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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⑫ – 문원기

「대신 택한 행복」

2017.08.21.월, 순례 D + 22

폰페라다 – 까까벨로스

17km / 588.8km

원래 오늘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Villafranca del Bierzo)’까지 25km 정도를 걸을 예정.

그러나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어제 계속해서 험준한 산지를 걸었던 게 화근이다.

유이에게 끙끙 앓으며 말했다.

“우리.. 까까벨로스(Cacabelos) 까지만 가자!!”

까까벨로스까지는 겨우 17km. 급격하게 마음이 가벼워진다. 간사한 사람 마음 같으니라고…

사실 나는 매일 30km 정도를 걸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7일 뒤에 산티아고에 도착해야 하는데 남은 거리는 207km. 오늘 17km만 걸어버리면 6일간 190km가 남아있게 된다.

메세따 지역에서 지나치게 천천히 걸었던 것이 결국 이런 곤란한 상황을 초래했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은 거리와 다음 마을까지의 시간을 계산하게 된다. 며칠 동안 몇 km를 걸어야 하는지, 오늘은 어떤 마을에서 묵어야 할지를 신경 안 쓰기가 어렵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어디를 둘러볼까’, ‘저녁은 뭘 먹지’, ‘몇 시부터 일지를 쓸까’ 등 계획은 자꾸 늘어만 간다.

복잡하고 계획된 삶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떠나온 곳에서, 어느새 다시 계획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발견했다.

<동틀 녘, 템플 기사단의 성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는 나>

폰페라다를 벗어나는 순례길은 커다란 성을 지난다. 중세 템플 기사단의 본거지가 되었던 Castillo de los Templarios 다.

기사단은 과거의 순례자들을 강도 등 다양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길 곳곳에서 기사단의 흔적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붉은 십자가!!

피곤에 시달리는 유이가 안쓰럽다. 마호, 나나와 다닐 때는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을 텐데.

명색이 커플인데, 변변찮은 음식만 먹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눈앞에 보이는 디저트 카페로 그녀를 끌고 들어가 큼지막한 아이스크림 하나를 시켰다. 까미노에서 먹는 첫 아이스크림!! 행복한 듯 생글생글 웃는 유이. 내심 아이스크림이 많이 먹고 싶었던가 보다.

난 거의 입에 대지 않고, 그녀를 물끄러미 지켜만 보았다.

<까까벨로스 알베르게. 객실이 일직선으로 쭉 늘어서 있다.>

까까벨로스 알베르게는 프랑스길에서 가장 독특한 알베르게 중 하나다. 60개가 넘는 2인 1실의 방이, 성당을 가운데에 두고 ㄷ자 모양으로 쭉 둘러싸고 있다.

성당과 ㄷ자 사이 공간에 마당과 샤워실, 빨래터 등이 있으며, 마당 한 쪽에는 이전 순례자들이 놓고 간 물건들도 있다.

상당수의 알베르게에서는 순례자들 간의 나눔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두고 있다. 자신에게 필요 없는 것을 두고 갈수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챙겨 갈수도 있다.

나는 론세스바예스에서 반바지를 한 벌 가져왔고, 까까벨로스에서는 선크림을 한 통 챙겼다. 물론 나도 무릎 보호대, 물티슈 등을 기부했다.

걷다 보면 반드시 자주 사용하는 것과 거의 쓰이지 않는 물품이 나뉘기 마련이다. 이때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

지나친 무게는 결국 자신을 옥죄어 온다. 과감한 결단을 통해 버릴 줄 아는 용기를 실천할 필요가 있다. 피스떼라에서는, 심지어 자전거를 기부하는 순례자도 보았다.

<어두운 방 안을 비추는 전등>

오후 한 시. 아직 하루가 한참 남아있었지만, 지친 우리는 그대로 방 안에 들어섰다.

2인 1실의 좁고 어두운 방. 유이와 나는 전등을 사이에 두고… 양쪽 침대에 누워 있다.

눈이 마주쳤다. 창문도 없는 방 안엔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하나뿐인 전등은 어둠을 제대로 몰아내지 못하고 있다.

바깥과 방 안의 어둠이 같아지는 시간까지, 짙은 잠을 청했다.

그녀와 함께, 대신 택한 행복이었다.

마당에서 두런대는 소리에, 오후 9시가 다 되어서야 바깥으로 나왔다. 마침 배도 고프고.

현성형네, 낯선 한국인 두 명, 그리고 후즈키라는 일본 청년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와 유이, 동시에 흥분해서 달려간다.

“현성 형!! 또 보네요!!, Bo, 샤오쉬엔! 하이!!”

“Are you Japanese?! 니혼진 데스까??”

한중일이 모인 아시아인 파티가 벌어졌다. 유이는 일본어로 얘기할 상대가 무척 그리웠는지, 요 며칠간 본 모습 중에 가장 신나 보인다.

하긴, 나야 계속해서 한국인들을 만나며 한국어를 써 왔으니까.

“원기 너 결국 이 친구랑 같이 걷기로 했나보네?”

“네, 산티아고까지 같이 갈 거 같아요.”

“그래, 잘해 봐. 그런데 너 오늘 다이빙 했어?”

“에에? 무슨 다이빙이요?”

“어, 너 여기 올 때 강 안 건넜어? 거기 다 하잖아 사람들.”

다이빙…???…!!!

당장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강가로 달려갔다. 9시가 넘었음에도 꽤 많은 이들이 남아 있었다.

분명 낮에 건너왔던 다리인데, 왜 몰랐던 거지? 다리 밑도 살펴보지 못 할 만큼 피곤했었나.

낮이 긴 스페인에서조차 이미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을 시각.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일단 뛰어들고 보았다. 40도에 육박하는 한여름의 순례길, 4주 만에 처음 느끼는 시원함이었다!!!

스페인 꼬마들이 그런 나를 빤하니 쳐다보더니, 갑자기 다리 밑으로 헤엄쳐 간다.

벽돌로 된 다리 기둥을 타더니 보란 듯이 끝까지 오르는 녀석. 낮게 봐도 7m의 높이다.

설마… 훌쩍!!

<소년, 날다!!>

<높이는 대략 이 정도>

<난간 위에서 찍은 낙하 순간>

자유형도 제대로 못 하는 내가, 까미노에서 다이빙을 할 거란 생각을 해 보았을 리 없다.

그러나 나는 이미 무언가에 홀린 듯 다리를 뛰어올라가고 있었고, 낙하지점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아득한 높이감을 느끼기 작했다.

빠른 속도로 현실의 나로 돌아오고 있었다. 두려움이 호기심보다 커지기 전에 시도해야 했다. 심호흡을 하고 난간을 넘자, 발 디딜 공간이 고작 10cm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스페인 꼬마들에게 어디로 떨어져야 되는지 물었다.

“Here? …. Safe?”

“Yes! 3 meters to the bottom! Don’t worry.”

한 손엔 핸드폰을 꽉 쥐고, 다른 손으로는 성호경을 그었다. 성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나님, 제가 천주교 신자였던 거 아시죠. 여기서 성당 많이 못 다녀서 죄송합니다.

아이고, 유이야 살아서 보자!!

흡사 자이로드롭을 처음 탈 때의 기분이었다. 떨어지는 순간, 온 몸의 감각이 모조리 깨어나며 극대화되는 것을 느꼈다.

영화 주인공처럼 멋지게 떨어지는 건 완벽히 실패했다. 거의 전신으로 곤두박질 친 모양인지, 엄청난 충격을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버렸다.

몸이 가라앉는 게 무서웠지만, 이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면에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지자 고개를 내밀어 숨을 쉬었다. 살아 있구나.

온 몸이 얼얼하고, 마음도 얼떨떨하다. 강가로 헤엄쳐 나오니 꼬마들이 박수를 쳐준다. 설마 진짜 뛰어내릴 줄은 몰랐나 보다.

얼얼함이 물러나고 나니 극도의 쾌감이 찾아왔다. 성공했다!!!!

이 날, ‘도전’과 ‘용기’의 뜻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

까미노에서 품었던 각오 중 하나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다양한 것에 도전해보자’였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에 도전할 때, 자신을 몰아세우는 거창한 각오가 필요하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저 어떠한 도전 앞에 놓여 있는 ‘한다’와 ‘안 한다’의 선택지 중에, ‘한다’를 선택하고 담담히 실행에 옮기면 되는 것이었다.

숙소로 돌아가 현성 형, 유이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까미노의 기억에 ‘다이빙’이 추가되었다.

 

「스퍼트」 

2017.08.22.화, 순례 D + 23

까까벨로스 – 라 라구나

33.4km / 622.2km

 

현성 형네와 같이 걷기로 한 날. 6시경에 일어나 형이 건네주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어제 17km를 걸어 까까벨로스에서 묵은 것에 대해 절대 후회는 없었지만, 어쨌건 나는 오늘부터 6일 간 190km를 걸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오늘은 산 정상에 있는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까지는 가야 한다. 약 38km.

나, 현성 형, 유이 셋 다 걸음이 빠른 편이다. 나는 급한 성격 탓이고, 현성 형은 다리가 워낙 길고, 유이는… 설명 불가능한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 생활체육으로 다져진 건가? 셋이 초반부터 스퍼트를 내 버리는 바람에, 애꿎은 Bo와 샤오쉬엔만 죽어나갔다.

까까벨로스를 빠져나오고 나면 오랜만에 포도밭을 마주하게 된다. 나헤라에서 봤던 것만큼 넓은 규모의 포도밭이 지천에 깔려 있다.

다만 그 시절의 포도가 아직 덜 영근 초록빛이었다면, 이곳의 포도는 완연한 보랏빛을 머금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이다.

어느새 4주차 화요일이다. 다가오는 일요일, 나는 산티아고에 있을 것이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태양이 포도로 가득한 벌판을 붉게 물들인다.

<포도밭에 내려앉는 아침햇살>

핸드폰을 꺼내 들고 아침에 어울리는 잔잔한 피아노곡을 틀었다. 괄괄한 성격의 현성 형이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노래가 좋다며 반긴다.

덕분에 걷는 길이 한층 화목해졌다.

<길도, 길 위의 순례자도 한껏 발갛게 달아오르는 시간>

걸음걸음 남기고 온 마음들이

대신 길 가의 꽃향기 한 움큼씩 채 왔네.

곧 지워질 발자국 내 주는 대가로는

지나치게 과분했기에 미안함이 앞서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 산 속에 숨겨진 요새 같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마을이라더니 과연. 산 속에 요새처럼 숨겨진 중세 도시 느낌이 물씬 든다.

이곳에는 ‘용서의 문(Puerta del Perdon)’ 이라는 것이 있다. 피치 못할 사유로 까미노 완주를 못하는 순례자가 이 문을 지나면, 산티아고까지 간 것으로 인정을 해 준다고 한다.

이 마을 역시 가운데로 강이 흐르는데, 하류에는 수영할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일정상 빠르게 지나쳤지만 여러모로 매력적은 마을임은 틀림없다.

비야프랑카를 벗어나면 계곡 사이의 좁은 길을 걷게 된다. 마치 우리나라의 강촌이나 영동고속도로가 떠오르는 길인데, 스페인에서 이런 한국적인 풍경을 맞이할 줄은 몰랐다.

오늘따라 유난히 힘들어 보이는 유이. Bar에 도착하자마자 엎드려 잠이 들어 버렸다. 깨어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낮은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라고 멀쩡한 것은 아니다. 어디서 피 냄새가 나나 했더니 쌍코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즈음 나는 매일 코피를 흘렸다. 몸이 보내는 신호지만, 걷는 걸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디 관절이 못 쓰게 된 것도 아니고. 단순히 피곤한 거니까 그러려니 했다.

‘루이떼란(Ruitelan)’이라는 작은 마을 입구. 길옆의 작은 샘물이 참 시원하고 깨끗해 보인다. 아직 산의 그림자도 밟지 못했건만 시원한 물 앞에서는 그저 천하태평이다.

<물 만난 물고기!!>

다리에서 시작해 무릎, 허리… 아예 잠수를 해 버렸다.

물은 결코 지나치기 힘든 강력한 유혹이다. 어제 다이빙까지 했다지만,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다.

8월에 까미노를 걸어보면 내가 하는 짓(…)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온 몸을 물로 가득 적셔 봤자, 걷다 보면 한 시간도 안 되어 다 말라 버릴 만큼 더운 날씨다.

한 달 내내 덥다, 덥다 노래를 부르면서 살았지만, 막상 그 더위가 밉거나 피하려 안간힘을 쓴 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땀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현기증이 나면 나는 대로 태양 아래서의 발걸음을 즐기곤 했다.

지나고 보면 더위조차도 내 까미노에서의 소중한 추억 중 하나였다. 더위 앞에서 망설이기보다는, 올 테면 와 보란 식으로 물을 흠뻑 적셔가며 미친 듯 걸어보기를 바란다.

 분명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작은 쉼터에 물감과 붓, 팔레트 따위가 구비되어 있다.>

자그마한 쉼터 앞, 자신만의 ‘세요(Cello = 스탬프)’를 그릴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YOLO’라고 썼다.

사실 이 말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욜로’라는 단어가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한 번 뿐’이기에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거나, ‘인생은 한 번 뿐’이기에 아무렇게나 막 살거나. 당연히 내가 추구하는 바는 전자이다.

물론 후자는 지양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이 용어 자체에 적대감을 가지지는 말라고 하고 싶다. 충분히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한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다시금 마주한 산맥. 오 세브레이로는 산꼭대기에 있다.>

이젠 정말 부릴 여유가 없다. 3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산에 진입조차 못했으니, 유이와 함께 더 이상 쉬지 않기로 다짐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이 산은 피레네나 깔따브리야 산맥과는 다르다. 한국의 여느 산 못지않게 경사가 제법 심해서, 마치 군대에서 행군하는듯한 기분이었다.

유이가 빠르게 지쳐간다. 조금씩 숨을 몰아쉬더니, 이내 얼굴이 붉어지며 걸음을 멈춰버렸다.

가방을 대신 짊어 맸다. 대신 걸어줄 수는 없는 길이니,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간신히 ‘라 파바(La Faba)’에 도착했다. 마을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산중턱의 자그마한 촌락이다. 유이를 잠시 쉬도록 앉혀두고서는 알베르게를 찾았다.

누리 형, 혁 형 그리고 현성 형네가 이미 와 있었다. 시설은 꽤나 좋아 보이는데, 어떡하지…

“여기서 묵을 거야?”

“…아뇨. 저희는 더 갈게요. 좀 빨리 걸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이게 마지막이겠네. 산티아고까지 조심해서 가라.”

형들과의 담담한 마지막이었다.

한 무리의 소떼가 불쾌한 소똥 냄새와 함께 옆을 지나쳐간다. 이 산을 기점으로 레온 지방이 끝나고 ‘갈리시아(Galicia)’ 지방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갈리시아의 소똥은 정말 유명하다.

오 세브레이로의 알베르게가 만실이라는 소식에, 결국 그전 마을인 ‘라 라구나(La Laguna)’에 묵기로 했다. 유이는 씻지도 못하고 기절하듯 잠들었고, 나 혼자 1층의 Bar로 내려갔다.

카운터 앞에서 망설이던 내게, 한 노년의 신사가 다가오더니 선뜻 맥주 한 잔을 사 주셨다.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기품 있게 생기고 잘 차려입으신 분이다.

호주에서 온 피터,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60대이시다. 무려 여든이 넘으신 노모와 함께 까미노를 걷는다는데, 그녀는 내가 만난 순례자 중 최고령이다.

하루에 10km 남짓을 걷는 더딘 여정.. 두 분은 내 두 배의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고 계셨다.

예순, 혹은 여든이 넘어 이 길을 걷는 이유는, 또 느낌은 무엇일까.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학교를 잘 다니지 못해 평생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피터. 배움의 정도와 사람에게서 우러나오는 기품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이 길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들이 무사히 산티아고에 도착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금의 몸 상태에는 맥주 한 잔조차 버거웠는지, 급격하게 취기가 돌았다. 몸을 못 가눈 채로 간신히 침대에 올랐다.

까미노 최악의 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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