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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③ – 문원기

「과욕」

2017.08.03.목, 순례 D + 4

오바노스 – 로스 알고스

46km / 137.1km

작은 시골 동네, 오바노스의 아침! 오전에는 컨디션이 정말 좋았다. 7시에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해, 빠르게 어제의 본 목적지였던 푸엔떼 라 레이나를 지나쳤다.

채 여물지 않은 옥수수밭을 지나는 길. 회전하는 스프링쿨러가 천천히 물을 뿌리며, 농부의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있었다. 일부러 다가가 몸을 적시니, 흩날리는 물방울들이 아침 햇살을 만나 이따금씩 옅은 무지개를 만들어냈다.

푸엔떼 라 레이나 다음에는 산발적으로 마을이 이어진다. ‘마네루(Maneru)’를 지나고, ‘시라우끼(Cirauqui)’를 지나고.. 시라우끼에서는 종엽형, 혁형, 누리형을 다시 마주쳤다. 셋 다 벌써부터 턱이 거뭇거뭇한데, 까미노가 끝날 때까지 수염을 기를 것이란다.

“원기 너 한참 앞서 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덥고 힘들고.. 그렇죠 뭐 ㅎㅎ”

달고 신게 몹시 땡겼다. 자두 하나를 사서 베어 물으니 그 시큼함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지만, 동시에 온몸이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시라우끼 진입로. 야트막한 언덕에 솟아있는 마을이다.>

<시라우끼에서 다시 만난 종엽형, 누리형, 혁형.>

오늘의 중간지점인 ‘에스떼야(Estella)’로 향하는 길, 도로변에 크랜베리 나무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누가 봐도 야생이기에 달리 주인은 없어 보이고.. 다른 순례자에게 물어본다.

“Is it eatable?? No poison??(먹어도 되나요? 독 없나요?)”

먹어도 된단다. 씻기만 하면. 감사합니다!!

그러고 씻지 않고 그냥 먹었다. 죄송해요, 씻을 물이 없는걸… 죽어도 내가 죽지 뭐!!!

햇볕이 몸에 해롭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덥다는 말만으로는 그 무더움이 표현이 안 될 때가 있다. 이 날이 그랬다. 아직 걸어야 할 길이 25km도 넘게 남아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 무더위 속에서 걸음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웃긴 얘기지만 출국 직전, 나름의 생존기술 연습이 될까 하여 ‘베어 그릴스’의 ‘Man vs Wild’ 를 정주행하고 왔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그가 한 행동은, 옷을 오줌에 적셔서 입기(…)

물론 절대 그럴 일은 없다. 

까미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순례길이다 보니,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1~2개씩의 샘물(fuente)을 가지고 있다. 순례자를 위한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최소 5개 이상의 수도꼭지를 매일 마주하게 될 테니, 물 걱정은 하지 말자.

옷, 모자, 팔토시 등 물이 스밀 수 있는 모든 소지품을 물에 흠뻑 적셔서 입으면, 영상 40도의 작열하는 더위 아래, 한 시간 정도나마 추위에 떨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더위를 이겨내며 에스떼야를 벗어나면, 까미노에서 단 한 곳 밖에 없다는 유명한 샘물이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바로 이라체 수도원의 포도주샘(Vodegas Irache)!!

이곳의 수도꼭지에서는 포도주가 콸콸 쏟아져 나온다. 바로 옆에 이라체 소유의 와인공장이 있는데, 과거 순례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제공하던 풍습이 전해져 내려온 것이라고.

<이라체 포도주샘 앞에서. 신났다!!>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해 줄 포도주가 있다는 사실이 기쁜 나머지, 한 병 가까이를 들이켜 버렸다. 먼저 와 있던 한 미국 청년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누가 봐도 거나하게 취했는데 기어코 아니라며, 타고 온 자전거 운전대를 잡는다. 이거 이거 음주운전 아닌가…

다시 걸어 나가려 하지만, 한껏 올라온 술기운 탓에 발이 풀려버렸다. 결국 30분가량을 퍼져 있다가, 중간 목적지인 ‘몬야딘(VIllamajor de Monjardin)’ 언덕으로 힘겹게 출발했다.

평야 한가운데 야트막하게 솟은 언덕, 몬야딘은 그곳에 위치한 예쁜 마을이다. 

‘이 곳에 하루쯤 묵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마을 초입의 성당에 들어갔다. 창문이 하나도 없던 내부는 칠흑같이 어두워, 암순응을 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예배용 의자는 돌을 깎아 만들었는데, 그래서인지 강한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바깥의 열기와는 대조적이었다. 가만히 앉아 10여 분간 묵상을 했다. 종교적인 것은 아니었다. 군대에서 2년간 성당을 다니며 세례도 받았지만, 전역과 동시에 발길을 끊은 탓이다.

까미노 중에는 다양한 성당을 볼 기회가 많다 스페인의 국교가 가톨릭이기에 성당이 없는 마을을 찾기 힘들고, 자연스레 마을 중심의 가장 규모 있고 아름다운 건물 역시 성당이 되는 것이다. 나는 게을리 다닌 편인데도, 20여 곳은 넘게 들어가 보았던 것 같다.

묵상을 마치고 나오는데 동양인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 앞에는 콜택시가 와 있었다. 한국인인지 확신이 안서 말 걸기를 망설이니, 그 분께서 먼저 말을 걸어오신다.

“같이 타고 갈래요? 그 앞에 걸어가려면 힘들텐데.”

“… 아니요 전 그냥 걸어갈게요.”

겸손하게 거절의 말씀을 드렸다. 까미노에 서면서 다짐한 하나의 목표. “절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짐을 맡기지 않고, 내 두 다리와 어깨로 모든 길을 걷겠다” 때문이다.

대중교통의 유혹이 심각했던 적이 몇 번 있었지만, 5kg의 가벼운 배낭은 그럴 때마다 유혹을 이겨내는 큰 동력이 되었다. 나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메고도 꿋꿋이 걸어내는 수많은 동료 순례자들 역시 내게 자극이 되었다.

물론,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분들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각자의 스케줄과 사정이 있으니까. 그렇게 오늘의 최종 목적지. ‘로스 알고스(Los Arcos)’까지의 여정을 시작했다.

순례길 첫날 생장의 사무실에서 발급받는 팜플렛에는 구간별로 어떤 마을이 있는지, 고도는 어떠한지를 나타내 주는 그래프가 그려져 있다.

몬야딘에서 로스알고스까지는 쭉 완만한 내리막 내지 평지였다. 난 많이 방심하고 있었다. 고작 1주일도 걷지 않았으면서, 까미노에 통달하기라도 한 듯 행동했던 것이다.

“쉽네~~ 가자! 예상 시간 두 시간~”

<로스알고스로 향하는 길.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12.4km의 구간 동안 단 한 군데의 그늘도, 수돗가도, 음식점도 찾아볼 수 없다. 과장이 아니다. 사람이 가꿔온 밭이 사방 천지건만. 마을 주민조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8월 초의 태양빛은 영상 40도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한국에선 곧 해가 저물 시간이건만, 스페인의 밤은 그보다 한참 늦은 10시에 찾아온다. 방심했던 나는 물도 500ml짜리 통에 절반밖에 채워오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뚜껑을 잘못 닫아 적잖이 새어나가 버렸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쉬고 싶었으나 쉴 그늘이 전혀 없고, 땡볕 아래 쉬는 건 걷는 것만도 못했다. 나보다 훨씬 뒤에 있던 자전거 순례객 몇이 모래바람을 날리며 지나쳐 갔다. 허파에 모래를 잔뜩 들이키며 화답했다.

“부엔…까미ㄴ..쿨럭!!”

<도저히 갈증을 참지 못하고 포도서리를 했다… 아직 덜 익은 상태였다.>

목이 너무 말라 어쩔 수 없이 포도서리를 했으나, 당분 탓인지 오히려 갈증이 심해졌다.

절망 속에 걷기를 한 시간, 로스 알고스까지 9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어딘가로 생각이 가 닿았다. 내 보폭이 얼마나 되지?

“네 뼘 반 정도… 90cm네.”

1만 걸음을 머릿속으로 헤아리며 걷기로 했다. 제주 올레에서도 몇 번 써먹었던 방법이다. 1000걸음에 물 한 모금씩을 내게 허락했다. 단 하나의 숫자도 빼먹지 않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걸어 나갔다. 풍경은 반복의 연속이었다. 밭. 밭. 밭. 언덕을 넘으면 또 밭. 밭. 밭.

<누군가 놓고 간 등산화에 야생화가 피어 있다.>

아까 그분이 왜 택시를 권하셨는지 알 것 같다. 그 분은 작년 여름에 이미 한 번 프랑스길을 걸으셨다고 했다.

물도, 인내심도 바닥이 나고 있었다. 9500걸음 정도 걸었을 무렵, 언덕 너머로 건물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9600, 9700… 연이어 건물들이 나타났다. 마을이다!!

정확히 1만 걸음을 걸었을 때, 내 눈 앞에 ‘Los Arcos’ 라는 붉은 표지판이 서 있었다. 기막힌 우연인건지, 아니면 보폭을 정확히 계산해 낸 스스로를 칭찬해주어야 할지.

< 로스 알고스 도착 직후 무인 휴게소에서.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 버렸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그늘과 음료수가 간절했을 순례자들을 위해, 마을 입구에는 아예 무인 휴게소가 설치돼 있었다. 콜라를 뽑아서, 마신다기 보다는 입에 들이부었다.

그러나 7시가 다 되어 도착한터라, 자칫 숙소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다음 마을까지 가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남은 힘을 짜내어 발걸음을 옮기니, 다행히 공립 알베르게에 자리가 남아 있었다.

체크인을 하는데, 아까 그 한국 분이 있는 게 아닌가! 날 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신다. 아마 진작 도착하셔서 쉬고 계셨겠지. 그렇습니다. 택시를 탔어야 했어요…ㅠㅠ

이곳엔 다른 한국인들도 많았다. 저녁식사 후 미사를 드릴 겸 외출을 나가신다기에, 피로를 무릅쓰고 따라붙었다. 광장에는 현지 주민들과 순례자들이 뒤섞여 평화로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성당에서는 마침 미사가 한창이었다. 까미노에서의 첫 미사!!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스페인 꼬마 둘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마침 내 쪽으로 튀긴 공을 잡아주었더니…. 만난 지 10초 만에, 꼬마 아가씨들은 내가 친오빠라도 되는 냥 때리고 꼬집기 시작했다. 검은머리 외국인이 신기했나보다. 그래, 올라, 그라시아스, 제발… 나 오늘 12시간 걸었다구ㅠㅠ

그래도, 분명한 건 미친 듯이 귀여웠다는 것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늦지 않게 숙소로 돌아왔다.

<로스 알고스의 귀여운 꼬마 아가씨들>

나를 포함해 한국인은 무려 7명이었다. 진우 어머님과 진우. 프랑스에서 일을 하시는 재중 형님과 철진 형님. 유럽 곳곳을 여행 중인 국일 형님. 독일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여행 중인 주연누나. 복학 후에 덜컥 까미노를 찾은 나.

한낮의 열기에 미안함을 표하듯, 저녁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빨래가 날아갈까 걱정되었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동행을 만난 설렘이 훨씬 컸다. 맥주 한 캔을 뽑아들고 지체 없이 알베르게 앞 잔디밭에 몸을 던졌다.

과욕이 낳은 힘겨웠던 하루. 그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기꺼이 겪어볼만 한 값진 경험이었다.

<왼쪽부터 나, 진우, 재중 형님, 철진 형님, 진우 어머니, 국일형, 주연누나>

 

「황금별」

2017.08.04.금, 순례 D + 5

로스 알고스 – 로그로뇨

28.6km / 165.7km

오늘의 목적지는 ‘로그로뇨(Logrono)’. 제법 규모 있는 도시이다. 사실 순례길이 지나는 곳은 도시라 할지라도 그리 크지는 않다. 관광을 목적으로 조성된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길은 신기하게도 약 100km마다 도시를 하나씩 지난다. 빰쁠로냐(700) – 로그로뇨(600) – 부르고스(500) – 까리온(400) – 레온(300) – 폰페라다(200) – 싸리아(100) – 산티아고(0). 그러나 인구는 로그로뇨 15만, 부르고스 17만, 레온 12만, 산티아고가 고작 9만 명 정도이다. 그렇기에 한국 도시의 혼잡한 분위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아무튼!! 오늘은 무척 일찍, 무려 새벽 4시 반에 일어났다. 어제 크게 데이고 나서, 앞으로는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도착하리라 마음먹었기 때문.

46km를 걷고 고작 5시간을 잤기 때문에 신체적으로는 많이 고되었지만, 정신은 말짱했다. 새벽에 걷는 까미노는 어떨지..! 심장이 힘차게 두근거리며 피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아직 대부분이 자고 있을 시각, 조심스레 향한 부엌 여기저기에 공용 식재료들이 놓여 있었다. 그 중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먹고, 생전 처음으로 파스타에 도전했다.

< 카레가루와 라면스프를 비빈 파스타(?).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면을 삶으며 부엌을 살피는데, 막상 소스로 쓸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소금, 카레가루와 라면스프를 비볐다. 스프는 한국에서 가져왔고, 나머지는 부엌에 있던 것.

나는 먹을 것에 둔감하다. 물론 맛있으면 좋지만, 그 반대급부로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 않는가? 한정된 자원이라면 입보단 눈의 즐거움, 발걸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편이다.

국내여행을 많이 다니면서도, 식도락에 치중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날계란을 빨아먹거나, 식빵에 비타민캡슐로 한 끼를 해결하기도 한다. 전투식량도 몇 번 챙겨 다닌 적이 있다(…) 음식으로는 포만감과 영양소를 채우며 건강만 해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식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역시 존중한다. 먹는 것은 분명 중요한 삶의 기쁨이니까. 내 식성 또한 미래에는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는 것이고.. 그저 중요한 것은, 어떤 것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며, 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

엉터리 파스타를 깨끗이 비워낸 후, 포만감 가득 길을 나섰다. 새벽 5시 반이었다.

<로스 알고스를 떠나다 무심코 돌아본 동쪽 하늘. 별, 여명, 그리고 순례자>

뮤지컬 ‘모짜르트’의 주제곡인 ‘황금별’이라는 노래가 있다. 세상을 불신하여 왕자를 온실 속 화초로 키우고자 했던 왕과, 그럼에도 결국 반짝이는 별을 찾아, 성벽을 넘어 세상으로 나아간 왕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북두칠성 빛나는 밤에 하늘을 봐, 황금별이 떨어질거야.

황금별을 찾길 원하면, 인생은 너에게 배움터. 그 별을 찾아 떠나야만 해.

– 황금별, Mozart –

 

마을을 떠나던 길. 발끝은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야 산티아고가 서쪽에 있으니까.

로스 알고스는 마치 사막 속 오아시스처럼, 드넓은 평야 한가운데 외롭게 자리 잡고 있다. 그곳을 벗어나는 길 역시 도시의 불빛이 비출 리 없는 시골길이다. 길을 찾는 다른 순례자들의 랜턴 불빛이 이따금씩 점멸했지만, 그마저도 내 앞뒤로 수 백m씩 떨어져 있다.

나는 일부러 랜턴을 끄고, 서쪽 하늘 한가운데 유난히 밝게 떠 있는 이름 모를 별을 보며 방향을 잡았다. 이내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들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왼쪽 하늘에는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이 지평선에 닿을 듯 낮게 누워 있어, 금방이라도 지상의 물을 길어갈 것만 같다. 뒤를 돌아보았다. 동쪽 하늘 한가운데에도 밝은 별이 하나 떠 있다. 서쪽의 별과 경쟁이라도 하는 듯…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바라던 경험 중 하나가 바로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걷기’ 아니었던가. 아예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보면서 걸었다. 별을 보기 위해서였지만, 떨어지려는 눈물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오래도록 별과 눈빛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다시 지평선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별빛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여명이었다.

처음에는 동쪽 하늘에만 미약한 주황빛이 감돌았다. 떠오르는 붉은 기운 아래, 하루를 시작한 순례자들의 검은 실루엣이 비친다. 그 위엔 여전히 밝은 별이 떠 있다.

동녘에서 머물던 빛은, 이내 서·남·북 삼방으로 퍼져 전 하늘에서 동시에 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흡사 밤과 아침이 힘을 겨루는 모양새. 밤하늘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밝아오는 아침이 기쁘면서도, 동시에 미웠다. 별들이 설 공간을 조금씩 앗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낮은 고도에 머물던 별들부터 천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동녘과 서녘의 밝은 별은 아직 어둠의 비호를 받고 있다. 유난히 밝던 두 별이었기에, 애써 버티려 하는 건지도 모른다. 흡사 쇠락해가는 왕조를 섬기는 고결한 충신 같았다.

-때론 조금 일찍 눈뜨는 수고로움만으로 별들의 천국을 맛보았다.

머리 위, 내 가얄 곳에 먼저 가 있는 별은 아직 자신을 뽐내며,

여명에 잠식당하는 새벽의 쇠락한 왕조를 섬기고 있다.

하늘 높이 유랑하던 마음, 피로감에 코피를 쏟고서야 현실을 딛는다.-

작은 깨달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곳은, 어제 그 무더위로 나를 괴롭게 했던 로스 알고스의 밭길이다. 그러나 지금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같은 길이라도 언제 걷느냐에 따라, 이렇게 걷는 이에게 다르게 다가오는 건가. 혹은 다른 길이더라도,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같은 크기의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건가.

시골길, 밤하늘의 별들, 그리고 매일같이 떠오르는 새벽의 여명.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들이 이토록 깊은 울림을 빚어낸다. 한국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경험할 수 있는 것인데, 나는 단지 머나먼 이국땅이라는 이유로, 성스러운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익숙함에 깃든 소중함을 놓치지 말라’ 라는 말이 있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어쩌면 감사할 일들로 가득할지 모른다. 고작 조금 일찍 일어나 걷는 것만으로 내게 찾아온 소중한 선물. 이런 선물을 얻기 위해서라도, 내게 주어진 날들을 열심히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꼭두새벽부터 감정의 소모가 지나쳤다. 흠뻑 전율하고, 감동하고, 울고 나니 벌써 하루가 끝난 기분이었다. 덕분에 로그로뇨까지 가는 나머지 길은, 거의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걸었던 것 같다. 어제 만난 동행들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밟아나갔다.

<새벽이 가고, 아침이 왔다.>

밤을 쫓는 아침 햇살이 그리 미웠건만, 막상 하늘에 떠오르고 보니 아름답기 그지없다.

해의 고도가 높아질수록 내 복장은 얇아진다. 심지어 일출 전에도, 조금만 걸으면 땀이 송연하게 맺힌다. 바람막이는 초반에 몸을 달구기 전, 하루 딱 30분 정도만 입었던 것 같다.

오늘도 어김없이 날씨가 좋다. 어쩜 구름 한 점 없이 이렇게 하늘이 새파랄 수가 있을까. 아름다움을 넘어서 ‘잔인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체내가 그대로 비치는 투명한 심해어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새파란 하늘 아래 그림자놀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한 한국인 모녀를 만나 잠시 같이 걸었다. 딸은 고작 11살이었는데, 내가 까미노 중에 만난 한국인 중 가장 어렸다. 빰쁠로냐에서 로그로뇨까지 약 100km 정도만 걸을 예정이라는데, 사실 그 어린 나이에 걷는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게 아닌가. 실제로 딸아이는 제법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로그로뇨 입구에서. 중앙의 한국인 아이는 고작 11살이었다.>

로그로뇨는 커다란 다리를 하나 건넘으로써 진입하게 된다. 다리 밑의 강이 참… 더러웠다. 녹조 라떼 보는 줄. 서둘러 알베르게에 입성했는데, 와우!! 족욕을 할 수 있는 분수대가!!

<족욕과 함께 마시는 시원한 맥주!>

족욕은 순례자에게 있어 정말 신의 한 수 같다. 발의 피로도 풀고, 서로 둥그렇게 모여 앉으면 자연스레 친구가 되기 마련이다. 나는 이 날 벨로루시 출신의 에크두르, 이스라엘의 시몬, 스코틀랜드의 카메론 등 다양한 친구를 사귀었다.

미국에서 온 제나는 발을 담그지 않았는데, 양 발바닥 가득 잡힌 물집 때문이었다. 물집마다 피가 고여 있어, 바늘로 하나씩 터뜨려 나가는 그녀는 얼굴은 고통으로 울상이었다.

까미노에서 친구란? 순례자들은 웬만큼 보폭이 차이나지 않는 한 대개 비슷한 속도로 걷는다. 게다가 선호하는 마을과 숙소도 겹칠 때가 많기에, 2~3일 정도는 계속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부엔 까미노’ 만으로 지나치기에는 서로가 민망하니 통성명을 하게 되고, 서로의 출신, 까미노에 온 이유, 취미 등을 나누며 친해지는 것이다.

물론 까미노에서의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 이 길을 걷는 모두가 이를 알고 있기에, 그럴 때는 짧은 작별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충분하다.

실제로 까미노에서 숱하게 마주했던 아름다운 길과 경치보다도, 정작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다. 내가 걸음이 빨라 훨씬 앞서 있다고 생각한 친구들도 후반부에 다시 마주치고는 했으니, 내게 다가온 모든 만남의 기회를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

환경이 만들어낸 독특한 인간관계의 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일정이 하루라도 차이나면 한 달 내내 못 보고 끝나지만, 그 하루가 맞으면 한 달 내내 같이 걸을 수도 있는 사이.

조금 극적인 예로, 까미노는 연예인들도 많이 걷는다. 운이 닿으면 그들과 동행하며 단어 그대로의 민낯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선 화장이 의미가 없으니…ㅎㅎ 실제로 내가 걷던 시기에도, 한국의 유명한 래퍼 M 씨가 내 1주일 앞의 코스를 걷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친구는 동행이 되고, 며칠간 같이 걸으며 숙박과 식사 등을 공유한다. 우리는 이날 삼겹살, 라면, 버섯전골 등을 해 먹었다. 진우 어머님의 요리솜씨 덕분이었으며, 또한 같이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서로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저녁 7시 경. 맥주를 마시며 일지를 쓰는데, 갑자기 쌍코피가 터지면서 현기증이 난다. 쌍코피는 태어나서 처음인데… 어제의 여파가 오늘 드러난 것이다.

갑자기 급격하게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발에 힘이 빠지고, 손이 떨린다. 내 침대가 있는 곳은 3층. 난간을 부여잡고 간신히 계단을 올랐다. 그날의 기억은 여기서 멈추었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