 때 해야지.”

“우리 텐트는 어떡해? 사야 되나?“

“혹시 모르니까, 알베에서 나눠주는 침대 시트 다 모아놔 봐요. 그거라도 덮고 자게.”

“콜! 근데 어디서 하지? 가이드북 좀 찾아볼게요.”

“일단 부르고스에서 너무 멀면 안 되는데. 먹을 거 살 곳도 있어야지.“

“근데 또 큰 마을 근처면 안 되요. 도시 근처면 별이 안 보이잖아요.“

“San…Bol? 여기 괜찮을 거 같은데요?”

 

-우연과 즉흥이 무수히 교차하던 그 어딘가,

운명의 씨실과 날실은 우리도 모르게 짜여지고 있었나 보다.-

 

「어느 정도」

2017.08.08.화, 순례 D + 9

아헤스 – 부르고스 

23.7km / 291.8km

나는 매일 출발하기 전에 가방의 짐을 체크하는 시간을 가진다. 내 배낭의 무게는 약 5.5kg.

엄청 가벼운 편임에도 불구하고 버리고 싶은 욕심(???)은 끝이 없다. 이곳은 ‘견물생심(見物生心)’보다 ‘견물기심(絹物棄心)’이 더 크게 작용하는 세상이다.

결국 등산양말 2켤레, 무릎 보호대와 작별했다. 100g 정도나 덜었겠냐마는, 줄어든 무게보다 더 크게 와 닿는 것은 ‘버리는 것’ 그 자체이다. 이미 한국에서부터 간추리고 또 간추려서 가져온 짐. 더 버릴 것이 없을 것만 같고, 그만큼 나는 이것들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걷다 보면, 이 중에서도 사용하는 것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나뉜다. 이 때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이 까미노에서 무거운 짐을 덜어냄으로써, 욕심을 버리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랬다.

오늘은 시작부터 무척 설렌다. 프랑스길의 3분의 1 지점, 첫 거대도시인 ‘부르고스(Burgos)’에 도착하는 날이기 때문!!

거기다 부르고스까지는 23km밖에 되지 않는다. 천천히 가도 5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다.

아헤스의 다음 마을인 ‘아타푸에르카(Atapuerca)’까지는 도로를 따라 걷는다. 마을 초입에 커다란 원주민이 그려진 표지판이 있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원주민이 살던 곳인가?

아타푸에르카를 지나면 완만한 경사의 돌산을 오르게 된다. 피레네에서 올랐던 산이나, 나헤라에서 올랐던 둔덕과는 완연히 다른 느낌의 산이다. 황량하다.

<첫 메세따 지형, 우리를 맞이하는 ‘아타푸에르카 십자가(Cruz de Atapuerca)’>

산이 평평하다. 평지보다도 더 평평하다. ‘어떻게 이렇게 평평하지? 누가 잘라놨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탄하다.

메세따 지형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황량하다는 느낌을 대번에 받을 수 있는 곳. 텅 빈 공터에 홀로 서 있는 십자가가 그 공허함의 깊이를 더한다.

7시에 아헤스를 나선 후, 7시 반에 아타푸에르카를 지나고, 8시에 이 산의 정상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정상에서 부르고스가 보인다. 저~ 멀리, 누가 봐도 부르고스라고밖에 볼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의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이날은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가운데, 오직 부르고스 위에만 구멍이 뻥 뚫려 빛이 내리고 있었다. 마치 하늘로부터 빛이 내리는 성전 같기도 했다. 출발한지 고작 1시간 만에 목적지가 눈에 보이다니. 순간 마음이 턱 놓인다.

“에이, 벌써 도착이야? 오늘 시시하겠네!”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 오른 수많은 순례자들이 범하는 착각이라고 한다. 눈에 보인다고 다 가까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건만!

<우측 저 멀리, 햇볕이 내리는 거대한 도시가 부르고스다.>

<독특한 알베르게 광고>

메세따를 내려오면 작은 마을이나 Bar를 산발적으로 지나치게 된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또띠야(Tortilla)’ 2개. 4.5유로.

또띠야는 우리나라의 파전?이 굉장히 두꺼워진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속재료가 뭔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계란, 감자, 해물, 고기, 생선 등이 잘게 다져서 들어가 있는 듯. 굉장히 고열량이고, 가격도 저렴해서 까미노 내내 즐겨 먹었다.

이틀 연속 적게 잔 탓인지, 또띠야를 다 먹자마자 엄청난 피로가 몰려온다. 부르고스까지 가깝기도 하니 엎드려 한숨 자기로 했다. 식사 직후에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엎드린 거라 그리 개운하지는 못했지만, 눈을 감고 있으니 그럭저럭 피로가 가셨다.

가게 밖으로 나서니, 요한 형이 야외 테라스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처음 보는 동양인 셋과 함께다. 한국에서 온 현성 형! 중국에서 온 Bo! 역시 중국에서 온 Xiaoxuan(샤오쉬엔)!

현성 형은 키가 훤칠하고 잘생겼는데, 사업이 잘 안되자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왔다. 이미 육로로 1만 km를 넘게 달려오신 분이라 그런지, 눈빛에서부터 여행 내공이 가득 뿜어져 나온다.

Bo는 중국에서 ‘핵’을 전공한다. 핵을 전공하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부디 핵폭탄이 아니라 핵발전이기를…

샤오쉬엔은 학생인 것 같은데, 형광색 바람막이를 입고 있어 눈이 부시다. 패션 감각이 범상치 않다. 도시를 지날 때마다 쇼핑을 한다고 하는데, 부유한 집안 출신인 것 같다.

재중 형님 일행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인연들이 물밀듯이 밀어닥친다. 모두 까미노 후반부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를 끌어주게 되는,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신이 나서 부르고스로 간다. 일행도 늘어났고, 우리에겐 거칠 것이 없다. 대도시에 들어간다는 것이 그만큼 설레는 일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보기 좋은 두 사람>

<가지각색, 숨겨진 표식들>

부르고스로 가는 길에는 커다란 해바라기 밭도 지난다. 이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

조금 지나면 부르고스 공항 옆길을 걷게 되고, 철길 위를 건너 도시 느낌 물씬 나는 길로 들어선다. 마치 부르고스에 도착한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다.

…부르고스로 진입하는 그 길이 문제다.

양쪽에 공장이 가득하고, 차가 쌩쌩 다니는 6차선 도로 옆을 무려 2시간이나 걸어야 한다. 대중교통을 타고 싶은 충동이 머리끝까지 타고 올라왔다.

물집은 더 심해져, 걸음을 뗄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새끼발가락에 하중을 주지 않고 걸으려니 걸음새가 우스꽝스러워지고 더 느려졌다. 엎친 데 덮친 격, 볼일마저 급했다. 아까 산 정상에서 본 것은 부르고스가 아니고 무엇이었단 말입니까!!ㅠ_ㅠ

<부르고스 시내. 아파트 외벽에 거대한 까미노 문양이 칠해져 있다.>

<공립 알베르게 대기줄. 한참 기다려야 했다.>

알베르게 대기줄도 길어, 체크인을 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줄을 기다리는 동안 누리 형, 혁 형, 카메론, 시몬 등 그간 보지 못했던 친구들과도 재회했다. 확실히 대도시이니만큼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느낌이랄까.

짐도 풀고. 샤워랑 빨래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에서는 참 사람이 단순해진다. 나쁜 의미는 아니다. 그저 아픈 곳 없이 잘 걷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곳이 까미노다.

시내 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특히 성당! 이미 도착해 있었던 성훈 형, 요한 형과 함께 시내 구경을 나섰다.

<부르고스 대성당>

부르고스 대성당은 규모가 크고 장엄한데, 조각의 섬세함까지 갖추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그 유명한 ‘가우디 대성당(성가족 성당, Sagrada Familia)’ 에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거기에 비하면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거긴 거의 외계 건축물 수준이니.

이곳은 성가족 성당, 그리고 세비야 대성당과 함께 스페인의 3대 성당 중 하나이기도 하다.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유료라고 하여 결국 포기했다. 당시 6유로 정도의 입장료는 내게 꽤 부담스러운 지출이었다.

대성당을 중심으로 사방에 넓은 광장이 형성되어 있다. 햇볕이 내리쬐는 대낮인데도, 파라솔도 없이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피부에 민감한 우리 한국인은 결코 파라솔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심혈을 기울여 자리를 잡고,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말로만 듣던 부르고스. 어느덧 3분의 1이다. 내일부터는 광활한 메세따 평원이 시작되겠지.

요한 형이 저녁식사를 제안했지만, 이미 반쯤 잠에 취해있는 상태였다. 대낮이나 다름없는 오후 6시 반. 결국 비틀비틀 침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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