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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별들이 춤추는 들판으로,산티아고 순례길 ⑪ – 문원기

「복잡미묘」

2017.08.19.토, 순례 D + 20

아스토르가 – 폰세바돈

25km / 543.9km

며칠 째 잠이 모자라다. 도착한 후의 시간을 대부분 낮잠으로 채워야 할 판에, 유이와 보내는 시간마저 늘어나고 있다.

까미노는 분명 전 세계의 도보여행지 중 난이도가 낮은 편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냐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당장 지하철 역 한 정거장만 걸어서 이동해도 진이 빠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인데.

한 달간 물집 때문에 피가 철철 나고, 작은 신발 탓에 뒤꿈치가 다 터져 나가고, 길이 힘들어 울기까지 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하지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위험한 코스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6살짜리 꼬마도, 여든이 넘은 할머니도 모두 나의 동행이었다.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다소간의 고통을 모두 덮고도 남을 매력이 넘치는 길이기에, 충분히 도전할 만 하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잘까 망설이던 와중에, 서글프게 울면서 방으로 들어오는 유이. 그녀는 마호와 나나의 기분을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방에 찾아갔다 오는 길이다.

왜 항상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것인지…! 순간 온갖 잠이며 피로가 다 날아갔다.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셋이서 걷기로 약속했던 길인데, 왜 멋대로 떨어져 나가느냐’

마호와 나나의 화살 끝은 살벌하게 유이를 향하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서 내가 갖는 책임 역시 결코 작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둘만의 시간이 중요했다 한들, 그녀들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 것이다.

둘은 따로 걷겠다고 통보를 해 왔다. 그 냉랭하던 표정이 잊어지질 않는다.

나도 마음이 혼란했지만, 일단 유이를 빠르게 데리고 나왔다. 둘보다 무조건 앞서가야 했다.

아스토르가를 벗어날 때까지 유이의 얼굴과 발밑만 보며 걸었다. 유이도 속도를 내고 싶어 했다.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괜찮을 리가 없다.

사이에 끼어든 것은 나다. 셋은 와이파이도, 화장품도, 돈도, 귀국 행 비행기 표도 공유하고 있었다. 학교와 전공마저 같은 그들에게는 당장 2주 후의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어긋난 채로 어떻게 비행기 옆자리에 앉아 갈수 있단 말인가.

‘늦을수록 회복되기 어렵다. 어떻게든 화해를 시키고, 셋이 같이 걷도록 해야 한다’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지만, 이런 생각을 지금의 유이 앞에서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날씨, 풍경, 음식, K-pop… 무슨 얘기를 해도 별 반응이 없는 유이. 답답한 마음에 한국어로 아무 말이나 막 던져 버렸다.

“아~~ 유이 바보 멍청이~~!”

의외로 유이가 관심을 보인다. 무슨 말이야, Moon?

“하하, It’s secret!!”

그녀가 조금 웃더니, 갑자기 일본어를 속사포같이 쏟아낸다. 나 역시 알아들을 리가 없다.

그렇게 각자의 언어로 아무 말 대잔치를 했다. 다행히 유이의 기분이 조금씩 풀려가는 것이 보였다. 고마워…

두 시간을 내리 걸었다. 조금 쉬어도 따라 잡히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기 위해서다.

마호, 나나와 만날까봐 일부러 아침 식사도 가게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먹는 둥 마는 둥, 유이는 엎드려 잠이 들어 버렸다. 나 혼자 딱딱한 바게뜨를 씹어 삼켰다.

날은 흐렸고, 고도는 조금씩 높아져간다. 도로는 흙길로, 숲길로, 다시 산길로 접어들었다. 정처 없이 걷던 우리 앞에 ‘라바날 델 까미노(Rabanal del Camino)’가 나타났다.

<라바날 델 까미노 입구>

원래 셋은 오늘 여기 묵기로 했었다. 마호와 나나도 머지않아 도착할 것이다. 어려운 주제였지만, 지체하지 않고 얘기를 꺼냈다.

‘너희는 결국 함께 걸어야 해. 하루하루 늦어질수록 더 되돌리기 어려워질 거야’

유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긴 했다.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가고 나면, 잔뜩 화난 둘을 혼자서 맞이해야 할 유이는 어떤 기분일까. 그렇다고 내가 그 사이에 끼어서 중재를 하는 건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었다.

알베르게 앞, 말없이 앉아 있는 우리 곁으로 비틀즈의 음악이 잔잔히 흘러 지나간다. ‘Let it be’다. 무엇을 놓아 주라는 걸까.

<심란한 마음에는 피로도 더욱 빨리 찾아왔다. 발 통증에 잠시 신발을 벗었다.>

결국 힘든 작별을 했다.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유이는 웃음만 지어보였다. 사랑한다는 표현엔 적극적이었으나, 힘든 건 결코 내색하지 않으려 하는 친구였다.

걸음을 재촉했다. 난 오늘 ‘폰세바돈(Foncebadon)’까지는 가야한다.

어느 새 해발 1,000m를 넘었음에도, 더위가 꺾일 생각을 않는다. 오히려 무성했던 나무그늘만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산을 오르고 있자니 문득 순례 첫 날이 생각난다. 피레네도 어느덧 3주 전의 일이다.

물론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까매졌고, 걷는데 익숙해졌으며, 수많은 이들을 만났다. 경험과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대가로, 내게 남은 길은 점차 줄어들어간다.

언뜻 세어 봐도 20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무리지어 걷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뭐지?? 그냥 지나치기 뭐해서 한 명과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알고 보니 프랑스길 중 종교적 의미가 깊은 곳만 골라서, 일주일 간 단기순례를 하시는 분들이라고 한다. 오늘은 8km를 걸어서 ‘철 십자가’까지 가신다고. 그게 뭐지?

내가 생장에서부터 걸어왔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신다. 놀라실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부러워하신다. 그 길을 다 걸을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라며.

입장을 바꿔 보았다. 내가 만약 단기 순례 중인데, 생장에서부터 걸어온 이를 만난다면?

아마, 나도 그가 미칠 듯이 부러울 것이다. 8km만 걸어도 이렇게 좋은데, 800km라니! 그 긴 여정에서 보고 듣고 느꼈을 것들이 무엇일지… 그저 동경하며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새로웠던 경험도 반복되면 일상이 되고, 이내 거기에 둔감해진다. 내게 주어진 소중한 이 시간, 나에게 까미노를 허락한 건강한 육체와 정신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폰세바돈은 프랑스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마을 중 하나다. 물론 좋은 쪽으로!!

사실 공감 못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직접 와서 보면 이렇게 황폐한 곳이 또 없기 때문이다. 망해가던 마을이 까미노 덕분에 간신히 살아났으나, 여전히 순례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시설을 제외하고는 군데군데 쓰러져 가는 폐가가 전부인 곳이다.

<폰세바돈의 식당. 중세식 요리 스타일을 고수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가? 해발고도 1,400m. 사방이 뻥 뚫린 높은 고원에 위치한 황량한 마을!! 하룻밤 머물기에 이보다 로맨틱한 곳이 어디 있으랴.

숙소도 일부러 가장 뷰가 좋은 곳으로 잡았다. Cruz de Fierro.

침대에 누워 있던 종엽 형이 나를 반긴다. 형은 ‘피곤해 죽겠다’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막상 매일 아침 나보다 먼저 일어나 길을 나서고 있다. 낮잠으로 체력을 충분히 회복해서인가?

샤워를 하던 중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어제 오늘 조금 간지럽다 싶더니, 내 몸의 오른쪽에 빨간색 반점 수십 개가 박혀 있었다. 배드버그다!!!!!!!!

당장 온 몸을 뜨거운 물로 지지고, 타월로 박박 긁어냈다. 샴푸질을 세 번도 넘게 했다.

반바지 한 벌만 입은 채로 나머지 모든 의복류와 침낭, 배낭까지 건조기에 집어넣었다. 건조기에 돌릴 수 없는 것들은 휴지에 알콜 세정제를 적셔 닦아내고, 일광소독까지 했다.

누가 봐도 배드버그에 물린 사람이었다. 상의를 걸치지 않아 붉은 반점이 그대로 보였을 것이다. 자칫 옮을까봐 나를 피하려는 시선이 느껴지자,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입을 옷도 없고, 내친 김에 앞마당에서 태닝을 하기로 했다. 한 번 멋지게 태워보자!!
햇살이 강했지만, 선선한 산바람이 불어와 어느 정도 견딜 만 했다.

“이야…날씨 좋다…”

폰세바돈은 정말 매력적이다. 이 길을 다시 걷게 된다면 꼭 재방문 하고 싶은 곳 중 하나다.

<해질녘의 폰세바돈>

유이에게 연락이 왔다. 도저히 셋이서 못 걷겠다고, 나와 함께 걷겠다고 한다.

‘정말 괜찮겠냐, 충분히 고민했느냐’고 묻는 내게 그녀의 대답은 Yes. 내일 부지런히 걸어 나를 따라잡겠다고 한다.

마음이 소용돌이친다.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어 일지를 접었다.

 

「어느새」

2017.08.20.일, 순례 D + 21

폰세바돈 – 폰페라다

27.9km / 571.8km

말 그대로 ‘산중의 아침’이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아침을 먹기 위해 주방에 들어섰다.

테라스 커튼을 살짝 젖히니, 바깥 하늘엔 아직 짙은 어둠뿐이다. 아침이 아니라 새벽이지 참.

아침을 잔뜩 챙겨먹고 내친 김에 점심까지 챙겨가기로 했다. 딸기잼, 복숭아잼, 버터, 다시 딸기잼. 총 4쪽의 토스트를 만드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몇몇 이들이 테라스 밖에 우두커니 서 있다. 새벽하늘이 또 다시 마법을 부리나 보다.

로스 알고스의 하늘, 산 볼의 하늘, 꾸에사의 하늘. 그리고 이 곳 폰세바돈의 하늘. 훗날 보게 된 피스떼라의 하늘까지. 나의 까미노를 관통하는 주된 키워드 중 하나는 ‘하늘’이었다.

저 넓은 캔버스를 저렇게 자유자재로 써대다니, 우리 머리 위에서는 매일 밤 값을 매길 수 없는 명화가 그려졌다 지워지기를 반복하는 셈이다.

하늘만 바라보며 걷다 정신을 차릴 때쯤, 우뚝 솟은 거대한 기둥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철 십자가(Cruz de Ferro)’다.

어제 만났던 한국인 단기순례자들. ‘철 십자가까지 간다’고 하더니, 여기를 말하는 거였구나!

먼 옛날엔 신을 받드는 제단이었으나, 중세에 십자가가 세워진 이후로 순례자들에게 큰 의미를 지니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자신의 고향에서 가져온 물건을 매달거나, 돌을 놓으며 소원을 비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높은 돌무더기가 다 순례자들이 놓고 간 돌멩이인건가??

다시 길을 나서다 뒤를 돌아보니, 떠오르는 아침 해를 등진 십자가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십자가도, 그 밑에 돌을 놓는 순례자도 하나의 검은 실루엣이 되어 있었다.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두고두고 아쉬워 할 순간이었다.

<여명을 등지고 검게 물든 철 십자가와 순례자.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철 십자가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산속의 마을 ‘만야린(Manjarin)’을 지난다. 사실 마을이라고 볼 수도 없는… 폰세바돈보다도 훨씬 더 황폐한 곳이다.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 집 한 채가 서 있는데, 안에선 기부제로 커피와 기념품 등을 판다.

<신령하거나, 아니면 음험하거나. 만야린!>

이 허름한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누리 형과 혁 형을 만났다. 어제 유이랑 같은 알베르게에 머무르셨는데, 벌써 여기까지 오신 건가? 혹시 몰라 물어본다.

“형님들, 혹시 유이 보셨나요?”

“유이씨 저희보다 훨씬 빨리 갔어요! 저기 앞에 있을 텐데?”

유이는 작정하고 속도를 내고 있었다. 나도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내 앞 여성 2명의 낯이 익다. 그라뇽 가던 길, 내게 아름다운 폴란드 민요를 선사해준 분들이었다. 그녀들의 가방 한 쪽엔 여전히 우쿠렐레가 매달려 있다.

그들도 나를 알아봤던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후후, 나는 마그다에게 폴란드어를 배웠지!!

“Cześć!! (안녕!!)”

“?! (당황)”

“Jestem szczęśliwy!! (나는 행복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How do you know that?”

“I’ve met another Polish girl on Camino.”

“Oh~~~ amazing!”

“I gotta hurry up. Do widzenia!! (안녕!!)”

그들은 진심으로 놀라고, 또 기뻐하는 듯 했다. 머나먼 타지에서 외국인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걸어온다면, 나 역시 기쁘지 않았겠는가?

아주 사소한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행복을 줄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시야를 가로막던 나무들이 사라지고, 어느덧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산맥에 온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저 멀리 드문드문 보이는 마을은, 물론 오늘 다 거쳐야 할 곳들이다.

<피레네는 오르는 길이 아름다웠다면, 깔따브리야 산맥은 내리막길이 압권이다.>

‘광야 너머를 가늠하며 눈이 뜨이고, 마음은 드넓어진다.

여행이 사람을 만든다면, 못 해도 그 반은 길 위에서일 것이다.

오늘 먹을 것과 몸 뉠 곳 걱정뿐인 순례자의 길 위에서,

우리는 눈앞의 하루를 사는 법을 배워 나간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나뿐만은 아닌 듯, 마주치는 이들 모두의 표정에 환희가 어려 있다.

<온 몸으로 맞이하여라, 산중의 아침!!>

“Moon!!”

유이다!

그녀는 오늘의 첫 마을, ‘엘 아세보(El Acebo)’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걸음속도가 빨라 따라잡지 못할까봐, 새벽 4시 반부터 일어나 걸었단다.

내가 출발할 땐 여명이라도 있었지, 아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몇 시간 동안이나 산길을 걸었을 유이. 어쩌면 철 십자가도 못 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다시 같이 걷게 되었구나.

유이와 함께 걷는 길은 혼자일 때와는 다르다. 장난도 치고, 응원도 하고, 음식도 나눠 먹고…

내가 힘들지 않더라도 유이가 힘들면 쉬었고, 그녀가 멀쩡해도 내가 지치면 역시 멈추었다.

표현하자면.. ‘이 길을 유이와 함께 걸었다’ 가 아니라, ‘유이와 함께 이 길을 걸었다’ 의 느낌이었달까. 신비한 한국어의 세계~~

고도가 낮아지자 다시 나타난 산길. 바닥도 비포장도로거나 아예 울퉁불퉁한 흙길이다.

우리 둘 다 몇 번씩 발목을 삐었다. 까미노 도중 가장 험한 길이 아니었나 싶다. 마침내 물집이 다 나아 다시 등산화를 신고 있었기 망정이지, 크록스였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다.

둘 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때 쯤, 마지막 내리막길이 끝났다. ‘몰리나세카(Molinaseca)’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을 입구에 주저앉아버렸다. 유이는 가방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아예 뒤로 나자빠진다. 그녀의 배낭은 약 10kg 정도로, 나보다 두 배 가까이 무거웠다.

몰리나세카는 폰세바돈과는 정반대의 매력을 가진, 아기자기한 동화 속 시골마을 같다. 오스피딸 데 오르비고처럼 커다란 다리가 마을을 관통하는데, 그 밑에 흐르는 강에서는 수영도 가능하다. 너무 아름다워서 ‘폰페라다(Ponferrada) 대신 여기 묵어야 하나?’ 여러 번 망설였다.

그러나 폰페라다가 나빴던 것은 결코 아니다. 대도시에는 대도시만의 매력이 있다.

폰페라다의 공립 알베르게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족욕장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도착한 이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데, 나도 빨리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알베르게 입구의 족욕장. 평소에는 이렇게 평화롭지만..>

<가끔 폭주한다. 천장 뚫을 기세!>

유이는 굉장히 지쳐 보인다. 새벽 4시 반부터 산길을 걸었으니 그럴 만하다. 발에 물집도 두어 개 잡혀 있어서, 소독한 바늘과 빨간 약으로 치료를 해 주었다.

물집치료 하는 것을 보고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2주 전 로그로뇨에서부터 마주쳐 오고 있는 재미교포, 캐롤라인 누나다.

“오~ 그거 그렇게 물 빼는 거구나~ 안 아파요? 신기해요~”

“네? 그거요?”

“네 그거 발바닥에 blister. 그거 한국어로 뭐지?”

“아, 물집이에요!!”

“물쥡? 물찝? 나도 몇 개 있는데 그렇게 해봐야겠네. 호호”

금방이라도 영어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러가며 한국어를 하시는 듯.

<저녁식사 준비로 분주한 부엌>

저녁을 먹어야 한다. 일요일이라 대다수의 마트가 문을 닫았을 것이나, 다행히 주유소 옆 마트가 운영 중이었다. 이런 부분이 대도시의 매력 중 하나다.

쉬라는데도 굳이 따라오겠다는 유이. 힘든 것도 내색 않고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귀엽다.

종엽 형은 그런 우리를 여전히 놀린다.

“야 니네 적당히 해라~~ 아~ 나도 빨리 한국 가서 여자 친구 보고 싶어~~!!!”

<같이 족욕도 하고>

<한국어도 가르쳐 주었다.>

평화로운 저녁시간, 유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줬다. 나도 그녀에게 일본어를 배웠는데, 욕부터 먼저 배웠다. 너 이제 나한테 욕하면 다 알아들어 ^_^

유이는 먼저 자러 가고, 나는 다른 이들의 권유로 술 한 잔을 더 했다. 캐롤라인,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만수형님도 있다.

<양쪽 끝이 각각 저스틴-캐롤라인. 서 있는 사람이 만수형님이다.>

저스틴은 금발에 사각턱, 깊은 눈빛에 긴 생머리를 가진 미국인이다. 여러모로 브래드 피트를 연상시키는 외모인데, 덥수룩한 수염이 무색하게 의외로 나보다 어렸다. 미국에서 목공 일을 하다 돌연 그만두고, 자아를 찾기 위해 까미노를 걷는다고.

캐롤라인 누나는 한국인 부모를 가졌지만 쭉 미국에서 커 왔다. 대학원 졸업까지 쭉 엘리트 코스만 밟은 수재다.

쉴 새 없이 바빴던 그녀의 일상은, 본인 표현을 따르자면 ‘멈출 줄 모르는 차에 올라탄 것과 같았다.’ 이에 환멸을 느끼고, ‘멈추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든, 자신의 삶에 확신을 가지기란 참 어려운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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