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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⑮ – 문원기

「도착」

2017.08.27.일, 순례 D + 28

오 페드로쏘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21km / 779.0km

 

그렇게, 마지막 날은 꿈 같이 찾아왔다.

덤덤한 척 했지만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이들 역시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막상 산티아고로 가는 마지막 길은 그리 아름답진 않다. 경치보다는 사람이 인상적인 하루다.

메세따 지역에서는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이 두 손으로 꼽을 적도 있었는데, 이곳에는 내 시야가 닿는 곳마다 수십 명도 넘는 순례자들이 있다. 굳이 표지판을 찾을 필요 없이, 그냥 행렬을 따르면 된다. 연간 순례자 수가 30만 명이 넘는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Buen Camino!!”

“Buenos dias!!(좋은 아침!!)”

“Santiago~~!!”

<힘내라!!>

산 하나를 넘으면 전방에 철조망과 거대한 구조물을 끼고 돌게 된다. 산티아고 공항이다. 내일 모레에는 저 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을 떠나야 한다.

Bar에서 먹는 빵과 카페 콘 레체도 이제 마지막이다. 마지막 빨래, 마지막 짐정리, 그리고 유이와의 마지막 날… 까미노에서의 하루를 채워주던 것들이 하나 둘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A Lavacolla를 지나면 양 옆으로 옥수수 밭이 펼쳐지고, 이내 고요한 숲길을 지난다. 시골길에는 여느 날처럼 악취가 진동했지만, 오늘만큼은 밉지 않았다. 이것 역시 마지막일 테니까!

<가벼운 옷차림의 단기순례자들>

오르막길이 한동안 지속되더니, 갑자기 사방에 시야가 확 트인 둔덕이 나타났다. ‘몬테 데 고조(Monte de Gozo)’, 이름하야 기쁨의 언덕!!

까미노는 중세 순례자들에게 사랑받던 길이었지만, 이후 수백 년을 외면당한 채 잊혀져왔다.

그러던 중 1980년대 코엘료의 소설이 발표되고, 비슷한 시기에 당시 교황이던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다시 많은 사람들이 까미노를 찾게 되었고, 198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까지 등재되었다. 언덕 중앙의 거대한 구조물은 바로 그때의 방문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기쁨의 언덕 중앙의 구조물에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기쁨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무엇일지, 이곳에 올라서면 대충 짐작이 된다.

언덕 너머 그림자가 향하는 곳, 고요하게 내려앉은 거대한 도시 하나가 보인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를 내 두 눈으로 확인하는 첫 순간이다.

지금껏 노란 화살표, 표시석, 지도와 가이드북의 숫자로만 가늠해오던 곳 아니었던가. 순간 몸에 약한 전율이 일었다. 분명, 달리 표현할 길 없는 ‘기쁨’이었다.

Compostella는 ‘별들의 들판’이라는 뜻인데, 이 역시 까미노와 연관되어 있다.

야고보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던 중 순교했다. 수백 년 후 한 농부가 하늘에서 별들이 춤추는 듯한 광경을 목격하였고, 그 아래에서 사람의 유해 하나를 발견했다. 이것이 성인의 유해로 인정받아, 스페인의 서쪽 끝인 산티아고 대성당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다시금 붉은 빛 길 따라 걷고 싶네

바닥이 없는 곳, 무게 없는 깃털 되어

누군가의 깃 위에 살포시 꽂히고선

별들이 춤추는 들판, 그곳으로.

<언덕 너머,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산티아고>

기쁨의 언덕이었으나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꿈같았던 까미노가 이제 다 끝나간다는 것에 마음이 적잖이 동요하고 있었다.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별을 동경하듯, 산티아고를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내 마음 속 목적지로 남겨 두고 싶었다.

어렵사리 언덕을 내려서게끔 한 것은 지난 4주간 내 몸과 마음에 자리 잡아버린 관성이었다. 여태껏 서쪽으로 걸어온 774km의 흐름을 막아 세우기에는, 나머지 5km는 너무나 미약했다.

<기쁨의 언덕을 내려가는, 마지막 발걸음이다.>

<표지판 앞에 섰다. 행정구역상으로 산티아고 시내에 진입한 것이다.>

이때부터의 길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굴다리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고, 우회전 후 호텔을 따라 걷다가 좌회전. 직진 후 도심 쪽으로 살짝 좌회전. 직진, 또 직진.

중심지가 가까워짐에 따라 점차 사람들이 북적일 때쯤, 어디선가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

굴다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배낭에 조개를 매단 이들은 모두 그 곳으로 내려가고 있다.

<마지막 굴다리. 위풍당당하게 광장으로 진입하는 순례자들>

굴다리를 지나면 광장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 길을 걷는 이유였던 존재가 눈앞에 서 있다.

<유이와 함께. 도착했다!!>

까미노의 목적으로는 물론 정신적 성장과 깨달음이 가장 크겠지만, ‘산티아고 대성당을 본다’는 물리적인 동기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기껏 이 공사 중인 건물 하나를 보기 위해 800km를 걸어온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때 멘탈 관리를 잘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자칫 허무감에 휩싸일 수 있다.

“아…성당이구나, 성당이네. 성당… 광장… 산티아고…”

감동적이었지만, 그렇다고 왈칵 눈물을 쏟을 정도로 감정이 북받쳐 오르지는 않았다. 극적인 깨달음이 머리를 스치거나,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았다.

설렘이란 그저 그것을 마음속으로 품고 그릴 때 의미를 가지는 걸까.

마음 속 산티아고와 눈앞의 대성당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잠시 동안 광장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문득 내 옆의 소중한 사람, 유이가 생각났다. 우리는 무슨 사이지?

별빛 아래 새벽 산길을 걸으며 하루를 시작해, 잠시 숨을 돌리며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했다. 한낮의 더위에는 같이 녹초가 되었고, 도착 후에는 함께 부엌에서 저녁을 먹었으며, 서로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며 내일을 준비했다.

눈을 뜬 순간부터 감는 순간까지, 하루 24시간의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함께였다.

가식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손짓발짓으로 대화해야 했고, 매력적인 모습은커녕 다 늘어진 운동복에 세수조차 못한 민낯을 서로에게 보여야 했다. 그녀 발의 물집을 터뜨려 준 것은 나였고, 구토에 시름하는 나의 등을 두드려 준 것은 그녀였다.

보름 남짓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는 충분히 진솔했고, 또 아름다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순간을 그저 평온하게 만끽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지나고 나서 느낀 감상일 뿐, 당시의 나는 너무나 미성숙했다. 소중한 것이 옆에 있을 땐, 정작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기가 왜 그토록 어려운 건지…

<광장 한가운데, 대성당을 마주본 채 배낭을 베고 누웠다.>

<서로에게 보내는 환호와 격려. 지켜보는 이들 역시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광장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이미 도착해 쉬고 있는 이들, 이제 막 굴다리를 넘어 광장으로 진입하는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는 일반 관광객과 주민들… 서로서로 박수와 환호로, 아낌없는 포옹과 입맞춤으로, 혹은 눈물을 통해 이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짧게는 수 백, 길게는 수 천km를 걸으며 쌓아 왔을 감정들. 누군가는 이를 터뜨렸고, 다른 누군가는 애써 집어삼킨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었다. 직접 가보지 않고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왜 이들은 그토록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이곳까지 온 거지?

여름의 무더위도, 겨울의 눈보라도 기꺼이 맞아가며. 은퇴 후 아픈 몸을 이끌고, 아니면 아예 직장까지 그만둬 가면서.

무엇이 이곳을 전 세계인들의 꿈의 장소로 만들었으며, 나는 왜 이 곳에 온 것일까.

이런 기적 같은 길을 자기네 땅에 가지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아니, 오히려 머나먼 타지에 있기 때문에 동경할 수 있는 우리가 더 행복한 걸까?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한 채 힘찬 행진곡을 부르는 이들을 지켜보았다. ‘인생의 빛나는 한 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이 갖는 유대감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재중 형, 철진 형, 진우어머님과 진우, 주연누나 , 국일, 종엽, 누리, 혁, 마그다, 요한, 성훈, 윤유, 선영, 현성, Bo, 샤오쉬엔, 오멸 감독님과 태경이, 마호와 나나, 볼프강, 아멜리아..

유이를 비롯하여, 지금 이 순간 그 모두와 함께이고 싶었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이었을 것이다. 각자 걸음의 속도와 목적이 모두 달랐을 것이기에.

<광장 한 켠, 거리의 예술가>

광장 이곳저곳에서는 거리예술이 한창이다. 잠시 넋을 놓고 바이올린 연주에 빠져 있다가, 문득 오늘 피스떼라에 가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어디보자. 버스 출발시간이… 한시 반?!

아직 순례자 증서도 받지 못했는데!!

<순례자 사무소. 증서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허겁지겁 찾은 순례자사무소. 아무리 오늘이 일요일이었기로서니,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다. 사무실을 빙 돌다 못해 건물 밖에까지 대기자들이 늘어서 있었다.

다행히 대기줄은 빠른 속도로 빠져 나갔고, 이윽고 내 손에 완주 증명서가 쥐어졌다.

<완주 증명서>

<순례자사무소에서, 유이와의 마지막 순간>

유이는 내일 마드리드로, 나는 모레 새벽 바르셀로나로 갈 예정이다. 유이와 하루를 더 보낼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으나, 나는 결국 ‘피스떼라(Fisterra)’행을 택했다.

물론 피스떼라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곳이지만, 이 때 가지 않았으면 두고두고 아쉬워했겠지만… 유이는 분명 섭섭했을 것이다.

그저 말없이, 이기적인 결정을 내린 나를 존중해 준 유이에게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하다.

급박했던 일정 탓에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버스 출발 시간이 다 되도록 유이는 거의 말이 없었다. 다만 하염없이 울었다. 사실 어제부터 많이 울었던 그녀다. 나는 그런 유이에게 그저 옅은 미소만 지어보일 뿐이었다.

피스떼라행 버스가 출발했다. 꿈같았던 사랑은 다시 꿈과 같이 떠나갔다.

 

과정은 머잖아 결과가 되고, 길은 어느 날 홀연히 끝을 알린다.

왜 미리 알 수 없었을까, 오직 내가 모자랐던 탓이다.

더없이 너덜너덜해 진 두 발조차 여력을 자랑하는데,

뒤늦게 더 갈 곳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참 쓰라리더라.

 

「몽환」

2017.08.27.일, 순례 D + 28

산티아고 – 피스떼라

 

버스는 매정하도록 빨랐다. 창가 너머로 손 흔들던 유이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한 달 만에 교통수단을 이용하려니 무척 어색하다. 차창 밖의 풍경이 금세 바뀌어갔다.

그러나 사실 버스가 빨라봤자 얼마나 빠르겠는가. 그간 우리의 걸음이 얼마나 느렸었는지 실감이 났다. 한 달간 까미노의 속도에 완전히 적응되어 버렸던 것이다.

피스떼라(Fisterra)는 ‘끝(Finis)’ 과 ‘땅(Terra)’가 합쳐진 말로, ‘땅의 끝’이라는 뜻이다. 먼 옛날 유럽인들에게 세상의 끝으로 여겨졌던 곳이며, 실제로도 리스본 정도를 제외하고는 유럽 최서극단에 있다.

피스떼라가 까미노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화가 있다. ‘야고보 성인이 복음을 전한 곳이다’, 혹은 ‘야고보 성인의 유해를 담은 배가 떠내려 온 곳이다’ 등등… 애초에 천 년도 더 된 길이기에, 정확한 사실은 알 수도 없을 뿐더러 굳이 설화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차창 밖에서는 이따금씩 노란 화살표와 조가비 문양들이 지나쳐간다. 찻길이 피스떼라로 가는 순례길과 종종 교차했던 것이다. 당장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내 삶의 일부였던 것들인데, 한나절 사이에 부쩍 멀어져버린 듯한 섭섭함을 감출 수 없었다.

피스떼라에 도착했다. 육지와 확연히 다른 그 공기, 수분을 한껏 머금은 한낮의 바닷바람이 부드럽게 살결에 와 닿았다.

알베르게에서 쉬다가, 오후 8시 반쯤 일몰을 보기 위해 ‘등대(Faro de Fisterra)’로 향했다. 일몰도 일몰이지만, ‘0.00km’ 표시석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마을에서 고작 3km라고 우습게 봤는데, 생각보다 힘든 길이었다. 산티아고 도착 후 모든 긴장이 풀려서, 다시 한국에서의 나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짙게 드리운 해무 사이로 까미노의 마지막 순례자상이 보인다. 나처럼 홀로 오르막을 걷는 모습이 조금은 외로워보였다.

<등대로 가는 길, 마지막 순례자상>

부지런히 30분 정도를 걸었을까, 경사가 완만해지더니, 곧이어 수 십대의 차량과 기념품 가게 등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이미 일몰을 보러 온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

<779km가 어느덧 0.00km가 되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동안 내 발과 함께 수고해준 등산화, 그리고 크록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네가 무생물이라 그렇지, 생각이 있었다면 얼마나 나를 미워했을 것인가!!

피스떼라에 도착하면 신발이나 옷가지 등 자신의 짐을 태우는 관례가 있지만, 나는 이것들을 태워버리기가 너무 미안했다.

그나저나 안개가 너무 심하다. 바다는커녕 옆 사람조차도 제대로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저 하늘 한 쪽에서 희미하게 감도는 붉은 기운을 보고, 해가 저무는 방향을 가늠할 뿐이었다.

솔직히 잔뜩 실망 중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피스떼라의 일몰은 이게 아니었는데…

그런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1시 37분, 바위에 앉아 무언가를 적고 있던 여성>

지는 해가 마지막으로 뿜어내는 붉은 빛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겹겹이 드리운 해무를 기어이 뚫어내고, 온 하늘이 삽시간에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뚫었다기보다 스며들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짙은 안개와 노을의 조화가 아니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빛깔이었기 때문이다.

지는 해의 역광을 받은 이들은 본래의 색을 잃고 검게 비치는데 반해, 하늘은 갖가지 색채를 머금고 일제히 산란했다. 주황색,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 파란색…

이런 하늘을 본 적은 없었다. 그간 밤하늘의 별들에게만 감탄해오던 내게, 태양이 작정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려는 듯 했다.

모두가 넋이 나간 것처럼 서쪽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맑은 하늘의 일몰은 감탄을 자아냈겠지만, 지금의 하늘은 감탄마저 앗아가 주위를 오히려 고요하게 만들었다.

두 눈을 멀쩡히 뜬 채로 꿈을 꾸는 기분, 말 그대로 몽환적인 순간이다.

<나 역시 검은 실루엣이 되었다.>

불완전함과 불완전함이 만나 빚어낸 찰나의 기적이었던지, 황홀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10여 분간 찬란한 마지막을 뽐내던 태양은 빠르게 그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21시 44분. 등대의 불빛 역시 아름다운 저녁하늘의 일부였다.>

등대를 바라보았다. 그 불빛은 느리게, 그러나 일정한 간격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

눈물이 나왔다. ‘초심자의 행운’이 이곳에까지 와 닿은 건지, 어쩌면 끝나는 날까지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는 건지.

당장 며칠 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내가, 지금 이 곳을 회상하며 느껴야 할 그리움은 어떡하라는 건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가슴 뛰는 경험이 4주 내내 이어져, 마지막 날에 이르러 그 정점을 찍고 있었다.

내 감수성의 폭과 깊이가 이를 차마 다 수용하지 못해, 넘쳐흐르는 감동이 다만 눈물로 새어나올 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녁하늘을 마음껏 만끽한 이들은 이제 서둘러 언덕을 내려갈 채비를 하고 있다. 통유리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레스토랑에서는 순례자들의 낭만적인 저녁식사가 한창이다.

내려오던 중, 놀랍게도 주연누나를 다시 만났다!! 그라뇽에서 헤어졌으니 거의 20일 만이다.

누나는 새까맣게 타 있었다. 분명 누나가 본 나도 그랬을 것이다.

“피스떼라까지 와서 만난 것도 우연인데, 한 잔 해요!!”

저녁 10시 반, 늦은 뒤풀이를 시작했다. TV에서는 레알 마드리드 vs 발렌시아의 경기가 한창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근처의 모든 Bar에서 같은 경기를 방영중이다.

후반 32분, 발렌시아가 추가골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사방에 곡소리, 욕설, 책상 치는 소리가 난무한다. 우리는 그저 쥐죽은 듯 조용히 있었다. 아니, 여기가 마드리드도 아닌데 왜??

후반 38분에 레알이 동점골을 넣었다. 2대 2로 경기 종료. 사람들이 조금 누그러졌다.

다행이다 싶었는데, 갑자기 축구 경기가 끝났으니 Bar 영업 종료란다. 아니, 뭐 이딴…

다른 Bar로 자리를 옮기려 해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마치 짠 듯이 모든 가게가 셔터를 닫고 있다. 진짜, 어지간히 축구의 나라구나. 축구에 아주 미쳤구나 이 나라는.

별 수 없이 항구에 걸터앉아 시간을 때우다, 새벽 두 시가 다 되어서야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이제 일찍 일어날 필요도, 뜨거운 햇살을 맞아가며 걸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다 잠깐만…일찍 일어날 필요가 있다! 일출을 봐야지!!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