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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⑬ – 문원기

「몸과 마음의 병」

2017.08.23.수, 순례 D + 24

라 라구나 – 싸리아

42.3km / 664.5km

새벽 4시, 수십 개의 카톡이 와 있었다. 급하게 출국하느라 한국에서 마무리하고 왔어야 할 서류를 누락해버린 것이다. 당장 오늘이 마감기한이란다.

PC 카페를 가든 한국인에게 노트북을 빌리든 일단 도시로 나가야 한다. 42km 앞에 ‘싸리아(Sarria)’가 있긴 한데… 문제는 여기가 산맥의 한가운데라는 것.

한참을 고민하다, 마침 일어난 유이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So, can you walk 42km today?”

“Yes!”

어제 일찍 잠들었던 유이는 다행히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가방을 메고 지체 없이 출발했다.

밤하늘에는 한가득 별이 떠 있지만, 발밑을 신경 쓰느라 시선을 위로 둘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두운 산길을 걸어, 약 한 시간 만에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에 도착했다.

오 세브레이로는 프랑스길을 통틀어 가장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해발 1430m인 폰세바돈보다도 높다. 고도가 높은 만큼, 프랑스길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 외곽에 나무가 없는 넓은 공터가 있으니, 별을 보실 때 참고하시길!

더군다나 마을 건물들이 굉장히 독특하게 생겼다. 회색벽돌에 버섯 같은 지붕!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올 법한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바로 이 마을을 스치듯 지나쳐야만 했다는 점이다.

오 세브레이로를 지나서는 기나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유이와 함께 속도가 쫙쫙 붙는다. 새까맣던 하늘은 어느새 쪽빛으로 물들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침이 오고 있다.

이 산맥을 끝으로, 남은 프랑스길에서는 더 이상 산다운 산을 만날 수 없다. 앞으로의 150km는 모두 완만한 야산이거나 평지이다. 마지막으로 내딛는 산길에 눈길을 줄만도 했건만, 급한 마음에 사로잡혀 앞만 보고 걸었다.

출발 세 시간 만에 산 중턱의 ‘빠르도넬로(Pardonelo)’에 도착했다. 어찌나 일찍부터 걸었던지, 아침 해가 이제서야 하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을 입구의 Bar에서 쉬어가기로 했지만, 나는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생각이 없다.

3시 안에는 도착해야 한다. 한국과 스페인의 시차는 7시간이기 때문에, 스페인의 오후 3시는 한국의 오후 10시이다. (한국의) 오늘 중으로 서류를 제출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42km, 그것도 산길을 9시간 만에 끝내려는 심산… 시작부터 무리한 욕심이었다.

난 결국 과자 하나만 손에 들고 길을 나섰다. 여러 부위의 근육을 동시에 쓰는 건 안 좋다더니, 길을 걸으며 무언가를 먹는 게 영 거북하다.

거북한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다. 코끝에 생전 처음 맡아보는 악취가 감돌기 시작했다. 아예 마을 전체가 정체불명의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갈리시아의 소똥지대가 시작된 것이다. 아니, 이건 그냥 똥냄새라기보다는… 마치 똥이 똥을 낳은 것 같다.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갈리시아 지방에서는 소떼와 함께 길을 걸을 때가 많다.>

갈리시아의 순례길은 목동이 소떼를 끌고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길바닥에 소똥이 가득하게 되고, 이를 밟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발밑을 보고 걸어야 한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이런 마을에도 알베르게가 두어 개씩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하루를 묵어갈 수 있다는 거지??

악취와 더불어, 계속되는 내리막 역시 체력을 빠르게 소진시켰다. 경사가 제법 심해 걷는다기보다 계속해서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리막길이 편하다는 것도 정도가 있지!!

처음에는 속도가 나니까 좋았지만, 이내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한다. 중간지점인 ‘뜨리아까스떼라(Triacastela)’마저 그대로 통과해버리자, 오늘의 체력을 벌써 다 써버린 것만 같았다.

<서쪽으로 길게 드리운 나무의 그림자가 이른 아침임을 말해준다.>

아름다운 길이었지만 나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오늘 먹은 음식이라곤 과자가 전부인데, 그나마도 걸어가면서 먹느라 제대로 소화가 되지 않고 있었다.

잠시 쉬고 있으려니 저 멀리서 종엽 형과 후즈키가 다가온다. 유이는 또 신이 났다. 나와 있을 때는 조용한데, 후즈키와는 끝없이 대화를 나눈다.

나랑은 왜 얘기를 하지 않는 거지??

“원기야, 너 괜찮아? 좀 피곤해 보이는데?”

“아…네. 괜찮아요.”

갑자기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유이의 관심을 가져가 버린 후즈키, 아무 것도 모르고 만담 중인 유이, 여지없는 한여름의 무더위…

“저 싸리아에 3시까지 도착해야 되서, 빨리 좀 걸어갈게요.”

물론 싸리아에 빨리 도착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순간에는 핑계일 뿐이었다. 그저 혼자 걷고 싶었다.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등 뒤로 당황해하는 유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분명 엉뚱한 데에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수많은 순례자들을 지나치면서도 ‘부엔 까미노’는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곳에선 무례하다면 무례하달 수 있는 행동이다.

한낮의 더위 탓인지, 코끝에서만 맴돌던 소똥냄새가 어느덧 몸속에 퍼져들 정도로 심해졌다. 안 그래도 고픈 배는 빈속에 거북해져만 간다.

조금씩 헛구역질이 난다. 차갑게 식어버린 몸에서는 불쾌한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헐어버린 코에서는 자꾸만 쌍코피가 흐른다. 코피의 비린내가 더욱 비위를 자극했다.

반년이 지난 지금도 이 때 생각만 하면 몸에 힘이 빠진다. 여름에 갈리시아 지방을 걸으시는 분들은 이 지독한 악취에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시기를 바란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결국 어느 쓰러진 나무 위로 주저앉고 말았다.

한 3분이나 쉬었을까, 걸어오는 유이의 모습이 보인다. 혼자 걷겠다는 내가 걱정되었던지, 후즈키네와 헤어지고 나를 따라붙었던 것이다.

반가움도 잠시, 나는 얼마 못가 구토를 해 버렸다. 먹은 것도 없는 내가 뱉어낼 것은 투명한 위액뿐이었다.

싸리아까지는 약 3km. 유이에게는 애써 괜찮은 척을 하며 버겁게 걸음을 옮겼다.

<당시의 기록. 싸리아까지는 소똥, 소똥, 또 소똥뿐이었다…>

싸리아에 간신히 도착해 알베르게 체크인을 마쳤다. 침대에 올라갈 힘조차도 없어, 그대로 방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자는 것도, 깨어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몇 시간을 누워 있었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화장실로 달려가 몇 번이고 위액을 뱉어냈다. 몇몇 순례자들이 노크를 했으나, 내 죽어가는 소리를 듣고는 그저 기다려 주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급격히 추워지는 것을 느꼈다. 몸살이다.

2층 침대까지 내 키만 한 사다리를 오르고 나자, 그나마 남아있던 모든 기력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다. 채 4시간도 자지 못한 채, 전날의 숙취와 예상 밖의 스트레스로 시작된 하루. 더운 날씨, 지독한 악취와 피로누적, 엉터리 식사로 인한 소화불량과 여자친구에 대한 짜증으로 범벅된 상태에서 42km의 산길을 쉬지도 않고 걸었다. 몸이 배겨낼 리가 없었다.

몸도, 마음도 아팠다. 제발 더 이상 구역질이 나지 않기를, 무사히 잠들 수 있기를 기도하다가 정신을 놓았다.

 

「막판」

2017.08.24.목, 순례 D + 25

싸리아 – 포르토마린

22.4km / 686.9km

 

잠은 정말이지 최고의 보약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언제 아팠냐는 듯이 몸이 멀쩡했다. 어제의 복통도, 어지러움과 현기증도, 몸살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유이가 사다 준 약을 먹고 푹 자기만 했을 뿐인데. 식욕도 다시 돌아왔다. 요거트, 바나나, 빵 등을 순식간에 먹어 치우곤 짐을 쌌다.

“렛츠 고, 유이!!”

싸리아는 산티아고 도착 전 마지막으로 지나게 되는 큰 도시이며, 까미노를 걷고 싶지만 시간이 얼마 없는 이들이 단기순례를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곳부터는 순례객들이 급격히 많아져 이전 구간에 비해 북적이는 길을 걷게 된다.

또 하나. 산티아고 도착 후 순례증서를 발급받으려면, 싸리아부터는 교통수단을 이용해 점프를 하면 안 된다. 다른 구간은 상관없다. 최소 100km만 걸으면 된다. 예를 들어, 부르고스 – 레온을 점프해도 증서를 받는 데는 지장이 없다.

4일동안 110km. 하루 정도는 여유를 부려도 되는 거리다.

오늘은 22km 떨어진 ‘포르토마린(Portomarin)’까지만 가기로 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물과 관련된 마을이며, 프랑스길에서 몇 안 되는 휴양도시이기도 하다.

커다란 강!! 나는 벌써부터 헤엄칠 생각에 몸이 근질거린다. 어제 사경을 헤매던 것은 벌써 까맣게 잊고 신이 났다. 유이만 어리둥절.

어제와 달리 마음도, 발걸음도 가볍다. 이제서야 갈리시아 지방의 경치가 조금 눈에 들어온다.

갈리시아 지방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은, 한 마디로 ‘평화로운 시골 숲 속’ 이다. 사방에 즐비한 소똥이야 두 말할 것도 없고, 가옥들도 세련된 벽돌집이 아닌 옛 것의 느낌이 물씬 난다.

물론 아름답지만, 나는 까미노에서 한 곳을 스킵해야 한다면 이 갈리시아 지방을 거르기를 추천한다. 내 기준에서는 가장 감흥이 없는 곳이었다. 타 지역에 비해 날이 흐리거나 비가 많이 오는 기후이기도 하고.

물론, 이 당시 내가 스페인에 너무 익숙해져서 감동의 역치가 올라간 것일 수도 있다.

<유이는 전생에 강아지였던 게 틀림없어…>

어제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무리하지 않기’다. 고작 1~2유로를 아끼기 위해 과자로 점심을 때웠고, 고작 몇 십 분 일찍 도착하기 위해 몸을 고생시켰다.

그 결과 10유로가 넘는 비싼 약을 사 먹어야 했고, 하루 종일 침대에서 끙끙 앓으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결국 시간도, 돈도 더 낭비한 셈이다.

유이가 지친 기색을 보이자 지체하지 않고 Bar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한 쪽 벽에 인상적인 그림 하나가 걸려 있다.

<’쎄라(A Serra)’의 Bar에 가면 볼 수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내 버킷리스트가 된 이후로, 상상 속에서 그려오던 바로 그 순례자의 모습이었다. 허름한 옷에 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짚고, 달빛을 받으며 으슥한 숲길을 지나는 것.

실제로 지난 25일 간 나의 일상으로 거듭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순례자들이 이런 차림인 것은 아니다. 싸리아부터 딱 100km 정도만 걷는 단기순례자들은 상대적으로 배낭과 옷차림이 간소하다.

종종 길을 걷다 마주치는 이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Buen Camino! Where did you start?”

“From St.Jeans, almost a month ago.”

“Wow!! You’re amazing!!”

의외로 생장에서부터 걸어온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알베르게나 성당에서 방명록을 보다 보면, 생장 출발은 전체 순례자의 20%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75% 정도는 빰쁠로냐, 부르고스, 레온 등의 대도시에서부터 부분적으로 걷는 사람들이며, 나머지 5%는 국경과 국경을 넘어 수 천 km를 걸어오는 걷기의 달인들이다.

하기야 생각해 보면, 유럽 사람들에게 까미노는 꼭 한 번에 끝까지 걸을 필요가 없는 길이다. 유럽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니, ‘이번에 며칠 걷고 나중에 또 오지 뭐’라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마치 한국에서 이번엔 강원도 가고, 다음에는 경상도 가고.. 이런 것처럼.

갈리시아 지방을 걷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바로 방향 표시석에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적혀 있다는 것이다.

어제 싸리아까지 오던 길에는 150km, 135km, 127km, 116km…

오늘은 110.8km, 108.2km, 105.63km, 103.052km….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이윽고 한 표시석을 마주하게 된다!

<산티아고까지 100.000km!>

고 3 시절, 수능 D-100 이 깨지던 날의 느낌이 이랬었던가. 700km, 600km, 500km… 앞자리가 점차 줄어들어도, 어쨌건 지금까지는 늘 세 자릿수였다.

그런데 이제 산티아고까지 고작 100km도 안 남았다는 것이다.

까미노를 걸으며 거리개념이 놀랍도록 확장되었다.

과거에는 지하철역 하나를 걸어가는 데도 비장한 마음을 먹어야 했다. 학교에서 놀다가 막차가 끊겨버리면 세상도 끝나는 줄 알았다. 우리 집과 대학교까지의 거리는 약 10km 정도.

군대 행군이나, 제주 올레길을 걸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행군이나 올레길 코스 하나의 길이는 는 평균 15km 정도. 당시의 나는 ’15km를 도대체 어떻게 걷냐’며 동료 훈련병들과 함께 불평불만을 늘어놓았고, 올레길은 한 코스를 이틀 치로 쪼개어 걸어야만 했다.

그런데, 한 달 사이에 100km가 나에게 ‘고작’으로 느껴지는 거리가 되었다.

까미노에서의 많은 것들이 불가능해 보였으나, 그것은 내가 시도해보지 않고 지레 집어먹은 두려움일 뿐이었다.

귀국 후에 걸어서 등교를 해 보았다. 한강다리를 넘어 서울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르는 길인데, 3시간이 약간 덜 걸렸다. 자전거로는 1시간.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가졌던 두려움은 그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

새로운 경험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책, 친구, 운동, 음악… 무수히 많은 ‘새로움’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인간에게 가장 큰 자극을 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여행’이다. 아예 나 자신을 낯선 공간에 놓아버리는 과감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간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왔을 편견과 선입견, 실체 없는 두려움들이 무참히 깨져 나갔다.

무수히 많은 자극들이 매일같이 주어지는 가운데, ‘눈과 귀를 막고 살아가는 것이 과연 현명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 앞의 스펀지처럼, 한 없이 내 것으로 빨아들이기만 하기에도 모자란 것이 시간이요 인생 아니냐는 것이다.

<주인과 함께 길을 걷는 강아지들>

도착이 가까워질수록 들뜰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기쁨과 슬픔이 공존했으며, 오히려 이즈음에는 아쉬운 마음이 더 커져갔다.

나의 순례가 끝나간다는 것. 이 아름다운 길을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길은 예정된 이별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러나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오늘도 여전한 소똥냄새가 나의 감수성을 흐트려 놓는다. 당장 오늘의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얼른 다음 마을에 도착해 쉬고 싶은’ 현실적인 욕망들이다.

포르토마린으로 가는 길은 ‘피터 팽크(Peter Pank)’라는, 아주 특별한 가게를 지난다. 까미노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인데, 놀랍게도 한국 라면을 취급한다. 신라면, 너구리, 안성탕면, 불닭볶음면… 이 길을 걷는 한국인들이 정말 많긴 한가 보다.

침이 꼴깍 넘어갔으나, 매운 걸 먹지 못하는 유이가 있어 그냥 지나쳤다.

숲길이 끝났다. 맑은 하늘 아래, 하늘의 빛깔을 머금은 무언가가 땅에서 너울거린다. 강이다!!

<포르토마린 전경. 거대한 다리 하나를 건너야 한다.>

프랑스길에서 만나는 강 중, 아마 가장 넓지 싶다. 로그로뇨의 강보다도 훨씬 거대하다.

그러나 이 강에서 수영을 할 거라던 기대는 완전히 접어야 했다. 물이 생각보다 너무 더러웠기 때문이다. 저 곳에서 피부병에 걸리느니 차라리 배드버그에 내 피와 살을 내어주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이 계단만 오르고 나면 마을이 등장한다.>

마을의 테마가 흰색인 듯, 건물들이 온통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산토리니를 가보진 않았지만, 대충 산토리니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 완벽한 휴양도시다.

공립 알베르게에 예약을 하고, 혹시 몰라 마을에 수영장이 있는지를 물었다. 보자.. 수영장이 스페인어로… ‘Piscina’!!

“Perdon, Piscina…aqui?? Donde?? (실례합니다. 수영장…여기? 어디?)”

“Si! @#^@!$^@#@#”

“(못 알아들음) Gracias!! Quanto es?? (감사합니다! 얼마인가요?)”

“Dos euro!!! (2유로!!!)”

아이처럼 좋아하는 나를 보고 유이도 웃는다. 그녀는 수영복도 챙겨오지 않았고, 또 피곤한 터라 같이 저녁을 먹은 후 먼저 들어가 쉬기로 했다.

<‘콤비나도(Combinado)’. 파스타, 햄버거, 샐러드 등이 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입이 짧은 유이 것까지 조금 덜어 먹었다. 물속에서 놀려면 많이많이 먹어야 한다.

포르토마린 공립 수영장은 고작 2유로의 요금으로 하루 종일 이용이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가족끼리 오는 경우도 많은 듯.

나보다 한참 어린 꼬맹이들이 물을 자유롭게 휘젓고 다닌다. 다이빙까지 하고 난리가 났다.

<공립 수영장. 8시까지 운영하며, 2유로면 시간제한 없이 즐길 수 있다.>

2시간 정도 물속에 있었을까. 퇴장 시간에 맞춰 시내로 돌아오니, 먼저 들어가 쉴 거라던 유이가 아직 Bar에 있다. 다른 일본인들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그녀.

유이는 일본인을 만날 때마다 얼굴이 밝아졌다. 아무래도 자신의 언어로 대화할 사람이 간절했을 것이다. 나도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유이는 고작 스무 살 아니었던가.

중년의 사유리는 무려 6개 국어를 한다.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물론 원어민 수준은 아니지만, 여행 다니기에는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언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소통의 근간이 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나와 유이가 하나의 언어로 좀 더 깊은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