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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⑯ – 문원기

「여운」

2017.08.28.월.

피스떼라, 산티아고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눈을 떴지만, 여전히 짙게 드리운 안개를 보고는 포기해버렸다.

태평하게 농땡이를 피웠다. 별도의 퇴실시간도 없고, 또 여태껏 하루도 멈추지 않고 걸었지 않는가. 오늘이 사실상 첫 휴일인 셈이다!!

갑자기 젊은 여성 한 분이 들어오시더니 알베르게에 자전거를 들여다 놓으신다. 자전거로 순례를 하며 무사히 피스떼라에 도착했으니, 이제 알베르게에 기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사장님께서는 조금 당황하셨지만 이내 고맙게 받아들이셨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본다. 해질녘의 피스떼라도 멋있었지만, 한낮에는 또 어떤지 궁금하단 말이지. 그런데 걸어가기엔 생각보다 멀었단 말야… 그렇다면…!

“Can I borrow this bicycle??”

까미노 내내 나를 쌩쌩 지나쳐가던 자전거들. 이제 내가 그들의 부러움을 살 차례다!!

<아침의 피스떼라>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음에도, 등대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순례자와 관광객의 비율은 반반 정도로, 일반 관광지로도 인기가 있는 듯 했다.

북적이는 곳을 벗어나 좀 더 바다로 가까이 다가갔다. 등대를 넘어 내려가면, 이곳저곳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십자가와 돌탑이 있다.

<피스떼라의 바닷가, 십자가와 돌탑들>

몇몇 순례자들도 있다. 마치 자신이 또 다른 십자가나 돌탑이라도 되는 양, 미동도 없이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그중 한 명은 꽤 먼 곳까지 나가 있다. 배낭을 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오늘 아침에 피스떼라에 도착해 곧바로 이곳까지 걸어왔을 것이다.

<배낭의 무게도 잠시 잊은 채 생각에 잠긴 순례자>

그녀는 꽤 오랜 시간 그곳에 서 있었다. 생각에 잠겨 배낭의 무게는 잠시 잊은 듯 했다.

나도 평평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지금 내 앞에 보이는 것은 대서양이다.

여름 까미노는 ‘땅과의 사투’요, ‘물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강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 봐야 로그로뇨나 포르토마린 정도인데, 그나마도 심하게 오염돼 있지 않던가. 그런 와중에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바다를 맞닥뜨리니, 갈증이 순식간에 씻겨나가는 듯 했다.

해무가 껴 있었지만 날은 대체로 맑았다. 약한 바람이 불었으나 민소매로도 충분히 견딜 만큼 따뜻했고, 오히려 바람이 실어다주는 안개방울들이 몸을 스치는 느낌이 참 좋았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 외에는 사방이 고요하다. 순간 졸음이 몰려와, 평평한 바위를 베고 누웠다. 바위에도 온기가 서려 있다.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났을까, 피부가 조금 따끔따끔하다. 안개는 햇빛을 전혀 막지 못했다.

주위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이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가만히 돌아보았다. 시원함, 섭섭함, 기쁨, 슬픔, 고독, 환희, 성취감, 허무함… 이 정도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섭섭함‘이 가장 컸다. 분명 마지막이 예정되어 있는 여행이었음에도, 막상 그 때가 다가오자 못내 아쉬웠다. 요즘 말로 ‘현자타임’이 온 것이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지갑을 열었다. 기념품을 사기로 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이다!!

<조가비 문양의 목걸이>

자전거를 타고 마을로 복귀했다.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오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곳은 어딘고!>

피스떼라가 바닷가 마을이라 하여 아름다운 해변을 상상하고 오는 분들도 많은데, 사실 이곳은 배들이 정박하는 삭막한 항구이다. 수영이나 해수욕을 하려면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피스떼라 근처에는 숨겨진 해변이 한 곳 있다. 바로 ‘마르 데 포라(Mar de Fora)’해변이다.

사실 숨겨져 있다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피스떼라 바로 반대편이기 때문.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걸린다. 마르 데 포라는 동화 속에 나올 것만 같은 아름다운 해변이다. 인근 관광객이나 순례자들도 이곳의 존재를 거의 모르는지, 찾는 사람도 많이 없다. 지역 주민들만 주로 이용하는 듯?

실컷 물놀이를 즐기고, 땡볕에 그대로 드러누워 몸을 말렸다. 온몸에 소금기가 진동했지만, 애초에 4주간 짠 내 나는 땀범벅이었던 몸이 아닌가!!

모래만 털어내고 천연덕스럽게 산티아고 행 버스에 올랐다. 안녕, 피스떼라!!!

<세미나리오 메뇨르 알베르게. 시 외곽의 한적한 공원에 위치해있다.>

Seminario Menor는 산티아고에서 가장 큰 알베르게로, 수용인원이 거의 200명에 달한다. 왠지 수도원 느낌이 난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신학교 일부를 개조해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산티아고에서의 시간도 이젠 고작 한나절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다.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당연히 대성당이다. 아직 내부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야고보 성인을 백 허그 하기 위한 대기줄. 정말 인기가 많다.>

<야고보 성인의 뒷모습>

산티아고 대성당의 출입문은 사방으로 나 있는데, 이 중 광장과 접해있는 정문은 공사로 인해 출입이 불가하다. 양쪽 옆문은 미사를 위해 출입하는 문이며, 이때 배낭을 소지해서는 안 된다. 테러 위협이 있기 때문.

뒷문은 중앙제단 뒤쪽으로 통하는데, 여기에는 본당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성 야고보의 동상이 있다. 이 상에 백허그를 하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유명한 설화가 있다!

산티아고(Sant + Iago). 성 야고보라는 뜻이다. 이 도시의 이름이자 순례길의 이름.

먼 옛날 그가 남기고 간 발자취를, 현 시대의 수많은 이들이 훑어 내려가고 있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레온 대성당과는 느낌이 다르다. 스테인드글라스가 거의 없고, 순백의 벽과 기둥이 이를 대신한다. 중앙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금빛 제단이 있다.

미사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성당은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지역 주민과 일반 관광객도 있을 것이나, 순례자가 최소 절반 이상은 되어 보인다. 생각에 잠긴 사람, 동행들과 함께 신이 난 사람, 벌써부터 눈물을 보이는 사람 등 표정도 가지각색이다.

앉을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한 나는 기둥 하나에 기댄 채 엄숙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7시 30분, 미사가 시작되었다. 찬송가, 영성체 등 익숙한 순서였지만, 그 유명한 ‘향로 미사(botafumeiro, 보타푸메이로)’는 볼 수 없었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본당 중앙에서 바라본 모습>

대성당에서는 비정기적으로 향로미사(들은 바에 따르면, 기부금이 250유로 이상 모인 날)를 거행하는데, 사람만한 크기의 향로가 바이킹을 타듯이 본당 위를 날아다니며 향을 토해낸다.

과거에 이곳까지 걸어오느라 남루해진 순례자들을 위해, 살균용으로 향을 흔들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저 무거운 걸 천장 끝에서 끝까지 날리는 건 오로지 신부님들의 팔 힘이기 때문에… 그 정도 돈은 충분히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사 마놀로 식당>

미사가 끝나고, 마지막날인만큼 오랜만에 순례자메뉴를 먹었다. ‘까사 마놀로(Casa Manolo)’, 산티아고에서 가장 유명한 순례자 레스토랑이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루 이틀 차이야 있겠지만, 모두 나와 같은 시기에 같은 길을 걸었던 이들이다. 이들과의 인연에는 값을 매길 수 없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성당 앞 광장에서 왁자지껄한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펼쳐지는 공연!>

멕시코 풍으로 의상을 차려입은 극단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다른 여행기에서도 여러 번 등장했던 것으로 보아, 아마 이 곳에서 고정적으로 공연을 하시는 분들인 듯하다.

끝날 줄 모르는 음악. 한껏 흥이 오른 사람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고, 악단에 동전과 지폐를 내놓고 있다.

<같이 공연을 즐긴 사람들. 등 뒤로 저녁의 대성당이 보인다.>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까미노의 마지막 밤은.. 흥겨운 음악과 함께 끝나가는구나.

 

마지막. 「순간을 소중히!」

 

산티아고의 새벽은 꽤나 부산스럽다. 아마 나처럼 공항 행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의 모든 것~ 고마워!>

문득 배낭에 시선이 가 닿았다. 저기엔 그동안 나와 함께 걸어온, 소중한 것들이 담겨 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이지 않고 짐을 풀었다.

5시 반 즈음 알베르게에서 나왔다. 산티아고 공항 행 버스를 타는 곳은 갈리시아 광장(Praza de galicia)인데,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하다.

무엇 하나 늦어지지 않았다. 제 시간에 버스가 왔고, 공항에 도착했으며, 비행기 역시 알맞게 이륙했다. 멀어져가는 도시 속, 대성당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Buen Camino!!”

<여행일지. 노란 화살표와 조개로 이어진 길>

점 여행이 아닌, 선 여행이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었던 이유이자, 친구들에게 까미노를 권할 때 꼭 하는 말이다.

유럽 배낭여행은 많은 대학생들의 로망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여기저기 점을 찍듯 이 도시, 저 도시… 기차와 비행기에서 여정의 태반을 허비하는 관광은 싫었다. 최대한 농도 짙은 한 달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까미노는 정말 최고의 여행이었다. 내딛는 발걸음의 수만큼 아름다운 풍경과, 내면의 성찰과, 소중한 인연과의 추억이 정직하게 쌓여갔다.

매일 새로운 인연이 교차하고, 모든 만남과 헤어짐은 각기 다른 성장과 깨달음의 계기가 되었다. 이 넓은 나라를 스스로의 두 다리로 횡단해낸 경험은, 이후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자신감이 되어줄 것이다.

이번 까미노에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은 바로 ‘기록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평소에도 내 생각을 글로 남겨놓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까미노에서는 특히 더 일지쓰기에 만전을 기했다.

시간대별로 무얼 했는지, 어느 마을에서 쉬었고, 무엇을 먹으며 얼마를 소비하였는지. 하루에 몇 시간을 잤고, 누구와 만나 얼마동안 동행을 했는지..

<순례길 동행일지. 가장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당장 어제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쉽게 떠올리지 못 할 때가 많다.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일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까미노에서의 기억은 이런 평범한 일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다. 그만큼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록에 어느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게 옳을까?

어떤 이는 ‘일지 쓸 시간에 차라리 사람들과 더 얘기하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일리 있는 말이다. 나 역시 한 달간 매일 1시간 이상을 일지쓰기에 매달리며, 여러 번 회의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거 이렇게 써 봤자 결국엔 내 자기만족일 뿐인데. 무슨 의미가 있지?”

결국, 치우치지 않는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지에 투자하는 시간을 아껴서 매일 5km 정도를 더 걸었을 수도, 유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록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 여행기를 쓸 수 있었던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훌륭하고 생생한 기록일지라도 결국 과거의 증언일 뿐이다. 대성당 앞에 선 순간, 까미노는 나에게 더 이상 ‘현재’가 아닌 ‘과거’가 되는 것이다.

기록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이것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서른, 마흔… 일지는 훗날 어느 때에 들춰보더라도 다시금 나의 소중한 친구가 돼줄 테지만, 이 속의 나는 언제까지고 혈기왕성했던 24살의 대학생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흘러가는 현재와, 멈춰 있는 과거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넓어져만 갈 것이다.

<순례길을 수놓은 별들>

밤하늘을 수놓던 별들을 바라보며, 또 대성당의 야고보 성인을 감싸 안으며 하나의 소원을 빌었다.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가 했던 말이기도 하다.

순간을 소중히(To make each day count)!’

‘소원’이란 무엇일까. 그저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것일까? 누군가가 이뤄주기를 바라고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다음과 같은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아무리 간절한 기도라 한들, 신께서 그것을 직접 이루어주시리라 바라지 마라. 그 분은 그저 기회를 주실 뿐이다.”

결국 상황을 바꾸어 나가는 것은 순간순간에 임하는 나의 마음가짐,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의지, 그리고 올바른 선택지를 판별하고 기꺼이 나아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일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기란 얼마나 힘든지! 내 삶은 무수히 많은 불완전한 결심과 시도, 현실과의 타협 그리고 무너짐의 연속이었다.

물론 이게 나만의 좌절은 아닐 것이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순례자 여권에 쌓인 도장들. 이 길을 걸어왔다는 증표이다.>

까미노는 그런 나에게 자그마한, 아니 어쩌면 커다란 성공경험이 되어 주었다. 감사하게도 이번 한 달간, 나는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도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산티아고라는 확실한 목표, 그 목표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길 위의 표식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다른 곳으로 이탈하지 않을 수 있었다.

순례길이 내게 준 메시지는 너무도 명확하고 단순하다.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내 앞에 펼쳐질 무수히 많은 ‘현재들’에게 충실한 삶을 살라는 것.

노란 조개와 화살표, 그리고 산티아고로 향하는 그 설렘이 하루하루를 100%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듯이, 돌아간 일상에서도 늘 설렘과 감사한 마음으로 내 앞에 놓인 길을 묵묵히 걸어가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말이 순례자들 사이에서 격언처럼 여겨지는 것이리라.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그 순간, 당신의 진정한 까미노가 시작된다.’

가을이 시작되던 날, 한국에 돌아왔다.

<처음과 끝!>

 

 

뜻대로 되는 것 없어 시작한 길이 있었다.

전체를 보고 걸으면 걸어낼 수 없는 길이다.

 

내딛는 양 발 아래 날마다의 단막극이 펼쳐진다.

산중 풀 뜯는 가축의 종소리 위로 안개가 내려앉고,

햇볕은 다시금 안개를 몰아내며 여린 살을 태운다.

목숨까진 아니더라도, 여행에선 늘 뭔가를 걸어야 한다.

 

때론 조금 일찍 눈뜨는 수고로움만으로 별들의 천국을 맛보았다.

머리 위, 내 가얄 곳에 먼저 가 있는 별은 아직 자신을 뽐내며,

여명에 잠식당하는 새벽의 쇠락한 왕조를 섬기고 있다.

하늘 높이 유랑하던 마음, 피로감에 코피를 쏟고서야 현실을 딛는다.

 

길 위에는 음악과 목소리를 바람에 입혀 선사하는 이들

자연에게서 사진 한 장, 그림 한 첩 감히 담아내는 이들

사랑과 음식과 기쁨과 상처를 나누는 이들

그리고 그 모두는 각자의 두 발로 서고 걷는 순례자.

 

눈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은 잔인한 무게로 땅 위에 군림하며,

이에 도전한 산들은 모두 잘려나가 또 다른 평지가 되었다.

빛이 닿지 못하는 어느 시골길 옆 허물어가던 집터는

칠흑의 밤, 알아봐준 나그네를 위해 다시 한 번 바람과 겨룬다.

 

서쪽으로 가라. 네가 구도하는 그 모든 하루하루 나는

너에게 매일의 웃음과, 눈물과, 깨달음을 건네주겠다.

말을 나누고 음악을 울려라. 걸음뿐인 여정은 지독한 낭비다.

고된 팔다리를 어루만져 줄 친구는 네 스스로 찾으라.

 

광야 너머를 가늠하며 눈이 뜨이고, 마음은 드넓어진다.

여행이 사람을 만든다면, 못 해도 그 반은 길 위에서일 것이다.

오늘 먹을 것과 몸 뉠 곳 걱정뿐인 순례자의 길 위에서,

우리는 눈앞의 하루를 사는 법을 배워나간다.

 

과정은 머잖아 결과가 되고, 길은 어느 날 홀연히 끝을 알린다.

왜 미리 알 수 없었을까, 오직 내가 모자랐던 탓이다.

더없이 너덜너덜해 진 두 발조차 여력을 자랑하는데,

뒤늦게 더 갈 곳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참 쓰라리더라.

 

별 앞에 감동하고, 볕 아래 떳떳하며, 물 앞에 감사하라.

너는 초행자인 바, 가고 쉴 때를 구분치 못함에 기죽지 말라.

단지 모든 것이 계기임을 알고 자신을 열어놓을 때 비로소,

성장이란 것은 이루어진다. 또 다른 길의 시작점에서.

 

뜻대로 되는 것 없어 행복했던 길이 있었다.

하루를 보고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 이상으로 [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의 연재를 마칩니다. 로드프레스에 소중한 젊음의 기록을 꺼내 기고를 해 주신 문원기님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