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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④ – 문원기

「회의감」 

2017.08.05.토, 순례 D + 6

로그로뇨 – 나헤라

29.4km / 195.1km

어제 밤. 쌍코피가 터지고서는 내리 10시간을 잤다.

일어나서도 잠시 정신을 못 차리고, 텅 빈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워낙 친숙한 길이기에 쉽게 생각하지만, 이러나저러나 태어나서 하루에 3~40km를 걸어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머리를 감아도 어차피 땀으로 흠뻑 젖을 것이기에,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근처 빵집에서 2유로짜리 식빵 한 덩어리를 샀다. 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걸어가며 끼니를 급히 때우곤 했는데, 이로 인해 순례 후반부에 크게 고생하게 된다.

시 외곽에 이르러 가로수길과 연못, 쉼터 등이 조성된 공원으로 접어들었다. 도시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침산책 중인 가운데, 자전거를 탄 이들은 순식간에 나를 앞서 간다.

자전거 행렬엔 꼬마들도 심심찮게 섞여있다. 어른들에 뒤쳐지지 않으려 끙끙대며 페달을 밟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가상했다.

<온 가족이 자전거와 함께!>

여기서 느낀 점 하나는 바로 사람들의 운동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다. 어느 마을이든 아침부터 조깅을 하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고, 자전거 하이킹이나 수영 실력도 대개 수준급이다. 물론 외형적으로도 유럽인들의 체격이 건장한 편이긴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들에게는 운동이 생활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친숙한 삶의 일부랄까?

그래서인지, 이들과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위축되곤 했다. 길쭉길쭉하고 지치지 않는 유럽인들을 보며 열등감에 빠지거나, 반대로 비뚤어진 승부욕이 솟아오르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몸에 맞는 속도를 지켜야 하는 법이다. 정도를 넘어 ‘더 빨리’를 외치다 보면, 결국 탈이 나서 오히려 더 늦어지기 마련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속도전을 펼치면 정작 중요한 것을 생각할 시간을 잃게 된다. 스스로가 무엇을 바라고 이 길 위에 섰던가를 항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난 잘 그러지 못했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나헤라(Najera)’. 나헤라 인근 지역은 그야말로 포도밭 천지인데, 아마 프랑스길을 통틀어 가장 많을 것이다, 실제로 가이드북에서도 언급되는 내용이다.

솔직히 고백컨데… 종종 따먹으면서 다녔다. 이에 관해선 복잡한 심정이다. 분명 옳은 행동은 아니지만, 막상 나 같은 순례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어서다.

주인 분들도 본체만체 해 버리시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져버린 걸까? 먼 옛날의 순례자들은 어땠을까?

<이런 포도밭이 부지기수로 널려 있으니, 두서 알 따먹고 싶을 수밖에…>

포도를 보며 들었던 생각이 그것만은 아니다. 새삼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에 울컥하기도 했다.

순례 초기에는 초록빛으로 설익은 포도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으나, 후반부에 지나치는 포도밭들은 이미 전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느끼는 감동은, 의외로 사소한 것에 대한 관찰에서 비롯될 때가 많은 것 같다.

오늘의 중간지점인 ‘나바레떼(Navarette)’. 이곳의 성당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세계지도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그곳에 자신의 출신지를 표시해 놓을 수 있는데, 한국 사람도 꽤 된다.

<나바레떼 성당. 나의 기록을 어딘가에 남긴다는 것은 늘 설레는 일이다.>

나헤라를 몇 km 앞두고는 ‘뽀요 데 롤단(Poyo de Roldan)’이라는 곳을 지난다. ‘롤단이 던진 돌’이라는 뜻인데, 언덕에 살던 골리앗의 후손을 돌로 잡아낸 롤단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저 멀리 롤단의 언덕이 보인다.>

오전에 그렇게 피곤했음에도 몸 컨디션은 의외로 좋았나 보다. 나보다 2시간은 먼저 출발했을 동행들을 나헤라 도착 전에 모두 따라잡았다. 30km를 5시간 만에 주파한 것!

나헤라는 그렇게 인상적인 곳은 아니지만,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은 꽤나 아름답다. 강 양쪽으로 광장이 형성되어 있어, 마을 주민들과 일찍 도착한 순례자들이 낮술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원래 다리 건너의 공립 알베르게에 묵을 계획이었다. ‘도나티보(donativo, 기부제)’로 운영된다는 점이 매력적이기도 했고!!

그런데 숙박 리뷰를 훑어보던 중, 그 곳에서 며칠 전에 ‘배드버그’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숙소를 마을 초입부의 사립 알베르게로 고쳐 잡았다.

체크인 후 내리 쉬었는데도 고작 오후 5시. 일찍 도착해 맞아들이는 여유가 조금은 어색하다.

느지막이 장을 봐오고, 곧이어 한식대첩 시즌 2가 벌어졌다. 진우 어머님께서 소매를 걷어붙이시더니, 백숙을 뚝딱 만들어 내셨다.

주연누나도 요리에 가세하자 남자들은 딱히 할 게 없다. 미안한 마음에 마늘과 파를 다졌다.

스페인에서 저녁을 먹기엔 일러도 한참 이른 시각. 자연스레 테이블 전체가 우리의 만찬장이 되었다. 백숙 일부를 덜어 닭죽으로 만들고, 거기에 고추장을 넣으니 동양식 빠에야가 되었다.

먹고 또 먹어도 너무 많이 남아서, 내일을 위해 남겨두었다. 아침 걱정은 덜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엔 오는 길에 봐 두었던 농구장으로 향했지만, 애석하게도 농구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스페인은 축구의 나라라는 걸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래, 메시와 호날두가 자기 나라에서 뛰는데 인기가 많을 수밖에.. 실제로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인기는 상상초월이다.

결국 내가 꼬마들 틈에 섞여 축구를 하게 되었다. 다들 겨우 열 살 남짓이나 되었을까. 그러나 나는 ‘축구 최강국은 꼬마들도 뭔가 다를거야’라며 괜히 주눅이 들었다. 계속해서 소심하게 플레이를 하다 보니, 한 꼬마가 다가와서 ‘Fxxx, man’ 이러는 게 아닌가?  순간 너무나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져 버렸다. 요 귀여운 녀석!!

숙소로 돌아왔더니, 우리 외에도 다른 한국인들이 있었다. 태병이와 정란누나다. 둘 다 마드리드에 살며 학업과 생업을 하고 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까미노를 걷는다고.

태병이는 지금은 스페인에서 건축학을 공부하지만, 알고 보니 원래 내가 다니는 대학교의 1년 후배(!!!)였다. 이야. 세상 참 좁구나.

자신의 본래 대학과 전공을 과감히 놓고, 더 좋아하는 것을 찾아 머나먼 타지로 떠난 그 용기가 정말 멋있었다.

“국어국문학은 나의 소중한 친구지만, 건축학은 제가 사랑하는 연인과 같아요.”

자퇴신청서를 내며 교수님께 드린 말이라고 한다. 멋있지 않은가!

그러나 태병이도, 정란누나도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다. 돌이켜 보면 나는 풍경을 찍는 데는 적극적이었지만, 내가 만난 이들과의 기억을 남기려는 노력은 소홀했다.

왜 그랬을까, 사실 까미노를 걷는 내내 나를 지배했던 가장 큰 생각 중 하나는 ‘이 길은 혼자 걸어야 하는 길일까? 같이 걸어야 하는 길일까?’ 라는 고민이었다. 물론 길 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욕심과 기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과 자발적인 고독에 좀 더 무게추가 실려 있지 않았나 싶다.

정답이 있을까? 한 달, 800km 라는 긴 여행은 그 길을 걷는 이에게 생각보다 훨씬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혼자 걷기에도, 인연을 만나기에도, 풍경에 흠뻑 빠지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어느 하나만 취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시간이기에, 균형을 잡는 것이 최선이리라.

그러나 당시 내 마음은 이미 한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동행에 회의감이 들었다. 혼자 걷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졌던 것이다.

 

「현재를 위한 용기」  

2017.08.06.일, 순례 D + 7

나헤라 – 그라뇽

28.3km / 223.4km

양쪽 새끼발가락이 아프다. 로스 알고스를 향해 46km를 걷던 날 두 개의 물집이 잡혔다. 1~2시간마다 신발을 벗어 발을 말려줘야 하는데, 시간을 아끼려고 계속 걸었었다.

물집이야 한국에서 농구할 때 매일같이 잡히던 것이라, 그러려니 참아가면서 걷기로 했다.

어제 먹다 남은 닭죽을 마저 끓이고, 파스타에 도전했다. 며칠 전 카레가루와 라면스프에 버무린 엉터리가 아니라, 정식으로 시도해 본 것이다.

어제 태병이에게 요리법을 잠깐 배운 게 계기가 됐다. 소금은 언제 넣고, 올리브는 얼마만큼 넣고… 알려준 대로 했더니 정말 썩 괜찮은 파스타가 탄생했다!

닭죽에 파스타까지. 아침을 배 터지듯 먹고 길을 나섰다. 많이 먹어 두면 점심에 들어갈 돈까지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출발시간은 7시. 해가 막 떠오를락 말락 하는 시간이다. 그 순간의 오묘한 분위기가 있다.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상태.

순례를 하며 볼 것이란 사실 땅의 풍경,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하늘 정도가 모두이기 때문에,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늘에 감탄하는 것도 하나의 기쁨이다. 구름이 드리우면 경치가 가려지는 것이 슬프긴 하지만, 막상 몸은 즐겁다.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할 수 있기 때문! 이날도 아침엔 구름이 무척 많이 끼어 있었다.

<구름과 하늘의 경계>

나헤라를 벗어나는 길은 넓은 평야지대다. 중간중간 구릉을 지나긴 하지만 경사가 거의 없고, 저~ 멀리 걸어가는 사람도 다 볼 수 있다.

이는 ‘메세따(meseta)’ 지방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메세따는 ‘책상’을 뜻하는 ‘mesa’에서 파생되었는데, 해발 6~700m에 형성되는 마치 책상처럼 평탄한 지형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의 70%가 산지인 것에 반해, 스페인은 이 메세따 지형이 5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 자연스레 프랑스길 역시 상당한 넓이의 메세따를 지나게 된다.

<미소가 아름다운 길 위의 음악가들>

길을 가다 보니 웬 음악소리가 들린다. 아름다운 노래, 그리고 우쿠렐레 소리다.

히피스러운 복장의 폴란드 여인 두 명이 길을 걷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지 옅은 미소를 짓더니, 이내 본래의 가락으로 빠져들어 갔다. 길 위의 음악이라니…!

쾌활하지도, 그렇다고 침울하지도 않은 독특한 멜로디. 황홀한 순간이었다.

평야에선 그늘을 찾기가 힘들다보니, 자연스레 나무그늘 아래가 집결지가 되었다. 다 같이 진우 어머님께서 싸 주신 샌드위치를 꺼내들었다. 그런데 앉아있던 나무둥치에 벌집이 있었다.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벌들!!

심지어 샌드위치 위에 내려앉자, 결국 버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진우 어머님께 죄송하다.

나헤라의 평원도 끝나가는 듯, 어느덧 완만한 오르막을 타기 시작했다. 얼마간 걷다 뒤를 돌아보니… 넓다. 정말 넓다.

내가 걸어온 길은 순간순간마다 쌓이며 그 무게감을 더해가고 있다.

<광활한 나헤라의 평원>

경치에 취한 날은 심오한 무언가를 느낄 새가 없다. 눈으로 마약이라도 빨아들이는 기분이다.

물론 세상에는 까미노보다 훨씬 더 장엄하고 수려한 풍경도 많겠지만, 그렇다고 이 길이 결코 평범하진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난 이곳에서 심심찮게 눈이 뒤집어지곤 했다.

<시루에냐 입구>

오르막길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시루에냐(Ciruena)’. 이 작은 마을 너머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가장 상징적인 풍경이 깃들어 있다.

그저 평범한 시골마을이겠거니 하며 마을을 벗어나던 나는, 야트막한 언덕 너머로 펼쳐진 광경에 그만 소름이 돋았다.

“와아…….설마 여기…!!”

드넓은 초원 한가운데 나 있는 좁은 길, 그 사이를 걸어가는 순례자들.

이 길을 준비하며 숱하게 찾아보고 동경해오던 풍경. 인터넷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여기 있었구나…!

저 멀리, 앞서가는 사람들은 점보다도 작아져 가고 있었다. 여간 광활한 게 아닌 것이다.

게다가 보통 광활함은 황량함과 맞닿아 있기 마련인데, 이곳은 오히려 풍요로운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적당히 굴곡진 지형 위로 떠있는 큼지막한 뭉게구름 또한 부드러움을 더했다.

<시루에냐 평원. 사진으로는 그 규모감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아쉽다.>

시루에냐 마을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우리 집 옆에 이런 곳이 있었다면 하루에 몇 번 씩이라도 찾아갔을 텐데. ‘우리 마을에 이런 곳 있다’라며 몇날 며칠이고 자랑했을 텐데.

그러나 계속 멈춰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천천히, 나 역시 풍경 속의 작은 점이 되어 갔다. 아쉬움이 발걸음을 너무나 무겁게 했다.

평원을 벗어나면 곧 내리막길에 접어든다. ‘산토 도밍고 데 깔사다(Santo domingo de Calzada)’로 향하는 길이다.

<산토 도밍고로 향하는 내리막길. 깔맞춤한 커플이 사이좋게!>

빨간 모자를 맞춰 쓴 커플이 걷고 있다. 실제로 이 길에서 세계의 다양한 커플들을 만났다. 나도 여자친구랑 함께 이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혹은, 마치 영화처럼 길 위에서 인연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산토 도밍고에 미리 도착해 쉬고 있던 태병이와 정란누나를 만났다. 누나가 주는 술을 한 잔 받아마셨는데, 맥주에서 자몽 맛이 강하게 느껴진다. 여기도 과일맥주가 트렌드인가??

굳이 이곳을 지나 ‘그라뇽(Granon)’까지 가기로 한 건 재중 형님의 제안 때문이다.

“거기 도나티보 알베르게가 있거든. 매일 파티도 하고 좋아. 가자!”

이 말에 우리 일행 6명과 태병이, 정란누나까지 8명이 모조리 설득되어버렸다.

산토 도밍고와 그라뇽의 중간지점에는 커다란 철 십자가가 있다. 그다지 놀라울 건 아닌데,  까미노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길 어귀에 서 있는 십자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의미, 혹은 이 길을 걷다가 죽음을 맞이한 순례자들을 기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십자가 주변에는 늘 다양한 글귀, 꽃, 사진, 돌멩이 등이 여기저기 얽혀 있다.

십자가에서 한국인 한분을 더 만났다. 만수 형님으로, 엄청 키도 크고 건장하신 분이다. 역시 그라뇽에서 묵으신다는데… 거기, 재밌기로 소문난 덴가 보구만??

그라뇽은 성당과 시청을 중심으로, 언덕 위에 형성된 작은 마을이다. 2016년 기준으로 인구가 고작 275명이라는데, 분명히 ‘시청’이란다… 와우.

이곳 알베르게는 기부제라서 양심껏 돈을 내면 되는데, 그 ‘양심’에 어울리는 액수를 결정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나는 숙박+식사비를 합쳐 10유로를 냈다.

오늘의 순례자들이 기부한 돈으로, 내일의 순례자들이 먹게 될 식사의 양과 질이 결정된다. ‘기부’라는 단어의 무거운 의미를 새삼 실감했다.

바닥에는 군대 내무반을 연상케 하는 얇은 매트가 깔려 있다. 나는 상관없었지만, 혹시 잠자리를 가리시는 분들께는 다른 숙소를 권한다. 물론, 이곳의 매력은 다른 데 있지만…!

빨래와 샤워, 짐정리 등을 하고는 로비로 가는데, 음악소리가 들린다.

높은 천장을 가진 로비. 다락방마냥 지붕이 비스듬히 경사져 있고, 그 옆의 커다란 벽난로는 그대로 굴뚝까지 이어진다. 한겨울에 이곳을 찾는다면 제법 낭만적일 것 같다.

한켠에서 순례자들이 우쿠렐레를 퉁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중앙에 피아노도 있었으나, 조율 상태가 엉망이라 인테리어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한 곡을 억지로 연주하고는 건반을 덮어야 했다.

아쉬움도 잠시, 여럿이 둘러앉아 노래를 불렀다. 젊은 이탈리아 커플은 우쿠렐레를 뜯고, 흥이 많은 오스피딸레로도 기타를 들고 합류했다. 연인과 음악이 함께하는 까미노라니, 부럽다!

<그라뇽의 작은 음악가들! ‘Hey jude’를 연주하고 있다.>

몸 이곳저곳이 쑤셔 방으로 돌아왔다. 화상 때문이다. 나는 주로 민소매티를 입고 다녔는데, 그 때문인지 어깨 쪽 피부가 부글부글 벗겨져 내리고 있었다.

아픈 몸을 보고 나니 더 졸음이 몰려와, 잠시 눈을 감았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로비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눈을 떴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음악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다들 오늘 처음 만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흥겨운 분위기였다. 이탈리아에서 온 마태오가 분위기를 주도했는데, 이 친구 무대스킬이 장난 아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뮤지컬 배우였다.)

<흥겨운 음악회! 마태오가 힘차게 빨래 바구니를 두들기고 있다.>

영어와 스페인어가 부족하다는 점이 너무! 너무! 아쉬웠다. 역시 해외에 나가 봐야 언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이들의 감정을 나도 느끼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 표현의 장벽이 쳐지는 느낌이다. 노랫말의 의미까지는 모르더라도, 따라 부를 수만 있었더라도 좋았을 텐데.

파티가 끝나자 곧바로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빵, 샐러드, 수프, 과일 등의 소박한 메뉴다.

<저녁식사를 위해 모인 순례자들>

오스피딸레로와 순례자들이 요리도, 식사도, 뒷정리도 같이 하는 게 이 알베르게의 특징이다.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돕지 못한 나는, 미안한 마음에 설거지를 도맡았다.

<매일 둥그렇게 둘러 앉아 촛불식을 나누는 공간이다.>

저녁 식사 후에는 성당으로 들어가 촛불식을 가진다. 역시 이 알베르게의 특징인데, 애초에 성당 일부를 개조해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등받이 의자에 둥그렇게 앉아 차례대로 촛불을 잡는다. 조금 전 파티의 흥겨움은 이미 찾아볼 수 없다. 엄숙함만이 감도는 가운데, 촛불을 손에 쥐고 마음 속 깊은 말을 꺼내놓는 것이다.

까미노에는 왜 왔는지, 걸으면서 드는 생각은 무엇인지, 감사하고 싶은 게 있는지… 등등, 다양한 이야기로 순서가 돌고 있었다. 대부분이 영어였기에 불완전하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기회를 알아채는 것은 지혜지만, 그것을 잡는 것은 용기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까미노를 시작하며 몇 가지 다짐을 했다. 선입견을 갖지 않기로, 나를 숨기지 않기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겁내지 않기로.

그래서 내 차례가 왔을 때, ‘황금별’을 불렀다. 노래 가사 안에 내가 이곳에 온 이유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모두 담겨 있었다. 한국어로 불렀으니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동료순례자에 대한 감사. 새로운 세상에 갖는 호기심과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불안함, 크고 깊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다가올 여정에게 바치는 경이.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가슴을 콕콕 찌르고 있었지만, 노래를 마치니 조금은 후련해졌다.

음악으로 시작해 음악으로 끝나는 하루였다.

 

“길 위에는 음악과 목소리를 바람에 입혀 선사하는 이들

자연에게서 사진 한 장, 그림 한 첩 감히 담아내는 이들

사랑과 음식과 기쁨과 상처를 나누는 이들

그리고 그 모두는 각자의 두 발로 서고 걷는 순례자.”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