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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⑭ – 문원기

「값 싼 쾌락」

2017.08.25.금, 순례 D + 26

포르토마린 – 멜리데

39.8km / 726.7km

 

아침을 준비하는 이들의 표정엔 활기가 가득하다. 도착의 날이 가까워지는 것에 설레는 걸까.

자전거 헬멧을 조여 매는 사람도 보인다. 산티아고까지 93km, 자전거로는 오늘 안으로 닿을 수도 있는 거리다.

포르토마린을 빠져 나가기 위해선 어제 들어온 방향으로 마을을 다시 가로질러 나가야 한다. 빛을 받지 못하는 새벽의 강물은 완벽한 암흑으로, 마치 그곳에 아무것도 없는 듯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랜턴 건전지를 아끼기 위해 스위치를 끄고 걸었다. 앞뒤로 길을 걷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불을 꺼도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뒷사람들의 불빛에 나와 유이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그림자는 아무 표정이나 말이 없었지만, 우리는 기쁜 표정으로 서로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숲을 얼마나 걸었을까.

“Moon~ It’s foggy!!”

<첫날의 피레네보다 안개가 더 심하게 꼈다.>

뻥 뚫린 도로가 펼쳐졌는데, 안개 탓에 한 치 앞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사실 안개가 껴도 나쁠 건 없는 게, 수분을 머금은 공기를 한껏 들이키는 청량감이 좋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26일차 만에 처음으로!!! 잠깐 내렸다 그치는 이슬비였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까미노에서 비를 총 3번 맞았다. 26일차(오늘), 27일차, 그리고 산티아고 도착 하루 뒤인 29일차 이다. 즉, 마지막 며칠을 제외하고는 모두 날씨가 맑았다. 무려 25일 동안이나!!

날씨는 지형지물에 비해 변덕이 훨씬 심하기에, 같은 길을 걸은 이들도 시기에 따라 다른 감상을 남기곤 한다. ‘비가 너무 많이 와 힘들었어요’, ‘흐려서 땅만 보고 걸었어요’ 등등..

그러나 내겐 까미노의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이자 경이의 대상으로 남았다. 특히 메세따 구간의 잔인할 정도로 푸르렀던 하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왜 내가 걷는 내내 하늘은 맑기만 했을까? 그저 시기를 잘 잡았을 뿐인 걸까?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라네.

–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이렇듯 까미노에서의 하루하루, 내겐 수많은 우연과 행운이 주어졌다.

아름다운 경치, 별 탈 없이 버텨주는 나의 몸, 소중한 사람들, 새로운 경험들…

밤하늘의 별, 한낮의 태양 볕, 그리고 한 모금의 물까지.

이 모든 것들이 어쩌면 ‘초심자의 행운’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길이 처음인 네가,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돌아가길 바란다’라며 누군가가 길을 인도해 주는 것만 같았다.

물론 이 점이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행복한 경험만 가득했던 나는, 까미노에서 시련, 고독이나 상실의 감정을 많이 느끼지 못했다. 삶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할 희노애락의 중심추가, 지나치게 한 쪽으로 쏠려 버린 것이다.

마치 머나먼 별나라에 다녀온 듯한 한 달간의 기억이, 평범했던 일상 한 가운데를 밀어내고 떡하니 자리 잡아 버렸다.

몸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마음은 순례길 위 어딘가의 구름이 되어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마냥 동경의 대상으로 기억될 나날이 아니었다면, 그만큼 되돌아온 일상으로 대체하기도 쉬웠을 텐데 말이다.

출국 전과 귀국 후의 내가 완전히 분리되어 버린 것만 같았고,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괴롭다. ‘까미노 블루(Camino Blue)’라는 후유증인데, 꽤나 심각하게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한 번도 안 걸을 수는 있어도, 한 번만 걷는 이는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매력적인 곳이 바로 까미노다.

<산티아고가 가까워질수록 표시석은 낙서로 더 지저분해진다.>

걷히지 않는 안개를 온 몸으로 맞아가며 걷다 보니 적잖은 한기가 느껴졌다. 결국 근처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꼭 쥐고 덜덜 떨리는 손을 녹여야 했다.

<정오가 다 되어서야 안개가 걷혔다.>

유이에게, 산티아고에 도착해 가는 소감을 물었다.

“I want to return to Japan!! As soon as possible!!”

“Haha, why??”

“I want to meet my friend, eat sushi, and take some breaks..”

스무 살 소녀는 고향이 무척 그립나보다. 나와는 정 반대다. 나는 한국이 그리 그립지 않았다.

<팔라스 델 레이에 도착했다.>

오후 1시, ‘팔라스 델 레이(Palas del Rey)’ 도착했다.

마을 중앙에서 알베르게 오픈시간을 기다리는 사유리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우리보다 일정이 넉넉하기에 오늘 여기서 멈출 예정이다.

우리는 ‘멜리데(Melide)’까지 가야 하지만, 유이는 그녀와 헤어지는 게 아쉬운 듯 망설인다.

사유리는 그런 유이를 가만히 위로했다. 참 지적이고 부드러운 분이다. 세계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니셨기에, 어쩌면 여행이 지금 그녀의 품격을 만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창한 숲 속의 풍경이 되어 걷는 유이>

모처럼 나와 유이 둘 다 컨디션이 좋다!

팔라스 델 레이 이후에는 대부분 숲길이라 그런지, ‘덥다’보다는 ‘화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장실도 이용할 겸 잠시 가게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나는 맥주 한 잔을 시키고, 유이는…

“Alcohol?? No!! Zumo de Naranja~~(오렌지 주스~~)’

빠르게 취기가 올라온다. 3주 전 이라체 포도주샘에서 느꼈던 기분이다. 다행히 걸음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날도 더운데 괜찮을까…!

그런데 웬걸. 이미 걸은 지 7시간이 넘었음에도, 방금 막 출발한 것처럼 두 다리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적당히 따뜻한 햇살 아래, 천국을 걷는 기분으로 정신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마약이라도 흡입한 것처럼 끝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평범한 시골길이 한 폭의 풍경화로 눈에 담긴다. 단돈 1.7유로에 들이킨 술이 이런 황홀한 기분을 가져다 줄 수 있다니!

술 한 잔의 마법이 사그라들 무렵, 우리는 어느새 멜리데에 도착해 있었다.

목표를 이루었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성취감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도 맥락도 없이 찾아와 나를 붕 띄워놓는 야릇한 기분.

오랜만에 느꼈던 ‘조건 없는 행복함’ 이었던 것 같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사실 까미노에서의 행복은 거창하기보다는 오히려 사소한 일상으로부터 비롯될 때가 많았다.

이곳의 음식이 다른 곳보다 고작 몇 십 센트 더 싼 것, 오늘의 목적지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 며칠 전에 본 동행을 다시 마주치는 것… 그리고 유이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 그 숲길 속을 걷는 내게, 싸구려 맥주 한 병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 과연 그리 많았을까. ‘값 싼 쾌락’이었지만, 결코 ‘저급한 쾌락’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챙겨간 가이드북에서는, 갈리시아 지방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 지천에 널려 있는 소똥과 악취를 주의할 것.

  2. 멜리데에 가면 문어 요리를 먹을 것

  3. 산티아고 케이크(Tarde de Santiago)도 먹어 볼 것.

실제로 싸리아에서 악취 때문에 죽다 살아난 이후로, 나는 가이드북을 100% 신뢰하고 있었다. 당연히 멜리데의 문어 요리도 먹을 생각이었다.

그 전에 알베르게 예약부터 하고! 오늘은 공립이다.

이전에 지나온 라 리오하나 레온 지방에서는 공립을 ‘무니시팔(Municipal)’, 사립을 ‘프리바도(Privado)’라고 불렀다.

그런데 갈리시아 지방에서는 공립을 ‘훈따(Xunta)’라고 한다. ‘Albergue municipal de peregrinos’가 아니라, ‘Albergue xunta de peregrinos’ 이런 식인 것이다.

이곳에서 무니시팔이라고 하면 접수를 받는 오스피딸레로가 은근 싫어하는 기색을 내비친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라, 뭐 이런 건가.

숙소에는 폰페라다에서 만난 브래드 피트를 닮은 청년, 저스틴이 있다.

두 명의 동행과 같이 다니고 있다. 이탈리아의 의사 ‘프리스카’, 역시 이탈리아의 청년 ‘Joe’.

서양인이 대개 그렇듯이 프리스카도 이목구비가 뚜렷하지만, Joe는 정말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잘 생겼다. 스무 살임에도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있는데, 어쩜 수염도 저렇게 멋지게 날 수가 있지. 키도 크고, 머리도 작고, 코도 엄청 높고.. 보는 이의 자괴감을 불러일으키는 외모다.

세 명이 선뜻 나에게 저녁식사를 제안한다. 문어요리 원정대를 꾸리고 있단다.

나는 당연히 갈 생각이었지만, 유이는 숙소에서 따로 식사를 하겠다고 했다. 여러 번 설득을 해 보아도 마찬가지. 결국 나 혼자 식사에 동참하게 되었다.

저스틴도 나보다 어리고, Joe는 고작 스무 살… 그런데 둘 다 도저히 나보다 어려 보이지 않는 외모다. 잘 생긴 대신에 일찍 늙는 걸까??

프리스카는 서른 한 살인데, 계속해서 저스틴 옆에 붙어 있다. 기류가 심상찮다.

이거 이거 저스틴이 능력남인거야, 아니면 프리스카가 능력녀인거야?!

<사진 속의 양은 2인분 정도라고 보면 된다.>

아무튼, 문어 요리가 나왔다. 1인당 10유로를 상회하는 비싼 요리다.

한입 먹자마자 깜짝 놀랐다. 맛있는 것을 떠나서, 동양의 맛이다!!! 우리나라에서 오징어를 흔히 기름장에 찍어먹곤 하지 않는가? 그 맛과 90% 정도 비슷하다.

잘게 썰린 문어의 살점 위에 참기름, 소금, 고춧가루 등이 뿌려져 있다. 나머지 셋은 다소 맛이 강하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간이 딱 맞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선 멜리데 시내 구경. 고작 10분이나 둘러보았을까, 저스틴과 프리스카가 손을 잡고 슬쩍 어디론가 사라진다.

‘귀여운 것들’이라는 표정으로 웃는 Joe. 하긴 이 친구 얼굴이면 일상다반사인 일일 테니.

결국 둘이서 숙소로 돌아왔다.

<아라키씨와 마쓰다씨>

유이는 또 다른 일본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건 순전히 내 느낌인데, 유이는 서양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는 데 조금 불편함을 느끼는 듯 했다. 방금 외식을 거절한 것도 그것 때문인 것 같고.

나 역시 영어를 잘하진 않지만, 난 절대 이들과의 대화를 피할 생각이 없었다. 내 다짐과도 연관이 되어 있고, 본래 ‘영어 최대한 많이 써보기’가 여행의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으므로.

아라키 씨와 마쓰다 씨는 천천히 걸으시는 분들이다. 하루에 10~15km 정도.

연로하신 탓도 있지만, 이분들이 늦게 걷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림’이다. 까미노를 걸으며 눈길이 멈추는 곳을 하나하다 다 캔버스에 남기고 계셨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 <타이타닉>의 남자 주인공, ‘잭 도슨’이 생각났다. 여행과 그림이라니!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서로간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소통의 계기를 마련한다면, 이 두 분은 그림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계신 셈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러네, 이 길을 함께 하는 벗이 굳이 사람일 필요는 없지. 우쿠렐레일 수도 있고, 사진기일 수도 있고, 캔버스와 펜일 수도 있는 것이겠구나.

잘 주무세요, 아라키&마쓰다!

 

「투정」

2017.08.26.토, 순례 D + 27

멜리데 – 오 페드로쏘

34.3km / 758.0km

 

오늘도 거의 꼴찌로 일어났다. 6시에 일어나도 늦은 판에, 7시 기상이면 더 볼 것도 없다.

체력은 매일 보충이 되지만, 근육과 관절에 쌓인 피로는 쌓여만 갈 뿐이다. 그래도 오늘만 걷고 나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동기부여하며 피곤을 이겨낸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가 내린다. 어제 추적이던 이슬비가 아닌, 꽤 굵은 빗방울이다. 우의를 챙겨오긴 했으나 입진 않았다.

지난 26일간 우의를 딱 한 번 꺼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비 올 때가 아니라 산 볼에서 캠핑하던 날이었다. 추운 날씨에 이것저것 다 껴입었던 것이다.

<동틀 녘의 무지개. 만들어지다 만 것 같이 불안해 보였다.>

비가 와서 그런지 무지개가 떴다. 제대로 된 비가 오는 것이 처음이니, 당연히 무지개를 보는 것도 처음이다.

 

멀어버린 두 눈 지탱하던 두 발

힘들어할 때 쯤 내리우던 단비

오색의 감정이 스며든 자리엔

옅은 무지개 단출하게 피어나네

 

나와 유이는 서로를 좋아했지만, 사실 서로 그리 대화가 많지는 않았다. 유이에 대해, 혹은 그녀의 생각에 대해 물으면 그녀는 늘 짧게만 대답했다.

“Haha, I don’t know, Moon.”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올 때는 극히 드물었다. 불행히도, 나도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대화의 부재, 그것이 결국 문제가 되었다.

“You don’t tell me anything about yourself.”

하루를 따로 걷기로 했다. 걸음 속도를 높여 앞서 나가버렸다. 정말로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앞서가는 나를 유이가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는 지 알 수 없었다.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Boente, A Fraga Alta, Rivaldiso…. 웬만한 마을을 다 지나쳐버리고, 큰 도시인 ‘아르주아(Arzua)’까지 그대로 통과해 버렸다.

<지혜의 벽>

아르주아에서 한 시간 가량을 더 걸으면, 글귀가 잔뜩 걸려 있는 벽을 지나게 된다.

‘지혜의 벽(The Wall of Wisdom)’. 철학, 종교 등 다양한 카테고리별로 오랜 역사를 거쳐 인류가 발전시켜 온 문제의식들이 나열되어 있다.

Believers and non-believers are more interested in justifying themselves

and demonstrating their ideas are right than in seeking the truth.

(종교를)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 모두 그저 그들을 정당화하고

그들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바빠, 정작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는 소홀하다.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숲. 보고 있으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성한 숲길은 가뿐히 비를 막아주었다. 아주 이따금씩, 촘촘한 잎 사이를 뚫고 빗방울이 떨어질 뿐이다. 때문에 비가 오는 중이지만 우산 없이 걷는 사람이 더 많았다.

<빽빽한 옥수수 밭을 볼 날도 얼마 안 남았다.>

무려 4시간을 쉬지 않고 걸었더니, 등산화를 신은 발이 미칠 듯이 아려왔다. 결국 ‘살쎄다(Salceda)’라는 곳에서 멈추고, 아무데나 눈에 보이는 가게로 들어갔다.

배낭을 풀고 신발을 벗었다.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맨발로 차가운 대리석을 딛자마자, 뻐근한 통증이 온 몸으로 타고 올라왔다.

“여기 산티아고 케잌이 또 유명하다고 했었지…”

<산티아고 케잌을 먹기 전. 잔뜩 기대하고 있다.>

오렌지 주스와 산티아고 케이크, 그리고 맥주 한 잔을 시켰다. 7유로.

대부분의 Bar에서는 오렌지 주스를 시키면, 손님이 보는 앞에서 오렌지 두 개를 착즙기에 통째로 집어넣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껍질과 과육이 분리되고, 딱 한 잔 분량의 주스가 컵에 담겨 나온다. 그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침이 꿀꺽 넘어간다.

산티아고 케이크는 Tarte de Santiago라고 하는데, 내 입맛에는 별로였다. 이 지역에서 유명한 요리라고 하는데, 솔직히 보통의 빵과 크게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

한 번 앉으니 도저히 일어나기가 싫다. 무려 1시간 반을 앉아있었더니, 그 사이에 유이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앞서나간 게 무색해져 버렸다.

<멜리데를 지나, 무지개가 뜬 오 페드로쏘로… 남은 거리는 20.0km!!>

오늘 묵을 오 페드로쏘는 산티아고의 전초기지 같은 곳이다. 산티아고 도착 하루 전 순례자들이 묵어가는 마을은 크게 3곳이다.

‘산타 이레네(Santa Irene, 산티아고로부터 23km)’

‘오 페드로쏘(O Pedrouzo, 산티아고로부터 20km)’

‘몬테 데 고조(Monte de Gozo, 산티아고로부터 5km)’

25km가 하루 평균치라 보았을 때, 무난한 일정을 짠 사람이라면 대개 산타 이레네나 오 페드로쏘에서 하루를 보낸다.

몬테 데 고조는 산티아고 도착 직전의 야트막한 언덕(Monte de Gozo가 ‘기쁨의 언덕’이라는 뜻)인데, 주로 다음 날 아침 일찍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물론 약 37km 떨어진 아르주아 등지에서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정도를 걸어버리면 도착 시간도 늦고 피곤하기에, 마지막 날만큼은 여유를 두는 것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유이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

저녁 깜짝 파티를 해주기 위해 잔뜩 장을 봐 왔으나, 그녀는 그 사이에 깨어버린 건지 혼자 레스토랑에 가 있었다.

좋게 풀어보려고 했건만. 야속한 타이밍이다.

별 수 없이 나도 혼자서 저녁을 먹었다. 한 사람이 먹기엔 넘치도록 많은 양이었다.

꾸역꾸역 밥을 먹는 내내 생각했다.

“유이에게 좀 더 잘 해 줄 순 없었을까…”

유이와 함께 걸은 지도 10일, 뒤늦게 밀려드는 아쉬움이다.

식사를 마치고 내려오니 유이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서운함은 각자의 마음속에 묻기로 한 듯, 서로의 잘못을 탓하지는 않았다.

그저, 우리의 마지막 밤에 충실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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